국민을 愚民化(우민화)시키는 추악한 지도자들이 누군가 속이 시뻘건 자들이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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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4:11.내가 지혜로운 길로 네게 가르쳤으며 정직한 捷徑(첩경)으로 너를 인도하였은즉]
기준이 다르면 내용도 다르다. 동일한 기준을 가져야 동일하게 본다. 동일한 기준을 공유하는 것을 진영논리로 담아낸다. 빨갱이는 빨갱이 기준으로 모든 것을 본다. 그들의 기준으로 세상을 잣대질 한다. 그들끼리는 그 잣대질이 서로 소통 통용된다. 어둠은 어둠의 기준으로 통용하고 빛은 빛의 기준으로 통용한다. 중구난방하게 되도록 기준을 정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만물과 지구와 인간을 만드셨으니 하나님이 만물의 기준이 되신다. 성경은 만물과 지구와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고 그 기준으로 讀解(독해)해야 한다.
인간이 회개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기준을 성령의 각성으로 깨닫고 그 기준으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늘 하나님의 기준에 관하여 강조할 때 만물과 지구와 인간을 만드신 태초의 말씀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고, 죽임을 받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여 성령으로 인간 속으로 오셔서 통치하시는 통치 곧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것이 기준이라고 하였다. [고린도후서 5:10.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善惡(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그 기준 때문에 그리스도의 審判臺(심판대)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기준은 그리스도의 審判臺(심판대)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기준이시고 만유를 만드시고 유지하시고 운영하시고 통치하시는 기준이시다. 하나님은 그 기준으로 만물을 운영 통치하시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야 비로소 하나님의 기준으로 행하는 자들이 된다. 하나님의 기준이신 그리스도는 또한 만물을 만드시고 유지하시고 운영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이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기준이요 지혜요 능력이시고 또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비밀과 그 기준과 지혜와 능력을 알리시는 지혜와 능력이시다. 이를 성령의 覺醒(각성) 刻印(각인) 强力(강력)이라고 한다.
사람이 사람을 깨우치는 것과 하나님이 사람을 깨우치는 것의 차이. 오늘의 말씀을 意譯(의역)하자면 이러하다. ‘성령의 각성(내가)으로 회개하여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도록(지혜로운 길로) 성령의 각인(네게 가르쳤으니)을 받게 했으며 그 刻印(각인)에 따라(정직한 첩경으로) 행하도록 성령의 강력으로(너를 인도하였은즉) 행하게 하였은즉, 다닐 때에 네 걸음이 곤란하지 아니하겠고 달려갈 때에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서 행하는 인간이 되는 것은 오직 성령의 각성 각인 강력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본문의 지혜로움은 곧 성령의 각성에 있다. 인간의 혼의 등불이 아니라 성령의 각성에 있다.
그 때문에 바울은 성령의 각성을 강조한다. [고린도전서 2: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바울은 성령의 각성 각인 강력으로 모든 것을 깨닫게 된다. 그 빛 앞에서 모든 것을 보니,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고 고백한다. 누구든지 바울이 받은 성령의 각성 각인 강력을 받으면 그리된다.
성령의 각성 각인 강력은 동일한 기준이시기 때문이다. 사도요한은 이를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하는 우리라는 사귐으로 담아낸다. “요한일서 1:3.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사귐은 fellowship=koinonia {koy-nohn-ee'-ah}이라 발음한다. 그 안에는 fellowship, association, community, communion, joint participation, intercourse등을 담는다. 그 우리 속으로 들어가려면 성령의 기준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 때문에 누구든지 성령의 각성 각인 강력을 받으면 한 생각 한 뜻 한 마음 한 입 한 몸 한 영이 되어 하나처럼 행동하게 된다. 하나처럼 말하게 된다. 그들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엔 아무것도 알지 않는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한다. 누구든지 바울처럼 성령의 각성 각인 강력을 받으면 그처럼 고백을 하게 되고 그 길로만 달려간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데 방해되는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기는 선택을 한다.
“빌립보서 3:7.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성령의 각성 각인이 아니면 누가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겠는가? 행동하겠는가? 성령의 강력이 아니면 그가 편만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겠는가?
성령은 혼의 등불을 끄신다. 끄게 하신다. 그 등불을 꺼야 성령의 빛이 임한다. 바울은 성령의 각성 각인 강력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혼의 각성 각인(세뇌) 강력으로 세상을 감화 감동케 하는 인간수법을 완전히 포기한 그 자신의 상태 그 정직한 첩경을 강조한다. [3.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성령의 각성 각인 강력이 있는 것을 모르는 자들은 다만 인간의 혼의 힘으로 계몽 각성하고 인간의 힘으로 세뇌하는 각인 강력으로 행하려고 그 나름의 힘을 기른다. 악마 곧 세상을 미혹 유혹하는 옛 뱀 붉은 용 마귀 사탄은 인간에게 그 힘이 되어준다. 인간의 혼의 힘의 뒤에는 악마의 힘이 받쳐준다.
성령이 아니면 성경을 풀 수 없다. 기준을 모르기 때문이다. 성령이 아니면 인간의 세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성령이 아니면 악마의 힘으로 강화된 인간 혼의 강력을 파괴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인간은 미혹되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구현을 위해 자기실현을 먼저 구축한다. 세상을 가르치고 계몽하여 자기의 세상을 이루기 위한 인적 물적 자원을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설파에 감화되게 하는 힘, 그의 주창에 동조하게 하는 힘이 남달라야 한다. 사실 성령이 아니면 모든 것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결국 그 자신도 모르는 것을 말하게 된다.
전체를 모르고 그가 밝혀내는 등불의 촉수만큼만 아나 그마저도 불완전하다. 그것으로 세상을 가르치고 계몽하려고 한다.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인간은 악마의 힘에 묶인다. 악마의 힘에 묶이는 자들은 공통적으로 성령의 각성 각인 강력을 모르거나 부정하거나 무시 멸시 대적하는 자들이다. 인간이 에덴에서 악마에게 미혹을 받을 때를 생각하면, 인간은 그 혼의 등불로는 악마의 미혹의 힘을 이길 수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세상을 구원하려고 악마의 힘을 빌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인본주의 계몽가들, 각성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지만 악마의 힘을 빌린다.
인간의 혼의 등불에는 악마의 힘이 개입되는 것을 결코 피할 수 없다. 그 자신이 악마의 힘을 빌리는지 그 자신도 모른다. 그처럼 악마는 숨어서 그의 힘이 되어준다. 생각건대 우리 국가가 요구하는 개혁이란 악마와 그 종자들과 남북빨갱이들과 악마경제를 몰아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악마의 무리를 몰아내기 위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마의 힘을 빌려 세상을 계몽하여 개혁하려는 것은 危險千萬(위험천만)한 일이다. 악마는 그 힘으로 도리어 그를 무능하게 만든다. 인간은 결코 세상을 스스로 개혁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미 그 전쟁에서 악마에게 졌고 그 노예가 되어 행하는 세상에 묶여 있기 때문인 것이다.
누구든지 인본주의로 개혁 계몽 각성을 유도하는 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마의 힘에 묶인다. 그 때문에 바울을 깨우치신 성령은 그를 인본주의 혼의 등불의 각성 각인 강력을 완전히 포기하게 하셨다. 성령은 그를 정직한 첩경으로 인도하신 것이다. 성령은 만물과 지구와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의 속을 다 통달하시는 영이시다. 그분은 모든 것을 다 아시기 때문에 결코 조금의 어둠도 없으시다. 그 빛으로 모든 것을 깨달은 자가 되게 하셨으니,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정직한 첩경으로 인도하심을 입은 자가 된 것이다. 그들은 혼의 등불을 끈다.
그 때문에 성령이 오시기 전에 그 앞에 있는 집단 지성의 혼의 침해를 당하는 현상, 곧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그 현상을 겪는다. 이는 그가 혼의 등불로 복음을 깨우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혼의 등불을 끈 자들이 어떻게 그 앞에 있는 자들을 각성케 각인케 강력케 할 수 있겠는가? 성령의 각성 각인 강력이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그 앞에 있는 지성인들, 혼의 등불을 켜서 그 나름의 빛을 가진 자들을 각성하여 회개케 하고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게 하는 각인을 주고 그 통치로 행하는 강력을 갖게 할 수 있으랴?
성령은 바울의 속에 있는 혼의 등불을 끄라고 하시고 끄게 하신다. 그 등불을 끈다는 것은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이다. 성령이 바울 속으로 오셔서 그 혼의 등불을 완전히 끄시고 대신하여 하나님의 등불을 켜시니 곧 성령의 각성 각인 강력함이시다. [4.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5.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성령은 바울을 지휘하셔서 인간의 혼의 등불에서 나오는 믿음을 거부하신다. 오직 성령의 각성에서 나오는 믿음이 참믿음이다.
그 때문에 성령은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교수능력과 전수능력과 전이능력과 또는 교습능력에서 나오는 것을 완전히 꺼버리시는 분이시다. 그 때문에 우리는 강조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만일 인본주의 각성 계몽의 능력에 의존하면 악마의 어둠에 묶여 망하게 될 것이라고. 만일 대한민국이 개혁되기를 원한다면 성령의 각성 각인 강력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바이다. “이사야 30:26.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남북빨갱이에게 늘 선전선동당하는 국민을 구출하려고 하는가? 남북빨갱이가 대한민국을 언제나 틈만 나면 선전선동하고 있는데 이를 이기지 못하고 늘 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학습효과를 본다고는 하나, 여전히 그들에게 농락당하는 것을 보게 된다. 성령이 아니면 인간의 각성능력 그 혼의 등불에 의지해야 하는데 전술한바와 같이 그 혼의 등불의 배후에는 악마의 힘이 개입된다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악마가 악마를 몰아낼 수 있단 말인가? 서로 돕는 존재일 뿐이다. 그 때문에 인본주의는 적그리스도의 숙주이고 남북빨갱이의 유모이다. 이설과 혼미함이 눈을 가리지만 성령의 힘으로 진리를 직시해야 한다. 빛이 아니면 어둠이다.
물론 하나님의 빛이 아니면 악마의 어둠일 뿐이다. 그 사이 인간의 빛이 있으나, 악마의 어둠에 늘 악용당하는 빛일 뿐이다. “이사야 30:26.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성령의 빛이 마치도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은 역사하심이 이 나라에 임해야 나라가 치료되고 살아난다. 지금 우리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의 각성으로 ‘지혜로운 길로 네게 가르쳤으며 정직한 捷徑(첩경)으로 너를 인도하심’이다.
하나님이 직접 이 백성의 눈을 뜨게 하시고 귀를 열어주시고 마음을 밝혀주시는 은총이다. 이 은총이 임하지 않으면 인간은 나라는 망하게 된다. “이사야 59:9.그러므로 공평이 우리에게서 멀고 의가 우리에게 미치지 못한즉 우리가 빛을 바라나 어두움뿐이요 밝은 것을 바라나 캄캄한 가운데 행하므로 10.우리가 소경 같이 담을 더듬으며 눈 없는 자 같이 두루 더듬으며 낮에도 황혼 때 같이 넘어지니 우리는 강장한 자 중에서도 죽은 자 같은지라 11.우리가 곰 같이 부르짖으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공평을 바라나 없고 구원을 바라나 우리에게서 멀도다”
그 때문에 성령의 각성 각인 강력을 전심전력 의존해야 한다. 그것이 구국의 계몽이고 각성하는 유일무이 첩경이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기준의 정직한 첩경이다. “누가복음 7:22.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요한복음 16:13.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의병 및 지도자들이여 구국 호국 보국 애국을 성령의 각성 각인 강력으로 하자. 하나님이 직접 인간의 눈과 귀를 치료하시고 저는 발과 혀를 치료하시고 어둠에 잡힌 마음을 밝게 하신다. “이사야 35:3.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여주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여주며 4.겁내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굳세게 하라, 두려워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하시며 보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5.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6.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성령의 각성이다.
성령의 각인이다. “이사야 29:17.미구에 레바논이 기름진 밭으로 변하지 않겠으며 기름진 밭이 삼림으로 여김이 되지 않겠느냐 18.그 날에 귀머거리가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데서 소경의 눈이 볼 것이며 19.겸손한 자가 여호와를 인하여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빈핍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성령의 각인을 받으면 성령의 성품과 지휘 외에는 행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다. 오직 성령으로 하나가 되어 행한다. 그리되는 것이 곧 하나님의 기준의 회개이고 각인이다. 그 각인이 굳어지면 강력이다. 세상을 개혁한다.
성령의 각성은 오직 그리스도의 속죄와 통치를 깨우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다. 그 권능을 힘입어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고 속죄를 받으면 성령의 각인을 받게 된다. 그 각인이 굳어지면 성령의 강력이다. 성령의 강력이 나타나면, 그것이 곧 악마와 그 종자들과 남북빨갱이들이 구축한 인적 물적 인프라를 모두 다 파괴하게 하신다. “20.이는 강포한 자가 소멸되었으며 경만한 자가 그쳤으며 죄악의 기회를 엿보던 자가 다 끊어졌음이라 21.그들은 송사에 사람에게 죄를 입히며 성문에서 판단하는 자를 올무로 잡듯 하며 헛된 일로 의인을 억울케 하느니라”
악마경제를 완전히 척결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의의 기준이신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세상이 되게 하신다. 마침내 성령의 빛을 완전히 공유하고 그 통제를 따라 동행함이다. “이사야 42:18.너희 귀머거리들아 들으라 너희 소경들아 밝히 보라 19.소경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나의 보내는 나의 사자 같이 귀머거리겠느냐 누가 나와 친한 자 같이 소경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 같이 소경이겠느냐 20.네가 많은 것을 볼찌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귀는 밝을찌라도 듣지 아니 하는도다” 성령의 빛을 공유하는 지도자들이 가득한 대한민국이어야 광명천지다.
[10.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11.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국민을 우민화로 길들이고 속이는 지도자들은 추악하고 속이 시뻘건 자들이다. 오직 성령이 우리 국민을 각성 각인 강력으로 인도하시면 그리스도 피의 속죄를 악용하지 아니하고 선용하며, 그리스도의 통치를 완전히 받아 행하여 하나님의 기준의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을 완성 완수하게 된다. 그야말로 하나님이 친히 성령으로 내려주시는 개혁이다. 사람들은 이를 ‘성령 대각성’이라고 하고 회개운동 회심운동이라고도 한다. 그런 지도자들은 공포를 악용하지 않는다. 도리어 잠재우고 국민의 눈을 밝게 한다. 국민을 속여 망하게 하는 우민화로 몰아가지 않고 도리어 국민을 성령의 각성으로 지혜롭게 한다. 참 아름다운 지도자들이다.
공포를 악용하는 지도자들은 속이 시뻘건 궤휼한 자들이다. 이를 몰아내자. “이사야 32:1.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며”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지도자들이 나온다. 그 방백들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기준으로 정사를 본다. 그들은 기름부음의 통치를 받은 자들이다. 공포를 잠재우지 그것을 악용하지 않는다. “2.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 우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공포를 악용하는 지도자들은 악마의 종자들이고 국민의 눈을 속이는 짓을 하는 자들이다. 궤휼의 역군들이고 사단의 일꾼들이다. 망할 인간들이다.
대한민국은 성령의 각성으로 高明(고명)한 국민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세우신 지도자들은 국민을 하나님의 지혜로 지혜롭게 한다. 결코 속이지 않는다. “3.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의 귀가 기울어질 것이며 4.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그 때문에 국민은 언제나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행하는 자들이 된다. 하나님의 빛을 공유하게 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빛을 성령으로 공유하면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게 된다. 그 강력으로 행한다. 그 강력은 빛이시다. 그 빛으로 사람을 통찰하고 그 속에 악이 있으면 곧 간파 격파 분쇄한다.
“5.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칭하지 아니하겠고 궤휼한 자를 다시 정대하다 말하지 아니하리니 6.이는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리며 주린 자의 심령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의 마시는 것을 없어지게 함이며 7.궤휼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베풀어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며 빈핍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할찌라도 그리함이어니와 8.고명한 자는 고명한 일을 도모하나니 그는 항상 고명한 일에 서리라” 대한민국은 성령의 각성으로 高明(고명)한 국민이 되어야 한다.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국회법에 반드시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高明(고명)은 liberal= adiyb {naw-deeb'} 이라 발음하고 그 안에는 inclined, willing, noble, generous등을 담는다. 인간 속에 악심 악성 악마를 품는 자들은 사곡 사악한 자들이고 특히 악마를 품는 자들은 궤휼한 자들이다. 그들을 즉각 간파 격파 분쇄하게 하는 하나님의 빛을 우리 국민이 공유해야 한다. 국민을 우민화시키는 남북빨갱이들이 지금 국회에서 대통령과 국가를 희롱하고 있다. 위헌이나 정치적으로 무마하여 거부권을 행사치 못하게 하려고 하나, 이는 대통령을 약화하고 국회가 독재하려는 쿠데타이다. 반드시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구국기도생각> http://onlyjesusna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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