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913연구소 실장과 소장의 말 |
---|
913은 김일성이 교시한 날자를 기린 것이다. 종자 비밀보안을 위해 강냉이연구소를 913농장이라고 하였다. 유고슬라비아를 본따 연구소는 처음 안전부경비대(인민경비대)가 그 다음은 산업보위대가 무장을 하고 연구소와 시험포전을 지켰다. 대학가기전에는 밭작물연구소에서 그리고 대학연구소에서 대학졸업장을 쥔다음에는 공화국 최대작물인 강냉이연구소 연구사였다. 연구실장은 최석균(준박사)- 유학하지 않았지만 로어를 잘했다. 전쟁시기 미그15기 소련군조정사들 통역을 했다고 한다(평북도 지구). 미그기가 떨어져 비행사가 죽어 오면 우울한 분위기의 소련군인들을 본다고 했다. - 913연구소 소장은 농업과학원 부원장을 하던 림씨성을 가진 분이였다. 키가 크고 호남아였다. 대신 부인은 초췌했는데- 악발히 근성을 보고 안해로 삼았다고 한다. 부인은 3급연구사임에도 짬시간에 토끼풀도 뜯고 가축도 기르는 등 정말 부지런하였다. 우리집과 앞뒤집에 살아 잘 알았다. 아들은 남포농대에 갔다가 대남공작원으로 뽑혀 사라졌다가 어느날 다시 나타났는데 부상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나와 친구사이였다. 림 소장은 625전야에 김대 생물학부 학생이었다고 한다. 전쟁이 터지자 대학생들은 전선탄원을 하였다고 한다. 3일만에 서울을 해방하는 등 처음엔 전쟁이 놀이처럼 흥겨워 보였다고 한다. 오산에서 미군포로를 처음 보았는데 전쟁담력을 키우기 위해 직접 총살하도록 훈련을 주더라는 것이다.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던 미군 흑인병사가 너무도 기억에 새롭다고 하였다. - 전쟁 와중 인재 보안과 양성을 위해 김대의 피난지였던 평성의 자모산에서 공부하다 소련유학-모스크바대학에 갔다 왔다고 합니다. 혈압이 높아 전전긍긍하였고 그래서인지 화를 내는 것을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 연재하면서 첨부드리는 것은- 625전쟁에 대한 것을 수없이 들으면서도 전쟁을 북한이 먼저 일으켯다는 얘기를 한자는 한명도 없었다. 내가 625진실을 알게 된 것은 남조선삐라를 본 후 즉 북이 일으켰다는 소리에 코웃음치다가 전쟁3일만에 침략당한 자가 서울을 해방하엿다는 것이 이상하여 조용히 전쟁초기참가자에게 말을 시켜보고야 알았다는 것이다. 그 얘기는 차후에 ...
신고 0명
게시물신고
|
- 부탁드림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06-23 02:5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