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인권운동해서 돈버는 방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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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동지회 홈에서 제목처럼 어려운 질문한 분이 있네요. 답은 어렵지도 않습니다. 통일운동, 사회운동은 사명과 인격, 신뢰가 생명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으로 돈을 번다는 것은 말이 안되구요. 오히려 돈과 시간을 쓰며 봉사해야 합니다. 그러고도 온갖 험담을 들어야 하기도 하구요. 그러기에 월급을 많이 준다고 해도 사명이 없으면 하기 힘듭니다. - 나의 경우 - 남한에 와서 정부연구기관에 월급3백만 짜리 -3번 요청받았지요. 뭘 연구해야 하나고 물으니 북한농업 연구하라고 합니다. 제 주제에 배짱도 좋게 - 연구할 것도 없다. 중국처럼 개인농하면 된다고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 지금껏 왔지요. 그런 신념이 없었으면 미지의 대북풍선도 개발하기 어려웠다고 봅니다. 현재 내땅도 아닌 산속의 콘테이너에서 6섯식구가 삽니다. 땅주인이 나가라고 해서 당장 나가야 할 처지입니다. 그래도 불행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요. - 풍선후원금은 너무 투명하여 다른 짓 할 수가 없습니다. 요즘 후원금은 은행에 기록되어 있고 후원자가 후원한 만큼 날리고 영상찍어 보고하여야 하니까요. 개인 수입이라고 한다면 풍선작업비가 전부인데 풍선하나 날릴 때 1인 6천원 입니다. 대신 개인적인 수입으로 큰 것은 강연과 간증이었습니다. 20년동안 3-4천 회 된 것이 기본 수입원이었습니다. 보다 가장 큰 수입은 안쓰는 것, 즉 근검절약입니다. 10년 지난 중고차들, 30년 지난 트랙터, 중고 옷, 중고가전제품 사용, 술담배를 금하고 직접 채소, 옥수수 농사짓고 돼지,닭,오리,개도 키웁니다. 나무와 석탄으로 난방료를 절약하고요. 이렇게 아껴 - 자기 땅의 풍선기지가 없어 몇차례 쫒겨다니는 신세를 면하기 위해 한국사람들이 버리고 버린 6차례 유찰된 경매농지를 구입하여 기지화하려고 합니다. 그마저 포격맞는다고 주민반대에 부딪쳐 진전하는데 보통어렵지 않네요. 타단체에 비해 15배이상 날리는 차량과 기구를 가지고 있기에 아빠트같은 도시나 마을 안에서는 할 수가 없지요. 아무튼 다 나같이 될 수는 없겠지만 - 사회운동가라는 것이 옛날 독립운동가 처럼 산다는 각오가 아니면 못합니다. 요즘 통일운동한다고 국가가 대주는 것이 없습니다. 재삼 강조하지만 - 사명과 인격, 신뢰가 곧 사회운동가의 생명임을 명심하세요. 이 삼박자 중 하나만 결여되도 끝나고나 서서히 쇠망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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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사회에는 김용, 전철우처럼 돈많이 번 준재벌도 많죠. 그런데 그들이 북한인권운동하거나 후원을 했다는 소리도 없고.
돈많이 벌어 혼자 잘사는 사람보다는 이민복단장 같은 분이 애국자이고 통일의 선구자라고 봅니다.
해외에서 벌어지는 북한인권행사 관련내용은 림일작가가 해주면 좋겠네요. 물론 바쁘신 분이지만 그래도 적임자고 또 이창애정이 많은분으로 보여 말씀드립니다.
(개인적으로 작가님 독일방문 후기 기다려요~~~)
그리고 오늘부터 독일방문 감상문도 연재하고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랑합니다.
술 처마시고 꼬부라져서 - 영걸이 영걸을 알아본다고 -
하고는 송걸 동지의 미망인 이순씨 한테 게바라 들어서는
- 이순씨. 난 불행한 싸나이요 - 하고 들이 대다가 싸대기 쳐 맞고
어째...이 장면이 상기 된다. 조선영화 -민족의 태양 - 中
좀 있으면 유격근거지 고수 하겠다고 지랄 하다가 -저기 김상도 동지가 나오십니다~아. 모두 박수로 열렬히 환영 합시다! - 하고 혼자 줴쳐 대고 메사해 하는데 차갑게 외면 하는 군중 속에서 꼬맹이 하나 짝짝 박수 치다 제 엄마 한테 쥐어 박히는 장면도 생생히 나올것 같은 생각이 드네.
이한영씨피살 이후 북한이 주목하는 탈북자분들 경호가 문제가 되었지요
그래서 경찰에서 님을 보호하기위해 형사들이 경호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경호과정에서 민복님 불만이 많겠지요
불만이 있더라도 님 목숨을 보호해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트럭으로 들이받아 부상을 입히는 행위는 천하의 패륜행위 입니다
그과정에서 님 집도 잃어버리고 떠돌이 신세가 되셨나본데 주위에서 영웅취급해준다고 너무 교만해 지지 않으셨나요?
북한에서 유명대학 나오시고 농업연구소 연구사로 중요직책에 있었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님을 잘아는분에 의하면 중학교 나와서 농장 초급일꾼으로 일하다 탈북했다고 하더군요.
한국에서 주요인사가 학력 경력 속이다 사회적으로 매장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님은 탈북자라 그게 용납된다고 생각하시나요?
개학을 맞으며 어떤 분이 북에서 대학시험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똑같진 않겠지만 획일사회이니 기본적으로 참고가 될 것이라 보면서-
제가 시험을 쳐본 대학들은 처음 김책공대, 순천전문대, 남포대학 입니다.
순천전문대는 중앙대학에 다니다 왔다는 것으로 무시험.
차후 남포대학은 대학당비서가 내가 과학원연구원으로 이미 검정하다 왔으니
대학연구소 직원으로 직접 받아 들였기에 무시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명실공히 시험을 쳐 본 것은
평양 김책공대 반도체공학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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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시험은 필기와 담화로 합니다.
필기시험도 중요하지만 담화시험이 또한 결정적입니다.
여기서는 면접시험이라고 하던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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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기시험은 공부벌래여서인지 그런데로 쳤습니다.
신기한 것은 물리시험문제가 내가 그렇게 보았던 반도체란 무엇인가? 였으므로
시험답안정도가 아니라 전문가 수준으로 길게 썼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남은 것은 담화
처음부터 담화교수는 기선제압부터 하려는지 왜 얼굴이 하얏냐고 어디 아푼가고 질문.
이에 나는 대학체육시험에서 마라톤 2등을 했는데요. 하고 응수.
학문적 질문들은 그런대로 막힘이 없었는데
딱 막혀버린 것은 코시누스, 시누스 공식풀이에서 였습니다.
저는 정직하게 신설학교로서 노력동원이 많다나니
학교당국이 수업진도를 못 나가 못 배웠다고 대답.
그러나 그걸 어떻게 믿냐며 그때부터 김책공대가 어디라고
너 한번 해보자는 식으로 나왔습니다. 설상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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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 기하의 삼각형, 사각형, 입체형 공식풀이로 나가는 듯 하더니
갑작이 무형의 주먹부피를 재라는 것입니다.
당황하여 이리저리 주목을 쥐고 진땀을 흘리다가 -기적같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교과서에 없는 답으로서 과외 책을 많이 본 덕분이었습니다.
고전에 왕이 황금에 다른 것을 감촉같이 섞은자의 진가를 못 가릴 때에
가득채운 물에 순금을 넣었을때 넘쳐나는 물의 양을 재서 비교판단했다는...
주먹부피는 가득체운 물 그릇에 주먹을 넣으면 그 만큼 넘쳐난 것을 재면 된다고 대답.
담화교수는 야속하게도 무표정, 속으로는 인정하는 것 같았지만
이번에는 더욱 엉뚱한 질문으로 나왔습니다.
물질이란 무엇인가?
사회주의 국가들이 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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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이란- 의식밖에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이다.
사실 이 대답은 물리학적이라기 보다는 철학적 대답이었습니다.
그래서 인지 교수는, 너 그거 어디서 배웠어?!
아직 중학생이 대학에서나 배우는 철학을 어떻게 아는 냐는 것입니다.
시치미를 뚝 땃지만 사실 우리아버지의 공산대학 교제 중에
철학을 본 것이 기억나서 대답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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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국가들은 몇이나?
이것은 기술대학에서 정말 오바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거침없이 대답한 기억이 납니다.
12개, 여기에 유고를 포함시키면 13개, 수정주의라고 배제하면 12개 입니다.
이것도 세계를 알아야 한다며 집에 세계지도를 걸어 놓은 아버지의 덕분이었습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주 보니 세계나라이름은 거의 다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아버지가 보시던 북한의 기본신문인 노동신문을 자주 본 덕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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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교수는 더 질문할 필요없는지 그제야 의미 있는 미소를 보내며
반도체 공학부의 중요성과 자긍심을 강조.
김책공대는 북한최고의 기술대학,
여기서 핵심학부가 반도체와 핵물리학부라는 것입니다.
특히 반도체공학부에 자긍심을 심어주는 얘기-
학부장이 여자인데 실제 학부장은 수년전에 사망한 그 남편이었다고 합니다.
1968년 김일성이 우리나라도 이젠 비행기를 만들때가 되었다는 교시를 받들어
한쪽에서는 우뚜바(쏘련제복엽기 이름)를 모방하여 만들고
반도체학부장은 제트기보다 어렵다는 직승기(헬기)를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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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만든 후 비행사들보고 타라고 하니 누구도 안타
자신의 설계를 확신한 학부장이 나섰는데 약 800m 상공에 이르러
날개 중심곡축이 부러져 쇠덩이처럼 떨어져 즉사.
설계는 맞지만 금속 열처리 기술이 부족하다는 진단.
우뚜바비행기도 10여대 만들었는데 누구도 타려고 하지 않아
평양 미림비행장에 그냥 진열해 놓은 형편.
자력갱생정신으로 뜨락또르, 자동차, 전기기관차, 백톤짜리 자동차 등은 만들어.
물론 고장이 나서 땅에 세워둘 수는 있어 인명사고는 안나지만 비행기는...
아직 북한은 비행기를 만들 수준이 아닌데 수령의 허영심으로
너무도 아까운 인재를 날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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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대학입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보다 토대입니다.
이것이 정권유지에는 좋은지 몰라도 나라의 실력배양에는 치명적.
담화 도중 엉엉 울면서 나오는 수험생을 보았습니다.
아버지가 큰 간부였는데 왜 떨어졌나는 질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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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대학은 중앙대학과 지방대학으로 나눕니다.
중앙대학은 평양에 있는 모든 대학을 의미합니다.
대학에 가기도 힘들지만 특히 중앙대학은 별따기 처럼 힘들어.
그 중앙대학 중에서 최고의 기술대학이라는 김책공대에 오기 위해서
전국에서 아글 타글 하는데 정작 시험장에 곁에 친구를 보니
이따 껏도 대학이야! 하면서 불평하며 시험을 치는 둥, 마는 둥,
아마 평양의 높은 간부자식인듯 한데 김일성대학에 못가서 불평하는 듯.
손에 땀을 쥐고 바지에 오줌을 싸며 시험을 치는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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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책공대와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김일성대는 그래서 실력이 훨신못해.
체육경기에서 마저 번번히 져 수령님존함모신 체면을 봐서 져달라고 할 정도.
사실 나는 김대에 가게 되었는데- 그때 보니 잘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
성적 순으로 중앙대학 지방대학이 정해지는데-학교적으로 2등한 나는 김대,
1등을 한 저와 딱친구였던 문영철이 김책공대를 희망했기에
당연히 김대로 가는 가 했는데 실력이 훨씬 못한 간부자식들이 빽으로 김대를 모두 차지.
당시 북한대학의 유일한 잡지 <대학생>에 김평일의 졸업논문이 실려 있었고
쉬쉬하며 수령님의 아들이라고 대학선배들이 말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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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아니 중국에 가 보아도 토대가 아니라 실력 위주로 대학에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북한도 그런 날을 맞이하도록 대북운동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가 되자고 자각하면서-
오늘은 학교개학 날이어서 이 글을 올립니다.
기냥 답드리지요.
이한영피살이 아니라 2008년부터 대북풍선때문에 경호가 붙었지요.
기리구 -민주주의에선 개인의 권리를 침범하면 국가도 법에 걸립네다.
30살에게 눈물코물 흘리며 만세불러야 하는 님 계신곳에서는 리해하기 어렵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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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요 - 기럼 어케 대북풍선을 연구했갔시요.
글하나 올리디요. 농민이 쓴 글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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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농업에 대한 오해와 사실
결론부터 말해 북한식량난은 체제문제가 근원이며 기타 모든 문제는 그로부터 파생되어 지는 것이다. 이는 전 북한농업과학원 연구원으로서 탈북하여 망명지(모스크바)에서 월간조선에 투고한 기사로 또한 남한에 도착해서 시종일관 주장하여 온 바이다. 그러나 강연이나 인터뷰, 신문 잡지들에 원고로 표현해서인지 20년 가까워 오는 지금에도 북한농업에 대한 오해는 화석같이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따라서 책을 펴내는 것으로서 북한농업에 대한 오해와 사실에 종지부를 찍고 싶다.
북한농업에 대한 대표적 오해
북한농업에 대한 대표적 오해는 주체농법에서이다.
북한농업은 주체농법으로 표현된다.
대내외적으로 주체농법은 김일성이 만들었다고 선전한다.
주체농법하면 농사법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농사법은 수령님이 만들었단 말인가!?
중학교도 못 나온 수령님이 만들 수는 없다.
주체농법은 바로 북한농업과학원에서 만든 것이다.
여기에 수령님의 이름을 씌워 선전하고 명령하는 것뿐이다.
주체농법의 정의
북한에서 정의한 주체농법이란 공화국(북한)의 기후풍토조건에 맞게 만든 농법이다.
즉 적기적작, 적지적작의 원칙이 주체농법의 핵심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생략)
- 아는바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10-19 11:21:32
답변은 저 위에 있으니 잘 보시라요.
여기서는 입이 아파서 생략하갔시요.
반도체공학부를 모른다면 그건 아니지요. 우리땐 학부로 가서 시험을 쳤는데요.
기리구 -감옥? 아 그거이는 탈북하여 중국가서 잡혀와선 데요.
그때 배고파서 그리구 꼼짝 앉혀놔서 혼사시요.
그때 공화국이 인권이 없는 거이 알아지요.
처음에 림일이 쓴 댓글 아닐까 했는데? 미국깃발 있는거 보니 그건 아니것 같네.
보다시피 림일작가는 오늘 자유방에 발제글 두개 올렸으니까. 한국에서
요건 명백한 사실이고......
여하튼 우리 서민탈북자들의 궁금한 것을 잘 찾아 알려주고,,,, 가려운 곳도 긁어주고.
화가 난것도 대신 풀어주는 림일동무가 우리는 좋소.
똥머저리 강명도 보다 훨씬 낫소.
89년에 한국으로 귀순한 전철우씨를 탈북자로 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나이는 젊지만 1세대 실향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