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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北전단 ‘원조’가 평가하는 북한 '삐라'는?
Korea, Republic of 자유아세아 0 446 2016-01-22 11:42:11
“남한 사람들의 정서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저 ‘김정은 장군님’에게 보고하려고 만든 거죠…
 
앵커: 북한이 최근들어 남한으로 삐라를  살포하기 시작했지요.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요. 민간인 대북 삐라의 ‘원조’인 이민복 씨는 북한이 보낸 이 ‘대남 삐라’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경기도 포천에서 박성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주부터 북한은 남한으로 삐라를 살포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누적분량이 대략 100만 장은 되는 것 같다고 남한의 국방부는 추정합니다. 그중 일부가 지난 일요일 경기도 포천에 있는 탈북자 이민복 씨의 집 앞에 떨어졌습니다.

남한이 보낸 삐라를 보고 탈북을 결심했고, 이제는 북한으로 삐라를 보내는 일을 10년 넘게 하고 있는 이민복 씨. 민간인 대북 삐라의 ‘원조’로 불리는 이 씨의 집 앞마당에 북한이 날려보낸 삐라가 떨어진 겁니다.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북풍선단장을 맡고 있는 이 씨는 북한의 ‘대남 삐라’를 주워든 순간 “이건 내 팔자인가보다”라고 생각했다고 말합니다.

이민복 대북풍선단장: 신기한 거죠. ‘내가 대북 삐라를 뿌리는데 대남 삐라가 우리 집 앞에 떨어졌구나’ 그런 신기함이 있었고요. (대남 삐라의) 내용을 보니까 한심하고. ‘우리 집 앞에 떨어질 정도니까 상당히 많이 뿌렸겠구나, 남한도 좀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좀 아쉽더라고요.

남한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에 대한 대응책으로 북한은 지난 12일부터 남쪽으로 삐라를 살포하고 있습니다. 지난 6일 북한이 제4차 핵실험을 단행하자 남한은 8일 최전방 지역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바 있습니다.

이 씨는 자신의 집 일대에서 모두 6장의 대남 삐라를 주웠습니다. 내용은 천편일률적입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집권여당, 그리고 한국 정부를 입에 담지 못할 말로 비난하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북측이 만든 삐라에 대한 이 씨의 평가는 냉정합니다. “남한 사람들의 정서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따라서 이건 “엉터리”이라고 말합니다. “심리전 효과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북은 체제 특성상 대남 삐라 살포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이 씨는 추정합니다. 남한에서 최근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으니 북한도 나름의 대응 조치 차원에서 “형식적으로나마” 뭔가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이민복 대북풍선단장: 그저 ‘김정은 장군님’에게 보고하려고 만든 거죠. 한국에서 이런 거 볼 사람이 어디 있어요. 인터넷도 볼 게 너무 많아서 정보홍수 시대인데, 홍수에 물을 한 컵 더 부어서 뭐가 되겠어요. 아무것도 안 되지요.

“삐라는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고 이 씨는 말합니다. “진실을 담아야 하며, 이걸 읽고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자신이 만드는 삐라는 그냥 사실만 나열하는 게 아니라 북한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가 가능하게, 그리고 조금만 노력하면 스스로 진실을 깨달을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이 씨는 말합니다.

예를 들어, 6.25 한국 전쟁은 김일성이 일으킨 것이라고만 쓰면 세뇌교육을 받은 북한 사람들에게 반감만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참전 군인에게 물어보라’ 또는 ‘38선에 살던 사람에게 물어보라’는 식으로 적는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 당시 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됐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는 겁니다.

이 원칙은 10년이 넘도록 지켜지고 있습니다. 다만 지난 3-4년 사이 한 가지 달라진 게 있습니다. 예전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 드러낸다는 겁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민복 대북풍선단장: 옛날에는 객관적 입장에서 썼어요. 그러나 지금은 나를 그대로 소개해요. 나 이민복입니다. 황해도가 고향이고 과학원 연구원이었습니다. 삐라 보고 탈북했습니다. 내 전화번호, 이메일, 홈페이지까지 그대로 알려줘요. 왜냐면 같은 북한 사람끼리, 같은 친구가, 같은 고향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과 외부 사람이 이야기하는 게 다르거든요. 그 효과를 노리고 그대로 썼어요.

이 씨는 지난 2003년부터 자신이 제작한 삐라를 풍선을 이용해 북한으로 날려보내고 있습니다. 요즘도 이 씨는 항공기상청이 인터넷에 공개하는 고도별 풍속과 풍향을 찾아보는 것으로 하루 일을 시작합니다. “바람이 맞으면” 삐라를 날리러 가기 위해서입니다.

심지어는 “삐라 뿌리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 지난 2011년 서울 중계동에서 경기도 북부 지역인 포천으로 이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이 씨는 “컨테이너(짐함)를 개조한 집에서 화목을 때며 살고 있지만”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북한에 삐라를 보내는 일은 계속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민복 대북풍선단장: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요. 내가 북한에서 삐라를 보고 깨달은 것처럼, 진짜 북한처럼 라디오와 인터넷이 없는 유일한 폐쇄된 암흑의 땅에서, 수령의 노예들, 황병서까지도 노예로 살고 있는 그 땅의 노예들에게 너희가 속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어려운 데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보람되잖아요. 북한 사람들이 너무 불쌍해요.

1957년 12월 황해도 서흥에서 태어난 이민복 씨는 북한 농업과학원 옥수수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는 1990년 8월 북측 강원도 철원에 떨어진 대북전단을 보고 탈북을 결심했고, 우여곡절 끝에 1995년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이 씨는 한국총신대학원을 졸업하고 안보강연 등을 하며 생활했으며, 2003년부터 대북전단을 뿌리는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탈북자 박상학 씨 등 남한에서 대북전단을 보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민복 씨에게서 필요한 기술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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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사감사 ip1 2016-01-22 13:34:02
    아마 민복단장님의 전단을 보고 탈북하는 사람도 꽤 될것 같습니다. 그 분들한테는 민복단장님이 삶의 구세주같은 존재죠. 그나저나 대북전단사업에 정부나 기업의 후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국가가 못하는 일,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을 하는데 컨테이너집에 화목은 너무 심한거 같습니다. 이제 부터는 자기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 보셔도 되지 않을까요? ㅎㅎ 항상 감사드리고 건강과 가정의 화목을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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