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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사람 1 460 2006-04-16 18:10:23
2004년 5월 12일 살인사건관련 진정서

2004년 5월 15일 나는같은 귀순자들인 김씨와 조씨와함께 배를타고 중국청도로 떠났다. 내가당시 중국으로 급히 떠나게 된 동기는 중국의 아는 친구들을 통하여 어머니가 중국국경연선으로 온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어머니가 국경연선에 오게된 내용은 몇 달전에 누님과 매형이 온성군의 남양구로 와서 전화로 나를 만나고 나는 350만원을 건네주고 한국제 가전제품과 물건몇가지를 넘겨주었는데 이것이 빌미가 되여 매형은 군에서 처벌제대되고 누님은 감옥으로 끌려가게 되였다 ,어머니는 이런상황에서 돈을 주면 뽑을 수 있다는 북한 보위부간부의 말을 듣고 돈을 구하기 위하여 한국에 있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나 때문에 온 일가족이 공직에서 떨어지고 또 나 때문에 누님이 감옥까지 가야한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어쩔수 없어 당시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정부로 받은 임대주택을 반납하고 그돈을 들고 중국에 들어갔다. 정작 중국에 도착하니 일주일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국경연선의 중국인의 전화를 받고 일행인 김씨의 약혼녀집으로 먼저갔다. 청도에 있는김씨의 약혼녀집에 이틀정도 머물고 있는데 조씨의 전화에 한국에서 연락이왔는데 내용은 내가 알고있는 중국여인 (대림동 금산반점주인)이 살해되였는데 바로 내가 살인용의자로 되였다는것이였다. 나는 너무 억이막혀 일단은 조씨에게 먼저 한국에 들어가 무슨일인지 확인하라고 들여보냈다. 내가 들어가자면 어머니와의 약속이 틀려지기 때문에 당시 움직일수 없는 상황이였다. 직접 만나지는 못해도 전화상으로 국경연선에서 먼발치에서나마 강넘어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게 소원이였기 때문에, 또 내가아닌 이상에는 진실은 밝혀진다는 마음으로 나는 한국으로 들어오지 않고 연변으로 나가 연길에 자리잡고 기다렸다. 며칠후 중국도문 너머에서 어머니와 동생을 전화로 만난다음 돈과 물건을 넘겨주었다. 한국에서 여러번 전화가 오고 또 내가 직접 측근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해본결과 수사는 전적으로 나에게 쏠려있었다. 하지만 나는 당시 다시는 한국에 안돌아간다는 생각과 함께 어떻게 하면 미국으로 나가겟는가만 생각하다보니 사건이 점점 커져 이제는 모든 내용이 오직 나에게만 집중되여있었다. 미국으로 나가려고 결심한 것은 한국에 귀순한 그해부터 솔직히 준비한것이다. 또한 한국으로 들어온 목적역시 그것 때문에 국적을 잡으려고, 그런다음 미국으로 나가는 방향을 생각한데서였다. 미국으로의 걸음을 생각하지않았다면 솔직한 마음으로 한국에 올생각은 전혀 없었다. 다른사람들과 달리 나는 북에 있을때부터 한국에 대하여 너무나도 잘알고 있는 사람이다. 부대를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도 명칭은 중국무역이였지만 실지 배후에는 한국인이 있었다는것을 알고잇었고 중국출장들어온 기회에 사실 남한으로 넘어가기위한 마음을 가진건 아니였다. 부대의 외화벌이 과제를 수행할 명령을 받고 중국에 들어왔으나 우리와 계약한 중국측에서 돈을 전부 없애버리고 남녀 두명이 사라지는 바람에 이대로 돌아가면 군사재판을 면치못하기에 할수없이 중국에 남게 되였다.
내가 북한군 o군단 외화벌이부대 선장겸 해상지도원으로 발령나기전까지는 북한군 노케트국 oo기동타격대(o기동타격여단)에서 복무하면서 한국에 해상으로의 침투 여러번과 일본 오끼나와침투. 외에도 파키스탄.인도,중국.러시아등 여러나라를 합동훈련을 다니였다. 이 결과 남한내 실태에 대한 내용은 다른 대남 침투부대들과 마찬가지로 자세한 실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구태여 남한으로 올 생각은 하지않았다, 부대의 실정으로 한국에 대한 교육을 많이 시키는데 나지오를통해 남한방송을 듣고 텔레비를 통해 남한내 생활을 보고 부러워한적은 많았으나 자신의 신분과 당시 가정상 환경으로하여 선뜿 결심을 내리지는 못했다. 그로하여 한국에 귀순한 당시 국정원 수사에서도 나는 자신의 신분에 대하여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당시 나의 진술은 제대하여 군부대 사무원으로 선장겸 지도원을 하였다고 하였고 인천공항에 내렸을 때도 기자들에게 제철소 노동자였다고 속이였다. 나는 그무슨 동기가 있어 그런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북에 남아있는 가족들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자신의 신분에 대하여 밝힐수 없는대신 내가 알고있는 정보에 대해서는 솔직히 내가 알고 있는 면에서는 전부 내놓았다.
심지어 하나원으로 넘어가는 당날 새벽까지도 나는 군용지도 뭉텅이와 씨름해야 했다. 그만큼 나는 정보분야에서 만은 전적으로 협조할 마음이였다.
남한내 북한침투조들의 체계에 대하여 조금은 알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굳이 한국에서 사는 것을 위험부담으로 생각하고 어떻게하면 미국이나 유럽쪽으로 빠지겠는가만 생각하던중 우연히 미국의 미주통일신문.방송 사장을 알게되여 그에게 정상적으로 북한내 군관련 정보들을 제공하면서 미국으로의 길을 모색하였다. 사장역시 미국중앙정보부와 CIA,FBI등에 나의 정보들을 수시로 알리면서 정상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앗으나 나는 한번도 그에게서 정보비를 받지않았다. 나는 단지 비록 작은 정보라도 미국이나 한국정보기관들에서 알고 그에 대치한 상황 펼칠수록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빨라진다는 오직 그한마음으로 나의 정착금전부를 쏟아부으면서까지 북한정보 자료수집을 하였다. 대가를 바라고 그일을 했다면 애당초 시작부터 하지않았다. 이내용은 사장이 잘알고 있다.
그사람이 나에게 정보자료비를 단한번도 주지 않아 나는 많은경우 북한과 중국에서 움직이는 나의 루투성원들에게 경비를 조달하지못하여 미안한 일이 많았다. 그렇다고 한국정보기관에 알리면 남북관계문제요 뭐요 하면서 일축해버리는 것이 너무 많아 나는 한국기관에는 다시 보내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전부 미국에 날려 그것도 언론에 내보내는 것으로써 이념, 그하나만을 생각하고 그일을 하였다. 나는 2004년도 한국에서의 일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국경연선에서 함께 일보던 중국인 친구들과 함께 북한자료수집을 전문 하였고 북한내 군기관친구들을 중국으로 불러들여 자료수집을 하였다. 또한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에 직접 3번을 넘어가 필요한 촬영 및 녹음 ,사진,녹화들을 해왓다. 그리고 한국의 여러기관과 미국기관들에 수시로 정보자료들을 제공하였지만 단 한번도 대가를 받은 일이 없다.
2004년도 한해여름 북한자료 제공건수만해도 대충으로 60가지이며 내가 중국공안에 체포당시 가지고있던 북한관련 자료중에는 함북일대와 함남일대 미사일배치와 동해안 군사기지영상물.등등 사진 총120장과 디스크 총45장.녹음테잎총 15개.비디오테잎총15개.그외 현물자료20여가지를 전부 중국공안기관과 안전기관에 압수당하였다.
이자료들 때문에 알지못할 곳으로 간 북한군의 여러군인들과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 금할수 없다. 나는 당시 그것을 가지고 미국입국의 요점으로 생각하다보니 그리고 우편으로 보낼수 없는 특성도 있고하여 몸에 지니고 떠났다가 상해공항 체포시 압수당하게 된것이다.
이것으로 하여 상해안전기관인원 몇 명은 포상까지 타게 되엿다고 당시 내가 구류되여있는곳으로 수사나왓던 안전기관의 한사람이 나에게 귀띰하였다.
그결과 나는 북한으로 넘겨지게끔 되였고 북한기관에서 매일 온다고 하였다.
미주통일 인터넷사이트와 한국의 북한자유방송사이트내 북한정보는 전부가 내가 제공한 자료들이다. 솔직한말로 정보제공때마다 정확한거냐.실질적인거냐하는소리는 전부 한국측에서만 들었다. (한국자유총연맹). 그래도 나는 단한번도 일시키는 사람들에게 경비한번 제대로 대주지못하면서 나의 재산에서 조금씩이나마 갈라주곤하엿고 그들도 나의 마음을 이해하고 정말 목을 내대고 자료제공을 하였다.
북한인들에게 물어보면 잘 알것이다, 북한에 한번씩 나들면서 자료들 수집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일이 아니다. 단지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오직 빨리 통일을 바래는 그마음 하나여서였다. 나는 항상 나 때문에 피해를 본 북한의 여러사람들과 중국인들에게 미안한 마음 금할길 없다. 내가오늘 구태여 여기에 이러한 사실을 밝히는 목적은 그만큼 대한민국정부의 정보기관들에 대한 한심한 상황을 말하려는것이다. 이나라에 나는 미안한 일도 많이 한 사람이다 그래서 내딴에는 내능력으로서는 북한군관련 자료들 수집과 제공이 편리하기때문에 그것으로나마 이나라 국민들에게서 받은 감사를 보답하고저 하엿다.
진심으로 말한다면 20년가까이 이나라 국민을 반대하여 총부리를 들이대고 있던 인간을 이나라 국민은 자기들 세금을 모아 나를 받아주었고 단한번도 너 나 쁜 인 간 !하고 욕하지않앗다.
사람이 짐승이 아닌이상에는 양심이란 것이 있어 나는 항상 이나라 사람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오직 미안한 마음 때문에 나는 목숨을 내거는 위험한일을 그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신의 결심으로서 한것이고 그것을 한국정보기관에 보내면 나 몰라라 하는 개념 때문에 미국으로 보낸것인데,, 또 그래야만이 통일이 하루라도 빨리돌아와 우리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햇기 때문에 이행동을 하다가 죽더라도 한다하는 마음으로 그일에 손을 댄 것이다. 이것이 국정원 이라는곳의 미움을 산 근거인지는 몰라도 나의 사건전말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연길에 잇는동안 배사장의 소개로 미국에 건너간 탈북자 김용 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였다. 직접 만나본 일은 없지만 전화로 만나 현재 내가 한국에서 생사람잡이수사로 억울하게 살인용의자로 지목되여 잇는것에대하여 이야기하자 이사람이 나에게 그런거 신경쓰지마라 ,단지 네가 북한군에 있을때를 증명할수 있게 증명서들이나 확증물건들 만 가지고 오면 망명 승인된다. 하는것이엿다. 당시 도문에서 얼마멀지않은 남양의 아는집에 나의 각종 증명서들과 북한군 복무를 인증할수 잇는 여러 가지 물건들과 심지어 군복들, 김일성 ,김정일에게서 받은 표창장들, 십여개의 훈장들도 잇었다.
준비는 다되여 있다고 하니까 이사람이 나에게 화룡에 20년전에 탈북한 사람이 중국국적가지고 사는데 이사람 위장으로 북한증명서 하나 만들 수 잇느냐하기에 할수 잇다 대답한다음 그밤으로 북한에 연락하여 북한군총참모부에서 근무하는 친구를 2틀만에 중국으로 불러 북한군관 신분증 하나를 만들어 김용이 부탁한 사람의 증명서를 만들엇다. 그런다음 그사람에게 전화하여 만나자고 한다음 연길에서 만나 증명사진을 찍어 받은 다음 김용이 그사람 집으로 미국초청장 보내준다하니까 초청장 받을때 당신도 증명서 받으라하고 헤여졋다.
그리고 김용에게 전화하여 그사람 증명서 준비 다 되였고 여러사람 미국으로 갈수 있게 초청장 부탁을 하니 그사람이 하는말이 초청장 하나에 5천불 하는데 돈은 내야한다는 것이다.
기가 막혓다 .미국에 부탁하면 솔직히 웬만한 초청장 100불이나 최고 200불이면 얼마든지 한다 ,현재 내손에는 당시 미국에서 보내준 초청장이 여러개 있었다.
사장이 직접 보내준 것도 잇다. 초청장이 문제인것이아니라 미대사관에서의 수속이 기본인데 이사람이 나에게 이런돈을 요구하기에 나는 즉시 사장에게 전화하여 김용이 이렇게 돈내란다하니 성격이 직설적인 사장이 김용에게 전화로 당신 같은 북한사람끼리 어떻게 그런돈을 어처구니없이 요구하는가하고 하였다고한다, 그러자 이사람은 자기는 그런소리한일이 없다하면서 발뺌하더란다, 결국 그때부터 이사람의 악심이 생긴것이라고 볼수있다.
나는 다시 이런사람과 연락하지않으리라생각하고 연락을 끊어 버리엿다.
단지 미국에 도착하면 용서하지않으리라 생각하고 이사람이 한국의 북한사람들에게 나에대하여 나쁜소리들을 할때에도 참기만 하였다.
그리고 북에 연락하여 이사람의 자료를 수집한결과 북한군 보위부 중좌출신이라고 .보위부 외화벌이에 있엇다고 증언한 내용이 전부 거짓말임을 확인하엿는데 결국 나는 네가 그런 쓰레기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는 털어버리였다. 보통 북한사람들은 한국이나 미국에가면 자기들이 마치나 북한에서 요직에 있으면서 중요한직책에서 일하던 듯이 흉내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환경이 바뀌운 이 자리에서 자기들이 북한에서 대통령을 햇으면 무엇하고 지배인이나 당간부를 했으면 그게 여기와서 무슨소용잇을가?
이바닥에 왓으면 여기실정에 맞게 사는게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도망이나 치고와서 사는 주제들에 구태여 지들이 옛날에 어쨌다고 할 필요가 구태여있을가?,,,,,,,,,,,,
연길에서의 일들을 마무리하고 북경으로 올라가려고 서두르는 사이 조씨에게서 한국전화가 왓는데 화룡에서 8살난 아이를 데려다 대사관에 좀 넣어 달라는 것이엿다.
돈을 주고 아이를 데려왓는데 얼마나 키가작고 연약한지 겨우 6살정도 밖에 안되보였다. 그런데 자기가 열 살이라고한다, 믿어지지 않았다
그아이를 데리고 할빈에 들렸다가 천진에 들려 북경으로 올라와 민박집을 정하고 있었는데 아이의 엄마는 한국에 이미전에 입국하고 결국 브로커들에게 아이입국을 부탁한것이다.
당시 나는 한국에서 가지고 들어갓던 돈을 전부 써버리다보니 민박집에 잇는것도 중국친구들이 조금씩 보태주는 돈으로 지내야햇다. 아이의 엄마에게 전화하여 아이의 생활비라도 보내달라햇더니 전화마저 하지않는것이였다.
부모가 그렇게 야비한건 처음보았다. 중국에 남편을 두고 살다가 지금은 한국에서 다른 남자를 만나 살면서 북에서 낳은 아이를 데려가려는것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무관심한 부모를 나는 아직 보지못하였다. 오죽하면 나는 전화로 이oo아! 아이를 북에 도로 보내버리겟다!까지 했겠는가? 그러자 30만원인가 보내겟다하는것이였다, 너무도 밸이난김에 난 브로커도 아니고 또 당신들 한국가는문제 돈에대한 내용에는 절대 휘말리고 싶지않으니 나한테 돈보내지마라 하여 그돈도 없이 전부 내돈으로 아이와 함께 민박집에 한달을 같이 잇엇는데 이자식이 북에서 금방온 아이라 음식부터 완전히 돼지처럼 먹고는 화장실에 온통 대변 범벅판을 만들고 그래서 민박집에서도 청소를 못하겟다하여 나는 생전해보지못한 아이의 대변까지 쳐야햇고 아이를 목욕시키고 세탁을 하고 거두어야했다.
평소 아이들을 좋아하는 내성격으로서 그마음과 또 너이제 나까지 몰라라하면 어떡하나 하는 불쌍한 마음에 할수없이 내가 힘들지만 데리고 잇었다.(지금 그아이는 한국에 왔다고한다.돌이라 별명달아 놓았는데 이름이 생각나지않는다. 사람의마음이란게 참 이상하다.그놈하고 헤여질때 택시안에서 눈물이글썽하여 삼춘 같이 안가나하면서 바라보던 그아이얼굴이 잊혀지지않는다. 없는돈을 모아 그리고 중국친구들의 도움으로 내딴에는 숱한 옷들도 사입히고 햇지만 어쩐지 내정성이 부족한것만같다. 오죽하면 중국사람들이 내아들인가고 했겠는가. 지금 어데서 사는지 모르겟지만 찾자꾸나하면 얼마든지 찾을수 있으나 찾고싶지않다,) 거기에다 일이겹쳐 2004년에 미국가려다가 몽골비행기인가 하는데서 잡혀 결국 한국으로 온 장씨가 아이와함께 나에게 오게 됨으로써 나는 내가 바쁜처지에서도 북한사람 3명을 거두어야했다. 그여자는 연길에서 올라오기전에 전화상으로 연락이 되여 잇엇는데 한국에는 안가고 미국으로 보내달라하는것이였다. 아이들만은 한국으로 뽑으려고 두아이를 데리고 대사관과 영사관에 얼마를 찾아다녓는지 모른다. 심지어 큰 배낭속에 작은아이를 넣고 영사관에 들어갈 궁리까지 다하엿다.
정말 내손바닥에 땡전한푼없이 여러사람 데리고 잇는 것이 말처럼 쉬운일이 아니엿다.
고마운 중국교포들 아니엿으면 버티기 힘들었을것이다.
생각하다못해 다시 김용에게 전화하여 장씨가족이라도 데려가달라고부탁햇는데 이사람이 장씨가 여자이고 그리고 북한영화계의 인민배우 ooo의 언니라하는데서 다른감정상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선듳 데려가겟다고해서 일단 마음을 놓고 그여자에게 이사람의 연락처를 주어 서로 연락하게끔 만들어주엇다. 그래서 김용의 선에서 장씨가 미국으로 가던중 누구의 고발로 체포되여 한국으로 들어왓다는데 아직 만나보지못하엿다.
이러고 있는사이 8월에 다가왓는데 8월 13일자로 인터넷을 보니 나를 살인용의자로 수배를 걸엇다는것이다. 한국에 전화하여 확인해본결과 사실이였다.
너무 황당하여 그즉시 노무현대통령에게 편지를내고 청와대 민원고에 진정서를 내고 대법원,법무부,검찰청,경찰청,국가인권위원회.국민고충처리위원회.통일부.대법원.등 국가정부 기관 여러곳과 북한이탈주민관련기관 여러곳,언론기관들과 신문사들,미국의 언론기관들에 대한민국경찰의 부정수사에 관한 고발장들을 팩스.편지.인터넷을통하여 무려 300여장에 한해서 날리였다. 당시 너무 억울하여 다시는 한국에 돌아가지않을것과 북한으로 되돌아간다는 소리까지 보냇고 그때 수사를 맡앗던 구로경찰서는 밀입국해서라도 폭파시켜버릴 생각이엿다.
그리고 부정수사를 한 인간들에 대하여 징벌할 생각이 불같았다.
이왕 살인자로 몰릴바에는 진짜 살인을 하고싶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대로 북한에 돌아가야 이놈!살인치고 급하니까 되돌아오느냐!하는 소리는 듣고싶지않았다. 한국에서 수배를 거는 바람에 결국 그소식은 북한대사관과 북한기관들에서까지 나의 위치를 추적하고 나섰다. 우리친척들 계렬에 북한보위부내에서 일하는사람들이 많다. 이사람들이 전적으로 나서가지고 집안의 역적을 잡는다고 자신들 직접 북한에서 중국으로 들어와 돌아치고 잇다는 것을 중국친구들을 통하여 확인하게 되였다.
이실태가 벌어지게된 동기는 북한군 총참모부에서 복무하는 동기생친구가 나에게 여러번 자료들을 보낸 것이 빌미가 되여 꼬리 잡히게 되면서 결국 나를 인식하게 되엿는데 결국 내가 북한군정보들을 날라간다는 것을 포착하고 또 현재 중국내에서 돌아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잡으러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북경에 있는 각 북한식당들에까지 내사진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나에 대한 구체적 사실은 북경에서 북한대사관에 자주 나들던 중국인친구를 통해 확인하였는데 대사관에 들어가 직원들과 한담을 하면서 나에대해 물으니 그사람들이 하는말이 나는 반드시 잡아야할 인물이라고 말하더라하면서 중국인친구가 대사관에 다녀와서 나에게 전달하였다. 그래서 북경에 더 머물지 못하고 천진으로 옮기게 되였다.
실지로 북경에서 북한요원들과 5번을 마주치기까지 했다.
일체 연락을 전부 끊어놓은채 나는 천진에서 상해로 나가기전까지 숨어있다가 한국여권과 비행기표를 사가지고 북경에서 비행기를 타고 상해에 도착하여 상해 푸동 공항에서 엘에이경유 멕시코시티비행기에 오르려고 출국대로 나가 검사도중 체포되게 되였다.
처음에 공안원들은 내가 중국인인데 한국여권가지고 밀입국한다하면서 한국인이라고 아무리말해도 믿지를 않았다. 그러다보니 거기서 언성이 높아지고 결국 몸싸움이 일어낫는데 중국말도 잘 안되고 하여 거기다 한 공안이 다가와 곤봉으로 머리를 때리는 것이였다, 순간적으로 자제하지 못하고 그 공안을 때려눕혔다. 그러자 사무실에 있던 8명의 공안이 전부 나에게 달려들었고 그들이 나를 당하지못하게되자 공항 경찰대가 16명이 무장한채 달려왓는데 그들과도 몸싸움이 크게 벌어졋지만 머리에 총구가 10개넘게 붙여지는데 아무리 날구 긴들 어떡 할텐가, 그래서 거기서 한참을 무리매 맞고 꽁꽁 결박당한채 간곳이 공항 파출소 였는데 하루밤 자고나니 외사처에서 호송을 왔다. 이렇게 되여 나는 외사처에서 2일간을 수사받은다음 상해 외국인구치소로 옮겨져 처음에는 행정구속으로 10일간을 보낸다음 인차 교도소로 옮겨져 12월 30일까지 갇히게 되였는데 상해에서의 조사는 전부 북한자료건과 중국국경연선 루투들에대한 것을 나에게서 뽑으려고 그들이 수사를 하엿다. 인터폴에 수배된 것은 전혀 수사를 하지 않고 전부 북한자료수집,인원,북한내루투,인원수사만 해대는데 나하나 입 때문에 숱한사람 다치는 것은 정말 싫었다.
그덕에 매도 엄청 얻어맞았는데 그래도 나는 입을 열수 없었다.
차라리 내가 죽더라도 지켜야할 것은 사람들의 목숨이였다.
나에게서 나온 자료들은 전부 북한내 군기관 고급정보들로서 경로에대하여 물으면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돈주고 산것이라고.중국사람들에게서 산것이라고만 벝티엿다.
어느날 알지못할사람 4명이왔는데 낌새가 이상했다. 두명은 중국인들이지만 한국말을 능숙하게하는 중국안전기관사람들인데 두명은 조선인같은데 전혀 말을 안하고 듣기만하는데 그날도 역시 나는 자료들 돈주고 산것이라고 우겨댓다. 미욱한 중국인들이다보니 사람패는것도 역시 우둔하기 그지없다. 그날 아침 6시반부터 시작된조사는 저녁 8시에끝나 돌아왓는데 다음날아침 8시에 창문으로오라하더니 버스에 20명의 여자들을 수갑을 채워 싣는 것을 보여주면서 북한사람들인데 너도 인차 저꼴 난다는것이다. 당시 나는 북한으로 호송되게끔 되엿다고 수사관들자체가 나에게 문건들을 보여주엇다. 나는 두명의 인원에 대해서 몰랏다가 다음날에 다시온 수사관들을 통하여 어제왓던사람들이 북한사람들임을 알게되엿다. 그사람들이 북한보위부요원들이라고 수사관이 알려주면서 나에게 너 안에서 전화장난 얼마를 주고 햇느냐 하는것이엿다. 당시 나는 내가 체포됨을 교도소 관계자에게 돈을 질러주고 밖에 내보내 전화로 알리게끔 하엿던것이다. 결국 나를 쥐도새도 모르게 처리하자고 한 것이 내가 안에서 전화장난 하는 바람에 밖에 새나갓다는 것이다.
그 수사관이 참 고마운 사람이다. 한족인데 그동안 너 고문한거 미안하다 하면서 그날 담배도 한통을 주면서 북한에 대하여 자기는 좋은 감정 없다고 하면서 자기가 어떡하나 내가 북한으로 송환되는 것을 막아줄것이니 한국으로 돌아가면 진짜로 네가 사람죽이지않았으면 반드시 사건 해명하라고하면서 일러주는것이엿다. 솔직히 조선족들이라면 그렇지못하다.
한족인데 한국말을 얼마나잘하는지 마치 한국사람과 말하는 기분이엿다.
무려 7곳의 수사를 받앗는데 각기 오는기관이 전부 달랐다.그러다가 죽은 사람이 심양사람이라고하면서 심양공안국에서 호송인원 4명이 왓는데 당시는 내가 속이 원래 나쁜데다가 중국음식이 맞지를 않아 식사도 전혀 못하는데다 간도 나빠지고 매맞은 어혈도 잇어 상해공안국 경찰병원에 입원하고 있는데 하필이면 설날 아침에 심양으로 호송하는것이였다.
다죽어가는 환자인데도 호송한답시고 발목에 30키로 쇠고랑을 걸고 손목은 잔등으로 돌려 수갑을 거는것이였다. 보다못한 한족 형사들이 책임자에게 발목족쇄 풀고 수갑앞으로 돌리자고 여러번 말하는데도 책임자라는 조선족형사는 안된다고하면서 그대로 기차에싣고 열차에서도 도망간다고하면서 머리맡에 총을 베고 그리고 나는 바닥에 눕혀 의자기둥마다 족쇄를 걸어놓고는 눈을 딱 부릅뜨고 지키는 것이였다.
드문드문 들리는 말이 동북말이라 좀 알아 듣는데 그의 말이 북한부대아이들 실력 대단하다하면서 저놈 저상태도 위험하다는것이다. 몸하나 제대로 가누지못하는 환자를 놓고 한다는 소리가 그런소리다, 이렇게 26시간을 바닥에 눕혀진채 심양에도착하여 새벽3시에 입감되엿는데 이사람이 또 고약한 소리를 한다 ,교도관들에게 북한부대출신이니까 잘 관리하라 하고 이 아이손에 중국경찰 여러명이 병신이 되엿으니 잘 교양하라는 등 하다보니 교도관 12명이 달려들어 나를 패기 시작하는데 그래서 거기서 또 결국 싸움이 벌어졌다.
너무 악을 쓰니 무장경찰 10명이 무장한채 달려와 총탁과 곤봉으로 패더니 곧장 징벌방으로 데려가 발목에 다시 10키로짜리 족쇄를 걸더니 천정에 거꾸로 매달아놓는것이였다.
아침 8시부터 수사가 진행되는데 이때부터는 내가 사람죽인거 인정하란다. 나는 사람죽이지않았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조사받을 근거가 없다하며 대사관, 영사관에 알려 나를 외국인으로 처리 할것과 한국경찰에 넘겨줄 것을 호소햇지만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수사관에게 말대꾸와 함께 반항한다하여 거꾸로 매달아서는 입밑에 의자를 같다놓고는 거기에 빵한개와 물고뿌를 놓아주는 것으로 하루 식사엿고 철의자에 앉혀 벽네면에 물을 끼언어가며 얼음방에서 묶어놓고 지내게 햇다.
순순히 자백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각목과 가죽혁띠. 그리고 전기곤봉과 고무곤봉으로 팰 때마다 나는 살인자가아니라고 항의하며 대한민국경찰을 원망하기만 햇다.
실지로 죽어버릴려고 자살기도도 여러번 했으나 반드시 사건을 해명하기전에는 죽을 수 없어 매번 참앗고 내가 반드시 살아야만이 사건해명을 한다는 악으로 버티다보니 살아남을수 잇엇다. 8일간의징벌방에서의 수사가 마쳐졋는지 나를 방에 처넣는데 방에넣고도 발목의쇄고랑과 방바닥열쇠고리를 연결하여 키를 잠구어 놓는 것이 엿다. 중국은 살인혐의는 무조건 쇠고랑을 채워 둔다는것이고 재판이 끝날때까지 방바닥키를 열어안준다는것이다. 그것때문에 또 고함치고 난리번져 꼬박하루동안 징벌방에 다녀왓다, 방장이라는 사람이 처음에는 나를 건드려보려고 햇다가 당하고 또 그안에 28명을 연쇄 살인한 중국특종부대출신살인용의자가 잇엇는데 이사람이 방안에 잇는 전체 사람들에게 북한군출신아이들은 건드리지 않는게 좋다하면서 이야기를 해주는바람에 결국 안에 까불어대던 아이들이 잠잠해지게 되였다. 또 방장이라는 사람도 이해하고 친구하자면서 도와주기시작햇는데 당시 내형편이 말이아니였다. 정말 오늘 죽을지 내일죽을지 모를 형편에까지 도달했는데 중국감옥은 모든 것이 돈으로 움직이다보니 그안에서 돈이많은 사람은 밖의사람보다 더편하다고 해도 되겠다. 한족들의 경우 한번만 잘친해놓으면 일생 친구가 되는법이다. 내형편이 너무 처참하고 이미전 감방에오기전에 교도관들을 통해서 나에대해 교도소내 사람들이 전부 들었다고한다, 그바람에 방장도 나를 도와주기 시작했는데 솔직히 그는 부자엿다. 누구를 보증서고 280만원인가 보증선것 때문에 들어왓는데 이사람아니면 나는 아마 죽었을것이다. 여기서도 그사람의 도움으로 한국에 여러번 소식을 보내였다.
중국공안에서 수사를 하면서 그사람들이 나를 위협하는 근거는 오직 북한으로 보내버리겟다는 소리들 뿐이였다. 그래서 보내라. 차라리 그게 좋겟다 하고 매일 싸웠고 믿어안지면 너희들 직접 한국에가서 수사하면 알것이다. 나.사람 안죽였다, 하면 또 가차없이 매가 들어온다. 북에있을때 군에서 훈련받을때도 그렇게 까지는 얻어맞지를 않았다.
조선족경찰이 한국사람들과 북한사람들에게 무슨원한이 그렇게 많았는지는 모르겟으나 때릴때마다 한국ooo들, 북한ooo들 하면서 패는데 어느날 내가 한마디했다,
햇더니 한다는말이 둘다 나쁘다는것이다, 그래서 가만있지를 않고 그래서 네가 중국경찰에서 그렇게 비굴하게 한족들 미꾸넝이나 씻고 있냐하고 말햇더니 거기에 아마 더 열 받앗는지 참,못되게는 때 리 더 군 ,철 의자에 수갑 네개를 가져다 각각 채우더니 몽둥이로 패다가 그날은 그 바람에 전기곤봉 무려 네 번을 맞고 기절했다, 정말 죽을 때까지 그 사람 얼굴이 지워질 것 같지를 않다. 이렇게 무려 여러달을 나는 억울하게 대한민국경찰덕분에 중국감옥에서 여러달 죽을고생하다가 올해 2월4일날 넘겨 졋는데 나는 지은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죽은사람과의 관계는 구로에서 술장사를 하면서 시장보러도 다니고 집이멀어 밥먹으러도 다니고하다보니 죽은 여자의 식당에서 자주 밥을 먹게 되엿고 나는 매번 아이들을 데리고 그식당에 단골로 다니며 그들과 사이좋게 지낸 것은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내가 북한에서 온것도 그들이 알게되엿고 식당주인여자는 내가 북에서 홀로와서 고생한다고 자기 친동생 또래라 하면서 진짜로 동생처럼 잘 대해 주엇다.
나역시 그식당에 다니면서 누님,누님하면서 가깝게 지냇고 그여자의 남편친구들이 노가대하면서 받지못한돈들도 사장들 찾아다니면서 밀린돈도 찾아주고 적극 도와주고 도움받았다.
그여자와 나와의 관계는 전적인 동생,누이관계였지 그어떤 금전관계나 치정관계가 아니였다. 매번 식당에 가면 남편과 함께 열심히 일하는 그 여자의 모습에서 친누이의 모습을 보게되였고 북에계시는 우리누이도 함께 있었으면 저런 마음일테지 하는 마음이였다,
사실북에 누님이 계셔도 나도군인이고 누님도 군인이다보니 나는 누님사랑이나 동생에대한 누님의 사랑을 한번도 받아보지못하였다. 우리형제 5형제가 전부 군인이다보니 그리고 일반부대들에 복무하지않다보니 만나는 것은 고사하고 서로가 편지조차 나누어 보지를 못하였다. 그러다보니 그여자에게서 누님의 사랑을 받은셈이다.
당시 구로일대에서 중국불법체류자들에대한 단속이 너무 강하게 벌어지자 하루는 누님내외가 자기들은 한국온지 10년넘었다고하면서 이번에 잡히면 돌아가야할것같다하면서 말들으니 주민증과 외국인증 해주는데가 잇다하던데 동생이 알아보고 손써달라하여 사람을 내세워 알아본결과 중국에서 들어와 주민증과 외국인증을 전문하는 사람을 만나게되였는데 먼저 이사람을 연결하여 ooo과 만나게해주었다. 사건조사에는 내가 ooo에게서 돈을 받아 이사람에게 넘겨준 것으로 되여 있었는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다, 나는 그돈을 내가 받은 것이 아니라 ooo에게 네가 직접연결하여 돈처리하라고 하여 그여자는 주민증만든다는 사람에게 자기가 돈을 입금하였다. 그런데 요놈이 그돈을 받자마자 사라져버렸다. 여기한국들어와 조사받는중 기록을보니 내가 그돈을 받아 나이트요,술집이요.전부 아이들 데리고 놀러다니고 비싼차를 사가지고 타고다닌 것으로 되여있던데 사실은 그게 아니다, 그 전해에 북한에서 송이버섯도 들여오고 북한골통품도 날라오고 보따리 장사 하여 돈을 모앗다. 장사돈도 남는 것은 북한아이들에게 절대 여기서 기죽지말고 살라고 만나는 사람마다 비싼옷들 사주고 데리고 놀러들 다니였다. 솔직한 말로 지금후회 제일 드는 것이 당시 돈좀 많을때 그돈으로 가게하나라도 차릴걸하는후회가 많이든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그렇게 전부 도와준 아이들이 내가 중국에서 들어오지못할 때 모두가 경찰조사에 온통 나쁜소리들만 해댓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경찰들이 왜 너희 북한사람들은 저희들끼리 그렇게 씹느냐하겟는가. 한국사람들보다 북한사람들이 오히려 너에대해 나쁜소리 ,더많이 하더라, 하는것이였다.
솔직히 나는 북에서 남들처럼 배고픈 고생이란거 몰랏다. 까놓고 말해서 북에서 인육까지 먹었다는 사실은 한국에 와서 들은 소리이고 북한정보 작업중 수집을 통해서 알게된사실이다. 그만큼 나는 북에서 남들처럼 고생은 하지 않고 편하게 지내다가 왔다.
그래서 돈이 귀중하다는걸 잘모른다. 군에서 주는것만 입고 먹고 쓰고 한놈이라 돈의 소중함을 전혀모르다보니 아끼지 않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퍼부었다.
이제는 돈의 중함을 조금은 느낀놈이지만 당시는 남도와주는 것이 내 천분인가 부다 생각하고 오직 남들만 도와 주었다. 그런데 2004년도 일을 보니 나에대한 나쁜소리는 전부 북한인들에게서 퍼져 결국 내가 돈 사기치고 사람죽이고 도망갔다고 북한인들속에 소문나 있었던 것이다. 아니 몇천만원 때문에 사기치고 사람죽이다니.
툭털어놓고 말해서 차라리 죽일거면 은행이라도 털어 다문 몇십억이라도 가지고 날아버리지 겨우 몇푼 때문에 ,내가 그런소리까지 들어야하고 ,,,그러다보니 내이미지는 구겨질대로 구겨지고. 그리고 죽은 ooo의 사진을 보니 죽은 것이 서투른 칼질로 두군데를 찔렀던데 사람죽이는일만 전문 배운놈이라면 그런 서투른 칼질을 해서 흔적을 남길가. 20년을 전쟁에 대해서만 배우고 싸움만 배우며 자란놈이다. 또 거기에 구로경찰서 사람들도 불쌍하다 ,
이사람들은 내가 사람죽이지않았다는 것을 자신들이 인정하면서도 우에서 자꾸 내려먹여 자신들도 어쩔수 없이 사건을 그렇게 했다는것이다.
나와관련 숱한사람들이 억울하게 불려다니며 조사를 당햇다는데 그들에게도 말햇다고한다.
나에게는 살인혐의가 무관하다고!
직접 집에까지 찾아와서 살인하지않은 것이 확정되엿다고하면서 2004년 8월 13일 수배를 걸어 언론에까지 내걸고 인터폴에 걸어 국제수배 거는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 잇는것일가.
심양공항에서 한국경찰에 나를 이관할 때 나의 소지품 확인을 하면서 나는 경찰들에게 나의 소지품 많은 것이 없어진것에대해 말할때도 한국경찰은 중국경찰에 말한마디 변변히 하지못하는것이였다. 그래서 나는 테잎등 사진들 전부 되돌려줄 것을 호소햇지만 경찰이 등한하다보니 중국경찰 얼버무림에 그냥 넘어가는것이엿다.
여기와서도 수사받는중 여러 가지로 일들이 많앗다.
사실 구로 경찰서 악덕 경찰 한두명 내놓고는 나를 수사햇던 형사들에게는 미안한 점이 많다. 사연의 전말을 모르고 그들을 협박하고 별 쌍소리 다 해댓지만 나중에 사건경위를 들어보고 그들에게 미안한 행동 햇음을 느끼게 되였고 아직은 구차한 꼴 보이기싫어 문안전화 한통하지않았다. 이제 일들이 마무리되고 내가 제대로 적응하여 자리잡으면 꼭 찾아가 술이라도 한잔 사드릴 마음이다. 다른사람도아닌 북한사람이 나를 허위신고하여 생억지로 살인죄를 썻는데 오히려 경찰들을 목따버린다고 했으니 어처구니없다해야할지 철없다해야할지,,,,,,,,,영등포 구치소에 이송되여 검찰에서 조사받을때도 검사라는작자와 두 번에 걸쳐 싸웠는데 이사람의 머리방식이 참 더럽다. 아니 북한에서 왔으면 좋은차도 타지 말라는 법이 이 나라에 잇는가? 나보고 한다는 소리가 북한에서 온 주제에 자기도 못타는 고급차를 타고 다녓다 면서 말한다. 그러면 검사라는 자기가 하늘에서 보낸 대단한 인물일가.
그리고 북한 거러지들은 좋은차도 타지 말아야하는가.
그래서 그것 때문에 말다툼이 벌어졋는데 한다는 소리가 당신 그 성격 가지고 어떻게 북한군에서 장교까지 지냇는가 한다, 이게 법치국가라는 한국의 검찰 검사입에서 나올소리인가.
나는 그래서 당신이 뭔데 남의 북에서의 군경력까지 지껄이느냐. 지금내가 당신앞에 앉아 북한군 복무를 수사받아야 하느냐 햇더니 얼버무린다.
사건에 관한 건 만 가지고 점잖게 조사하라 .그랫더니 또 한다는 소리가 나보고 살인죄를 인정하란다. 이미전 법원 판결에서 살인죄와 무관함을 선고 받앗고 단지 중국내에서의 여권위조죄를 조사하는마당에서 왜 구태여 판결이 끝난 살인건을 들추어내느냐 했더니 자기들이 북한사람들을 조사한결과 자기들 만나본 북한사람전체가 내가 살인햇다는 것을 증언햇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사람역시 북한사람들입에서 전부 당신나쁘다고 발언 수집햇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 조사한 북한사람들이 내가 사람죽이는걸 보앗다고하더냐,내가 사람죽이는걸 본사람 한명만 잇어도 내가 죄를 인정하겠다,햇더니 북한사람전체가 그렇게 말한다는것이다..................이러이러하여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지금 나왓는데 문제는 끝난 것이 아니다.
정부는 주민등록말소, 의료급여. 생계지원금도 전부 막아버렸다. 나는 지금 나가서 노가대도 할수 없는 처지이다. 팔다리라도 성성하면 나가서 노가대라도 하고 살겟지만 중국감옥에서 너무 얻어터져 몸이 지금 말이 아니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려해도 병원비가 없어 가지못한다, 의료급여까지 전부 막아 버리다 보니 간단한 진단하나 받는데도 돈이 엄청 든다. 그런데다 2004년 가족을 살리기위해 집까지 전부 없애 버렷는데 같은 북한인집에 동거할려하니 그것도 안된다고한다, 그러면 우리같은 놈들은 나가죽던지 아니면 다시 죄를 지어 감옥가든지 하는 방법밖에 더할것이 없다는 소리인데 이거야 너무 하지않는가.
현재 통일부와 여러곳에 힘든상황을 알렷으나 아무 연락도 없다.
생사람잡이를 하여 들어오지못하게 만들어 결국 여권도 위조한것인데 이것역시 죄로 만들어 처벌한다. 아니 이나라에서 여권을 위조하게끔 조성시켜놓고 그것으로 또 건수를 만들어 제재를 가한다면 이것이 법치라는것인가. 만약 여기서 정확한수사증거로 나를 수배걸었다면 응당한것이지만 국가과학수사연구소의 DNA검사에서까지 확인햇음에도 수배를 거는건 어느나라 법조인가. 수사기관이 죄가없음을 인정해놓고 오히려 수배거는건 어떻게 보아야하는가.
독재의 국가 북한법에도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이런경우까지는 되지않는다.
하물며 민주국가,법치국가라는 이나라에서 ?
이렇게 놓고보자,!
내가 만약 본 여기 한국태생 사람이엿으면 마구잡이로 그렇게 했을가?
한국의 법을 모르고 또 한국에 들어오지않을 것이라는 타산,북한사람이니 아무렇게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한 것 같은데 사람들이 해도 너무한다.
한인간의 생사와 관련된 문제를 벌레밟듯이 마구잡이해버리는 이나라 정말 너무하다.
큰도적들은 한 마리도 잡지못하면서 잡아도 뒤에서 전부 내보내면서 우리같은 약자들을 잡아 나라법 어떻고하면서 해대는 이나라 정말 너무한다................
팔다리 라도 성성한놈이면 나가서 노가대라도 해대며 먹고 살일 하겠지만 현재 그런상황이 아니다. 그런데다가 2005년 7월 겨우 버드럭거려 회사를 만들었는데 숱한 북한물건 끌어들여다가 한국의 사기군들에게 당하기만하고 찾을길도 없고 찾고싶지도 않고 죽고싶은 심정뿐이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해서 한달에 한번씩 보호관찰소에 나들어야하고 해외에도 마음대로 나갈수 없어야하며 회사에 취직하자해도 전과자라고 받아주지않는데 도대체 무엇을 잘못해서 전과자로 불리여야하는지 모르겠다. 이날이때까지 엔간하면 모든걸 참고 감수하자. 모든게 내잘못이지. 라고만 생각하면서 단한번도 내색하거나 어디에가서 하소연도 하지않았다. 그런데 한국정부 해도 너무한다, 오늘날 이렇게만 살수 없어 정부에 다음과 같이 진정을 내는 바이다, 또한 한인간의 생사와 관련한 일을 아무런 미련없이 .아무런 타산도 없이 시끄럽다는 식으로 경찰에 넘겨버리는 국정원의 처사에 항의하는 바이다.
한국에서도 아니고 미국에 도망쳐가서 사는 한 탈북자의 제보를 아무 조사도 없이 경찰에 사건제의를 해버리는 국정원의 본 바탕을 알고 싶다.
당시 사건이 터지자 한인간의 인권에는 아랑곳 없이 온갖 뉴스에 오보를 터뜨리는 대한민국 얼간이 언론사들에 묻고 싶다. 자신들이 그런 억울한 사연에 휘말리였다거나 자기친지들속에 그런 인간이 있었다면 과연 어쨋을가?
이나라에 가진 것 없고 기댈데 없고 보잘 것 없는 한 탈북자의 보잘나위없는 일이라하여 아무렇게나 처리하는 이나라 법관들에게 항의하는 바이다.
2005년 10월 20일 서울 o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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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컨설팅 2006-04-17 11:14:43
    님의 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많은 고생을 하셨네요.... 힘들겠지만 용기를 내서 다시 한번 일어나 보세요.
    또한 주변에 밑을 사람이 있다면 솔직하게 본인의 마음을 담아 전해보시길 바랍니다. 숨기지 마시고요.... 님의 솔직한 마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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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대남자 2006-04-17 13:08:08
    지금의시기가 잘못된것일까요??하필이면 지금처럼 반 빨갱이들이 설치는시기에 들어 왔으니,,국정원이든 경찰들이든 편하고 쉽게 일을 마무리하려고 인간의 인권은 아예 무시하면서 탈북인들의 아픔을 자꾸건드리려는 부류들이 너무많아졌어요,고생한많큼의 답이언젠가는오겠지요,몸조리 잘하시고 제대로된 정권이 들어 앉을때 크게 소리쳐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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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짠순이 2006-04-17 14:58:25
    우선은 신세한탄마시고 허심하게 아님 ,님의 마음을 부담없이 털어놓을 사람을 찾아보세요.
    대신 말보다 마음과 마음으로 오는 그런 인간관계를 유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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