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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망명 중 만났던 연변대 총장이 한 말
Korea, Republic of 민복 0 665 2016-03-06 00:00:27

탈북하여 중국체류 중이었던 19923월 경, 답답한 나머지

조선족 잡지 난 정판룡 교수(연변대학 총장)의 글을 보고

공감이 가 그 분을 만나 뵙고 싶어 연변대학에 간적 있다.

대학이 아니라 대학 옆 교직원 아파트 댁에 계신다고 하여 찾아갔다.

일반 교직원들과 똑같은 수수한 집이었지만 책이 유난히 많았다.

그 중에는 남조선 대통령인 박정희 전기가 보여 놀랍고도 안심되었다.

또한 사모님이 미인(한족, 교수, 모스크바 유학)이라는 것이 인상 깊다.

-

탈북자라고 했는데도 보통사람처럼 편히 대해주어 감사했다.

헤어질 때에는 <(돕지는 못하지만)...고발하지는 않을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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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판룡 교수를 만나본지 근 25년 되지만

나눈 얘기 중에서 잊혀 지지 않는 것은

<조선족은 이혼한 부모(남북조선)에게서 중국에 시집 온 처지.>

<공산주의의 치명적 결함은 인간 본성을 무시한데 있다.>

-

지금생각해보면 겪어본 사람들이 핵심을 잘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농을 주장하다가 탈북했다는 얘기를 듣고

모택동 때와 같은 북한을 너무도 잘 이해하였다.

현재 등소평의 개혁개방에 대하여 그는 전적으로 찬성하면서

 

공산주의의 실패는 인간본성을 무시한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이다.

수치적으로 모택동 때에 2억 톤 밖에 못 내던 식량이

등소평의 개혁개방으로 4억 톤으로 증가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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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서 ip1 2016-03-06 10:58:21
    1978년 11월 중국 안후이성의 허름한 집에 18명의 가난한 농민들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농지를집단경작방식에서 가족경작방식으로 실험하자고 결의합니다. 만약 발각돼 주모자가 감옥에 갈경우 다른 사람들이 그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진다고 각서까지 씁니다. 정부의 허락도 없이 그들은 농지를 가족단위로 열심히 경작해서 이듬해 평년의 5배에 달하는 엄청난 수확을 해서 세상을놀라게 합니다. 정부의 허락도 없이 모험한 덕분에 2년 후 등소평이 가정승포제를 중국 전역으로 확대합니다. 이 사건은 등소평의 개혁개방의 근간이 되었으며 중국농업혁명의 중추가 됩니다.
    반동으로 몰려 처벌받을 각오까지 하며 결행한 농민들도 훌륭하고 그 방식을 받아들인 등소평도 훌륭합니다.
    가난한 농민들이 쓴 그 각서는 지금 북경역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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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복 ip2 2016-03-06 14:34:36
    참 좋은 자료 알려주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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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흑마1 ip3 2016-03-06 13:49:58

    - 흑마1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6-03-06 13:5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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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흑마1 ip3 2016-03-06 13:52:54

    - 흑마1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6-03-06 13:5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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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팔팔 ip4 2016-03-16 03:13:02
    정판룡교수...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요...http://www.db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523 10년전에 사망하셨군요....연변잡지책에 가끔씩 글을 투고하곤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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