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탈북민1호 군필자이지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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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성하기자 2016-06-17 4:39 pm
“저는 북한 사람이 아닌 남한 국민입니다. 친구들도 모두 군대에 가는데, 남자가 군대에 가는 게 뭐 그리 대단한가요? 북에서 같으면 10년도 가는데 여긴 길어봤자 2년이잖아요.”
대한민국에 입국한 3만 명의 탈북민 중 제1호 군필자를 만났다. 만나기 전까지 그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어 인터뷰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과 함께 상상을 많이 했다. 그는 어떤 모습일까? 검게 그을린 피부에 우람한 근육을 장착한 상남자일까? 몇 살일까? 기 싸움에서 밀리면 어떡하지?
갓 제대한 앳된 얼굴의 청년
북한에서는 제대군인이라고 하면 곧 서른을 바라보는 아저씨를 말한다. 군 복무 기간이 길다보니 파릇한 청년 시기를 오롯이 나라에 바치고 제대하면 서둘러 결혼해 아저씨 대열에 합류하는 그런 남자 말이다. 그런데 남한의 제대군인은 다르다. 입대 시기도 어느 정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복무 기간도 3년에서 2년, 지금은 1년 9개월로 줄어들었다. 1년 9개월은 북한에서는 신병 수준이다.
그를 만났다. 아직 학생 티를 채 벗지 못한 앳된 얼굴에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마주 앉은 그는 남남북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인물도 좋았다. 요즘 말로 꽃미남이다.
“안녕하세요. 김지환입니다.”
“제가 찾는 그분 맞아요? 군대 다녀온 제대군인이라고 들었는데….”
검게 그을리지도 않았고, 우람한 근육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뽀얀 피부에 아이돌 같은 모습이었다.
“몇 살이에요?”
“지금 스물두 살입니다. 얼마 전에 제대했지 말입니다.”
요즘 텔레비전을 보면 군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며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 군인의 훈련 과정을 다룬 프로그램은 나라를 지키는 군인의 피와 땀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군인이 주인공인 드라마는 남녀의 사랑을 넘어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영웅적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에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헌신과 희생정신에 대리만족이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이런 프로그램과 드라마는 다소 무거울 수 있는 군인의 정서를 담았음에도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권으로 퍼지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군에 대한 이미지가 예전처럼 무겁거나 삭막하지 않다.
탈북자로 살지 않았어요
김지환(가명?22) 씨는 함경북도 온성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부모님 손에 이끌려 탈북했고, 중국에서 숨어 지내다 가족 모두 북한에 잡혀가 1년 여의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기도 했다.
당시 그와 가족은 많은 고생을 했다. 2005년, 열한 살이 되던 해 대한민국에 입국해 초등학교 5학년부터 이곳에서 교육을 받았다. 스물두 해를 살아오는 동안 5년은 북한에서, 11년은 남한에서 남한 사람으로 살았다.
그는 다섯 살부터 열한 살 때까지의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다’가 맞을 것이다. 북쪽에서보다 남쪽에서 더 많은 시간을 살았고 더 많은 추억과 인간관계를 맺었다.
지환 씨 가족은 하나원을 수료하고 강원도의 작은 도시에 집을 배정받았다. 외동아들인 지환 씨는 어린 시절 또래 친구들과는 다른 시간을 겪으며 먼 길을 돌아 남한까지 왔지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는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며 평범한 일상을 살았다.
또래 친구가 보는 세상을 그도 보았고 사춘기 소년의 반항심도 같이 느끼며 부모보다는 친구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많은 비밀을 공유하며 성장했다. 그는 더는 ‘탈북민’이나 ‘북한이탈주민’이라는 특정 집단으로 분리되는 이방인으로 성장하지 않았고 영락없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체성이 확립되었다.
지환 씨가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여름방학, 친구들과 물놀이를 갔다가 물에 빠진 초등학생을 구조한 일이 있다. 그때 텔레비전 9시 뉴스에 나오고 신문기사에도 소개되었다.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한 그의 행동은 상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때도 그는 탈북민이 아니었고 탈북민이라는 사실도 알려지지 않았다. 본인은 물론 그의 부모도 아들을 탈북민으로 키우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자기 삶을 성실하게 사는 의협심 강한 청년으로 자라났다.
언제부턴가 그의 꿈은 비행기를 정비하는 항공정비사가 되는 것이었다.
“멋있잖아요,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를 내 손으로 정비하는게.”
그는 항공고등학교에 입학해 3년 과정을 마치고는 곧바로 군에 입대했다.
국민의 의무를 마쳤을 뿐
항공고등학교 졸업생에게는 공군에 입대할 자격이 주어진다. 그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공군에 입대했고 자대 배치도 친구들과 같은 곳에 받았다.
처음 신병 훈련을 받을 때 조사 서류에 한부모 가정이거나 해외에서 왔거나 탈북민인 경우 기입하는 항목이 있어 탈북민임을 밝혔더니 대대장이 찾아와 대단한 결심을 했다며 칭찬해주었다.
군 복무 중 가장 힘든 순간은 북한이 군사 도발을 할 때였다. 그때마다 밤잠 못 자고 긴장 상태에 있었으며 주말도 없이 대기하느라 힘들 때면 여느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도발을 원망하기도 했다.
“저의 첫 사회생활이 군대였어요. 군 생활은 평범했어요. 남들도 그렇겠지만 저도 2년간 많은 걸 배웠어요. 어른 대하는 법, 위계질서, 살아가는 방식, 자신감, 인내심 등 사회생활의 첫발을 잘 뗀 셈이죠. 군대는 잘 갔다 왔다고 생각해요. 2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할 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거든요.”
군 면제 대상인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의 심정은 어떤지 궁금했다.
“처음엔 2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아들이 버텨낼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보내기 싫었어요. 하지만 아들이 가기를 원했고 자기가 하고 싶은 항공정비사의 꿈이 있으니까 말리지 않았어요.
단지 몸 건강하게 잘 다녀오길 바랐죠. 지금 전역한 시점에서 보면 보내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아들이 한층 더 성숙해져서 돌아왔고 군 생활하면서 많이 배운 것 같더라고요.”
아들도 장하지만 그 아들을 키워낸 부모는 더 대단한 것 같다.
지환 씨는 2016년 2월 23일부로 만 2년간 의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했다. 복무 기간이 육군은 1년 9개월이지만 공군은 2년이란다.
“저는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고 남자인데 남자가 군대에 다녀온 것이 무슨 자랑거리라고, 저는 국민의 의무를 다했을 뿐이에요.”
항공정비사가 되기 위해 항공고등학교에 가고 공군에도 입대한 지환 씨는 이제 항공정비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부지런히 공부할 계획이란다.
그에게 꿈이 뭐냐고 다시 물었다.
“꿈이요? 돈 많이 버는 거요. 돈 벌어서 지금까지 고생만 한 우리 부모님 잘살게 해드리고 싶어요.”
“항공정비사는요?”
“그건 직업이고요.”
“돈 많이 벌려면 항공정비사로는 안 될 텐데?”
“그러니까요. 돈부터 벌어야 하나?”
그는 20대의 평범한 대한민국 청년이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이루고 싶은 꿈도 있다. 그에게 조금 특별한 것이 있다면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심, 물에 빠진 이웃을 위해 기꺼이 물에 뛰어들 수 있는 의협심, 남들이 다 가는 대학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할 줄 아는 현실 적응 능력인 것 같다.
출처: 남북하나재단 격월간지 동포사랑 4월호
추신-4월말인가 이 청년에게 전화를 했다. 개인적으로 동포사랑 편집위원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전화번호는 알 수 있었고, 또 이런 사례는 널리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극구 사양했다. 동아일보에 소개되면 개인적으로도 취직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까지 했지만 싫다고 했다.
그로부터 약 한달 뒤 조선일보에서 이 청년에 대한 기사가 났다. 역시 인터뷰를 못하고 기사가 실렸다. 물론 사실 4월 동포사랑 잡지에 실린 내용이니 엄밀히 말해서 단독이라고 할 순 없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6/09/2016060900117.html
5월에 좀 알아보니 지금 2호, 3호 청년도 군에서 복무하고 있다. 이런 청년들이 늘어나는 것은 참 긍정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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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서하기자 이젠 머리가 좀 바루 돌아가는가?
철없는 개소리 이따금씩 벙벙 치며 정신병자 노릇하더니.
치료를 좀 받았는지 모르게꾸마.
한국에 오기 전에 북송됐다가 재탈북해서 중국에서도 살았을 것 같기도 하므로.
솔직히 탈북청소년출신이다라고 말하기도 어중간하겠다.
그래도 군면제보다는 복무를 선택하고 씩씩하게 마쳐서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