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5-60년대에 북한이 잘 살았다는 말을 들으면 뭐를 얼마나 더 잘 살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단지 국가가 매 사람당 지정된 배급 쌀만 주었을 뿐,,,1년동안 식용유는 1인당 50그램정도 주고... 간장, 된장,, 소금을 얼마씩 공급해 주는 것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육류는 1년에 두세번정도 명절에나 몇 점 먹어보고.... 수산물은 즉 동태와 도루묵은 겨울에 좀 먹었다. 그것두 돈이 없어 많이는 못먹었다.
우유도 없고,,, 커피나 Tea 도 전혀 없었다.
물론 간부들이나 국가물자를 쥐고 공급분야에서 종사하는 인간들은 좀 배불리먹으면서 살았다. 그리고 평양이나 도시는 좀 형편이 나았다.
그러나 노동자 농민들은 1년 내내 옥수수 밥에... 하루 한끼는 죽으로 사는 시절이었다.
농민들은 매달 배급을 안받고 한꺼번에 분배를 받기에 ...봄이되면 굶주리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러면 국가에서 조금씩 "대여곡" 이라고 꾸어 주어서 감자가 나올때까지 겨우 연명해나갔다...
나는 아직도 점심이란걸 모르고 학교 다니던 슬픈 생각을 잊을 수가 없다.
5-60년대를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 이걸 잘 모른다.
상점에 계란이 쌓이고.. 사탕, 과자가 녹아내리고... 술이 넘쳐나고 물고기가 많던 시기는 70년대 초부터 70년대 중후반기 까지였다...... 그러나 육고기와 기름은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같은 노동자 사무원들과 농민들은 돈이 없어서 그마저도 그림의 떡이었다. 그래서 북한사람들은 북한에서 공산주의는 그시기에 이미 지나 갓다고 말한다.
나는 남한이 이보다 얼마나 더 못살았는지는 모르겠다.
50년대의 북한은 전쟁의 후과로 잘 살 수가 없었다.... 소련에서 보내준 밀가루로 매일 칼국수만 해먹던 생각만 하면 끔찍해서 나는 아직도 칼국수란걸 입에도 안댄다.
그 당시에도 물론 잘 산 사람도 있겠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국가가 주는 쌀 ,,평균 500그램만 먹고 살아가는 시기었다.
김산님의 글에 한표드립니다.
첨부하는 것은 -
남한이 70%이상은 북한평균주의보다 잘 살았고
20%정도가 북한평균생활수준이었고
10%정도가 북한평균 이하라고 생각됩니다.
문제는 언론이 공개된 남쪽에서는 10%대의 가난사들을
짜꾸 까밝히고 떠들다나니 분위기가 못사는사람이 많이 보인 것 같아요.
1960년대 대한뉴스를 보면 - 택시, 커피, 다방 등 등 다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잘 살았다는 60년대 후반의 북한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수준들로 확인.
wasd 란분 보세요...물론 님이 진짜 탈북자라고 믿고 씁니다.
사실 이창도 중국과 북한 보위부가 정상적으로 감시하는 싸이트입니다.
특히 지금 북한 보위부가 탈북자 색출에 혈안이 되어 날뒤는 만큼 이렇게 공개창을 이용하는 것은 정말 위험합니다. 뿐만아니라 탈북자로 가장하고 브로커들을 납치하려고 님처럼 숨어서 움직이는 나뿐 자들도 있기에 여기서 도움을 받기는 어려울겁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브로커들이 절대로 안들어 옵니다.
정말 탈북자라면 이런데서 위험하게 덤비지 마시고 좀더 심사숙고 해야할 겁니다.
모두 도움을 못드리기에 미암함이 앞서서 댓글도 안줍니다.
도와주지못해 미안합니다 ,,,
자신을 위해서도 이런 공개글은 삼가함이 좋을 겁니다.
1994년 여름에도 이렇게 더웠는데 김일성이 뒈질떄고 어찌나 더웠는지 군대 있을때 너무 고생해서. 그 놈만 생각하면. 하필 최고로 더운 여름에 뒤지고 군대 비상 걸리고 그때도 이렇게 더웠지요. 디져도 인민들 고생시키고 살아서도 인민들 피 빨아먹고 우리민족의 만고대역적인 김일성 개새기 하루빨리 통일되 그 시신을 불태워야 하는데
잘사는 기준에 따라 변동은 있을 수 있을 겁니다. 한국정부내에서도 1인당 소득에서 한국이 북한을 앞서기 시작한 년도를 경제기획원과 통일원은 1974년으로 보는 반면 정보부는 1968년으로 봅니다. 그러나 1968년도의 국제적으로 알려진 통계에 따르면 남한 169달러, 북한 266달러로 북한이 압도적입니다. 그러나 폐쇄적인 북한의 통계가 과정되거나 의도적인 생략 혹은 중복계산 등의 조작을 감안하면 남과 북의 경제가 역전되기 시작한 연도는 대략 1960년대 초반으로 보는 것이 대략적인 학자들의 견해입니다.
- 도원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6-08-09 23:00:16
- 도원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6-08-05 02:37:52
- wasd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6-08-04 21:47:15
육류는 1년에 두세번정도 명절에나 몇 점 먹어보고.... 수산물은 즉 동태와 도루묵은 겨울에 좀 먹었다. 그것두 돈이 없어 많이는 못먹었다.
우유도 없고,,, 커피나 Tea 도 전혀 없었다.
물론 간부들이나 국가물자를 쥐고 공급분야에서 종사하는 인간들은 좀 배불리먹으면서 살았다. 그리고 평양이나 도시는 좀 형편이 나았다.
그러나 노동자 농민들은 1년 내내 옥수수 밥에... 하루 한끼는 죽으로 사는 시절이었다.
농민들은 매달 배급을 안받고 한꺼번에 분배를 받기에 ...봄이되면 굶주리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러면 국가에서 조금씩 "대여곡" 이라고 꾸어 주어서 감자가 나올때까지 겨우 연명해나갔다...
나는 아직도 점심이란걸 모르고 학교 다니던 슬픈 생각을 잊을 수가 없다.
5-60년대를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 이걸 잘 모른다.
상점에 계란이 쌓이고.. 사탕, 과자가 녹아내리고... 술이 넘쳐나고 물고기가 많던 시기는 70년대 초부터 70년대 중후반기 까지였다...... 그러나 육고기와 기름은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같은 노동자 사무원들과 농민들은 돈이 없어서 그마저도 그림의 떡이었다. 그래서 북한사람들은 북한에서 공산주의는 그시기에 이미 지나 갓다고 말한다.
나는 남한이 이보다 얼마나 더 못살았는지는 모르겠다.
50년대의 북한은 전쟁의 후과로 잘 살 수가 없었다.... 소련에서 보내준 밀가루로 매일 칼국수만 해먹던 생각만 하면 끔찍해서 나는 아직도 칼국수란걸 입에도 안댄다.
그 당시에도 물론 잘 산 사람도 있겠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국가가 주는 쌀 ,,평균 500그램만 먹고 살아가는 시기었다.
- 도원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6-08-05 10:05:58
- 큭ㅋㅋ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6-08-05 12:19:21
첨부하는 것은 -
남한이 70%이상은 북한평균주의보다 잘 살았고
20%정도가 북한평균생활수준이었고
10%정도가 북한평균 이하라고 생각됩니다.
문제는 언론이 공개된 남쪽에서는 10%대의 가난사들을
짜꾸 까밝히고 떠들다나니 분위기가 못사는사람이 많이 보인 것 같아요.
1960년대 대한뉴스를 보면 - 택시, 커피, 다방 등 등 다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잘 살았다는 60년대 후반의 북한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수준들로 확인.
사탕이 질질 녹을 때는 1960년대 후반이고
1972년부터 전쟁비축으로 질질녹는 사탕마저 명절때나 겨우 ...
그러다가 1976년부터는 모든 상점에서 물품들이 사라지고
공급제로 전환.
- wasd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6-08-04 21:47:26
물론 좋은 분들이 더 많겠지만 쓰레같은 놈들도 있을 것입니다.
신변에 각별히 조심하시고 꼭 뜻하신 목적 이르시길 바랍니다.
사실 이창도 중국과 북한 보위부가 정상적으로 감시하는 싸이트입니다.
특히 지금 북한 보위부가 탈북자 색출에 혈안이 되어 날뒤는 만큼 이렇게 공개창을 이용하는 것은 정말 위험합니다. 뿐만아니라 탈북자로 가장하고 브로커들을 납치하려고 님처럼 숨어서 움직이는 나뿐 자들도 있기에 여기서 도움을 받기는 어려울겁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브로커들이 절대로 안들어 옵니다.
정말 탈북자라면 이런데서 위험하게 덤비지 마시고 좀더 심사숙고 해야할 겁니다.
모두 도움을 못드리기에 미암함이 앞서서 댓글도 안줍니다.
도와주지못해 미안합니다 ,,,
자신을 위해서도 이런 공개글은 삼가함이 좋을 겁니다.
그분 한국에 오셨는지 모르겠네?
한국에 도착하면 성공 소감을 이 창에 글로 남긴다고 하셨는데.. 아직 소식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