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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을 말하지 않는 대학
Korea, Republic of 비망록 0 444 2016-11-04 12:15:18

얼마 전 임기를 시작한 성낙인 서울대 신임 총장은 첫 공식 일정으로 '서울대 4월 혁명 기념탑'을 찾았다. 이와 유사한 관례가 역대 총장들에게 거의 없었기에 나름 눈에 띄는 행보였다. 그런데 이 보도를 접하고 문득 생각난 것은 왜 하필 4·19 기념탑일까 하는 점이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유력 정치인들이 '상징 정치'의 무대로 애용하는 곳은 국립현충원이다. 그렇다면 서울대 총장의 취임 첫 나들이에 가장 적합한 학내 공간은 어디일까?

물론 그 가운데 하나가 4·19 기념탑이다.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귀중한 대학의 역사적 성소(聖所)는 문화관 1층 로비 벽면에 걸린 한국전쟁 참전 전몰자(戰歿者) 기념 패널이 아닐까 한다. 6·25전쟁 당시 국군으로 참전했다가 목숨을 잃은 서울대 재학생 27명의 공훈을 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존재감은 교내에서 대단히 미약한 편이다.

우선 그것은 개교 50주년을 맞이하던 1996년에 겨우 만들어졌다. 또 일반 학생들의 눈길과 발길이 상대적으로 뜸한 실내에 자리 잡고 있다. 전몰자 추모시설치고 완성도가 높지 않다는 점도 크게 아쉽다. 지금까지도 서울대는 6·25전쟁 때 조국을 위해 몸 바쳤던 재학생과 졸업생의 숫자나 이름 전체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상태다. 문화관 내 참전 전몰자 기념판은 이런 현실이 그저 '안타깝다'고 적고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선진국이나 그곳 명문 대학의 경우와 사뭇 대조적이다. 일반적으로 선진국일수록 전쟁을 기념하는 데 열심이며, 대학 또한 이에 능동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오늘날 영국 전역에는 5만4000여개의 전쟁 기념물이 설치되어 있다. 영국인들이 전사(戰死)하면 보통 대여섯 군데 이상에 이름이 새겨진다고 한다. 마을 한복판 위령비는 물론이고 그가 다녔던 교회나 기업·병원·클럽·학교 등도 어떤 형태로든 당사자의 이름을 새기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바로 대학이다.


미국 대학 캠퍼스도 참전 전사사들의 넋을 달래는 탑(塔)이나 종(鐘)

혹은 문(門)이나 길(道)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독립전쟁이나 1·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처럼 잘 알려진 전쟁만이 아니라 바르바리전쟁이나 멕시코전쟁 등 덜 알려진 전쟁도 미국 대학들은 희생자 명단을 꼼꼼히 챙긴다. 미국 대학에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동문을 추모하기 위한 이른바 '메모리얼 교회'가 많다. 우리나라에 기독교 재단 대학이 무수히 많지만 전몰자 추념 대학교회가 있다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6월 항쟁' 20주년을 맞이하던 1997년 봄, 서울대는 '현대사의 길'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4·19의 길' '민주화의 길' '한국전쟁의 길'을 만들어 학생들이 한국현대사를 체험하는 학습의 장(場)으로 이용하도록 할 요량이었다. 민주화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서울대 출신 18명의 동상과 추모비를 잇는 1.2㎞의 '민주화의 길'이 조성된 것은 2009년 11월이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고 전부였다. '4·19의 길'은 '민주화의 길'에 사실상 통합되었고, '한국전쟁의 길'은 여태 감감무소식이다.


숫자를 따지더라도 서울대 동문 가운데는 한국전쟁의 전사자가

민주화의 희생자보다 더 많을 것이다.

 

베트남전쟁 등 해외 파병의 경우를 포함하면 더욱더 그럴 것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 공헌도를 비교할 때도 양자 간에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나가 죽은 자들이 모교로부터 받는 대접이 민주화 운동에 나섰다가 그렇게 된 이들보다 확실히 열세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게다가 '한국전쟁의 길'이라는 명칭도 애매하기 짝이 없다. 처음부터 그것은 '호국의 길'이나 '애국의 길'이어야 했다.

구미 선진국과 그곳 대학들이 전몰자 예우에 극진한 것은 결코 전쟁을 찬양하고 국가를 숭배하려는 취지에서가 아니다. 충성스러운 열사(烈士)를 높이 드러낸다는 우리 식의 '현충일(顯忠日)' 개념은 그곳에서 오히려 낯설다. 영국의 'Remembrance Day'나 미국의 'Memorial Day'는 나라의 부름을 받고 목숨을 바친 이들을 남아 있는 자들이 오래오래 잊지 않고 감사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결과 공동체를 위한 자기 희생을 미덕이나 명예로 여기는 사회적 환경이 자연스레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는 것이 대학들이다. 말하자면 과거 선배들의 비범한 헌신과 봉사·용기를 부단히 기억하고 기록하고 기념함으로써 미래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위대한 전통을 이어가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애국을 말하지 않고는 명문대도 없고 일류 국가도 없다는 진리를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작금의 시국선언이니 하는 대학들을 보노라면 그 대학들이 과연 애국심-즉 나라를 걱정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에서- 의 발로인지 의심스럽다.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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