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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에 절은 사법 절
Australia 북한군 0 673 2016-11-19 11:52:32

 동지들!!

 오늘은 북한의 사법 절입니다. 즉 북한의 보안(경찰), 보위(국정원)원들의 명절이죠. 그들에게는 자기 생일만큼이나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지만 저에겐 가장 치욕스럽고 원망스러운 날이었습니다.

 

 2003년11월19일, 저는 당시 중국에 비법월경을 하였다가 그들의 국경수비대인 변방 대의 매복에 걸려 체포되었으며 중국 길림성 화룡시 변방대대구류장에서 20일 동안 수감 및 북송을 거쳐 함북 무산군 보위부와 경찰서 유치장을 경험하고 청진시 라남구역 농포 동에 있는 집결소로 호송되고 말았습니다.

 

 체포당일로부터 1달 보름은 지났고 여러 수감 장소들을 옮기다보니 고문 및 정신적 후유증으로 저의 몸은 영양실조 1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보태지 않고 걸음걸이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하루에 몇 명씩은 굶어서 혹은 매를 맞아 죽어갔었죠.

 

 10평도 되지 않는 감방에 80명이 갇혀있어 잠은 앉아서 자야했고 숨쉬기조차 고달팠습니다. 하룻밤에 99고개를 넘는다는 이(곤충)와 쥐벼룩들이 때를 만난 듯 기승을 부렸고 50알 되나마나하는 옥수수 알의 삼시세끼는 굶주린 창자를 송곳질했습니다. 아침 8시부터 시멘트원료인 슬래거 상차작업에 동원되면 무장한 호송병들이 채찍을 들고 노예처럼 우리들을 다루었죠. 날이 갈수록 정상과 광기의 구분조차 모호해지는 극단적인 심리적 불안과 공포로 인해 배불리 먹는 것 자체가 사치였습니다.

 

 나에게 있어 어떻게 하나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욕만 사로잡혀있던 살벌한 곳에서 검은 구름 속의 한 줌의 희망이라면 그것은 다름 아닌 중국감옥에서 만약을 대비해 입으로 삼킨 중국 돈 100위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돈이 뜻밖에도 한 달이 다 지나 사법 절 전날에 용변으로 나왔습니다.

 

 저는 이 돈을 가지고 집결소 소장과 흥정을 벌리기로 작정했죠. 물론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값어치어서 구수한 말을 병행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판사판이 된 마당에 물속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말입니다.

“소장선생님! 사법 절을 축하합니다. 당 정책의 옹호자, 수호자로써 우리 같은 범인들의 사상개조를 위해 오늘도 풍찬노숙하시는 소장선생님과 집결소를 위해 비록 적은 돈이지만 저의 소박한 마음이 담긴 이 돈을 기부하려 합니다.”

 

 그러면서 똥색으로 짙어버린 100위안을 내 놓았죠. 삼킬 때 비닐봉투로 싸야 했으나 사정이 긴박해 그대로 넘긴 돈은 사실, 만신창이에 가까웠죠. 그때까지 우리를 만나는 것 자체가 짐승과의 대화로만 여기던 상좌계급의 소좌가 그 만신창이 앞에서 갑자기 얼굴색을 달리했습니다.

 

 표리부동한 상판은 흥분으로 가득 찼고 재빠르게 돈을 제 주머니에 집어넣는 그 솜씨는 프로손매치기도 울고 갈 정도였습니다. 그와 함께 ‘개00, 나쁜 0’라는 표현으로 죽이지 못해 달려들던 그 말투와 억양을 180도로 바꾸는 모양은 개그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당시 그 돈이면 북한 돈으로 2400원이었는데 이는 휘발유 40킬로그램을 사는 돈이었습니다. 결코 만만치 않는 금액이었죠.

 

 소장은 제 요구를 다 들어주기로 하였죠. 일단 배고픔 해소를 위해 매끼마다 쌀밥 한 그릇을 더 주기로 했고 3일 후엔 병보석으로 풀어주길 약속했습니다. 물론 나가면 농마 200킬로그램을 더 주겠다는 제 입장이 더해져서 말입니다. 암튼 탄식과 절망으로 고통만 당하던 나에겐 이 순간이 기사회생의 새로운 기회였고 살아야 하는 희망이었습니다.

 

 그날 아침 9시에 점검으로 전체 집결 생들이 마당에 모였는데 제가 준 그 똥 빛에 절은 중국 돈 100위안을 집결소 경리지도원이 가자 지폐냐, 진짜냐를 가늠하며 햇빛에 비추어보는 꼴이 너무도 우스웠습니다. 돈 앞에선 법관도 죄수도 같은 인간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똥에 절은 100위안이 생사를 판가름하는 천평 저울이라는 생각에 더 기가 막혔죠.

 

 그때 저는 내 운명을 함부로 결정짓는 김 부자정권의 존재와 역할을 똑똑히 보았으며 이는 그대로 반 김 부자정서를 낳은 가장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더는 이 지옥에서 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똥에 절은 100위안만큼이나 똥에 묻혀 더럽혀진 이 땅이 싫었습니다.

 

 그날 죄수들 모두 돼지다리가 장화를 신고 잠깐 건너 간 듯 한 고기국물에 눈물을 흘리고 쌀밥 3분에1 공기에 사랑하는 어머니를 그리던 사법 절 아침은 이처럼 제 인생에서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습니다. 똥에 절은 사법 절이어 더 잊혀질 것 같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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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무의추억 ip1 2016-11-19 12:52:25
    아름답지는 못한 추억이지만 ...영원히 간직하시고 그때를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어려울 때마다 그때를 생각하시면 넘지못할 고난과 참지못할 고통이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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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결소 ip2 2016-11-20 02:19:20
    ㅋㅋ 농포집결소 소장..감회가 새롭네..정치범으로 몰려 처형됬다 하던데....나도 도집 시절 쬐꼼은 그소장한테 신임 얻었었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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