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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육군 원로의 말.
United States 한겨레토론마당 0 622 2016-12-02 08:30:50
 故 朴正熙 大統領에 대한 그리움을 보낸다!
* 이 글은 陸軍 士官學校 校長 金忠南 將軍이 生徒들에게,
 <<< 指揮官과 만남의 時間 >>>에 들려 준 內容이다. *  
 
 
우리 大韓民國의 장래를 짊어질 
개혁과 신진의 주체, 젊은이 들이여! 
여러분들은 6,70대가 겪은 아픔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대들은 조국을 위하여 과연 
얼마만큼 땀과 눈물을 흘렸는가?

 
지금 여러분들이 누리는 풍요로움뒤에는 지난날 6,70대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5.16革命 직후 미국은 혁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또는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때문에 미국은 주던 원조도 중단했다. 

 
당시 朴正熙소장은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백악관을 찾았지만 끝내 朴正熙를 만나주지 않았다. 
호텔로 돌아와 빈손으로 귀국하려고 짐을 싸면서 朴正熙와 수행원들은 
서러워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었다.

 
가난한 韓國에 돈 빌려줄 나라는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우리와 같이 분단된 
공산국 동독과 대치한 서독에,돈을 빌리려 대사를 파견했고
1억 4000만 마르크를 빌리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서독이 필요로 한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혔다. 

고졸 출신 파독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 데 4만6천이 몰렸다. 
그들 중에는 정규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도 수두룩했다.
손이 고우면 떨어질까 봐 까만 연탄에 손을 비벼 
일부러 거친 손을 만들어 면접에 합격했다. 

 
서독항공기가 그들을 태우기 위해 온 김포공항에는 
간호사와 광부들의 가족, 친척들이 흘리는 눈물로 바다가 되어 있었다. 
낯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병원에 뿔뿔이 흩어졌다. 
간호사들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시신을 닦는 일이었다. 
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거즈에 알콜을 묻혀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체를 이리저리 굴리며 닦았다. 
하루종일 닦고 또 닦았다. 

 
남자 광부들은 지하 1000미터 이상의 갱도에서 
하루 8시간 일하는 서독인에 비해,
12시간을 석탄가루를 삼키며 고향으로 달러를 송금했다.
서독 방송, 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가난한 한국에서 온 여자 간호사와 남자 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세상에 어쩌면 저렇게 억척스럽게 일 할 수 있을까?" 해서 
부쳐진 별명이 '코리안 엔젤'이라고 불리었다. 


몇 년 뒤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대로 朴大統領이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 우리에게 대통령 전용기는 상상할 수도 없어,
미국의 노스웨스트항공사와 전세기 계약을 하려했지만,
쿠데타군에게 비행기를 빌려 줄 수없다는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에 계약은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다. 

그러나 
서독정부는 친절하게도 국빈용 항공기를 우리나라에 보내주었다.
어렵게 도착한 朴 大統領 일행을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코리안 간호사 만세!코리안 광부 만세!코리안 엔젤 만세! 
朴 大統領은 창 밖을 보며 감격에 겨워 서툰 영어지만
땡큐! 땡큐! 만을 언발했다. 

 
朴大統領 일행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격려하기 위해 탄광으로 향했다. 
고국에서 내나라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파견된 광부 500여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작업복 입은 광부들의 얼굴불철주야 고된 근무로 거을렸고 초췌했지만 
눈빛만은 생기로 초롱초롱 했다. 

 
대통령의 연설 앞서 애국가가 흘러 나왔을 때 
이들은 목이 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조차 없었다.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우리 열심히 일 합시다."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 합시다. 
열심히 합시다" 대통령의 눈시울은 뜨겁기만 했다. 

가난한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이역만리 타국 땅 수 천 미터 지하에 내려가 힘들게 고생하는 
남자 광부들과,
굳어버린 이방인의 시체를 닦으며 힘든 병원일 하고 있는
어린 여자 간호사들. 


그리고, 
고국에서 배곯고 있는 내 나라 국민들이 생각나서 
더 이상 참지 못해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광부와 간호사 모두 울면서 영부인 陸英修 여사 앞으로 몰려나갔다. 
어머니! 어머니! 하며.. 陸 女史의 옷을 잡고 울었고, 
그분의 옷이 찢어 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陸 女史도 함께 울면서내 자식같이 한 명 한 명 껴안아 주며
"조금만 참으세요"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광부들은 뤼브케 대통령 앞에큰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韓國을 도와 주세요.
우리 大統領님을 도와 주세요.
우리 모두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를 수없이 반복했다. 
 
뤼브케 大統領도 울고 있었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에서 나오자 미처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 여러 광부들은 
떠나는 朴 大統領내외를 붙잡고 "우릴 두고 어디가세요. 
고향에 가고 싶어요.부모님이 보고싶어요" 라며 울부짖고 있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 속에서 朴 大統領은 계속 울고 있었다. 
 
옆자리 뤼브케 大統領은 손수건을 건네며 "우리가 도와 주겠습니다.
서독 국민들이 도와 주겠습니다" 라고 힘주어 말했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朴大統領은 
"돈 좀 빌려주세요.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여러분들의 나라처럼 韓國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韓國이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여 이기려면 분명 經濟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저는 거짓말 할 줄 모릅니다. 
우리 大韓民國 國民들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돈 좀 빌려주세요" 

당시 韓國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유엔에 등록된 나라 수는 120여 개국, 당시 필리핀 국민소득 170불, 태국 220불등 이때, 한국은 76불이었다. 우리 밑에는 달랑 인도만 있었다.
 
---이런 인도도 드디어 한국을 제치고서, 
아세아경제력에서 일본,중국 다음의 3위의 나라가 되었다.---
---9년간 빨개이 낌때쭝,놈현이 옴들은 낌쩡일이가 핵실험토록 
국민들의 혈세를 펴주고서,국민을 속이는 평화를 구차하게 애걸하고,
국민을 토탄에 빠지게 허고 이념의 갈등을 부채질하는사이에---  
 
세계 120개 나라 중에 인도 다음으로 못 사는 나라가 
바로 우리 韓國이었다. 
1964년 국민소득 100달러! 
이 100달러를 위해 단군 할아버지부터 
무려 4,60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이후 그대들이 말하는 이른바 
우리 보수 수구세력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외국에 내다 팔았다. 


동네마다 엿장수를 동원하여 "머리카락 파세요! 파세요!" 하며 
길게 땋아 늘인 아낙네들의 머리카락을 모았다. 
시골에 나이 드신 분들은 서울간 아들놈 학비 보태주려 머리카락을 잘랐고, 먹고  살 쌀을 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래서 
한국의 가발산업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플라스틱으로 예쁜 꽃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곰 인형을 만들어 수출했다. 

쥐잡기 운동을 벌였다.

쥐털로 일명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돈 되는 것은 무엇이던지 다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1965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세계가 놀랐다. 
"저 거지들이 1억 달러를 수출 해?" 하며 '한강의 기적'이라고 
전 세계가 경이적인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祖國近代化'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이었다. 
 
여기에 越南戰 派兵은 우리 經濟 回生의 起爆劑가 되었다. 

參戰勇士들의 戰鬪手當은 京釜高速道路 建設에 投入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한반도에 동맥이 힘차게 흐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월드컵을 개최하고 
세계가 우리 한국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국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그대들이 수구 보수세력으로 폄훼 하는,
 
그 때 그 鑛夫와 看護士들, 越南戰參戰 世代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명심할 것은,
그 때 이방인의 시신을 닦든 看護士와
수 천 미터 지하 탄광에서 땀흘리며 일한 우리의 鑛夫,
목숨을 담보로 이국전선에서 피를 흘리는 우리 國軍將兵,
작열하는 사막의 중동 건설현장에서 일한 6,70대의 勤勞者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그대들 젊은 세대들이 오늘의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대들이,
그때 그 시절 땀흘리며 일한 
오늘의 6,70대들을 보수 수구세력으로 폄훼하기에 앞서,
 
 오늘의 現實을 直視하라. 
 
국가경영을 세계와 미래라는 큰 틀 전체로 볼 줄 아는
혜안을 지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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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르신들이 ip1 2016-12-02 10:48:12

    - 어르신들이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6-12-05 11:3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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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국자착오 ip2 2016-12-03 08:38:46
    북한도 미국의 적대시와 수십년간에 걸친 경제 제재가 없었다면 한국처럼 발전했을 것이다
    아시아 국가중 어떤식으로든 모두 발전했다. 한국만 발전한것도 아니고 박정희가 없었어도 한국은 발전할수 있었다. 한국의 지리적 여건과 미국과 일본의 관계에서 자연적으로 발전할수 있었는데 이것을 박정희가 한것처럼 박정희의 공으로 돌리는 것은 착오인 것이다. 그당시 저임금에 시달리며 생존권마져 위협당하며 밤낮으로 죽어라 일한 근로자들 희생이 더 큰 공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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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착오맞네2번 ip3 2016-12-03 09:47:46
    문제는 그런 저임금으로 조차도 죽어라고 일을 할
    일을 할수있는 일거리 즉 공장이나 공사 등 생산활동을 할수있는
    아무런 일거리가 아무것도 없었다는거여 당시에는
    농사 빼고는
    하다못해 쓰레기를 뒤져서라도 살수만 있다면 이라면
    그 뒤질 미군 쓰레기 조차 극히 일부에게 한정되여있을뿐
    즉 아무것도 없었다는거여 구호품 즉 원조헤주는 밀가루 빼고는
    자금 유니세프가 아프리카 어린이들 구호품 원조해주는것 처럼
    한달에 3만원이면 열명이 어린이가 살수았는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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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형님 ip4 2016-12-03 11:50:49
    2번 애국자 라는 인간 쓰레기야...
    북한이 미국의 적대시 정책으로 경제가 발전을 못했다구?
    더러운 개새키야...북한은 애초부터 외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자국내의 자원과,,
    자체의 기술로..
    자체의 힘으로 나간다는 자립적민족경제 건설론을 주장하고 나왔어.

    다른 나라에서 좋은걸 들여오지도 못하게 통제했고...외국 출장 갔던 사람들이 다른나라의 발전에 대하여 말만해도 잡아다가 처형을 했어.
    그런데 뭔 적대시와 경제 제재가 작용을 했다는거야?
    ..............
    그리고 남한이 지리적 여건과 미국, 일본 때문에 자동적으로 발전을 했다고??

    야 이 개보다도 못한 인간 쓰레기 새키야...
    한국은 교통과 수송이 막힌 섬나라야.. 자원도 없어... 무슨 지리적 여건이 좋으냐구?
    오죽하면 일본애들이 북쪽은 전력공업,,채취공업, 강철공업..화학공업,, 지역으로 발전시키면서도 남한에는 전혀 공업적 토대를 구성하지 못했던 것을 보고도 몰라?

    박정희가 밉다구 그의 공로까지 박탈하냐?
    개새키야,,,아마도 김대중이새키가 정권을 잡았으면 남한은 지금 필리핀 쪽 됬을 것이여.
    더러운 종북개야..
    가서 김대중이 남기고간 늙은 에미나이 밑이나 빨아주거라.
    남한에서는 저런 새키들 부터 잡아죽이는것 이 민족혁명 과업의 첬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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