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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 모본왕+최충헌+충혜왕,
Korea, Republic of 위선주의척결 0 643 2017-01-12 12:20:00

모본왕

"이름 상부(相夫) ·삽시루(?矢婁). 치갈왕(雉葛王)이라고도 한다. 서천왕의 태자이다. 자랄 때부터 교만하고 시기심이 많았다. 왕위에 오르자 숙부인 안국군(安國君) 달가(達賈)가 백성들의 추앙을 받음을 미워하여 살해하고, 이듬해 동생 돌고(?固)마저 사사(賜死)하였다. 명신(名臣) 창조리(倉助利)를 국상(國相)에 등용하여 연(燕)나라 모용 외(慕容?)의 침입을 격퇴하기도 하였으나, 차츰 사치와 방탕을 일삼게 되었다. 298년 대기근으로 백성들이 굶주릴 때, 화려한 궁궐을 지으려 하여 창조리가 이를 말렸으나 끝까지 그의 간언을 듣지 않았다. 300년 폐위되고, 후환이 두려워서 자결하였다. 무덤은 봉산원(烽山原)에 있다."

 

최충헌

 

"최충헌(, 1149~1219)은 고려 역사, 그 가운데서도 무신정권기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60년 최씨 정권의 기틀을 세운 최충헌은 문신적 자질을 갖춘 무인으로 독재자로서의 기본 요건을 갖춘 인물이었다. 17년간 집권하면서 4명의 왕을 바꾸었고, 동생을 비롯한 수많은 정적을 살해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했다. 왕 못지않은 권력과 사치를 누렸지만, 왕이 되려는 꿈은 꾸지 않았다. 누구보다 권력을 탐하는 인물이었던 반면, 권력의 마지막 절제도 아는 인물이었다.

성공한 쿠데타 무신란 이후, 100여 년간 지속한 무신정권 기간에 무려 60년간 지속한 최씨 정권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권불십년()이라던가. 역사를 돌이켜 보면, 하늘을 나는 새를 떨어뜨린다는 권력도 대부분이 길어야 10년이었다. 그러나 최충헌을 시작으로 60여 년간 권력을 누린 고려 무신정권 최씨 일가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이다"

 

충혜왕

"하지만 그는 2년 만에 왕위에서 물러나 원나라로 가야만 했다. 그를 지지해준 엘테무르가 사망하자, 원나라에서 권력을 잡은 태보(, 정1품 고위직) 바이안()이 ‘충혜왕이 본래 행실이 나빠 원나라의 변방을 지키는 일에 누가 될까 염려스러우니 그의 아버지에게 배우게 하십시오’라면서 충혜왕의 폐위를 주청했기 때문이었다.

충혜왕은 총명하기는 했지만, 어려서부터 술 마시고 방탕하게 노는 것에 익숙했던지라 왕위에 오른 후에도 정치보다는 술과 여자를 탐하고 사냥을 즐겼다. 그의 나쁜 행실은 폐위의 구실이 되었다. 왕위에서 쫓겨난 충혜왕은 원나라에 가서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원나라 황족, 귀족들과 함께 유흥을 즐기며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다. 그가 엘테무르의 아들 등과 함께 술을 마시며 여자를 희롱하고 다녀 간혹 숙위에도 결근하자, 바이안은 그를 두고 무뢰배, 건달을 뜻하는 ‘발피(?)’라며 비난했다."

 

5월 병인일, 왕이 그 장인인 삼사좌사 홍융의 계실 황씨(黃氏)를 간음했다.
5월 경오일, 왕이 서모인 수비 권씨(權氏)와 정을 통했다.
5월 환관 유성의 처 인씨가 미인이라는 소문을 들은 왕이 구천우, 강윤충을 거느리고 그 집에 가서 유성더러 술을 올리라고 했다. 그 자리에서 유성이 왕에게 "전하께오서는 곧 복위하실 것이니 백성들을 잘 다독거리고 아낌없이 상을 내리소서." 라고 진언했다. 왕의 속내가 그 처를 꾀어내는데 있는 것도 모르고, 유성은 왕이 자신을 진심으로 아껴준다고 착각하여 행동거지를 매우 조심스럽게 하니 주위 사람들이 몰래 비웃었다.
8월 갑오일, 경화공주(慶華公主)가 왕을 초대해 잔치를 열었는데 술자리가 파했으나 왕이 취한 체하며 궁궐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가 날이 저물자 공주의 침실에 들어가 정을 통했다.


 

아무래도 김씨3부자는 모본왕, 최충헌, 충혜왕중에 충혜왕과 걸맞으니 그렇게 합시다.

태조 왕건은 조만식 선생님과 비슷하신 분이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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