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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Republic of 태기산댁 0 1268 2017-01-14 00: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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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요 ip1 2017-01-15 00:5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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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족한답 ip2 2017-01-18 13:40:55
    그래도 아버님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과 가슴에 사무친 소원을 후에라도 풀어 드리시겠다니 괜찮은 분이십니다..... 남한에 와서 실향민 2세분들을 적지 않게 보아왔지만...
    그런 마음 조차 없는 분들도 있고...여러가지 부류였습니다.

    아마도 황주족에서 나온 탈북자 분이 없거나,,, 있다고 해도 님의 글을 보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황주군 흑교리는 평양에서 차로 1시간 반 정도의 거리에 있는데... 흑교리는 해주로 통하는 철길을 중심에 두고 양쪽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이제는 흑교면이 없어지고 황주군 흑교리로 되었고...그 정의 리들은 모두 흑교리에 속한 농산 작업반으로 변경이 되었습니다. 정자리가 몇 작업반으로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평양에서 일하면서 봄가을 농촌지원을 황주군 흑교리에 나가 보군 해서 흑교리를 알뿐입니다.... 벼농사와 강냉이 농사를 기본으로 하는농촌으로서 아직도 큰도로 옆을 벗어나면 볏짚으로 지붕을 씌운 초갓집들이 많은 곳입니다.
    농민들은 땔감이 없어서 볏짚이나 강냉이 짚으로 불을 때고 밥을 해먹고 있으며... 월남자 가족들이 많은데 ..그들은 농촌의 최고 말단 간부인 분조장도 못하는 정도 이며 입당은 꿈도 못꾸는 형편입니다.

    아버님이 아시면 참으로 가슴 아파하셨을 겁니다.
    통일이 되면 님같은 분들이 모르는척 해서는 절대로 아니될 일입니다.
    물론 그들이 당한 고통을 월남자 2세분들이 다 갚아드리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마음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옛 속담에도 "자기 쓰고 남 줄것 없다." 라 했습니다.
    즉 자기가 조금 못먹고- 못입을 각오를 해야 남을 도울 수 있다는 뜻입니다.

    도와 주는 방법도 여러가지겠지만...무엇보다도 마음이 더 중요하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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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기산댁 ip3 2017-01-21 09:37:37
    소중한답변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나치지 않으시고 끝까지 읽어주심도 감사한데
    이렇게 정성스런 답변까지 주시니 더욱 감사드립니다

    님의 말씀대로 실향민2세가 그아픔을 어찌 갚아드리겠습니까?
    저또한 나이먹어 퇴직후 귀농을해서 살고있는데
    이제 우리인생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그동안 아버지사랑으로 풍요로운생활하며 공부했던게
    요즘들어 더욱 감사하다는 생각이듭니다
    감사하다는 생각에 앞서 항상 북쪽에있는 형제들생각을 하게되죠
    저또한 아이둘이 다커서 결혼을 앞두고있으니
    더욱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게됩니다

    북쪽에서 입당도못하고 월남자가족으로 가슴앓이하며 살았을 형제들에게
    무엇으로 어떻게 보답을 하겠습니까
    통일이 되기전에라도 혹시 살아있다는 소식만 듣게되면
    어떻게 해서라도 어떤방법으로라도 보탬이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아버님의 간절했던소망을 어렸을적 우리에게 수없이 말씀하셔서
    저는 초등학교입학전부터 흑교면 정자리라는 주소를 외우고 있었습니다
    이렇게라도 흑교면의 소식을 접하게되니
    형제를 벌써 만난것같이 가슴이 설레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라고하지만
    정치하는이들의 손에만 맞기고 기다려야만 하는 현실아닙니까
    통일이 멀더라도 제발 제발 고향에 가보고픈이들에게
    기회를 주는나라 그런나라였으면 좋겠습니다

    다시한번 답변주신님께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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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족한답 ip2 2017-01-21 10:30:24
    태기산댁님... 저도 북한에 형제들과 자식을 둔 탈북자이니 만큼 님들의 그 그리운 마음과 슬픈 소망을 잘 압니다.
    님의 부친께서 얼마나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돌아가겼으리란 것도 조금은 알 수 있구요....
    .님들의 사연이고 소원이 곧 저희 탈북자들의 사연이고 소원입니다.

    그저 묵묵히 기다리는 수 밖에 없는 이 안타까움,, 그 뿐입니다.
    ................
    모두 하늘의 뜻이니 너무 애끓이지 마십시오.
    아침에 서울에서 기차를 타면 황주군 흑교리는 오전중에 도착할 수 있는 매우 가까운 거리인데도 이렇게 두 가족이 수십 년 동안을 만나질 못한다니...

    평양에서 사리원을 거쳐 해주로 나가는 대도로와 철길이 황주군 흑교리 중심을 통과 하기 때문에 교통도 매우 편리합니다...흑교리에는 에는 흑교 역전이 세워져 있습니다.
    통일이 된 후에 찾아 가려면 자동차로 가는 것이 더 편할 겁니다.
    ..........
    자세한 소식을 전하지못하여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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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기산댁 ip3 2017-01-22 07:01:49
    북쪽에 형제들과 자식들이 있다고 하시니
    저희 아버지와 똑같은삶을 살고계시네요
    어느누구보다 백배 이해할수 있습니다
    너무너무 안타깝습니다

    이곳 남쪽에 오신지는 몇년째이신지...
    적응은 잘되시는지요...
    혹시 어려운일은 없으신지요...
    제 아버님 살아계실때의 모습이시겠지요...
    잘 적응하시고 나날이 발전하시는 더욱멋진삶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아버지께서 사리원과 해주 이야기도 자주 해주셨습니다
    고향집황해도에서 정미소와 사과 과수원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버지혼자 평양에서 공부하시며 일본에도 공부하러 다녀오셨다며
    일본이야기도 자주 해주셨죠

    님께서 평양,사리원,해주 말씀을 하시니
    아버지께서 자주 말씀해주셨던 지역임을 금방 알겠네요

    처음 남한에서 대구사과를 먹어보니 황해도 사과보다 맛이 없더라고
    그곳은 일교차가크고 추운지방이어서 사과가 맛있다고 하셨어요

    동네에서 사과깎기대회 나가셨던일...
    방학이면 집에와서 정미소일을 도와드렸던일...
    겨울엔 고향에서 동치밋국물에 국수말아먹던일 등등 아버지의 추억들을
    제가슴속에 그대로 소중하게 간직해 두었습니다

    아이들10명정도 들어갈만한 아주큰항아리를 땅에묻고
    그큰 항아리에 동치미를 담그면 겨울내내 맛있는 양식이었다고 추억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사과껍질을 아주얇고 끊기지않게 한번에 깎으셔서 너무 신기했었죠
    평양에서 공부하실때 복싱과 연식정구 선수생활도 하셨다고 했어요

    이렇게 이곳에서 잠시라도 아버지의 옛이야기를 할수있으니
    참 재밌고 신비롭습니다

    혹시...
    기회되시면 제가살고있는 강원도에 놀러오세요
    꼭한번 정성드려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010-6679-5290
    zjs11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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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기산댁 ip3 2017-01-22 07:15:18
    참참!!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정명화,정명훈 가족 아시죠?
    이분부모님께서 황해도 당모루정씨 집성촌에서 함께 사셨다고 했어요
    같은 종씨이며 일가친척이라고 하셨고

    남한에 내려오셔서도 황해도에서오신 당모루정씨들 몇가족과
    저희아버님과 그분들가족들도 서울명동에서 자리잡고 사시다가
    그분들은 미국으로 가셨어요

    이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한분들을 길러내신부모님 고향이 황해도 이니
    황해도땅이 분명 아주좋은 명당일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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