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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김씨, 박씨 조상은 가짜인거 아십니까?
Korea, Republic of 유자차 0 1390 2017-02-18 14:02:57



우리나라 김씨, 박씨 계보를 보면 


조상 대부분 '알지와 수로왕, 혁거세' 입니다.

 

하지만 알지와 수로왕이 김씨라는 증거 어디에도 없습니다.


(증거 있다고 가지고 오세요.)

 

 

그냥 후손들이 유명한 사람을 자신의 족보에 등재한겁니다.

 

그리고 닭, 알 같은 신화적 존재로 신격화 시킴.


현재 진한(신라) 성씨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진흥왕 부터입니다. 

상식상 알지, 혁거세는 진흥왕 휠씬 이전 사람이죠;;; 

 

 

그리고 박씨, 김씨는 신화속에서 사로국 시대에 생겼다고 하는데.

 

그 당시 진한 사로국은 중국의 한자를 쓰지 않았다고 문헌에 정확히 나옵니다.

 

 

한자를 쓰지 않으니 김씨, 박씨란 성씨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고구려와 백제는 한자를 사용했고 


중국과 외교와 통역과 대화 물류교환이 가능했습니다.

 

차후 이런  단성 신라 성씨는 당나라 영향을 받아 


문화로 발전되었고 주류였던 복성은 우리나라에서 사라졌습니다.


반대로 일본은 백제, 고구려 영향으로 복성입니다.

 



현재  


중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 이씨, 장씨


한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 김씨, 이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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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선주의척결 ip1 2017-02-18 14:39:20
    "반대로 일본은 백제, 고구려 영향으로 복성입니다."
    이는 일제가 마구 부르짖던
    전형적인 동조동근론으로 일본어 성씨가 2개가 된건
    원래 일본자체가 각지 호족들을 중심으로 싸운 역사가 우리보다
    더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호족애들은 원래 성씨가 없거나 성씨가 두개거나요
    그 두개인 성씨도 산밭에서 태어난 놈이라고 해서 야마다 이런 식이구요.
    그리고 고구려도 성씨를 한개로 썼습니다. 왕부터 고건무 고담덕 이런 순으로
    연남생 연남건 이런 순으로요. 고구려도
    단성 복성 혼용해서 쓴거에요.
    그리고 일본에서 흔한 성씨들보면 도저히 조상이라곤 찾기힘든 성씨죠
    다나카 나카무라 다카다 야마가타 등등.
    일본이 고구려, 백제 영향받았다는건 동조동근론식 헛소리고,
    일본은 애시당초 동남아+한반도인+러사아인+중국인같은 튀기인데 웃긴소리하는거지
    정체성이 희박하기론 짱깨들하고 비슷한데 그냥 잡탕 중에 상잡탕이죠
    그리고 신라는 한나라랑 달리 단성뒤에 이름이 2자가 훨씬 많아요
    김관창, 김시득. 김품일, 김흠돌 등등등
    근데 한족은 이름이 원래 1개 밖에 없었어요. 비. 연, 우. 량 등등
    나중에 당나라때도 이름이 2개가 되었는데 이때에도 이름이 1개가 많았죠
    그리고 단성을 쓴거야 조상뿌리때문에 쓴거지 복성쓰면 더럽게 어색하니까 단성쓰지
    그걸 짱깨의 영향이다? 제갈, 공손 이런 성씨들은 뭔가요?
    동북공정+새역모식 논리 지리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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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자차 ip2 2017-02-18 15:07:53
    일본 성씨의 30% 이상 한국에서 건너간 성이며

    1875년 이후 지어진 대부분 성씨도 한국 고대 성씨를 모방하였다고 보여집니다.

    백제에서 건너간 하야시(林), 야마쿠지(山口) 등은 일본에서 아주 큰 대성(大姓)이고

    또한 쿠다라(百濟),쿠다라키(久多良木),시리기(新羅),시라키(白木),고마(高麗),코마(駒)씨

    등은 우리나라 백제(마한)의 삼한시대 국가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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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선주의척결 ip1 2017-02-18 15:38:51
    그것은 전형적인 동조동근론 논리로 야마구치 하야시는 산속입구 숲이란 뜻이고 산씨성 없고 림씨성도 드뭅니다. 그리고 이런 글 적으면 적을수록 일본이 우리와 형제국이란건데
    오히려 새역모식 논리나 써먹기 좋죠.

    어차피 경계가 명확한 나라에 그딴거 따져본들 아무 소용도 의미도 없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근본이 해적질로 연명하던 나라에 메이지유신전 성씨가 없는 놈들 태반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우리보다 더 오랜기간 호족연합체 국가였기때문에 백제의 영향
    이딴거 따져본들 의미는 더 없습니다.
    가령 고려는 근본도 증명도 어려운 호족연합체
    따윌 광종시절 노비안검법을 통해서
    무참히 깨버려서 성씨가 기존보다 더 많이 늘어났습니다
    군벌이나 호족들 역사나 해적역사는 한국이 더 짧습니다.

    우리에게 영향을 받은건 여러개중 하나일뿐인 고대나 전국시대 끝나기 전까지 일개해적집단들 내지는 부족국가가 일본입니다.
    짱깨도 마찬가지구요. 근본적으로 혼혈 즉 튀기인 인간들이 영향을 받아본들 얼마나 받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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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다 ip3 2017-02-18 15:44:56
    So what? Do you trust whether your mom is your true biological m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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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선주의척결 ip1 2017-02-18 17:51:04
    저놈은 그냥 이유도 없이 비난하는 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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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꺼지라 ip4 2017-02-18 18:11:25
    위선척결아.... 네놈이 자초한 일이잖아.
    그만큼 그런 미친지랄그만두란데도 잘난척은 혼자 다 하더니 꼴 좋구나..ㅎㅎㅎ
    왜그래?
    대적할 능력과 실력이 안되냐?ㅋㅋㅋㅋ 미친새키...
    남한새키들은 꼭 이렇다니까..
    저들이 불질은 먼저하고,,,
    마지막엔 자기가 궁지에 빠지면 ... 상대를 무식한 놈으로 몰아가고.

    개야 부끄럽게 중얼 거리지 말고 꺼지라.

    내가 그만두라고 얼마나 말렸니?
    무식한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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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선주의척결 ip1 2017-02-18 18:54:22
    남한새끼 좋아하네 ㅋ 전형적인 동조동근론 논리로 쓴 저따위 글이 맞나?
    "조상이 같고 근본이 같음. 日帝(일제)가 우리나라를 同化(동화)시키기 위해 만들어 낸 말."
    딱 저기에 맞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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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선주의척결 ip5 2017-02-18 20:49:22
    일본 천황가가 백제에서 왔다는 것의 근거로 드는 것은 [신찬성씨록]이다.

    [신찬성씨록]은 일본 환무(桓武 캄무)천황의 다섯째 아들인 만다친왕(萬多親王)이 지은 책이다.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大原眞人, 出自諡敏達孫 百濟王也.

    일반적으로 이 구절은 이렇게 해석한다.

    대원진인(오오하라노 마히토)은 민달(비다쯔 천황)의 손자 백제왕(족)으로부터 나왔다.

    대원진인의 진인(마히토)가 성姓이라고 하는데, 성이 왜 뒤에 와 있는지는 과문한 탓에 잘 모르겠다.
    백제왕이라고 되어 있는데, 백제왕족이라고 해석하는 이유는 다음 기록을 읽어봐야 알 수 있다.

    신찬성씨록의 또 다른 기록이다.

    島根眞人, 大原眞人同祖 百濟親王之後也
    도근진인(시마네노 마히토)은 대원진인과 같은 조상인 백제친왕의 후예다.

    위 기록을 볼 때, 민달천황의 손자는 백제친왕이었던 모양이다. 친왕이라 함은 왕가의 일원이므로 왕족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 기록을 놓고 우리나라 쪽에서는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이 많다.

    일본천황의 손자가 백제왕족이라면, 그 할아버지는 당연히 백제계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왜 거꾸로 생각해 볼 줄은 모를까?

    백제왕족의 할아버지가 일본천황이라면, 백제 왕가는 일본계가 아니겠는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 에렉투스가 나왔지만, 그렇다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호모 에렉투스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후대의 일로 선대의 혈연을 결정하려는 짓은 어리석은 일이다.

    문제의 민달천황은 572년에서 585년간 재위한 30대 천황이다.
    따라서 백제 무왕은 600년에 왕위에 올랐는데, 그 선대가 사실 불분명하다. [삼국사기]에서는 법왕의 아들이라고 하지만, [삼국유사]에서는 용의 아들이라고 나오며, 인심을 얻어 왕위에 올랐다고 나온다. 이런 불분명한 백제왕계가 이때 일본계로 바뀐 것이라면? 즉 민달천황의 손자가 바로 백제 무왕이라면?

    아아, 거기 성질 내시는 분은 좀 진정하라. 나는 진지하게 위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신찬성씨록]의 기록은 그렇게 해석할 여지도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민달 천황의 손자가 백제 왕녀와 결혼하여 친왕의 지위를 획득한 것일 수도 있다.

    일본이 백제의 속국이라는 생각이 골수에 뻗친 분들은 이쯤에서 여러가지 증거를 떠올릴 것이다.

    민달천황이 지었다는 백제대정궁. 일본 정가를 주름잡은 도래인 소가(蘇我)씨라든가, 아스카(飛鳥) 지방의 수많은 백제 관련 유적, 유물. 현 일본의 천황인 아키히토도 인정한 환무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는 점 등등.

    (사족이지만, 일본 아스카에 남아있는 그 많은 백제 유적들을 보면, 조선대륙설을 주장하는 바보들은 뭐라 그것을 설명하는지 궁금하다. 그자들의 논리대로 하면 한반도에 날조 유적을 지으면서 일본 땅에다가도 날조 백제 유적까지 만든 것이다. 자기들에게 유리할 것도 하나 없는 유적을 굳이 지은 이유를 그 사람들은 또 뭐라 만들어낼까?)

    나는 저런 점을 전혀 부인하지 않는다. 백제와 일본은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것이 분명한 사실인만큼 한반도로 중국계 유이민이 엄청나게 들어왔다는 사실도 인정하기 바란다. 전국시대 말기로부터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중국계 유이민들이 한반도로 들어왔다.

    고대는 살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동으로 서로 움직였으며, 삼국 멸망 후에도 그런 흐름은 이어졌다. 발해 멸망 후 수많은 발해인이 고려로 이동했다. 몽골의 침입으로 한반도에는 몽골인의 피가 적잖이 유입되었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잡혀간 조선인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렇게 움직였던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인가? 중국 사람인가? 일본 사람인가?

    천여년 전 일본에 건너갔던 백제인들이 있었다. 이들만이 일본인이 되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위만과 위만이 데려온 연나라 사람들만이 한국인이 되었다고 이야기해야 하는가? 금나라로 가서 아골타의 조상이 된 신라인(또는 고려인) 김함보가 있으니, 금나라 사람은 모두 신라(또는 고려) 사람이었다고 주장하겠는가?

    왕가의 혈통으로 그 나라의 정체성을 파악하려는 생각은 좀 접어라. 고려 왕실은 대대로 몽골의 공주와 결혼했는데, 후대로 내려갈수록 그 피는 몽골에 가까워진다. 그럼 고려는 몽골인 것인가? 또한 왕가가 몽골족이므로 우리는 몽골족이 되는 것인가?

    사람들도 움직이고, 역사도 움직인다. 그 모든 사람들 - 한반도에 살던 사람, 중국에서 넘어온 사람, 북방 유목 종족에서 넘어온 사람, 일본에서 또는 저 멀리 동남아와 인도에서 건너온 사람까지 모두 한반도라는 용광로 속에서 녹아서 오늘날의 우리 한국인이 되었다. 이 일이 우리에게만 일어났겠는가? 일본에서도 일어났고, 중국에서도 일어난 일이다.

    일본천황가와 백제 왕가의 연관성을 찾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역사탐험이다. 하지만 그 것을 가지고 동조동근론을 꺼내지는 마라. 그건 천하에 둘도 없는 바보 짓이다.





    [추가]
    파랑나리님의 댓글을 추가해 놓습니다.

    파랑나리 2011/01/18 22:23 # 삭제 답글
    저 신찬성씨록에 나오는 百濟王이라는 이름의 정체는 이렇습니다.(반드시 읽어주세요.) 백제는 민달의 손자 이름입니다.(쿠다라라고 읽습니다.) 왕은 작위입니다. 저 백제왕은 쿠다라노미코라고 읽고 그 뜻은 백제를 다스리는 임금이 아니라 이름이 백제(쿠다라)인 종친宗親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신찬성씨록을 일본에서 종친의 이름과 작위, 성씨제도를 모르는 것들이 소설을 씁니다. 저걸 "국가가 편찬한 황족과 귀족의 족보"라고 하는데(역사스페셜) 이것도 틀렸습니다. 저것은 족보가 아니라 일본의 성씨목록이고 황족이 나오는게 아니라 황족에서 갈라진 집안이 나오는 겁니다.

    그리고 姓이 왜 뒤에 나와있냐 하는데 가령 大原眞人에서 大原(오호하라. 큰 벌판이라는 뜻입니다.)가 성이고 眞人(마히토. 참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카바네로(姓으로 쓰이지만) 씨족의 성격을 나타내기 위해 성과 같이 쓰이는 것입니다. 眞人은 八色之姓(야쿠사네카바네. 여덟가지의 카바네 텐무텐노 떄 정해진 것으로 골품을 나타냄)의 으뜸입니다.



    [추가]
    최근에 어떤 이들이 이 글을 이해하지 못하고 헛소리 한다는 걸 알았네요. 생각해보니 그럴만도 했네요.
    위 내용은 이 책을 읽고 간략하게 적어놓았던 것이에요. 관심 있는 분들은 책을 직접 읽어보세요.

    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 [클릭]

    본의 아니게 사람을 낚았네요.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16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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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선주의척결 ip5 2017-02-18 21:04:24
    아울러 니가 이렇게 떠들고 씨부리고 주장하도록 만든자의 원조
    문정창
    文定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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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견3담기보내기폰트설정 메뉴
    문정창 이미지 갤러리 가기
    문정창
    1899-1980. 역사학자.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칭별칭 백당(柏堂), 文山定昌
    유형 인물
    시대 현대
    출생 - 사망 1899년 12월 12일 ~ 1980년
    성격 역사학자
    출신지 부산
    성별 남
    본관 남평(南平)
    저서(작품) 조선강점삼십육년사(상·중·하), 단군조선사기연구, 일본상고사, 한국고대사(상·하)
    정의
    1899~1980. 역사학자.
    생애 및 활동사항
    1899년 경상남도 부산에서 출생했다. 호는 백당백당(柏堂)이다. 부산의 동명중등학교를 졸업한 후, 1923년 경상남도 동래군 서기를 지내다가 1924년 4월 조선총독부 행정강습소에 입학해 이듬해 3월 졸업했다. 경기도 수원군 속, 1927년 경상남도 울산군 속, 1928년 동래군 속, 1930년 경상남도 산업부 산업과 속(1930), 1932년 10월에는 조선 쇼와[昭和]5년 국세조사기념장을 받았다. 1937년 조선총독부 농림국 농촌진흥과 속, 1941년 조선총독부 농림국 농정과 속, 1942년 충청북도 내무부 사회과 사회주사(고등관 7등) 등을 거쳤다.
    1943년 3월 군수로 승진하여 황해도 은율군수를 거쳐 1945년 6월부터 해방될 때까지 황해도 내무부 사회과장으로 재직했다. 관직생활 중 조선총독부 간행의 조선조사자료총서인 『산업조합 설립까지(産業組合設立まで)』(1932), 『조선의 시장(朝鮮の市場)』(1941), 『조선농촌단체사(朝鮮農村團體史)』(1942) 등을 저술했다.
    해방 이후 월남하여 조선농회(朝鮮農會) 총무부장을 지냈으나, 1947년 개인 사업을 경영하며, 일제 식민사학에 대한 기성 사학계의 도전이 불충분하다는 비판의 차원에서 일제침략사 및 한국고대사 연구을 진행했다. 『근세 일본의 조선침탈사(近世日本의 朝鮮侵奪史)』(1964), 『(군국일본)조선강점삼십육년사((軍國日本)朝鮮强占三十六年史)』(상·중·하, 1965~1967), 『단군조선사기연구(檀君朝鮮史記硏究)』(1968), 『고조선사연구(古朝鮮史硏究)』(1969), 『일본상고사(日本上古史)』(1970), 『한국고대사(韓國古代史)』(상·하, 1971), 『백제사(百濟史)』(1976), 『가야사(加耶史)』(1978) 등 다수의 저작을 출판했다. 1976년 10월 8일 이유립(李裕?)·안호상(安浩相)·유봉영(劉鳳榮) 등과 '국사찾기협의회'를 결성해 국사 바로잡기 운동을 전개했다. 1980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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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압록강의압은오리압 ip6 2017-02-18 21:59:14
    위선님은 혹시 남평이 어딘지 압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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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선주의척결 ip5 2017-02-18 22:39:43
    그런걸 묻는 저의가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저는 저러한 동조동근론식 이론은 깡그리 무시하기에 이런 글을 적습니다. 어차피 백제와 고구려가 일본에게 영향을 준거라곤 여러개중 꼴랑 하나이고 그리고 복성론도 중국에는 제갈, 공손, 사마, 태사, 하후, 모용 등등이 있습니다.

    남평이야기는 백제 이야기를 꺼내시는지요? 일본에 영향 어쩌고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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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압록강의 ip7 2017-02-18 23:18:56
    바로 위 댓글에 문정창의 본관이 남평 문씨라고 나와서요.
    남평은 전남 나주에 위치해있습니다.
    문재인도 남평 문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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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선주의척결 ip5 2017-02-18 23:31:10
    뭔 헛소리야 남평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그래서 문재인이가 문정창급인가? 문정창 가족이야? 중요한건 니 논리를 제공한 제공자가 문정창이잖아.문정창이 친일인명사전에 떡하니 쳐올라왔는데 뭔 소리야 문정창, 이유립 따위가 만든 유시역사학으로 여러사람 현혹시키지마라 가뜩이나 탈북자들한테는 더없이도 하나 하나 소중한 지식이 역사학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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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압록강의 ip8 2017-02-18 23:47:22
    위선아 네가 퍼온 댓글을 읽고 나서 물었잖아..
    21:59에 압록강의압은오리압 앞에 있는 너의 댓글을 읽어보렴.
    너는 읽어 보지도 않고 퍼오니?
    나한테 고마워해라 나는 기나긴 글을 다 읽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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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선주의척결 ip5 2017-02-18 23:57:35
    신라가 정말 피땀흘려 나라를 지킨 나당전쟁에 마지막 전투인 기벌포전투를 치졸함으로 만들고, 이것이 곧 신라는 중국의 신하였다는 동북공정을 논파하는 소중한 전투임에도 이걸 치졸함으로 얻어낸 승리라고 하는 밑에 그 인간과 헷갈렸습니다.

    뭐 문재인이나 문정창이나 같은 친인척인지 아닌지는 사실 관계는 봐야 알거같습니다만 그들의 본관만으로는 구별이 어럽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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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압록강의 ip9 2017-02-19 00:13:41
    문씨는 거의 하나로 보면 됨.
    그리고 문재인의 본관은 남평 맞아.
    내가 언제 친척이라고 했니?
    문재인의 프로필은 이미 2012년 대선때 다 공개됐어요.
    끝으로 남평은 읍단위의 큰 고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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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선주의척결 ip5 2017-02-19 02:11:24
    백제시대 성이 중국에는 있고 우리나라에는 없다는 황당한 주장에 대하여


    이 주장은 한국사미스테리 60에도 나오는데, 거기에는

    13. 백제의 유명 8대 성씨는 한반도에는 남아있지 않다. 모두 현 중국대륙에 있다.

    이렇게 간단하게 나와서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최근에 그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이 주장의 최초 주장자는 임승국이었던 모양이고, 그 뒤를 이어 인터넷에 떠도는 글의 주인공은 신완순이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의 주장은 [수서(脩書)]에 나오는 백제 대성 8씨 - 沙 解 眞 木 國 燕 苗 協이 중국에 있다는 것으로, 그 근거 사료로는 다음과 같은 책을 대고 있다.

    글쎄다... 백제 대성8씨 자체가 우선 틀렸다. [수서]의 백제 대성8씨는 다음과 같다.

    沙 燕 ? 解 眞 國 木 ?

    글만 쓰면 왜곡이니, 이걸 어쩌냔 말이다. 하지만 참작할 여지는 있다. 이런 차이가 왜 나는지 알아보자.
    저 성들 중에 沙 燕 解 眞 國 木의 6성은 일치한다.

    ?은 본래 [수서]에 苗로 나오는데 苗가 ?의 오자라는 것이 밝혀져서 (중국은 [통전]에 의거하여 수정했는데, 우리 [삼국사기]에 ?씨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이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공부 안 하는 인간들이나 틀리는 문제라고나 할까.) 요새는 틀리는 사람들이 없다. 뭐, 원전에 의거해서 틀린거라면 이해는 해주마. 아무튼 틀린 건 틀린 거.

    그리고 ?와 協은 ?를 읽지 못한 인간들이 비슷하게 생긴 協으로 읽으면서 생긴 해프닝이다. 이 역시 한문 못 읽는 인간들이 일으키는 오류다. 그나마 신완순은 ?를 언급이라도 했는데, 이후 인터넷의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은 Ctrl-C, V가 되지 않는 ?를 빼버리고 協만 옮겨다니고 있는 실정이다.

    신완순은 1994년에 편찬되었다는 [중국성씨사전]을 근거로 대면서 백제 성이 중국에 남아있다고 주장하지만, 그 근거는 매우 희박하다. 왜냐하면 저 사전은 결국 다음 두 책에 의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씨고략(姓氏考略) - 眞 協 木
    군망백가성(郡望百家姓) - 沙 解 國 燕 苗

    그럼 이게 무슨 문제인가? [성씨고략]이라는 책은 무슨 책인지 찾지 못했는데, [백가성]이란 송나라 초에 만들어진 책이다. 거기 실려있는 것을 가지고 성씨가 중국에 있다고 주장한다면, 나는 대한제국 때 만들어진 [증보문헌비고]에 백제 대성 8씨가 모두 실려있다는 것으로, 백제 성씨가 모두 우리나라에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

    [추가]
    Comte님이 조사하신 바에 따르면 [성씨고략]은

    姓氏考略一卷 (?)陳廷?(撰)

    로 나온단다. 즉 청나라 때 만들어진 책인 것이다. 지은이인 진정위陳廷?는, 남은 기록이
    수수秀水출신. 1706년 진사급제. 1714년(강희제 시절) 건평 지현建平知縣 부임 정도라 한다.

    더구나 [군망백가성]에 실려있는 내용을 알게 되면 더욱 기가 찰 것이다. 한번 보자.

    沙: 宮音。汝南郡。系出沙隨氏,古諸侯公爵,後失國爲公沙氏。漢有公沙穆。子孫去公爲沙氏。
    사 : 궁음. 여남군. 사수沙隨 씨에서 나왔다. 옛날의 제후 공작으로 뒤에 나라를 잃고 공사公沙 씨가 되었다. 한나라 때에 공사목公沙穆이 있었다. 자손이 공公을 버리고 사沙 씨가 되었다.

    解: 商音。平陽郡。唐叔虞子良食采於解,因氏焉。後有解揚。
    해 : 상음. 평양군. 당숙우(춘추 시대 진晉나라 시조)의 아들 량(良)이 해(解) 땅에 식채(食采:食邑)를 받았으므로, (이로) 말미암아 씨(氏)를 삼았다. 훗날 해양(解揚)이 있었다.

    國: 角音。下?郡。系出姬姓。鄭公子子國之後。有國僑?鄭子?。又齊有世卿國姓。
    국 : 각음. 하비군. 희姬 성으로부터 나왔다. 정공자 자국(子國)의 후손이다. 국교가 있으니 즉 정자산(춘추 시대 정나라의 유명한 정치가)이다. 또 제나라에 대대로 경(卿) 벼슬을 하던 국(國)씨 성이 있었다.

    燕: 羽音。範陽郡。系出姬姓。召公封於燕,支子以國爲氏。隋有燕榮。
    연 : 우음. 범양군. 희姬 성으로부터 나왔다. 소공召公이 연에 봉해진 뒤, 지자(支子:적장자가 아닌 다른 아들)가 나라(이름)를 씨로 삼았다. 수(隋)나라 때 연영(燕榮)이 있었다.

    묘는 오자이므로 찾아볼 필요도 없다. 위에 나오는 것처럼 저 성씨들은 중국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백제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저런 책을 근거로 작성된 것이 유사역사가들의 주장이라면, 저런 것보다는 [증보문헌비고]가 백번 낫다. 하여간 유사역사가들의 주장은 숨겨놓은 사료만 찾으면 왜 이리 빈약한 것인지...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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