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 세상을 누가 감히 만들어내겠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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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30: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빈부관리를 제대로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 빈부관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만 제대로 할 수가 있다. 그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령통치를 받자고 강조한다. 가난하다고 욕심이 없는 것이 아니다. 욕심이 더 많을 수 있고 배고픔을 아는 자들이 기회만 되면 그 누구보다 더 많은 돈을 삼키려고 할 것이다. 빈자와 부자는 서로 상생의 길로 가야 하는데 그 상생의 조화는 비율이다. 그 비율의 조건 지휘는 오직 성령만이 해야 한다. 그분의 비율을 재는 잣대이고 저울이고 추이고 기준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저울에서 나오는 추로 빈부 관리함이다.
가난한 자들의 속에서 솟아나는 그 강렬한 소유욕을 마귀가 이용하면 흉기가 된다. 역사 속에서 세상을 폭동으로 몰고 간 것은 가난한 자들의 응집력과 폭발력에 있다. 그들의 응집과 폭발로 그 세상은 폭동을 야기했다. 성공한 폭동도 있고 실패한 폭동도 있다. 수의 힘을 믿는 이들은 거짓으로 세상을 속여 가난한 자들의 눈과 귀와 마음을 사로잡아 기득권을 파괴하는 힘으로 사용한다. 그들이 그런 짓을 하는 것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자유와 생명과 행복을 위해 그런 짓을 한다고 하는데 실상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것과 지족해야 한다는 것이 서로 상생의 비율로 자리를 잡아야 비로소 안정된 세상이 된다. 창조와 생산능력이 저하된 세상에서는 더욱 그 싸움이 치열하다. 마귀는 그 속에서 그 짓을 한다. 서로를 흉기를 삼고 그것으로 그 세상을 망하게 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회개의 시간을 주신다. 그것이 지구의 존재이다. 인간이 이 지구에서 영원히 거하는 것이 아니다. 죽어서 떠나야 하는데 그 때문에 빈부에 연연하지 말고 회개하고 천국으로 오라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오신 것이다. 누구든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처럼 성령으로 통치를 받아 오라는 것이다.
성령으로 통치를 받아 빈부를 다스리라는 것이다. 그들이 곧 천국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 속에 성령이 돈을 사용하게 하는 능력이시고 지혜이시다. 상생의 저울과 추이시다. 빈부가 공생 상생하는 것 곧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가 되는 세상이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임하시는 성령의 힘으로만 가능하다. 많은 혁명가들은 제도와 법 운영을 강조한다. 문제는 욕심을 이기는 힘과 마귀를 몰아내는 권능과 인간의 기준과 저울과 추와 잣대가 너무나 미약하고 부정확하고 주관적이다. 성령만이 하나님의 창조와 생산의 능력을 공유하게 하는 비율로 통제하신다.
성령의 통제의 결국은 하나님의 창조와 생산의 능력의 장맛비다.
하나님의 창조와 생산의 능력을 받는 자들은 그 자신의 불가능을 이긴다. 그들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주시는 아사의 복 곧 아 살았구나 하는 지혜, 하나님의 창조와 생산의 능력을 누리게 된다. 그들의 손에서 부요가 창출 증식이 된다. 그들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부요가 넘쳐난다. 그것을 내는 자들은 그 창조와 생산의 능력이 자기들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임을 直視(직시)하게 된다. 그 능력을 계속해서 공유하려면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해야 하고 그 뜻을 따라 사랑으로 행동하게 하시는 성령의 통치를 받는데 완전해야 한다는 것을 늘 깨닫는다.
그 때문에 그들은 늘 사랑의 손길이 되기를 사모한다. 그것으로 모든 가난한 자들의 짐을 진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은 그를 통치하시는 것이고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창조와 생산의 능력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많은 자들이 국가의 돈이나 기업의 돈을 후려다가 가난한 자들에게 주면 된다고 여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 다음에는 돈이 더 이상 나올 곳이 없게 된다. 그 때부터는 가난을 이길 힘이 없다. 결국 모두가 가난해지는데 돈이 마르는 곳은 쉽게 마르지만 있는 곳은 점점 줄어들든지 그곳으로 돈이 모이든지 할 것이다. 반복된다.
그런 실험을 한해 두해만 한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가 늘 그래왔다. 인간이 교만하여 스스로 세상을 상생하게 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간은 가난을 이길 힘이나 부요를 다스릴 힘이나 의지가 없다. 지혜도 없다. 사랑도 없다. 그 때문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와서 그 은혜를 받아 누려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와 선과 저울과 추와 잣대와 기준과 모든 권능과 그의 통제를 받아 누려야 한다. 그 때만이 상생의 공생의 수평선을 이루게 된다. 서로 사랑하는 세상이다. 부자가 가난한 자를 사랑하는 것이다.
물론 가난한 자들도 부자를 사랑하게 하는 세상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부하면 마귀의 미혹을 이기지 못하고 부자를 미워하게 되고 부자는 가난한 자를 미워하게 된다. 서로를 잡아먹는 흉기가 된다. 그 때문에 망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지구는 망한다. 지구에게 기회 곧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기회는 회개에 있다. 회개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주신다. 회개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와서 성령의 통치를 받아 빈부를 다스리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들만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꽃보다 더 아름다운 존재가 인간임을 알린다.
이사야 11: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4.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성령이 빈부를 다스림을 강조하심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성령이 임하신다. 그 안으로 들어간 자들만 성령으로 그 통치를 받아 빈부를 다스린다. 그리 다스리는 자들만 하나님의 기준의 비율로 상생의 세상을 낸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준으로 가장 아름다운 세상의 모습이다. 그 세상은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을 열어야 한다.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어야 비로소 약육강식의 세상이 개혁이 되는 것이다. 모든 자들이 떼거리를 만들고 그들만의 이익을 강조하는 것은 그것이 그들의 정의가 되는 세상을 이루고자 함이다. 패역이다.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때가 된다면, 이는 곧 성령의 통치를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세상을 강조함이다. 교회가 제구실을 한다면 인류에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통치를 받으라고 할 것이다. 성령의 통치를 받는 자들은 소처럼 강자라도 그는 그 때부터 소처럼 풀을 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질이 바뀌게 되는 것이니 곧 하나님의 본질이 그의 행동이 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세상을 위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자고 강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통치 받는 세상이다. 성령을 모독하지 말라.
그분은 성삼위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인간 속의 빈부를 다스리지 않으면 인간은 그 소유욕을 이기지 못한다. 그 누구도 그 욕심을 이길 자가 없다.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성령의 통치를 거부하는 자들은 그 욕심을 이기지 못한다. 그들이 모든 궤변으로 성경을 풀어 자기들의 행동을 정당화해도 그들은 성령의 법을 어긴 자들이다. 성령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새 계명이시다. 그분은 성령으로 인간 속으로 오셔서 그를 통제하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기준이시다. 그 기준은 공평하다. 누구든지 그 기준으로 통치되어야 한다. 그 때문에 공평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성령으로 공평함이다.
로마서 8: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령을 따르는 자들만 그 모든 소유욕을 이기게 된다. 갈라디아서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의 통치를 거부하는 자들은 결코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가난을 다스리지 못한다. 성령으로 빈부를 다스리게 해 달리는 기도문이 어제 오늘의 본문이다. ‘or lest I be poor’ 히브리어 구음으로 yarash {yaw-rash} or vrey yaresh {yaw-raysh} 이아라쉬 이아우-라쉬 요-라쉬 이아레쉬 이아우-라이쉬 요-라쉬이다. to seize, dispossess, take possession off, inherit, disinherit, occupy, impoverish, be an heir이다. 가난한 자들이 마귀에게 받는 迷惑(미혹)의 의미들은 돈을 사랑함의 의미들 곧 일만 악의 뿌리이다.
그 미혹에 몰려가는 것이 곧 가난한 자들이 겪는 아픔이다. 저항할 수 없이 달려가는 것이 욕심에 약한 인간의 아픔이다. 거기서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야라쉬는 우리 말 구음으로 비슷한 것이 없다. 변형이 된 것은 없을까 하고 찾아 봐야 하는데, ‘이럴 수가 있나요?’ ‘이러다’ ‘동사’ ‘이리하다(이렇게 하다)’의 준말. 이렇게 말하다. 언뜻 구음이 같아서 입에 맴돈다. 요러는 ‘요러하다(‘요렇다’의 본말)’의 어근. 요러하다는 ‘형용사’ ‘요렇다(상태, 모양, 성질 따위가 이와 같다)’의 본말. 이다.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주 예수께 기도하자.
빌립보서 4: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리스도의 통치를 성령으로 받는 자들만 가난에서도 창조와 생산의 축복을 받아 그 가난을 축복의 기회로 삼는다. 그들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데 이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 때문이다. 그 나머지는 자기 속에 욕심을 이기지 못한다. ‘and steal’ 히브리구음으로 ganab {gaw-nab} 가나브 가우-나브이다. to steal, steal away, carry away이다. ‘동사’ 훔치다. 몰래가다 빼먹다 몰래 가로채다. 도둑질하다. 등의 의미들을 품는다. 고납이다. 가납은 우리말에 비슷한 구음은 있어도 의미는 다르다. 가나브 가우-나브는 구음이 奸惡(간악)에 가깝다
奸惡(간악) ‘명사’ 간사하고 악독함.
마귀가 들어간 자들에게 사용하는 말이다. 그것들은 마귀의 性質(성질)대로 행동하는 자들이다. “요한복음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한복음 10: 1.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마귀에게 묶인 자들은 도적질로 돈을 모은다. ‘and take’ 히브리구음으로 taphas {taw-fas} 타프하스 타우-파스 토-파스이다. to catch, handle, lay hold, take hold of, seize, wield등이다. 도적 중에 도적은 운전대를 잡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주인이 아니다. 만들어진 존재들이다. 함에도 스스로 주인행세를 한다. 주인이 있는데 주인행세를 하면 이는 도적이다. 그 도적으로 행동하는 마인드는 합당치가 않다. 우리의 운전대를 주 예수께 바치고 주 예수 그리스도로 모셔 섬겨야 한다.
요한일서 2: 26. 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27.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28.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29.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골로새서 2: 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한반도에서 누가 주인인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세력을 잡은 자들이 주인인척 행세한다. 한반도의 진정한 주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분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그의 성령의 통치를 받아야 할 것이다. 성령의 통치가 이 나라를 그 모든 빈부의 갈등에서 건져내고 기업하기에 가장 좋은 나라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나라로 가야 하는데 남북의 빨갱이가 주인 행세를 하는 중이다. 이제 이들의 시대를 성령으로 척결해야 한다. 도적이 권력을 잡으면 하나님의 것을 자기 것으로 유용한다. 그것에 참여하면 공동정범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성령의 통치를 받아 모든 불의에서 떠나야 할 것이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또는 김대중 노무현 문씨등을 우상숭배하려고 노력해도 그들은 세상의 사자를 소처럼 풀을 먹지 못하게 할 뿐이다. 도리어 그들은 怪獸중에 괴수가 되었고 사자를 더욱 포악하게 만드는 짓을 할 뿐이다. 감히 그 누가 사자를 소처럼 풀을 먹게 하겠는가?
<구국기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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