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ara' {kaw-raw'} 크아라, 크오-로, 고려, 코리아의 이름 속에 담긴 사명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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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qara' {kaw-raw'} 크아라, 크오-로, 고려, 코리아의 이름 속에 담긴 사명에 대한민국 만세가 있다. [잠언 31:6.毒酒(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根尋(근심)하는 자에게 줄지어다]
본문의 ‘Give’ 히브리구음으로 nathan {naw-than}나단 나우-단 노-단이다. to give, put, set인데 이 말고도 많은 의미를 담는다. Qal동사 의미로는 주는, 부여하고, 허용하고, 옹호하고, 고용하고, 헌신하고, 임금을 지불하고, 판매하고, 교환하고, 빌려주고 라는 의미도 있고 생산, 요구, 보고, 언급, 발언, 발달, 확장도 있다. Niphal 동사는 부여 받거나, 수여되거나, 제공되거나, 수여되거나, 부여되거나, 발행되거나, 발언되거나, 배정되거나, 만든 이고 Hophal 동사는 부여, 포기, 배달 할 등이다. 우리말 구음으로 놓다 가 있다.
노-단이 우리말 놓다 로 구음이 변형이 되어 자리 잡았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데, 노-단이라는 구음이 그리 변형이 되었을 것이라는 구음상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놓다. 라는 의미와 그 의미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곧 왕은 국민을 대할 때 술을 권장하지 말고 독주와 포도주를 죽게 된 자에게 포도주는 근심에 빠진 자들에게 마시도록 사회분위기를 세팅하라는 것이다. 물론 마취효과를 내는 것인데, 마음에 근심에 빠진 자들에게 일시적인 방법인데, 지나치게 마시는 것은 도리어 더 큰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에 비율을 다룸이다.
이는 하나님이 독주와 포도주를 선용하시는 비율을 따라 국민으로 독주와 포도주를 사용하도록 엄격하게 왕권을 사용하라는 의미이다. 독주도 포도주도 다 선용하면 좋은 것인데 그 선용을 할 줄 모르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통치를 받는 왕들은 하나님의 힘을 공급받는다. 하나님이 주시는 비율의 통제권 곧 하나님의 통제미학을 공유하게 된다. 그 힘으로 국민을 섬겨서 알-콜 중독자가 되지 않게 하면서 독주와 포도주를 알맞게 사용하게 한다. 디모데는 아마도 위장병에 시달린 모양인데 포도주를 사용하라 했다.
“디모데전서 4: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포도주를 조금씩 쓰면 특정한 병이 치료되든지 완화된다는 의미를 강조하심이다. 음식백과에 찾아보니 포도주에 카테킨 폴리페놀 함유 항산화 작용, 심장병 뇌질환 암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비위를 강조한 것을 보니 아마도 위장병이 아닌가 하는데, 포도주를 적절하게 약으로 사용하라고 하신다. 지금은 마취제나 마취기법이 뛰어나서 독주요법은 사용치 않으나 그전에는 극심한 아픔을 가져오는 암의 고통을 이기는 길에는 독주가 가장 손쉽게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죽어가는 자들에게 독주를 사용하여 남은 인생동안 고통을 덜어 주라는 의미이다. ‘strong drink’ 독주이다.
히브리구음으로 shekar {shay-kawr} 쉬에카르 쉬아이-카아르이다. strong drink, intoxicating drink, fermented or intoxicating liquor이다. 독주는 우리말 구음 쓰다와 세다 의 의미를 동시에 담는다. 써서와 세서 의미가 독주 속에 들어 있는데 칵테일을 해서 마셔야 좀 났다는 의미로 섞어라가 있다. 쉬에카르는 섞어라 서꺼라와 비슷한 구음이다. 독주는 섞어야 한다. 왜냐하면 쓰다 세다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가 함께 들어 있는 쉬에카르 구음이다. 독주를 마시게 하면 痲醉(마취)효과를 얻기 때문에 그만큼의 고통을 덜 수가 있다.
지독한 고통을 동반하는 癌(암)중에 또는 사고로 죽어가면서 고통을 잊게 한다. 세상의 곳곳에 독주문화가 널려 있다. 그들 나름대로 독주를 만든다. 그들만의 독특한 독주를 만들어 마신다. 건강한 일반인에게 독주는 百害無益(백해무익)이다. “잠언 20:1.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 “이사야 5:11.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독주를 따라가며 밤이 깊도록 머물러 포도주에 취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이사야 5:22.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빚기에 유력한 그들은 화 있을진저”
이 백해무익한 독주문화를 법으로 왕권으로 통제해야 하는데, 그것에 잡힌 국민이 많으면 많을수록 해를 당하게 된다. 그런 자들이 많은 나라는 화를 당하게 된다.
잠언 23: 29.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30.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31.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32. 이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 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며 33.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며 34. 너는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35.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이렇게 중독자들을 파괴시키는 독주가 그 나라를 덮친다면 이는 나라 패망이다. 성령은 그의 통제를 받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에게 금주하게 하신다. 물론 디모데처럼 병이 있는 자들에게 약간씩 약용으로 포도주를 사용하게 하신다. 지독하게 아픈 암이나 사고로 죽어가는 자들에겐 독주를 마시게 하신다. 그 나머지는 엄격하게 금해야 한다. 하지만 독주가 그 세상의 영광이 되는 세대이다. 그런 세대는 반드시 망하게 된다. 그 때문에 성령으로 금주하는 능력을 받아야 한다. 성령으로 통치하시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서 금주하는 세상을 열자.
“잠언 23:21. 술 취하고 탐식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어느 시대에나 술에 중독된 자들이 있다. 그들은 결코 가난하게 된다. “누가복음 15;17.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탕자는 술친구들로 더불어 虛浪放蕩(허랑방탕)하다가 결국 쪽박을 찬다. ‘wasted’=diaskorpizo {dee-as-kor-pid-zo}= to scatter abroad, disperse, to winnow ‘with riotous’=asotos {as-o-toce}= dissolutely, profligately이다.
“누가복음 15:11.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14.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虛浪放蕩(허랑방탕)에 술이 반드시 들어간다는 것은 상식이다. ‘허랑방탕하다(언행이 허황하고 착실하지 못하며 주색에 빠져 행실이 추저분하다)’의 어근. 허랑방탕스레 ‘부사’ 언행이 허황하고 착실하지 못하며 주색에 빠져 행실이 추저분한 데가 있게. 허랑방탕하다 ‘형용사’ 언행이 허황하고 착실하지 못하며 주색에 빠져 행실이 추저분하다. 유의어: 허랑방탕스럽다, 허탕하다 주색이란 곧 술과 여자란 의미인데 술에 절도록 흥청거리며 마신다는 의미이다. 그 때문에 술 취해 탐식하는 자들은 가난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머리가 술에 마비되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조물이다. 그분은 인간의 주인이시고 동시에 인간을 그의 피로 구속하신 구주이시다. 그 때문에 우리 인간은 그분의 종의 위치이다. “마태복음 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주인이 오시는 날을 대비하여 종의 입장에서 주인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심이다.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통치를 받으면 그는 하나님의 기준으로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된다. 그는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주는 종이 되어 주인이 오시면 복을 받게 된다. 주인의 소유를 총괄로 관리하는 자가 되게 하신다. 그가 성령으로만 행하였기 때문이다.
성령 통치를 거부한 자들은 주인의 시간을 알아보지 못한다. 주인과 교감을 나누지 못하고 다만 술친구들과 교감을 나눠 동무들을 때리고 술에 빠져 세월을 낭비한다. “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술 취한 종들은 결국 지옥으로 던져진다는 말이다.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은 지옥일 뿐이다.
성령 통치를 받는 것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다고 한다. 그분들은 결코 술에 잡히지 않는다. “로마서 13: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때문에 성령의 통치를 받자.
“고린도전서 5: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술에 취해 지내는 자들은 결코 친구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고린도전서 6:10.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 통치는 술 취하지 않게 하신다. 술 취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하시니 성령통치를 받자.
에베소서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unto him that is ready to perish’ 갑자기 비명횡사에 잡혀서 죽어가는 자들의 고통을 완화한다는 의미에서 갑자기 요절하는 자를 죽어가는 자란 의미 곧 히브리구음으로 abad {aw-bad}아바드 아우-바드 오-바드이다. perish, vanish, go astray, be destroyed이다. 우리말 구음에는 夭折(요절)이 있고 非命橫死(비명횡사)가 있다. 急煞(급살)도 있다. 급살은 고통을 모르게 갑자기 죽는 것이고 본문의 죽어가는 자란 고통 중에 죽어가는 자란 의미이다. 심각한 고통 중에서 죽어가는 자란 의미인데 우리말에 이 구음이 없다. 구음 소멸이 됨이다.
이런 의미들이 구음까지도 변형이 되어 우리 말 속에 남았다면 무엇이 있을까? 아등바등 ‘부사’ 무엇을 이루려고 애를 쓰거나 우겨대는 모양. 아등바등하다 ‘동사’ 무엇을 이루려고 애를 쓰거나 우겨대다. 고통을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의 아픔에서 아바다인데 거기서 아등바등이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더 살고자 하는 아등바등도 있지만 고통을 이기고자 하는 그 이를 갊의 의미 바드득이 있다. 부드득 이다. 바득바득 파드득파드득 빠드득빠드득 이 있다. 바득바득 ‘부사’ 악지를 부려 자꾸 우기거나 조르는 모양. 악착스럽게 애쓰는 모양.
‘북한어’ 예정된 기일이 안타깝게 다가오는 모양. 유의어: 빠득빠득이다. 이런 의미와 구음들이 다 아바드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아바드는 이런 구음들의 어원이라고 사료된다. ‘unto those that be of heavy’ 무거운 근심을 히브리구음으로 mar {mar} or (fem.) marah {maw-raw} 마르 또는 마라흐 마우-라우 모-로이다. ‘adj’ bitter, bitterness 이다. 우리말 구음으로 말도 마라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마라가 남아 있다. 쓴 마음을 표현할 때 사용되도록 마라는 말다이다. 말다=「…을」 어떤 일이나 행동을 하지 않거나 그만두다.
(‘-거나 말거나’, ‘-거니 말거니’, ‘-나 마나’, ‘-든지 말든지’, ‘-ㄹ(을)까 말까’ 따위와 같은 구성으로 쓰여) ‘아니 하다’의 뜻을 나타낸다. (‘말고’ 꼴로 명사의 단독형과 함께 쓰여) ‘아니고’의 뜻을 나타낸다. ‘보조동사’ (동사 뒤에서 ‘-지 말다’ 구성으로 쓰여) 앞말이 뜻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함을 나타내는 말. (동사 ‘-고(야) 말다’ 구성으로 쓰여) 앞말이 뜻하는 행동이 끝내 실현됨을 나타내는 말. 일을 이루어 낸 데 대하여 긍정적인 생각 또는 부정적이고 아쉬운 느낌이 있음을 나타낸다. 말다의 어원이 마라의 쓴 것에서 나온 것이라고 사료되는 내용이다.
‘hearts’ 마음의 히브리구음은 nephesh {neh-fesh}네페쉬 네흐-페쉬이다. soul, self, life, creature, person, appetite, mind, living being, desire, emotion, passion이다. 네페쉬도 우리말 구음에서 소멸이 된다. 마음이란 구음으로 정착이 되는데 그만한 곡절이 있었을 것이다. 혹시 변형된 구음이 없을까를 찾아보아야 한다. 네페쉬가 네부수로 변형이 되었다면 附隨 ‘명사’ 주된 것이나 기본적인 것에 붙어서 따름. 또는 그러한 것에 붙어 따르게 함. 의미가 있다. 마음은 주된 것인데 그 안에 나타나는 양상은 각기 다르다. 부수가 그런 의미일 것 같다.
네 속에서 일어나는 각기 양상이 곧 네 마음이다. 네는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고 부수로 변형이 되었을 것이라는 의미는 우리한민족은 연음을 좋아하는 민족성 때문일 것이다. 페쉬보다는 부수로 구음하기 좋아하는 성질 때문이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싶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필자의 생각임을 밝혀둔다. 각자의 네는 그대로 이어온 것 같다. 각자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양상이 다 다르다. 네페쉬에서 마음을 넓혀 라는 의미 넓혀가 나온 것 같기도 하다. 마음은 좁힐 수도 있고 무진장 넓힐 수도 있기 때문에 네페쉬에서 넓이다는 넓혀의 어원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창세기 10:32. 이들은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그 세계와 나라대로라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땅의 열국백성이 나뉘었더라” 와 “사도행전 17장 26.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의 말씀의 근거로 삼아 우리 한민족이 사용한 노아의 언어들을 정확하게 말해서 셈의 언어계열을 혈통언어로 삼는다고 확신한다. 우리말은 모두 다 셈의 언어다.
물론 곡절을 겪으면서 이런 구음 저런 구음들이 섞인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 상고조상들은 토를 달아서라도 구음을 또는 변형을 시켜서라도 그 음을 자손들에게 그대로 이어오게 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여 진다. 지금까지 필자가 찾아 매일 드러낸 것만 해도 상당한 양이다. 우리는 이제 언어고고학으로 들어가서 우리민족의 이동을 통해 한반도에 정착과 그 후에 그 언어를 이어오게 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연구해야 할 것이다. 노아는 셈의 하나님을 찬송한다고 하였다. 우리민족은 셈의 4대손 에벨의 자손이라 여겨진다. 그 둘째 아들 욕단의 9번째 아들
아비마엘이 실질적인 우리 조상이라 여겨진다.
창세기 9: 18.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19.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20.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 나무를 심었더니 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23.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26.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28.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년을 지내었고 29. 향년이 구백오십세에 죽었더라
노아가 술 때문에 함의 자손들을 저주하게 된다. 술이 문제다 술을 이기려면 성령의 충만을 입어야 하는데 노아도 인간인지라 성령 충만을 구하는데 약간 게으른 탓도 있었을 것인데 셈의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셈을 축복한 것이다. 우리는 셈의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셈의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분은 만유의 창조주이시다. 그 말씀이 인간으로 오셔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분의 성령통치를 받아 독주와 포도주를 선용하는 나라로 굳어져야 할 것이다. 만일 대한민국이 셈의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세운 나라이면 찬양을 해야 대한민국 만세이다.
이사야 24: 14. 무리가 소리를 높여 부를 것이며 여호와의 위엄을 인하여 바다에서부터 크게 외치리니 15. 그러므로 너희가 동방에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며 바다 모든 섬에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 16. 땅 끝에서부터 노래하는 소리가 우리에게 들리기를 의로우신 자에게 영광을 돌리세 하도다 그러나 나는 이르기를 나는 쇠잔하였고 나는 쇠잔하였으니 내게 화가 있도다 궤휼자가 궤휼을 행하도다 궤휼자가 심히 궤휼을 행하도다 하였도다
이사야 55:5.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창세기 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to call 크아라 크오-로는 창세기 4장 26절부터 시작이 된다.
qara {kaw-raw=구하라 ?勞 過勞을 포함한 구음} 히브리 구음으로 to call 부른다. 크아라인데 크오-로 로 구음할 수 있다. 고려 코리아이다. 실제로 언어학적으로 고려는 크아라 크오-로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이 부르신 나라를 高麗(고려)라고 한다. 코리아이다. 코리아는 벨렉의 아우 욕단의 자손이다. 벨렉의 혈통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다. 하나님이 그들을 영화롭게 하신 것이지만 그를 알아보고 달려오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것은 고려 곧 코리아 성령의 각성을 받는 코리아 국민들이다. 성령에 취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 곧 셈의 하나님을 찬송하는 나라가 되도록 하나님이 부르신 코리아다. 이씨 김씨 조선이 아니다. 자유통일 코리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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