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수도 있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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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층 건물인 노숙자 합숙소 안으로 들어섰다. 터미널 대합실처럼 노숙자들이 모여앉아 벽에 설치된 대형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나는 구석의 좁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층계참에는 라면 박스, 휴지등 각종 물품들이 어수선하게 놓여있었다. 2층은 식당이고 3층은 그들이 자는 잠자리였다. 합숙소는 지저분하고 퀴퀴한 냄새가 곳곳에 배어 있는 것 같았다. 어둠침침한 식당 구석에 젊은 봉사자가 앉아 있었다. 젊은 상담사는 냄새를 나보다 먼저 이겨내고 있었다. “오늘 상담한 내용 중 특이한 게 없었어요?” 내가 상담사에게 물었다. “특별한 게 있었습니다. 그건 여기 노숙자합숙소를 관리하는 분 얘기를 직접 들어보세요.” 잠시 후 노숙자 합숙소를 관리하는 오십대쯤의 유목사가 음료수 몇 병을 들고 왔다. 마른 몸매인 유 목사는 평생을 노숙자들과 함께 하겠다고 서원했다는 사람이었다. “노숙자 한분이 내게 당첨됐는지 알아봐 달라고 하면서 복권을 가지고 왔어요. 제가 인터넷으로 알아보고 깜짝 놀랐어요. 20억원을 받는 복권인데 두 번 세 번 확인해도 당첨이 확실한 거예요. 제가 알려줬죠. 은행에 가서 복권을 보여주고 당첨금을 받으라고 했어요. 제가 함께 가 줄까 순간 생각했지만 그만 뒀어요. 돈 욕심 때문에 따라 붙는 걸로 오해를 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노숙자가 갔다 오더니 은행직원이 하는 말이 당첨된 게 아니라고 하면서 돌아가라고 하더래요. 그건 아니죠. 노숙자 그 사람은 조금 모자라는 사람 같았어요. 그렇지만 제가 제 두 눈으로 복권을 보고 번호를 두 번 세 번 인터넷으로 확인했는데 착오가 있을 리가 없죠. 분명히 바꿔치기를 했던가 무슨 일이 있었던 게 틀림없습니다.” 합숙소 관리책임자인 유 목사는 분노하고 있었다. “그 노숙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내가 물었다. “지능이 좀 부족한 분인데 그래도 기본적인 지각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은행직원들이 바꿔치기를 해서 거액의 당첨금을 그들이 착복횡령 했다면 사회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킬 문제라는 생각이었다. 좀 더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 노숙자를 직접 만나 얘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내가 물었다. “역사 일대를 벗어나지 않는 분인데 내가 바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날씨가 차서 지금 아래층 휴게실에 와 있을 수도 있어요.” 잠시 후 유목사가 오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작달막하고 뚱뚱한 남자를 데리고 왔다. 커다란 눈동자가 초점 없는 유리알 같은 느낌이었다. “로또 복권을 산 적 있어요?” “샀슈” “어디서요?” “저기 지하철 역 옆에 있는 편의점에서 5천원 주고 샀슈.” “그 복권 여기 유목사님한테 당첨됐나 물어봤어요?” “그랬슈. 목사님이 은행에 가 보라고 했슈”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은행에 갔더니 거기 지키는 사람들이 나를 도둑놈 취급하고 내쫓았슈. 기분이 나뻤쥬. 화가 나서 복권도 찢어서 길바닥에 버리고 왔슈.” “그거 20억원 당첨금이 걸린 복권인데 그게 말이 되요?” “괜찮유. 다음에 또 당선되면 되유.” 그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이런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합숙소에서 준 팩에 든 우유와 음료수 한 병만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엄청난 돈이 쏟아져 들어와도 그걸 담지 못하는 운명도 있었다. 그에게 20억원이라는 관념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그가 복권을 왜 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살아갈 희망을 한번 사 본 것일까? 다른 사람들이 사니까 그냥 따라 사 본 것일까?그는 태평한 데 속이 타는 나는 아직도 물욕에 휩싸여 빠져나오지 못하는 속물이라는 자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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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