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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 무심한 하늘이여!
심판자 0 324 2006-06-02 09:19:52
나는 나의 미니 홈피지에 건사하고 있는 가슴을 쓸어내리는 이같은 글들을 보면서 피눈물을 삼키군 한다..
언제가 내친구가 부쉬대통령을 만난자리에서 이런말을 했다.
김정일은 정말로 용서받을수 없는 사탄이라고...
그렇다. 김정일은 인간이기 전에 야수이고 그 야수적 기질로 300만북한 주민을 굶겨죽인 정말로, 정말로 용서받을수 없는 사탄이다.
진정 이 땅에서 인권을 웨치며 자신을 인권투사랍시는 위선자들이여!
당신들이 이나라의 인권을 운운하기전에 야수에 의해 300만무고한 주민들이 무참히 학살된, 그리고 이순간에도 아무런 죄없이 무참히 죽어가는 북한주민들의 참상을 침묵하면서 자신들을 인권투사라고 어떻게 감히 코밑을 놀릴수 있단말인가?!
아래글은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조선의 이름없는 한 아버지의 울분이 담긴 글이다.

양심없는 이나라의 위선자들이여! 이글을 보고 솔직히 대답해 달라! 김정일을 인간이라 할수있는가를?...


...나는 아이들을 살려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이 생겼다. 종전에 죽기만을 기다리던 방식에서 죽는 날까지 아이들을 위하여 무슨 짓인들 다 해보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곰곰 누워서 생각하니 아파트 1층 집에 쥐이빨 강냉이 종자를 매달아 놓은 것을 보았던 기억이 났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아파트 골목을 누비다가 끝내 그 집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창문을 만져보니 다행이도 유리가 아닌 비닐방막 이었다. 허기에 지쳤던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지만 먹이를 구했다는 안도감으로 마음은 설랬다. 나는 준비해 가지고 갔던 칼로 비닐을 째고 옥수수 종자를 움켜쥐었다. 먹이를 눈앞에 둔 야수의 흥분으로 내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때의 쾌감을 나는 적절이 표현할 길이 없는 것이 유감이다. 간난신고 끝에 옥수수 종자를 떼 내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발걸음은 비칠거리기는 했어도 가벼웠다. 이것이 내 일생에 처음으로 내집은 도적생활이었다. 성공하고 보니 나도 꽤 노력하면 훔쳐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어디에 무었을 하며 손에 닿는 대로 가능성이 있는 대로 훔쳐내어 자신들을 먹여 살리는 도적무리의 한 일원이 되어 버렸다. 이날 밤 우리 집에서는 근간에 보기 드문 성대한 연회가 벌어졌다.

"눈물은 내려오고 밥술은 올라간다" 는 격언이 틀리지 않았다. 연달은 초상으로 푹 꺼져 들어갔던 생기가 옥수수 종자 다섯 이삭이 생기면서 집안에 화기가 돌았다. 죽은 건 죽은 것이고 산 놈은 살아야 한다는 삶의 요구가 우리들을 다시 제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들었다. 나는 옥수수 종자 한 이삭을 아이들에게 날것으로 먹도록 배려해 주었다.

음식이 익는 동안 아이들의 고통을 생각해서 그렇게 하였는데 두 딸애는 그 돌덩이 같은 옥수수 알을 맛있게 씹어 먹었다.
아이들은 아버지와 함께 살아남은 긍지로 오랫만에 웃고 떠들었다. 이때부터 우리 세 식구는 빌어도 먹고 훔쳐도 먹어 보고 땅에서 주워도 먹어보면서 신성천-고원, 원산-단천 등지로 방랑하면서 인간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며 인민이 어떻게 죽어가고 있는 가를 직접 목격하면서 파리 목숨 같은 인생을 유지 하였다.

이 길에 고원에서 맏딸이 숨을 거두었고 그 후 순천역의 쓰레기장에서 막내딸의 시체가 발견되어 나를 질식케 하였다. 막내딸은 마지막까지 나의 곁에 남아 아버지께 충직했던 나의 혁명동지였으며 이 세상에서 나를 고아로 만들어 버린 유일한 마지막 혈육 이었다.

(이미 아내와 아들은 아사로 94년도에 죽었음)그의 시체를 집에 가져가 헤쳐 보니 가슴속에는 깨끗한 비닐봉지에 정성들여 골라놓은 배 껍질과 배송치, 명태껍질 돼지 뼈 한 개가 들어 있었다. 아마도 나를 만나면 함께 먹으려고 그렇게 먹고 싶은 것도 참고 건사했을 딸애를 생각하며 나는 울고 또 울었다. 나는 양지바른 산기슭에 딸애를 안장하고 그 비닐봉지를 입가에 얹어 주었다.

그때 막내딸 나이가 12살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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