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7월달 해주시 영광동 광장에 있는 김일성동상에 김일성타도 배고파 못살겠다 쌀을 달라 등
반동적 삐라가 아침4시부터 5시사이에 안개가 자욱한 틈을 타서 뿌려진 사건인데 삐라에 적힌 잉크도 북한의 9개 도시군에서 나오는 다양한 잉크로서
수사를 하기 아주 힘든 방법으로 교묘하게 일으킨 사건으로 1984년까지도 색출하지못해서 해주시 보위부장이 면책이되었고 국가보위부가 와서 수사를 했지만
아직까지 미결인것으로 판명이 나있는 사건입니다
민주화운동은 아니고 아마 이 삐라사건일것입니다
해주시당책임비서사건은 1976년9월에 김일성이 해주시 시찰을 나가다가 해주시가 내려다보이는 고개길에서
갑자기 차를 세우더니 해주시를 내려다보고 그자리에서 분을 일으키며 돌아서 평양으로 올라간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후 김일성의 졸개들이 왜 그런가 하고 그 고개길에서 무려 13일간이나 해주시를 내려다보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려고 혈안이 되였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하다가 13일이나 지나서 철수하던차에 발견하것이 해주백화점옥상이 태극기모양으로 그려져 있는것을 발견하고 건축물의 설계자를 찾으려고 하였지만 이미
그는 교통사고로 사망하여 그 책임이 책임비서에게 돌려져 그 책임비서가 간첩과 연관되였다고 경성군에 있는 감모봉 정치범수용소에 가족모두가 수용된사건입니다
반동적 삐라가 아침4시부터 5시사이에 안개가 자욱한 틈을 타서 뿌려진 사건인데 삐라에 적힌 잉크도 북한의 9개 도시군에서 나오는 다양한 잉크로서
수사를 하기 아주 힘든 방법으로 교묘하게 일으킨 사건으로 1984년까지도 색출하지못해서 해주시 보위부장이 면책이되었고 국가보위부가 와서 수사를 했지만
아직까지 미결인것으로 판명이 나있는 사건입니다
민주화운동은 아니고 아마 이 삐라사건일것입니다
갑자기 차를 세우더니 해주시를 내려다보고 그자리에서 분을 일으키며 돌아서 평양으로 올라간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후 김일성의 졸개들이 왜 그런가 하고 그 고개길에서 무려 13일간이나 해주시를 내려다보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려고 혈안이 되였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하다가 13일이나 지나서 철수하던차에 발견하것이 해주백화점옥상이 태극기모양으로 그려져 있는것을 발견하고 건축물의 설계자를 찾으려고 하였지만 이미
그는 교통사고로 사망하여 그 책임이 책임비서에게 돌려져 그 책임비서가 간첩과 연관되였다고 경성군에 있는 감모봉 정치범수용소에 가족모두가 수용된사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