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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예수에 대한 증언..
Korea, Republic of 돌통 0 361 2019-07-06 00:17:01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37-100)의 예수에 대한 증언

 

비기독교인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의 책 {유대인 고대사}(Antiquities, 1833)에서 예수의 역사성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이 시대에 예수라고 불리는 현인이 있었다. 그의 행실은 선하였고, 그의 학식은 뛰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유대인들과 다른 나라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제자가 되었다. 빌라도는 그를 정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의 제자가 되었던 자들은 그의 제자 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지 삼일만에 그들에게 나타났고, 그가 살아났다고 보도하였다. 따라서 그는 아마도 선지자들이 놀라움으로 자세하게 말했던 메시아였을 것이다. 그리고 소위 그의 이름을 따서 그리스도인으로 불렸던 그리스도인들 족속은 오늘날까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At this time there was a wise man who was called Jesus. And his conduct was good and his learning outstanding. And many people from among the Jews and the other nations became his disciples. Pilate condemned him to be crucified and to die. And those who had become his disciples did not abandon their discipleship. They reported that he had appeared to them three days after the crucifixion and that he was alive; accordingly, he was perhaps the Messiah, concerning whom the prophets have recounted wonders. And the tribe of the Christians, so called after him, has still to this day not disappeared. --translation of Shlomo Pines.

 

또 요세푸스는{유대인 고대사}(Antiquities, 2091)에서 야고보의 형제 예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을 남겼다.

 

 

"그와 같은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아나누스는 베스도가 죽었고, 알비나스가 아직도 오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호기를 맞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산헤드린의 판관들을 소집하였고, 그들 앞에 그리스도라 불리는 자인 예수의 형제 야고보와 어떤 다른 자들을 불러내어 율법을 범한 자들로 고소하고, 그들에게 돌로 치는 형벌을 받게 하였다."

 

 

. . . . Possessed of such a character, Ananus thought that he had a favourable opportunity because Festus was dead and Albinas was still on the way. And so he convened the judges of the Sanhedrin, and brought before them the brother of Jesus, the one called Christ, whose name was James, and certain others, and accusing them of having transgressed the law delivered them up to be stoned. . . .

--trans. Louis Feldman.

 

 

요세푸스(37-100) 그는 누구인가?

 

 

요세푸스는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진지 7년만인 37년에 태어났다. 외가 쪽으로 하스몬가의 혈통을 타고 태어났고, 히브리어 이름은 요셉 벤 마티티야후였다. 요세푸스는 제사장과 율법학자들조차 그를 찾아와 도움을 구할 정도로 율법에 능통했다. 26세에 유대인 대표단의 일원으로 로마에 건너갈만큼 헬라어 실력도 뛰어났다.

 

 

66년 열심당원들이 로마에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키자 그는 갈릴리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전투 중 그는 갈릴리의 요타파타에서 로마군에 포위되었다. 그와 함께 동굴에 숨어있던 동료들은 로마인의 포로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자결을 결심하였다. 이때 유대인들은 요세푸스의 제안으로 먼저 제비에 뽑힌 사람이 다음에 뽑힌 사람에게 살해당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이 제비뽑기에서 요세푸스는 최후까지 살아남은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요세푸스는 남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여 로마군에 투항하였다.

 

 

로마군에 투항한 요세푸스는 로마군 사령관 베스파시아누스에게 그가 머지않아 로마제국의 황제가 될 것임을 예언하였고, 실제로 베스파시아누스는 68년 네로의 자살이후 부하들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었고, 유대인과의 전쟁은 그의 아들 티투스에 의해서 70년에 마무리되었다. 요세푸스는 이들 부자를 도와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한 공을 인정받아 로마로 건너가 플라비우스라는 황제가문의 이름까지 얻고 황제의 보호아래 남은 여생을 보냈다.

 

 

요세푸스는 전쟁이 끝난 뒤 75년경에 {유대인 전쟁사}를 기록하여 후세에 남겼다. 그리고 20년 후에는 유대인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는 로마인들을 위해 인간의 창조부터 네로 황제 때까지의 역사인 {유대인 고대사}를 저술하였다. 그 외에도 요세푸스는 {자서전}{아피온 반박문}을 남겼다.

 

 

요세푸스는 이스라엘이 멸망하던 1세기 당시 이스라엘의 유일한 역사가였기 때문에 구약성경이후 이스라엘의 역사는 요세푸스의 기록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요세푸스는 이런 업적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유대인으로부터는 배신자라는 모욕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요세푸스의 저작은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의 손에 의해 보존되어 왔다.

 

[Reference] : davidkim,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예수에 대한 증언 - 베스트 - 갓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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