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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god. 예수님 말씀들..10편.
Korea, Republic of 돌통 0 309 2020-07-03 15:23:20

91.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당신을 믿고자 하오니, 당신이 과연 누구인지를 우리에게 말하여 주소서. "

그께서 그들에게 가라사대,   "너희는 하늘과 땅의 표정을 읽을 줄 알면서 너희 앞에 서있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는도다. 그러니까 너희는 바로 이 순간을 읽을 줄을 알지 못하는도다."


해석 - 91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반들이 언급한 "믿음"이란 것은 어떤 것을 의미했을 것인가 그리고 91절의 마지막 줄에 나오는 "바로 이 순간을 읽을 줄을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했는가라고 했던 예수의 마음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당시 도반들은 이미 유대교의 율법, 즉 현재 성경의 구약 부분에 익숙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91절의 도반들이 말한 "믿음"이라는 것은 민수기, 시편과 구약에 등장하는 "믿음" 이를테면 "영구적인 피난처" 또는 "구세주"와 같은 의미였을 것이라 여겨진다.

구약의 "믿음"에는 현실적으로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영구적이고 확신적인 구원자로서의 신뢰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해야 두 번째와 마지막 줄에서 예수가 가슴을 쥐어뜯듯 답답해하는 듯한 표현을 왜 저렇게 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91절의 예수는 (눈 앞에 없는) 하늘과 땅의 이치는 알아보면서도 바로 눈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예수 자신에게서 듣고 깨달으려 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믿음을 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도반들을 꾸짖고 있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91절의 예수는 자신은 메시아가 아님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즉, 자신에게서 믿음을 보려 하지 말 것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91절에서 예수가 도반들에게 하고자 한 말씀의 의미는,

예수 자신은 도반들에게 믿음을 주는 메시아가 아니었으며, 눈 앞에 있는 자신이 하는 말을 도반들 각자가 영혼의 귀로 듣기를 바라는 것이었고, 바로 그 순간에 스스로 (내면의 빛, 생명의 빛, 나라, 천국에 대하여) 진정한 깨달음을 얻기를 바란 것이라 할 수 있다.

91절은 예수를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바울이 예수가 죽고 나서 만들었다는 기독교가 지난 2천 년 동안 예수를 메시아, 믿음의 상징으로 신격화해 왔던 것이 얼마나 허구적인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구절이다.


 

92.예수께서 가라사대,   "찾으라! 그러면 너희는 발견할 것이다.

허나 지난 시절에는, 너희가 나에게 구하는 것들에 관하여 나는 너희에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바로 그것들을 말하려하나 너희가 그것들을 찾고 있지 않구나!"


 

해석 - 92절은 91절에서 강조했던 것을 또다시 다른 표현으로 강조하고 있는 구절이다.

92절은 진리, 생명, 빛, 구원과 같은 믿음은 누군가 주는 것이 아닌 평생에 걸친 끊임없는 탐구와 고통의 결과 스스로 깨우치고 알게 되는 대상임을 분명히 선언하고 있는 구절이다.

오늘날 성서는 예수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수많은 복음서 기자들에 의하여 수백, 수천 번의 수정을 하면서 애초의 의미와는 매우 다르게 변절된 상태다.

92절과 유사하지만 매우 다른 형태로 변질된 마태복음 7장 7절 :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92절은 4 복음서가 역사적 인간 예수의 말씀을 얼마나 모욕적으로 변절시켰는가를 매우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구절이다.

교회는 마태복음 7장 7절과 같은 구절을 성도들의 충성과 헌금유도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

매우 끔찍하고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92절은 사지로 기어 기껏 살아야 100년도 살지 못할 신세이면서 성서와 교회의 꼬임에 빠져 2,000년 동안 아무도 받은 적 없는, 본 적이 없는 것을 구하겠다고 일 평생을 천국의 달콤함과 같은 시간과 재물을 교회에 갖다 바치는 것이 얼마나 허황되고 어리석은 짓인가를 깨닫게 하는 구절이다.


 

93. "(예수께서 가라사대,)   " 거룩한 것들을 개들에게 주지말라. 그들이 그것들을 똥거름 더미에 던지지 않도록 하라. 2 진주들을 돼지들에게 주지 말라. 그들이 그것들을 진창 속에 밟지 않도록 하라."


 

해석 - 93절의 예수는 "자신에게서 들은 것을 아무에게나 전해서는 안 되며, 진리의 가치를 알아보는 이들에게만 전해줄 것을 강조하고 있다."

93절은 교회의 막무가내식 전도행위가 역사적 인간 예수의 말씀과 얼마나 괴리가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구절이라 할 수 있다.


 

94. 예수께서 가라사대,   "찾는 자는 발견할 것이다. 두드리는 자에게는 열릴 것이다."


 

해석 - 92절의 말씀과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다.

92절은 진리에 대한 믿음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찾고자 하는 평생에 걸친 끊임없는 탐구와 그 고통의 결과로 스스로 발견해야 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구절이다.

오늘날의 교회들은 마치 예배에 대한 출석과 헌금을 해야 믿음이 있는 것이며, 영생을 얻고, 복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으나 이와 같은 것이 역사적 인간의 말씀에 견주어 볼 때에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가를 잘 알 수 있는 구절이다.


 

95.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돈을 가지고 있다면, 이자 받을 생각하고 빌려주지 말라. 차라리, 그 돈을 너희가 다시 돌려받을 수 없는 사람에게 주어버려라."


해석 - 95절은 예수가 어떤 마음으로 도반들에게 자신의 철학과 사상을 가르쳤는가 하는 것이 잘 드러난 구절이다.

예수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베풀 때에는 무언가 기대하지 말고 베풀 것은 말씀하고 있다.

95절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다.

죽음 후에 하늘에서 받게 될 영생의 면류관을 위하여 교회에 헌신하고, 매주 헌금을 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목사들의 설교가 얼마나 위선적인가 하는 것이다.


 

96. 예수께서 가라사대,   " 아버지의 나라는 한 여인과도 같도다.

그 여인은 아주 소량의 효모를 가져다가 밀가루 반죽 속에 숨기어, 그것을 많은 수의 빵으로 부풀리었도다.

귀가 있는 자는 누구든지 들어라!"

 

해석 - 96절은 예수는 자신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도반들이 자신의 이야기(천국운동)를 어떻게 전파했으면 하는지에 관하여 우회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구절이다.

96절을 통하여 도반들이 자신에게서 들은 것을 요란스럽게 전파하고 다니는 것을 예수가 탐탁지 않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예수는 단지 많은 숫자의 제자들 보다 차라리 역할을 충실히 하는 제대로 된 한 사람의 제자를 더 중요시했던 모양이다.

밀가루를 많은 수의 빵으로 부풀리게 하는 능력을 가진 효모.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효모는 요란스럽게 자신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은근하고 지속적으로 꽤나 열심히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할 뿐이다.

96절은 예수는 위와 같은 효모의 역할처럼 비록 소수의 제자들일지라도 그들이 소리없이 계속해서 천국운동을 세상에 펼쳐주기를 바랐던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96절과 유사한 케이스를 107절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97.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의 나라는 밀가루를 가득 채운 동이를 이고 가는 한 여인과도 같다.

그녀가 먼 길을 걸어가는 동안, 이고 가는 동이의 손잡이가 깨져서, 밀가루가 새어 나와 그녀가 가는 길가에 흩날려 뿌려졌다.

그러나 그녀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녀는 문제를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그 여인이 집에 당도했을 때, 그녀는 그 동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것이 비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해석 - 97절은 예수가 계속해서 강조했던 큰 부와 권력에 대한 세속적인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워 져야 진정한 빛의 가치를 알게 되며, 주변과 내면에 이미 존재하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천국을 발견하게 된다는 천국운동의 의미를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구절이라 할 수 있다.

63절에서 예수가 하시고자 한 말씀과 맥이 닿아 있는 구절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97절에서의 '나라'는 살아 있는 삶 속에서의 천국을 의미하는 것이지, 기독교가 흔히 교세 확장이나 교인관리에 이용해 왔던 죽어서나 만나게 되는 천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충실한 신앙생활과 열심히 납부하는 십일조만이 하늘나라에 복을 쌓는 것이라고 하는 목사들의 괘변과는 매우 다른 개념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98.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의 나라는 엄청난 강자를 죽이려고 노력하는 사람과도 같다.

집에 있을 때 그는 그의 칼을 뽑아, 자신의 팔이 그것을 감당해낼 수 있을까를 시험하기 위하여, 벽 속으로 세차게 찔러넣었다. 그러자 그는 그 강자를 죽이고 말았다."

 

해석 - 98절에서 예수는 천국이라는 것이 늘 우리 곁에 혹은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음에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있으나, 그렇다고하여 그것이 노력 없이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전하고 있다.

도마복음 전체를 통하여 예수가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시피 천국의 발견은 평생에 걸친 끊임없는 탐구와 큰 부와 권세에 대한 세속적인 탐욕을 절제하여야 가능하게 된다.

천국을 알아보게 된다는 것이 매우 쉽지 않은 일이라는 의미다..

약자가 엄청난 강자를 죽이기 위하여 오랜 기간 뼈를 깎는 고통을 이겨내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이런 의미는 7절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99. 따르는 자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당신의 형제들과 모친이 밖에 서있나이다."

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나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여기 있는 이 사람들이야말로 나의 형제들이요 나의 모친이니라. 이들이야말로 나의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갈 사람들이니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가 원하는 것을 행하는 이들이 나의 형제이며 나의 어머니이다. 그들이 내 아버지의 왕국에 들어갈 자들이다."

 

해석 - 99절에서 예수가 말하고 있는 가족은 혈족의 개념이 아니다.


55절에서 예수는 "가족을 미워하지 않는 자",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는 자" 자신에게 합당하지 않다고 하고 있다. 이 말씀은 내면에 존재하는 생명의 빛(천국) 알아보기 위한 끊임없는 탐구를 예수와 함께 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스스로 감당해야 것들을 능히 감당할 수 있어야 그 자격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55절에서의 예수 말씀과 연계시켜 보면 99절은 예수에게 가족은 혈족으로써의 가족이 아닌 내면에 존재하는 천국(빛, 생명)을 알아보기 위한 끊임없는 탐구를 같이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천국을 함께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을 가족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00. 그들이 예수에게 한 개의 금화를 보이며, 그에게 말하였다: "카이사의 사람들이 우리에게 세금을 요구하나이다."

그께서 그들에게 가라사대, " 카이사의 것들은 카이사에게 주어라. 하나님의 것들은 하나님에게 주어라. 그리고 나의 것은 나에게 주어라."

 

해석 - 72절과 함께 보면 100절에서 예수 말씀의 의미를 헤아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72절에서 예수 자신은 재산이나 물건의 소유관계를 정해 주는 역할을 하지 않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72절과 같은 생각을 가진 예수에게 사람들이 '카이사의 세금 징수'에 대하여 어찌 생각하는지를 묻자, 그 질문에 대한 예수의 우회적인 답변을 기록한 것이 100절이다.

100절은 겉으로 드러난 대화 자체보다는 문맥 속에 감춰진 부분을 드려다 볼 필요가 있다.

 

나는 다음 부분을 직설적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의 것은 나에게 주어라"]

이 부분에서 우리는 "나"라는 대상이 누구를 가리키는가에 대하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나'라는 대상을 예수 자신이라고 해석할 수는 있겠으나 이것은 매우 엄청난 해석의 오류일 수도 있다.

예수가 사용한 "나"라는 것은 질문한 바로 그 사람을 의미한다고 해석해야 문맥이 자연스럽게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더 설명하면,

예수는 살아 있을 당시 종교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던 역사적 인간이었다.

11절, 38, 63절에서도 나타나듯이 '죽음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죽는 순간 다시는 살아 있는 자신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라고 하며 당시 예수는 부활을 강하게 부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100절의 맨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가 사용한 "나"라는 것이 가리키는 대상이 예수 자신이었다고 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에 대하여 매우 심각하게 고민해야할 것이다.

만약에 예수가 사람들이 가진 것 중 일부는 자신의 것이므로 예수 자신에게 달라고 했다?

왜?...

자신은 앞으로 수천 년 동안 죽지 않고, 영생을 누릴 신적인 존재이니까?

그래서 기독교는커녕 복음서가 세상에 나오기 도 전에, 종교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던 예수가 이런 이율배반적 말씀을 했다?

도마복음 전체를 통하여 한결 같이 보여지고 있는 예수의 말씀과 행적들을 통해 판단할 때 예수가 그랬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추론이라 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은 의미라고 해석해야 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

"너 자신의 것은 너 자신이 가져라"

 

이렇듯 구약을 부정하고, 유대교의 천국을 부정했던 예수가 사람들에게 "어떤 것은 너희 것이고, 어떤 것은 카이사의 것이고, 어떤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미의 말씀을 하였을 리가 없다.

 

두 번째 줄, 예수의 답변 부분을 해석함에 있어, 앞 부분에 "너희들이 구분할 수 있다면"이라는 문구를 넣어서 해석해야 예수가 어떤 것을 전하고자 하는 것을 헤아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예수의 답변 부분은 예수를 시험하기 위하여 질문을 하는 이들을 예수가 일견으로는 훈계하는 것일 수 있고, 일견으로는 비꼬는 것으로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상..      11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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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통 ip1 2020-07-10 18:01:59
    돌통이 아스피린을 인간쓰레기 혹은 바퀴벌레색퀴라 부르는 것은 아스피린이가 대한민국과 북한에 특대형 재앙을 가져다주고 어마어마한 특대형 경력위조, 현대사 위조를 자행한 김일성과 그의 자손들을 칭송하고 빨아대면서 그놈들의 범죄에찬 역사와 경력들을 슬쩍 슬쩍 은근히 선전선동, 찬양하고 있기때문이다.
    오늘 지금 이시각도 아스피린의 고향이 있는 북한에서는 그의 친척들과 추억을 함께 쌓은 소싯적친구에서 학창의 친구들, 힘들었지만 활기에찼던 북조선 남파 간첩대 동무들의 우정을 쌓았던 동무들 그리고 한동네에서 같은 삶의 터전에서 스쳐간 수많은 인연들.. 흠모하여 칭송하고 빨아대는 위대한 김일성이와 그 자손들에 의하여 현대문명을 향유하지 못하고 있으며 인간의 초보적 권리인 하루 한끼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며,
    김일성 일가의 사리사욕과 이기심으로 말미아마 핵전쟁의 위협속에 늘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상황이다.
    이러한 인간쓰레기들을 빨아대는 아스피리의 행위는 기본적인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비참한 북한사람들의 삶에 보다 더 큰 고통을 가증시키는 행위이며
    그러지 않아도 김정은의 핵위협속에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삶에 더큰 고통을 가증시킨다
    이 쓰레기색퀴는 이런 김씨 인간백정들을 항일영웅이라 은근히 추앙한다
    이 쓰레기 새퀴는 탈북자들이 이런 쓰레기같은 김씨일가들보다 못하다고 지꺼렸다. 자기도 탈북한 고정 간첩이면서..
    그리고 이 쓰레기 색퀴는 아스피린 지 가 직접 공개하겠다고 하더니 이제와서 이 창에다 주민번호를 올리지 못하겠다고 우긴다. 그럼 나는 뭐가되나?
    하긴 중국을 통해서 온 남파 간첩이 공개하는건 꺼리겠지..
    하여튼 이러한 연고로 나,돌통은 아스피린이를 인간쓰레기, 바퀴벌레색퀴라고 부른다

    아스피린색퀴야 이중에 네놈이 한짓이 아닌것이 있으면 당당하게 말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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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통 ip1 2020-07-10 18:02:48
    아스피린이는 북에서 지령받고 중국으로 와서 강간,절도,협박등, 범죄자이며 중국에서 남한으로 위장탈북해서 첩질하고 절도죄로도 조사받고 전과자이며
    이 놈은 민족반역자이며 김부자3명을 합한것보다 더 인간 쓰레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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