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독립운동 역사..(독립운동사를 보는 관점..). 02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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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편..
*** 독립운동사를 보는 관점.
01편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1980년대 중반까지 남한에서의 독립운동사 연구는 주로 민족주의 계열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특히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국내의 실력양성운동을 강조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여기에서 검토하지 않았지만, 북한에서는 사회주의 운동, 특히 김일성계열의 항일무장투쟁사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사를 정리하였다. 즉 남북한 정부는 모두 동서 냉전과 남북 대결의 상황 하에서 독립운동사를 각각의 정권의 정통성을 뒷받침하는 데 이용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남한에서는 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국내의 실력양성운동 외의 나머지 계열은 대부분 연구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민족주의운동은 물론이고 김일성 계열이 아닌 공산주의 운동은 철저히 연구에서 배제되었다. 1980년대 중반 민주화운동이 진행되면서 남한에서는 일제하의 사회주의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을 독립운동사의 한 부분으로 보고 이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물론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은 사회운동으로서의 고유한 성격을 가지지만, 일제 치하라는 상황으로 인하여 사회주의자들이 이에 개입하여 조선공산당의 조직 기반으로 삼고자 하였고, 조선공산당은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제1의 목표로 삼고 있었다. 때문에 연구자들은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을 독립운동의 한 부분으로 간주하였던 것이다. 1980년대 이후 국내외의 독립운동사 연구에서는 독립운동의 주류를 어디에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와 관련하여 크게 세 가지 조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민족주의 세력 중심론이며, 둘째는 민족통일전선 세력 중심론이며, 셋째는 사회주의 세력 중심론이다. 첫째의 민족주의 세력 중심론은 그 내부에서 이동녕-김구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중심론, 미주의 이승만 세력 중심론, 그리고 국내의 실력양성운동 세력 중심론 등으로 다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둘째의 민족통일전선운동 중심론은 신간회, 민족유일당 운동, 임정의 좌우 세력 포괄, 여운형의 건국동맹 조직 등을 강조하는 것인데, 이에는 다시 안재홍과 같은 중도우파 세력을 중심으로 보는 견해와 여운형과 같은 중도좌파 세력을 중심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셋째의 사회주의운동 중심론은 국내의 조선공산당 세력을 중심으로 보는 견해와, 김일성을 중심으로 하는 만주의 항일무장투쟁 세력을 중심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독립운동의 한 특정 세력을 주류로 설정하는 것은 다른 세력을 비주류로 설정하거나 아예 배제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특정 세력을 주류 내지 정통으로 설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된다. 독립운동의 진행과정에서는 운동의 방법(노선), 이념 등을 둘러싸고 다양한 견해가 있었다. 운동의 방법을 둘러싸고 만세운동, 무장투쟁, 의열투쟁, 외교운동, 노농운동, 실력양성운동 등 다양한 노선이 등장하였다. 이와 같은 노선은 운동가들이 어디에 있었는가 하는 문제와도 관련이 있었으며, 따라서 노선 갈등은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또 이념을 둘러싸고는 복벽주의, 민족주의(부르주아 자유주의), 사회주의(주로 공산주의), 아나키즘 등 다양한 이념이 등장하였다. 이 가운데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갈등이 가장 중심적인 축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해방 이후 자본주의의 민주공화국을 세울 것인가, 사회주의의 인민공화국을 세울 것인가의 문제와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념 상의 분화와 갈등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또 독립운동가들은 국내, 만주, 연해주, 중국 관내, 미주 등 여러 지역에 흩어져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곳에서 각자 나름대로 치열하게 싸웠고, 그리고 큰 희생을 치르기도 하였다. 따라서 그들의 활동은 모두 그 나름대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다만 그런 가운에서도 서로 분열과 반목이 아닌 연대와 통합을 위해 노력한 이들의 노선은 더욱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즉 신간회, 민족유일당 운동, 임정의 좌우합작 등을 위해 노력한 이들의 노선은 더욱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이상.. 0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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