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의 아버지 ~~~ 김형직[ 金亨稷 ]... 출생 - 사망: 1894년 7월10일~1926년 6월5일 출신지: 평안남도 대동
김형직은 1894년 7월 10일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나서 1908년 강반석과 결혼했으며, 1911년에서 13년까지 미국선교회가 운영하는 평양숭실학교에 재학했다. 그는 1913년에는 모교인 순화학교에서, 1916년에는 기독교 계열의 명신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했다. 순화학교 출신 조만식은 그의 선배 였다고 한다. 1917년 3월 강동군에서 항일독립운동 단체인 조선국민회에 가입했는데, 조선국민회는 평양 숭실학교 재학생 및 졸업생 중심으로 결성된 비밀결사단체로 기독교계통의 애국계몽운동 전통에서 벗어나 무력항쟁 노선으로 전환한 민족운동단체였다. 1917년 3월 23일 장일환(張日煥, 1886 ~ 1918.04.09) 등이 평양에서 「조선국민 회(朝鮮國民會)」를 조직했는데, 회원명단에 김형직(金亨稷)의 이름이 들어 있다.
증거 자료 로는: (1919년 03월 26일) p.60 : 한국사데이터베이스(국사편찬위원회) , 秘密結社發見處分ノ件(平安南道警務部長報告要旨) 今回在外不平鮮人ト通謀シ國權恢復ヲ企劃セル「朝鮮國民會」ナル秘密結社ヲ發見シ關係者ヲ檢擧シ刑事訴追ニ附シタリ其ノ顚末左ノ如シ 一. 會員氏名 本籍 平安南道平壤府黃金町 / 住所 同櫻町 / 會長張日煥 當三十二年 .... 本籍 平安南道大同郡古平面南里 / 住所 平安南道江東郡古邑面東三里 / 書堂敎師金亨稷 當三十四年 :(1919년 03월 26일) p.61 : 한국사데이터베이스(국사편찬위원회)
윗글 번역 : (1919년 03월 26일) p.60 : 한스(국사위) , 비밀결사발견처분건(평남 경무부장 보고요지) 국외에서 활동한 선량한 사람들이 국가 권익을 회복할 계획으로 "조선선국민회" 비밀결사에서 의견을 표명하고 검사를 진행해.거암형사가 추적하여 부기전말좌측을 여루라 하였다. 하나. 회원 이름 본적은 평남 평양부 황금정 / 숙소 동교라정 / 장일환 당 32년 .... 본적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남리 / 주거평안남도 강동군 고읍면 동3리 / 서당교사 김형직당34년
: 강덕상 편 (현대사 자료) 25 조선 1 (みすず書房, 1967) 연합뉴스: 2005년 3월 23일, 김형직 독립운동 사료 독립기념관에 소장 연합뉴스:1998년 3월 25일, 金日成의 父 金亨稷 조선국민회활동 사실로 확인됨.됨.
항일 운동을 하던중 1918년 2월 18일 간도에 독립운동기지를 모의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장일환, 배민수, 강석봉 등과 평양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증거로는 (2005년 3월 23일, 김형직 독립운동 사료 독립기념관에 소장) 1918년 출옥한 뒤 중강진으로 피신하여 1919년 지역 3ㆍ1만세운동을 주도했다고 하며,(연관은 있고.. 참가 했는지 주도 했는지는 연구중) 경찰의 검거를 피해 5월에 압록강 건너 대안(對岸) 임강현(臨江縣)으로 이주하였다.
김형직 일가가 이주한 임강은 임강현(臨江縣)의 현소재지(縣所在地)였는데 모아산(帽兒山)이라고도 불렀다. 그들이 정착한 곳은 현공서(縣公署)에서 압록강변 쪽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있었던 정미소 옆에 있는 집이었다고 한다.
김형직은 여기에 순천의원이란 간판을 걸고 방안에는 가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졸업증을 걸었다.근거로는 (새전기 "세기와 더불어") 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 자서전 연구:20} 1992.12.10 (목) -서울신문...
당시 만주는 무질서한 때라 무면허 의사에 대한 단속도 없었던 것 같다. 김형직이 아편 밀매에 관여하여 큰 돈을 벌게 되었다는 주장이 많다. (이거 또한 정밀히 분석과 연구가 필요하다) 이후 생계를 위하여 순천의원을 차려서 한약사로 일을 했는데, 김일성은 자서전 "세기와 더불어"에서, 당시 아버지가 가짜 졸업증을 걸어놓은 돌팔이였다고 회고하고 있다. 1920년 3월에 손위 처남이자 백산무사단(白山武士團) 단원인 강진석(康晋錫)이 임강현 모아산(臨江縣 帽兒山)에 거주하는 매부 김형직의 집에 잠시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다.근거로는 : (1921년 05월12일) 조선소요사건관계 서류 > 大正8年乃至同10年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 共7冊 其3 : 康晋錫(變名 金在龍, 韓成龍, 白山武士團 第二部 外務員), 大正 9년 (1920) 음력 2월.....임강현 모아산(臨江縣 帽兒山)의 매부 金亨穆(金亨稷의 오류)의 집에 잠시 체류하다 같은 해 음력 4월 2일 임강현 천금동에서 목재 벌채 종사...
기록에는 없지만 김형직도 백산무사단(白山武士團) 단원이었다는 증언이 있다.증거로는:<조선전사> (16~22권) 1.김형직 國史館論叢 第4輯 (국사편찬위원회, 1989-10-09)..
1921년 여름에 김형직은 임강 동쪽에 있는 장백현(長白縣) 팔도구(八道溝)로 다시 이주하게 되는데, 임강에 있을 때와 같이 광제의원이란 간판으로 한방의를 했다. 관련자료로는 서울신문 10월27일 4면..
일제가 장백현에 사는 조선인 유력자로 김형직의 신상을 적어 놓은 문건이 있다.증거로는 : 1925년 5월 5일 일본 외무성(日本 外務省) 간도 총영사. 당시 김형직의 신상자료. 아래..
위이 표에 1925-05-05 일자: 일본 외무성(日本 外務省) 간도 총영사(間島總領事) 기록 : 김형직(金亨稷)이 장백현 8도구에 거주하며 재산이 1,000원이라함. 1919년 3.1운동의 주모자였으며, 체포를 피해 그해 5월에 강건너 대안(對岸)으로 달아났다고 함
당시 김형직은 재산이 1,000원으로 상당한 부자이며, 더 이상 독립운동은 하지 않고 의업에 종사한다고 하였다. 1925년 3월에는 다시 무송현(撫松縣)으로 이주하여 무림의원을 차렸다.
김형직은 1926년 6월5일에 사망했는데,사망이유는 일경을 피해다니느라 두 차례 동상에 걸린 후유증으로 사망. 또 한가지 설은 김형직이 공산주의를 싫어했는데 공산주의자들에게 미움을 받아 사살 되었다는 설인데 당시 70년대 박정권일때 부탁을 받은 김일성 열전 의 저자 이명영 이가 주장한 설인데.. 깎아내리기 일수인 이명영이고 김일성 열전은 현재 왜곡되고 거짓된 내용이 많아 요즘은 학자,전문가 들로부터 배제 되다 시피 한다. 그래서 신빙성이 매우 떨어진다.
생전에 의원을 하면서 상당한 재산을 모았던 것으로 알려진 김형직이 사망하자 유족들이 곧바로 경제적으로 어려움 에 처한 것은 당시 무송지방에 창궐했던 마적들에게 약탈을 당한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근거로는 : 김일성 주석 출생에서 사망까지..동아일보 1994.07.10일자..
김형직의 묘는 아내 강반석의 묘와 함께 평양시만경대구역김일성의 생가인 만경대 근교에 있으나, 중국에 있던 원래 묘를 해방 후 이장한 것이다.
과거 강반석이 재혼 했다는 설이 돌았으나 이 또한 김일성 깎아내리기를 위한 친일파나 그외 세력들의 남한에서 만들어낸 거짓으로 판명됐다.
사후..1988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그의 이름을 따서 함경북도(현 량강도) 후창군을 김형직군으로 개칭하였다. 평양에 있는 김형직사범대학은 1975년 그의 이름을 따서 개칭한 명칭이다. 2008년7월 10일 봉화리에 모셔진 김형직의 동상과 만경대에 있는 그의 묘, 삭주군과 중강군에 있는 동상 등에 헌화하고 탄신 104돌을 추모하였다.
이날 행사에는 리종옥, 박성철, 계응태, 김철만, 김국태 등 당 고위관계자들이 참석하였다. 평양시 강동군 봉화리와 평안북도 삭주군 남사로동자구, 자강도 중강군 중강읍 등에 동상이 세워졌고, 만경대 묘지에 반신상이 있다.
참고자료..
가족 관계
- 조부: 김응우(金膺禹, 1845년4월 8일 ~ 1878년10월 4일)
- 조모: 리씨부인
- 부: 김보현(金輔鉉, 1871년10월 3일 ~ 1955년9월 2일)
- 모: 이보익(李寶益, 1876년5월 31일 ~ 1959년10월 18일)
- 아내: 강반석(康盤石, 1892년5월 7일 ~ 1932년7월 31일)
- 아들: 김일성(金日成, 1912년4월 12일 ~ 1994년7월 8일)
- 며느리: 한성희(? ~ ?)
- 며느리: 김정숙(金正淑,1917년12월 24일 ~ 1949년9월 22일)
- 손자: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 1941년 2월 16일 ~ 2011년 12월 17일)
- 손자: 김수라(金修羅, 본명, 김만일(金萬一). 어려서 사망)
- 손녀: 김경희(金敬姬, 당 중앙위원, 경공업부장 역임, 1946년 2월 6일 ~ )
- 며느리: 김성애(金聖愛, 1928년 ~ 2014년)
- 손자: 김평일(金平一 1954년 ~ )
- 손자: 김영일(金英一 1955년 ~ 2000년)
- 손녀: 김경숙(金敬淑)
- 손녀: 김경진(金經進)
- 며느리: 제갈씨
- 며느리: 김송죽
- 아들: 김철주(金哲柱, 1916년6월 12일 ~ 1935년6월 14일) 항일운동 관련 사망.
- 아들: 김영주(金英柱, 1920년 ~ , 일본제국 육군관동군의 통역관)
- 장인: 강돈욱(康敦煜, 1871년 ~ 1943년)
기회가 되면 다음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쓰려고 한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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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통이가 대한민국과 북한에 특대형 재앙을 가져다주고
어마어마한 특대형 경력위조, 현대사 위조를 자행한 김일성과 그의 자손들을
칭송하고 빨아대면서 그놈들의 범죄에찬 역사와 경력들을 슬쩍 슬쩍 은근히
선전선동, 찬양하고 있기때문이다.
오늘 지금 이시각도 나의 고향이 있는 북한에서는
나의 친척들과 추억을 함께 쌓은 소싯적친구에서 학창의 친구들,
힘들었지만 활기에찼던 군복무시절에 우정을 쌓았던 친구들
그리고 한동네에서 같은 삶의 터전에서 스쳐간 수많은 인연들이
돌통이 색퀴가 흠모하여 칭송하고 빨아대는 김일성과 그 자손들에 의하여
현대문명을 향유하기는 고사하고 인간의 초보적 권리인 하루 세끼 끼니조차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또한 김일성과 그의 후손들의 사리사욕과 이기심으로 말미아마
핵전쟁의 위협속에 늘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상황이다.
이러한 인간쓰레기들을 빨아대는 돌통이의 행위는 그러지않아도 충분히 어려운
북한사람들의 삶에 보다 더 큰 고통을 가증시키는 행위이며 그러지 않아도
김정은의 핵위협속에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삶에 더큰 고통을 가증시킨다
이 쓰레기색퀴는 이런 김씨 인간백정들을 항일영웅이라 추앙한다
이 쓰레기 새퀴는 탈북자들이 이런 쓰레기같은 김씨일가들보다 못하다고 지꺼렸다
그리고 이 쓰레기 색퀴는 그 목적은 알수 없으나 간첩들도 들여다보는
공개적인 이 창에다 주민번호를 올리라고 탈북자들을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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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통이 쓰레기 색퀴는 이 창에서 지놈 주제가 동국대 대학원생 이라고 지놈 아가리로 지꺼렸다
근데 대학원생이란 색퀴가 얼마나 무식한지 댓글하나 지어내질 못해서 탈북자 쌜러리맨
아스피린의 댓글을 카피 위조하여 본인의 댓글인양 버젓이 뻔뻔스럽게 올린다
대한민국 대학원생 중에 댓글문장도 제대로 못만드는 대학원생도 있는가?
혹시 돌통이가 다닌다는 그 대학원은 바로 공자대학 대학원인가?........
대가리가 댓글 하나도 제 대가리로는 지어낼수 없는 아메바 대가리 주제에 ............
그 수준 그 정도에 누굴 가르친다고 매일 같이 김씨찬양 종북 선전선동의 글들을 퍼다가 싸지른다
돌통이색퀴는 그런 주제임에도 창피나 부끄러움을 절대 모르는 미개한 하등 생명체이다
그래서 아스피린은 돌통이를 종북 바퀴벌레,혹은 종북 오물 쓰레기라 부른다
이러한 연고로 아스피린은 돌통이를 인간쓰레기, 바퀴벌레색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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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통이색퀴야 이중에 네놈이 한짓이 아닌것이 있으면 당당하게 말해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