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金日成(김일성) 죽음의 비밀을 벗기다 [ 미스테리 ] 김일성 심장 주치의 “金正日(김정일)은 김일성의 죽음을 유도, 방치했다” ◇ 김일성 사망 전 김정일에 의해 해임당한 심장 주치의 김용서는 누구인가 ⊙ 김일성은 사망 직전인 94년 6월 訪北(방북)한 카터와 대동강 船上(선상)회담 중 심장 이상으로 배에서 내렸다
⊙ 김일성, 카터와 선상회담서 일선 복귀 시사… 김일성의 권력 재등장 우려한 김정일 ⊙ 주치의 김용서 “사망 이전에도 두 번의 심장 이상으로 내가 인공호흡을 한 일이 있다” ⊙ 93년 12월 당 전원회의서 김일성이 경제정책 실패 강력 비판하며 김정일과 거리 두기 시작 ⊙ 93년 말 김정일이 김용서 해임 후 이듬해 7월 김일성 사망 ⊙ 김용서 “내가 곁에 있었으면 주석님은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대성통곡 ⊙ 김정일은 독일제 심장 기계 운용팀을 김일성 사망 당시 묘향산에 따라가지 못하게 했다 북한 김일성(金日成)은 1994년 7월 8일, 당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과의 남북정상회담을 보름여 앞두고 사망했다. 김일성의 죽음에는 사망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늘 ‘의혹’이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그 의혹의 중심에 아들 김정일(金正日)의 이름이 항상 따라다니는 것도 마찬가지다. 당시 사실상 북한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의 권력 전면 재(再)등장을 두려워해 모살(謀殺)했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은 김일성 사망 시점이 300만명(실제는30만명)의 아사자(餓死者)를 낸 소위 ‘고난의 행군’ 시기로 접어들기 직전이라는 북한의 어려운 경제상황과 93년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 등으로 북한이 자초한 세계적 고립 등 북한이 처한 엄혹한 대내외적 환경을 타개하기 위해 김일성이 다시 권력 전면에 재등장하려고 했던 일련의 움직임들을 토대로 한다.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해 당시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북한 핵 시설 폭격을 준비했던 94년에 ‘북핵 위기’ 해소를 위해 북한을 방문한 전 미국 대통령 카터를 만나 회담을 한 것도 김일성이었고, 김영삼 대통령과의 남북정상회담 파트너로 예정됐던 이도 김일성이었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1974년 2월 13일 개최된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당 중앙위 정치위원이 된다. 김일성의 후계자가 된 것이다. 김정일은 1980년 10월 개최된 조선노동당 제6차 대회에서 당 중앙위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위 비서, 당 중앙군사위원이 됨으로써 김일성의 후계자로 확정되지만,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는 김정일이 후계자로 추대된 1974년부터 사실상 실권을 행사해 왔다고 보고 있다. 이런 상황을 근거로 북한 관련 정보 소식통들이나 전문가들은 김일성 사망의 배경으로 김일성 사망 때까지 20여 년간 사실상 북한을 통치해 오던 김정일이 아버지의 재등장이 가시화하자 자신의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아버지의 죽음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주장을 제기해 왔던 것이다.
이상.. 0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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