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중" = "저우바오중" 드러나는 인물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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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보중~저우바우중 1991年 人民出版社 해석 : (1991년 인민출판사입니다.) pp.544~545 1940년 12월 11일자 - 맨 아래 이미지 참고 一九四○年 十二月 十一日 金日成 帶十六人 由琿春歸 金日成 ?十六人 由?春? (번역) 194○년 12월 11일입니다. 김일성이 16명을 데리고 훈춘에서 돌아오다. 김일성이 16명을 데리고 훈춘에서 돌아오다 출처: 서재진, 김일성 항일무장투쟁의 신화화 연구 - 서순옥, 주보중 증언 p. 89 김일성은 1940년 8월에 강위룡 등 16명과 함께 소련으로 들어갔다. 가는 도중에 훈춘의 어느 산꼭대기에서 김일성은 김정숙과 결혼하였다. 최근까지 생존해있는 사람 중에 여영준, 서순옥 등이 증언하였다. 주보중(저우바오중) 일기[p.544] 1940년 12월 11일자에 따르면 김일성이 16명을 거느리고 10월(음력 9월23일) 훈춘을 경유하다“고 씌어있다. 결국 김일성은 1940년 10월 22일 또는 23일경에 월경했다. 남임오 연변대 교수 인터뷰, (2004년 4월). 신주백, 『김일성의 만주항일유격운동에 관한 연구』, p. 184. 음력으로 1940년 9월 23일은 양력 10월 23일이다. pp. 206-207 또한 ?현대조선역사?는 김일성부대가 만주에서 군정훈련을 실시한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소련 월경사실을 은폐하고, 소련에서 했던 군정훈련을 만주에서 한 것처럼 기술하였다. 그런데 김일성 사후, 발간한 김일성회고록 계승본 ?세기와 더불어? 8권에서는 이 사실을 수정하여 기술하였다. 국제당의 초청을 받고 소련으로 들어갔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들은 또한 만주에서 활동하는 모든 항일무장부대들이 대부대 활동으로부터 소부대 활동으로 넘어가며 원동(연해주)에 기지를 정하고 역량을 수습 재편할 수 있도록 조속히 들어오라는 국제당의 지령도 동시에 전달하였습니다. 》 사실은 김일성 부대는 1940년 8월부터 소련으로 이동을 시작하여 10월 23일 경 월경하였다. 김일성과 소련 월경을 동행하였던 서순옥의 월경 전후의 정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1940년 8월에 김일성, 강위룡 등 우리 16명은 소련으로 향하여 떠났다. 소련 땅에 들어서기 전에 훈춘의 어느 산꼭대기에서 김일성과 김정숙의 혼례를 하였는데 혁명가를 부르며 오락을 진행하였다. 김일성, 강위룡 등 우리 16명 유격대 전사들은 소련땅에 들어선 다음, 김일성 동지가 강위룡과 다른 한 동무를 파견하여 소련 변방 전사들에게 체포당하라고 지시하였다. 체포된 다음에 정황을 소련 당조직에 알리자는 계획인 것 같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체포되어 땅굴 감옥에 감금되었다.”》 그런데 김일성 부대의 소련 피난은 상급부대의 지시없이 무단으로 행해진 것이라는 증거가 있다. 당시 제1로군의 상황보고를 받은 주보중은 김일성, 서철, 김일 등이 위증민의 결정을 어기고 제1로군 사령관 위증민을 남겨두고 부대가 모두 탈출해왔음을 알았다 주보중(저우바우중)은 4월에 위증민을 구출하기 위하여 김일성 소부대를 만주로 출발시키면서 제3로군의 책임자 김책과의 연명으로 위증민에게 보내는 다음과 같은 편지(1941년 3월 12일자)를 김일성이 가지고 가게 하였다. 중공당의 지시 없이 김일성이 소련으로 피난하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료이다. 《“설령 아무리 곤란해도, 설령 어떠한 이유가 있어도 김일성과 윤준산 동지 부대의 월경은 잘못이다. 이 잘못은 원래 혁명적 입장 전체의 동요는 아니고 전체의 방향을 잃은 것도 아니다. 이 잘못은 제1로군 총부를 아예 이탈하여 유격대 지지투쟁의 가능한 조건을 방기하고 전부의 환경을 인식하지 않고 곤란을 극복할 방법을 충분히 강구하지 않고 기회주의적인 월경 방법을 취한데 있다. 이는 용서할 수 없는 잘못이다. 김일성과 그 이하 간부 동지는 자각하여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 규율상으로는 반드시 김일성, 마덕산(김일), 리복록 동지에게 상당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 우리는 당신에게 제의한다. 당신이 적당한 처분을 내릴 것을.” 》 (東北地區革命歷史文件匯集), 甲61券(권), 107쪽)342 (동북지방 혁명 역사 문서 모음)
◇김일성, 『세기와 더불어』8권, p. 51. ◇ 박창욱 교수 및 권립 교수 인터뷰; 신주백, 『김일성의 만주항일유격운동에 대한 연구』 ◇ 와다 하루키, 『북조선: 유격대 국가에서 정규군 국가로』, p. 57. 윤준산은 제2방면 군장 김일성 아래의 정치주임(政治主任)이었던 이준산 (伊俊山, 1908-1986)의 오기이다. 아래 동북항일연군 1로군 조직표 참고. [1941년 3월까지 토벌된 지휘관들이 표시되어 있다 김일은, 마덕산이 아니라 박덕산일 것이다.] 김일성의 입소 경로는 주보중 일기와 주보중전이 왜 서로 다른가? 위에 나오는 주보중 일기에는 훈춘을 경유했다고 나오는데, 주보중전에는 동녕현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입소했다고 나오니 어느 쪽이 맞는가? 주보중전 (周保中傳. 흑룡강출판사, 1987년)에 의하면 김일성(金日成)은 김정숙(金正淑)과 1940년 가을 흑룡강성(黑龍江省, 黑?江省) 동녕현(東寧縣, ???) 산속에서 결혼하였다. 동녕현은 소련 접경지역이다. 결혼 후 이들은 곧바로 소련으로 월경하였으며, 우수리스크의 남야영에 수용된다. 주보중전에는 김정일이 비야츠코예가 아닌 우수리스크에서 출생했다라고 했다. 蘇領(소련) 연해주 兵營(병영)에서 태어나 金日成(김일성)외도·生母(생모) 급사로 우울한 유·소년기 李基奉(이기봉)
周保中(주보중)은 중국 공산당의 혁명열사이며 金日成(김일성)의 직속상사(제88특별여단 여단장)였다. 「周保中傳(주보중전)」에 보면 40년 가을 만주 東寧縣(동녕현)(소·만 국경지대)산속에서 결혼한金日成(김일성)·金正淑(김정숙)부부는 그해겨울 우수리江(강)을 건너 소련령으로 왔으며, 41년 1월중순부터 42년 7월중순까지 당시 소련극동군구에서 설치한 南野營(남야영)(A캠프·우수리스크시 교외)에 수용돼 있었다. 그무렵 와츠코예에는 北野營(북야영)(B캠프)이 설치돼 있었다. 金日成(김일성)·金正淑(김정숙)부부가 수용됐던 남야영은 만주의三江平原(삼강평원) 동남쪽 국경 소도시 東寧(동녕)과 우수리강을 사이로 마주 바라보고 있는 소련령 연해주의 국경 요충지이다. 우수리스크를 중국에서는 雙城子(쌍성자)라고도 부르며 20년대초 金佐鎭(김좌진)·洪範圖(홍범도)·安武(안무)·池靑天(지청천)등 群小(군소) 한국독립군부대들이 大韓獨立軍團(대한독립군단)을 형성 ,우수리스크를 넘나들었으며 당시 이곳에는 벌써 한국교포가 수천호나 정착,농사를 짓고 있었다(이들은 37년 스탈린에 의해 전부 중앙아시아지역으로 강제 이주당했다). 20년대초 이 지역에서 한국독립군이 활동을 전개하고 하였다. ● 김일성의 빨치산 여동료 서순옥 (서울=聯合<연합>) 北韓(북한) 주석 金日成(김일성)은 22일 방북중인 중국 거주 한인 빨치산 동료 이재덕, 김선, 서순옥 등과 그 가족들을 접견하고 오찬을 함께 했다고 중앙방송을 인용, 내외통신이 23일 보도했다. 1994년 07월16일 <단신> 북한방송 보도. (서울=聯合<연합>)...가네마루 신 前日本(전일본) 부총리가 金日成(김일성)사망과 관련, 金正日(김정일)에게 보낸 弔電(조전)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아시아와 세계평화를 위해 슬픔을 이겨내고 가일층 노력해달라"고 강조했다고 북한방송을 인용, 내외통신이 16일 보도.
...金日成(김일성)의 사망과 관련해 조총련 조의 대표단(단장 사무총국 부 총국장 정광수)이 만경봉 92호 편으로 15일 원산에 도착. 한편 이날 항일혁명투사 서순옥 가족 일행과 신한민보사 김운하 사장도 각각 열차편으로 平壤(평양)역에 도착. ...지미 카터 前美國(전미국) 대통령의 방북시 선발대로 平壤(평양)을 방문한 바 있는 전 카터 센터 국장 스핀스가 지난 13일 유엔주재 북한대표부를 찾아 조문했다고 중앙방송이 16일 보도. 또 17일에는 단신으로 북한 보도에서.. ...하타 前(전)총리를 비롯한 일본 각계 인사들이 金日成(김일성) 사망에 즈음해 13, 14일 도쿄 조총련 본부를 조의방문했다고 중앙방송이 17일 보도. 내외통신에 따르면 조총련 본부를 찾은 인사들에는 하타 前(전)총리와 스포츠 평화당 당수 이노키 간지(참의원 의원)를 비롯해 신생당, 자민당, 민사당, 사회당, 일본신당 소속의원 등 다수가 포함돼 있다고 이 방송은 소개. ...김일성 장례식이 연기된 것과 관련 `민민전'에서도 16일 △애도기간을 20일까지로 연장하고 △17일에 하기로 했던 추모식을 20일에 진행하며 △애도기간에 다양한 추모행사를 가질 것 등의 `비상조치'를 취했다고 중앙방송이 17일 보도. 중앙방송은 또 이날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수령님은 곧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였으며, 지도자 동지는 곧 수령님이었다"고 주장하면서 김정일이 북한 주민들을 영도하는 한 김일성의 위업은 반드시 완수될 것이라고 강조.
이 방송은 이어 "김정일의 만수무강은 만민의 염원이고 최대의 행복", "그이가 건강해야 조선이 영원히 강대해지고 우리는 언제나 이기는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일성 사망에 즈음해 평양을 방문한 `항일혁명투쟁 연고자'들이 16일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의사당을 찾아 애도의 뜻을 표시했다고 중앙방송이 17일 보도. 여기에는 서순옥.이재덕 가족 일행과 尙鉞(김일성의 만주 육문중학 재학시절 교사).풍중운 자녀 일행, 장울화의 동생 일행이 참석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한편 북한은 방문한 바 있는 미국 종교지도자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조전을 보내 애도했다고 보도. ...북한 중앙방송은 16일 金日成(김일성)의 사망과 관련해 북한 전역에서 기이한 자연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구체적 사례들을 소개. ...함경남도 함흥시에서는 지난 14일 金日成(김일성)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곳으로 하늘이 보이지 않은 정도로 수많은 잠자리떼들이 몰려들었다고. 폭이 50m가 넘는 이 잠자리떼는 새벽 5시부터 무려 3시간 가까이 머물렀는데 이러한 현상은 "수령님을 못 잊어 미물인 잠자리들도 떼를 지어 찾아오는 것"이라고 북한방송은 주장. ...같은 날 함경남도 고원군에 있는 한 혁명사적지에서는 적.황.청 삼색의 구름이 생겨 시간이 지날수록 진해지는 현상이 벌여졌다고. 또 강원도 천내군에서도 아침녘에 서쪽과 북쪽 하늘에 일곱색깔 무지개가 출현해 잠시후 서로 하나로 합쳐져 현란한 무지개를 형성했다고 보도. ...한편 북한방송들은 金日成(김일성)이 사망한 지난 8일 백두산에 마치 눈물과 같은 전례없는 폭우가 쏟아졌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러한 현상을 두고 북한방송들은 "김일성 동지를 추모하기 위해 자연도 조화를 부리고 있다"며 이를 "의미심장하고 신비스러운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 <북한단신>시아누크, 금수산궁전 참배 등
=▲북한을 방문중인 노로돔 시아누크 캄보디아 국왕 일행이 6일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했다고 중앙방송이 7일 보도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백남순 외무상, 캄보디아주재 북한대사 김용섭 등이 동행했다. ▲김일성 주석 현지교시판, 김정일 총비서 현지말씀판, 김정숙 현지말씀판이 평안남도 평원군에 건립됐다고 중앙방송이 7일 보도했다. 이들 사적비는 각각 길이 14.2m, 높이 4.2m로, 6일 현지에서는 이길송 평남도당책임비서가 참석한 가운데 제막식이 열렸다. ▲ 재미교포 손원태씨가 6일 김 주석 5주기(7.8)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항공편으로 방북했다고 평양방송이 7일 전했다.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재덕.서순옥.장울화.채세영 항일투쟁 연고자 가족들도 6일 평양에 도착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세계과학대회에 참가했던 북한대표단(단장 강동근 과학원 부원장)이 6일 항공편으로 귀환했다고 평양방송이 7일 보도했다고 한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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