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그는 누구인가.? 8편. 시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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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편 ◇  김정숙: 김일성의 첫 부인이자 김정일의 어머니 김일성의 첫째 부인이자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은 김정일이 7세 때 3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002년 김정일은 러시아 언론인에게 자신의 어머니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신 어머니는 혁명 투사였습니다. 어머니께 큰 빚을 졌습니다.” [출처: 요미우리신문] 김정일은 1994년 북한 최고지도자가 되자 아버지 김일성, 어머니 김정숙, 자신을 백두산 3대장군이라고 부르며 어머니의 위상을 높이려는 운동을 벌였다.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러한 신격화는 그의 지도력 주장을 확실히 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2002년 북한군 장병들에게 제공된 문건에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님의 무한충성군중에서 가장 충직한 어머니가 존경스럽다”고 쓰여 있다. 이**: 나는 이렇게 썼습니다. 김정숙은 바느질 잘하고 요리 잘하고 싸움 잘하고 총쏘고 말타고 남편 도와주고.... 어쨌든 김정숙이 못하는 게 없다”고 주장했다. 존재하는 모든 수사 저변에는 김정숙의 여주인공이 아니라 온기가 없는 건조로봇 김정숙의 실상이 있다는 이 김정숙의 초능력자에 대해 북한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특징이 있다. 또는 감정을. 하지만 김정숙을 인간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출처: 김**, 데일리NK, 200*년 2월 2*일자, 김씨는 탈북자, 칼***트] 김*: 내가 쓴 글: 1970년대 초반 항일투사 황*혜가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황해남도 삼천군 달춘의 명예병사 자택으로 요양하러 왔다. 그녀는 항일빨치산투쟁시기에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과 함께 아동단 사업을 하던 장본인이다. 김정일을 김일성 후계자로 추대한 최초의 공신으로 인정받고 항일투사들 중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아 조선혁명기념관 관장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 그녀의 존재감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고, 오빠와 그의 약혼자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사무실을 자주 찾았다. [출처: 김, 데일*, 2007년 2월 21일]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을 이렇게 언급한 적이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1933년 초봄, 김정숙 동지가 김일성 동지를 처음 만난 날, 그녀는 너무 흥분해서 잠을 설쳤다. 다른 동지들은 별 반응이 없었는데……어쨌든 김정숙 동지에게는 뭔가가 있었다.” 이것은 김일성과 김정숙 사이에 초기 화학적 끌림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당시 다른 여성회원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이 사실은 당시 김일성이 탐낼만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김정숙은 10년만에 김일성과 결혼했다. 첫눈에 반한 연인들이 특별한 비밀 사유 없이 10년 동안 결혼을 미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9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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