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르뽀---175명 탈북자와의 만남....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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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회에는 8월 23일, 이틀째 되는 날에 일어났던 일을 중심으로 내가 느꼈던 탈북자에 대한 생각을 늘어 놓을 것이다. 나는 175명의 탈북자가 태국에 억류된 사건의 중심부분에 접근할 수 있었지만 통역이란 결국 주변에서 지켜 볼 수 밖에 없는 방관자의 입장이었다. 입장이 그러하니 내가 보고 들은 것에 대한 극히 주관적인 느낌만을 나열 할 수밖에 없는지라, 다른 사람의 판단을 반박하거나 논의할 생각도 없고 그럴 주변머리도 부족하다. 이런 경험을 글로 적어서 다른 사람들이 보아준다는 것 조차도 놀라울 뿐이니까... -------------------------------------------------------------------------------- 8월 23일 아침 8시쯤에 이민국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여자 탈북자들이 갇혀있는 곳으로 불려 올라갔다. 이민국 직원들이 슬쩍 건네는 말로는 탈북자들이 아침 식사를 거절했다고 한다. 흔히들 안남미라고 부르는 밥과 태국식 반찬 하나가 전부인 아침 식사지만 그래도 먹어두는 게 좋을 텐데 왜들 그러지? 솔직히 북한에서 굶주리고 있을 때를 생각하면 먹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라가 보니 이민국 구치소에서 근무하는 태국인 여자 의사가 상기된 표정으로 서있다. 날 보더니 왜들 밥을 안 먹느냐고 물어보란다. 30평 정도 되어 보이는 곳에 130명 이상이 갇혀있는 게 보인다. 이불 한채도 없이 입은 옷 그대로 바닥에 누워 있던 사람들이 날 보고는 문 앞으로 다 모여든다. 이민국 직원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문 옆에 양철판으로 된 식판들이 수북히 쌓여 있고 빈 식판들도 꽤 눈에 들어오는 걸 보고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닌가보다고 조금 안심했다. 식사를 왜 안 했냐는 질문에 수십명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밥에서 날파리같은 게 나왔다. 지저분해서 못 먹겠다... 이민국 직원에게 이 사람들 식사가 다른 외국인 수감자와 같은 식사인지 물어보니 전부 다 같은 식사가 제공 된단다. 의사에게는 밥에서 날파리와 작은 벌레들이 나와서 지저분해서 못 먹겠다고 한 거지 단식을 한 건 아니라고 말했다. 천명을 넘어가는 수감자들의 식사를 한꺼번에 준비하다보니 청결에 대해 소홀했던 것 같다고 하면서 이후부터는 조금 더 신경을 쓰겠다는 대답을 모여든 사람들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다른 불편이나 원하는 것은 없는지 물어봤다. 생리대가 필요하단다. 마침 의사가 곁에 있어서 생리대를 구입할 수 있느냐고 했더니 이민국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게 있기는 한대 그리 많이 나눠주지는 못할 거라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싶어서 우선 다 가져다 달라고 했더니 금새 5개 들이 생리대를 한 보따리 가져온다. 그냥 나눠주면 분명히 서로 가지겠다고 싸움이 날것 같다면서 꼭 필요한 사람만 추려보란다. 지금 현재 생리 중인 사람들만 나눠주라는데 그걸 어찌알고...;; 어쨌든 생리대가 꼭 필요한 사람들만 한쪽으로 모여서 줄을 서라고 했다. 순식간에 수십명이 몰려든다. 가져온 생리대 개수보다 거의 2배 가량이나 된다. 줄을 맞춰서 서라고 소리를 질러대도 막무가내다. 그중에 몇 명은 실제로 생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을려면 직접 검사를 하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의사가 안 나눠주고 그냥 도로 가져가겠단다. 그 말을 전해들은 사람들이 그제서야 마지못한 듯 줄을 서기 시작하는데 젊은 여자아이가 분하고 부끄러웠던지 울면서 말을 한다. “제발 저한테도 좀 나눠주세요...” 의사가 쥐고 있던 생리대 꾸러미를 쥐고 그 아이부터 먼저 나눠줬더니 바로 화장실로 뛰어간다. 개수가 모자라서 2명에 5개짜리 꾸러미를 한개씩 나눠줬다. 벌써 받아갔던 사람이 눈치를 보더니 슬그머니 뒷줄에 다시 껴들기도 한다. 못본척 계속 나눠주고는 다시 사무실이 있는 1층으로 내려갔다. 담배 하나를 피어 물고 한숨 한번 크게 쉬어본다. 기분 참 더럽다. 내가 겪는 일도 아니지만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일 일에 대해서도 제대로 대처할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이 지은 죄가 무엇인가 하는 생각만 자꾸 든다. 근데 어제 왔던 교회 사람들은 왜 아무도 안 와? 이민국 직원이 오늘은 하루 종일 내일 있을 재판에 준비할 서류를 만들어야 한단다. 체포된 후 48시간 이내에 재판에 회부해야 하기 때문에 오늘 모든 준비를 다 마쳐야 하는데 죄목은 불법 입국과 불법 체류라고 한다. 하기야 여권 없이 몰래 들어왔으니 불법 입국이고 불법 체류는 맞지. 법대로 해야 한다는데 할말 없다. 내가 변호사도 아니고 유엔 직원도 아닌데 따지고 들 수도 없고 그래서 될 일도 아니더라. 어젯밤에 나눠준 일련번호 순서대로 불러내서 이름, 나이, 부모님 성함을 말하게 한다. 동명이인이 발생할 수도 있어서 신분 확인 차 부모님 성함까지 다 기재해야 한단다. 아무도 신분증을 제시 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말하는 대로 받아만 적는다. 정말 이 사람들 이름이 맞긴 한 걸까? 서류를 작성하고 지문을 찍으러 간다. 열손가락을 모두 서류 4장에 일일이 다 날인을 한다. 정말 하루 종일 걸리겠다. 점심때가 지나가는데 정말 아무도 안 찾아온다.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소리를 질러대다 보니 이제 목이 잠기기 시작하고 오후가 되니 이제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오늘도 와서 이 사람들을 보호하고 관리하겠다던 사람들은 코빼기도 안 비치고 탈북자들은 자꾸 자기 짐들이 모여 있던 숙소에 다 있는데 왜 안 갔다 주냐고 묻는다. 교회 사람들이 챙겨서 갔다 줄 거라고 말해줬지만 썩 미더워하지는 않는 눈치다. 이젠 이 사람들도 교회 사람들 왜 안 오냐고, 유엔 직원들도 왜 안 오냐고 투덜거리기 시작한다. 필자가 통역했던 탈북자 명단 (신상보호를 위해 이름의 일부를 모자이크 처리했습니다.) 갑자기 이민국 과장이 날 찾는다. 이민국 직원들이 자료로 남겨두려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젊은 여자아이가 소리를 지르면서 이민국 직원을 밀치고 화를 냈단다. 급히 그 자리로 가보니 이미 그 탈북자 여자아이는 이민국 직원에게 끌려서 다시 감방으로 올라가고 작성하던 서류까지 압수 당했다고 한다. 사진을 찍던 이민국 직원에게 대신 사과하고 이 사람들은 사진이 찍혀서 북한 쪽으로 넘어가면 북한에 남겨진 가족들이 수용소로 끌려가거나 감금을 당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좀 과민하게 반응 하는거니까 이해해달라고 설명했다. 끌려간 여자아이의 친구로 보이는 사람들이 제발 서류 작성 한 거 파기 시키지 말아달라고 잘 좀 이야기 해달란다. 사람들을 다시 모아서 이민국 직원들 말을 잘 따라야 하며, 사진은 자료 보관용일 뿐이니까 겁내지 말라고 다시 설명해줬다. 말을 하면서도 통역일 뿐인 내가 마치 이민국 직원인 것처럼 느껴지는 거 같아서 섬뜩했다. 일제시대 조선인 통역들도 이런 기분을 느꼈던 건가... 갇혀있는 여자애를 만나러 가보니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다. 자기 서류에 이민국 직원들이 빨간 볼펜으로 뭐라고 적었는데 혹시 북송당하는 게 아닌지 하는 지레 짐작으로 사시나무 떨 듯이 떨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야 빨간 펜으로 이름 적으면 큰일 난다고 생각하는데, 태국 사람들은 궁하면 빨간 펜으로 다 적는다지만 아무래도 우리 정서로는 무리인가보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게 하려고 겁을 좀 주려고 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없어지고 말았다. 이런 걸로 사람 마음 힘들게 하진 말아야지.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하라고 다독거려 줬지만 잘 안 믿어지는지 눈물까지 고인 눈으로 자기가 잘못했으니까 한번만 용서해달라고 매달린다. 이민국 간부한테 내려가서 어떻게 된 건지 물어보니 걱정하지 말란다. 다른 사람들도 있고 해서 잠시 혼내킨 거고 그걸로 북송시킨다든지 불이익을 주는 일은 없을 거란다. 잔뜩 겁먹은 여자아이와 다른 사람들에게 괜찮을 거라고 말해줘도 다들 불안해 한다. 얼마나 많이 속아서 지내왔으면... 지문을 찍고있는 사람들을 지켜 보면서 그 중에 몇 명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있는데 돈을 받기로 하고 이 사람들을 태국까지 보내줬다는 한국인들 이야기가 나왔다. 1인당 3백만원에서 5백만원 까지의 비용을 이미 줬거나 또는 정착금을 받는 대로 갚아주기로 약속하고 중국 국경을 넘은 후 베트남, 라오스를 거쳐 태국까지 들어오는데 빠르면 1주일 정도가 걸려 태국까지 오게 되고 그 이후에도 태국에서 유엔고등판무관에게 난민인정서를 받아 한국으로 귀국하는데 까지 보통 2-3개월이 걸린단다. 한국에 도착하면 간단한 조사를 받은 다음에 하나원이라는 곳에 가서 교육을 받고 정착금을 받게 된단다. 옛날에는 6천만원씩 받았는데 요즘은 탈북자들이 급증하는 바람에 3천만원 정도를 받게 된단다. 목숨값인가 보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법정에 가서 미성년자를 제외한 135명 모두가 불법입국으로 재판을 받게 된다는데 유엔도 대사관도 교회 사람들조차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한다. 언론에서 너무 경쟁적으로 접근을 하고 있어서 자칫 주태국 북한 대사관과 북한 정부의 자존심을 자극해 이번에 체포된 사람들은 물론 앞으로도 같은 경로를 거치게 될 다른 탈북자들의 안전에 위협을 줄 수도 있을까봐 저어 한단다. 소지품중에 속옷하고 애들 기저귀라도 좀 가져다 줄 일이지... 어설프게 도와준다고 하는 것보다 그런 작은 부분이라도 챙겨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자기들에게 일어나게 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때 그때 순간적인 거짓말로 비켜 나가야 하는 것도 한두번이지 두려워 하는 어린 아이들의 눈빛에 대고 괜찮을 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밖에서 너희들 안전하게 풀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다독거리는 것도 할 짓은 아닌 것 같다. 정신 없이 하루가 지나가고 서류 작성도 대충 끝났지만 선뜻 자리를 털지 못하고 이민국 마당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그새 얼굴이 익은 이민국 직원들하고 이야기를 하다가, 내일 재판을 받고 난 후 이민국에 다시 오는 게 아니라 벌금형을 받은 사람들이 벌금을 못 낼 경우에 하루 200바트(약 5천원 정도)씩으로 계산해서 벌금 총액만큼 구금하는 곳으로 다들 이동 할거라고 한다. 벌금액의 책정은 판사의 권한이지만, 재판을 받고 난 후 이민국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벌써부터 말해주지 말란 이야기를 듣고 난감해진다. 이렇게 자꾸 앞으로 벌어질 일을 숨긴다고만 좋은 걸까. 그전에 이런 경우를 접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교회 사람들은 이런 경험이 많을 텐데 미리 이야기를 해줘야 할지 상의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구만... 어쨌든 최소한 내일 법정에는 누군가 찾아오겠지 하는 생각에 우선은 발걸음을 옮겼다. -------------------------------------------------------------------------------- 이 글에서 과연 내가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일까. 탈북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민간 차원에서의 지원만 있는 이 사람들에 대한 갑갑했던 느낌을 토로 하고 싶은 게 더 큰 것 같다. 대사관은 공식적으로 나서서 이 사람들에 대한 지원의사를 밝히거나 만나지조차도 못하고, 유엔에서는 태국 사법부의 법적 처리가 선행된 후에야 난민 지위 획득에 대한 절차를 시작 할 수 있다고 하며, 지금까지 도와왔다는 일부 교회 사람들은 몸 사리기에도 급급하고... 도와주리라 마음 먹었으면 힘닿는데 까지 도와주든가. 관계자들이 미온적이고 수동적인 입장을 취하기만 하는 현실을 타개할수 있는 방안들은 없는지... 태국 이민국 간부의 스쳐가는 한마디가 자꾸 머리에서 맴돈다. “남한과 북한은, 원래 한나라였다면서... 그럼 형제나 마찬가질 텐데 왜 통일을 안 해?” 다음회에는 통역의 마지막 날 있었던 재판과 탈북자들의 분노를 비켜가기 위해 했던 거짓말들, 허탈해하는 사람들의 눈빛과 눈물로 얼룩졌던 헤어졌던 이야기를 하고 맺을 생각이다. 일어났던 일에 대한 감정을 순서대로 적어나가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싶고 글재주 좋은 사람들에 대한 질투가 자꾸 생기는 요즘이다. 모쪼록 부족한 글이지만 읽어주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단 하나의 그림이라도 그려질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럼 다음회에 다시 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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뤀킁님이 직접 이곳에도 올렸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몰라 다시 퍼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