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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부 운전수에게 당했던 사건
REPUBLIC OF KOREA 청진 10 1207 2006-12-04 12:03:08
억울한 사건

1월의 어느 추운 겨울
북한은 공장 또는 직장이라 한다.한국처럼 회사나 사무실이라고 하지 않는다.
당시 나는 00 공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전기 부족으로 인하여 기계가 멈추고,자재가 모자라 공장은 일주일에 서너번 멈추기를 반복하더니 급기야 한달에 겨우 서너번 가동된다면 잘 된 것이다.

그냥 앉아서 놀기도 그렇고 하니 각 작업반마다 산에 가서 싸리나무로 빗자루를 만들어 오라고 할당량을 주기 시작했다.
우리 작업반도 15-7여명의 사람들과 함께 산으로 싸리나무를 하러 갔는데 산에는 우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작업원들도 모두 하는 통에 싸리나무가 귀했다.그래서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야 겨우 할 수 있었다.
각자 집에서 마련한 손도끼와 작업반에서 나누어준 밧줄을 한 사람씩 나누어 들고 우리는 인곡동에 있는 공원을 지나 고동산 밑에 있는 구역안전부(시 안전부인지 정확한 명칭 기억이 나지 않음)를 지나 내천이 흐르는 인곡 다리를 건너 걸어갔다.

다리를 건너 직선으로 올라가면 높은 둔덕 위에 인곡남자고등중학교가 있고 오른쪽으로 걸어올라가다 왼쪽으로 꺽어 한참 올라간후 오른쪽에 인곡인민학교(지금의 소학교)가 야산 밑에 있다.
물길 옆에 도로가 있어 그 길을 한줄로 서서 걸어서 올라갔다.마을을 벗어날 쯤 완전히 시골길처럼 약간의 오르막길이 있었으며 그 길을 지나야 겨우 산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울퉁불퉁한 길과 군데군데 깊이 파인 구덩이 때문에 우리는 피해서 걸어야 했다.

쉬지 않고 걸었더니 몸에 땀이 나고 벌써부터 나이먹은 작업반장을 비롯한 노인들이 헉헉대기 시작했다.

부럽게 바라만 본 번쩍 거리는 승용차

잠시후 뽀얀 먼지를 일구며 번쩍 거리는 새 승용차가 지나갔는데 우리 모두는 넋을 잃고 쳐다보아야 했다.태어나서 그렇게 새 차는 처음 보았다.
그렇게 한 10분 정도 걸었을까.
다시 그 승용차가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우리는 그 승용차를 구경하기 시작했다는데 햇빛에 반짝거리는 앞 유리창을 뚫고 바라보는 운전수의 매서운 눈빛이 조금 이상했지만 작업반 사람들은 거기에 전혀 개의치 않고 바라보았다.

그런데 우리 앞을 지나가던 승용차가 급정거 하더니 차문이 열리며 안전원이 우리 앞으로 달려왔다.닥치는대로 여러 명을 발로 차고 때리더니 그 중에서 나를 차 안으로 끌어들여 승용차 문을 닫더니 그냥 달리기 시작했다.
차 뒤로 바라보니 작업반 사람들이 어안이 벙벙하여 아무말도 못하고 승용차만 바라보고 있었다.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미처 손쓸 틈이 없었다.

승용차 운전수 옆에 앉혀진 나는 소리를 지르며 왜 그러는가고 따지기 시작했다.운전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냥 왼손으로 핸들을 잡고는 오른손으로 뺨을 때리고 귓불을 잡아 당기며 구타를 하기 시작했다.
뺨이 얼얼하다 못해 감각이 없어지며 코에서 피가 흐르고 차 안에서 온갖 발악을 해 보았지만 처음 승용차를 탄 나는 어떻게 문을 열고 나가는지 알 수 없었다.
운전수는 미리 승용차의 문을 잠가놓아 꼼짝할 수가 없었던 나는 있는 힘을 발휘하여 구타하려는 운전수의 손바닥을 막고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이유나 알자고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실랑이 끝에 구역안전부에 들어간 나는 아차 했다.
이 놈이 또 죄 아닌 죄를 뒤집어 씌워 자기 출세를 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눈 앞이 캄캄했다.당시 나의 가족은 출신성분이 나빠 동네 사람들과 특히 인민반장으로부터 천대와 멸시를 받았다.학교에서는 나 뿐만 아니라 동생들도 선생들의 주도하에 출신성분이 나쁜 반동분자의 자식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며 눈물로 살고 있었는데 힘이 없는 나는 어디다 하소연 할데가 없었다.

러시아 유학을 하고 돌아온 친척

나의 친척은 러시아 유학파 였는데 유학후 평양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집으로 불러 술 한잔을 하였는데 그것이 화근이 되었다.
얼마나 친했는지 그 집이 쌀 걱정으로 어려움을 당하자 친척은 밀쌀,강냉이쌀,가장 비싼 입쌀을 구해다 주었고,사탕가루 밀가루 간장,된장 등 부식물도 마련해 주었는데 인민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중학교 졸업때까지 티격태격하며 친하게 지낸 친구중의 친구라 했다.
그 친구는 부모가 모두 평범한 노동자의 가정으로 평양에는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고 친척들도 모두 지방에 살고 있었는데 식량난으로 어려움을 겪자 평양에 사는 자신들에게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친척은 자기 집도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친구가 우선이라며 친구를 위해 모든 힘을 발휘하여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었다.그 친구의 부모와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정말로 고마워 했다.

하지만 은혜를 원수로 갚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친척이 외국물을 먹고 북조선에 다시 들어와 보니 북조선 실정이 말이 아니었다.그것이 아닌데...하면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드디어 가장 친한 친구에게 술을 한잔하며 북조선을 비판하기 시작했는데 술에 너무 취한 친척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다.

그날 저녁 밖에서 왁작스럽게 떠드는 소리와 함께 옆구리에 권총을 찬 보위부 사람 열댓명이 문을 박차고 구둣발로 들어와 집안 가구를 모조리 부수며 조사한다며 이곳저곳 뒤지기 시작했다.잠을 자던 가족들은 영문도 모른채 밖에 나가 서 있었고 친척은 이미 포승줄에 꽁꽁 묶여 입에 자갈을 물린후 구타를 당하고 있었다.
검은 천으로 번호를 가린 트럭과 짚차와 AK 자동보총으로 완전 무장을 한 보위부 사람들이 한 무더기 더 있었다.
아이들이 울고 불고 야단을 치며 동네방네 소란이 일자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나 밖으로 나오거나 문을 열고 지켜보고 있었다.인민반장이 나와서 이미 보위부 사람들과 이야기 했는지 그냥 예예 하면서 왔다 갔다 하기만 했다.
자동보총을 든 보위부 사람들이, 동네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막기 시작했다.구둣발로 방에 들어간 보위부 사람들이 집안에 있는 물건중 러시아에서 가져온 금덩이와 시계 등 값나가는 물건은 이미 자기 호주머니에 넣고 나머지 천연색 TV,냉장고,세탁기,가구 등 좋은 물건들을 차에 실었다.
밖에 끌려나온 친척 아내는 울며불며 야단을 쳤지만 막무가내였고 아이들이 시끄럽게 운다고 구타를 당해 실신까지 했다 한다.

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친척은 처형 당했는데 총알이 아깝다 하여 위성 안테나 같이 큰 둥근 거울에 묶어 놓고 일주일간 뜨거운 태양빛에 말려 죽였다 한다.

가장 친한 친구

친척을 고발한 친구는 직장에서 로동자에서 하루아침에 작업반장으로 올라갔다고 한다.친구를 고발해 겨우 올라간 것이 작업반장이니 그 친구도 고발쟁이로 낙인찍혀 눈치만 보고 지낸다 한다.사람들이 더 이상 가까이 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혼자서 중얼중얼 거리며 지낸다 한다.

술 좌석에는 친척 아내가 있었는데 이야기하는 내용을 들은 바에 의하면 인민들이 잘 살려면 로동당 간부들이 아부아첨을 하지 말고 수령님(김일성)에게 보고할 때 거짓 보고하지 말고 모두다 힘을 모아 식량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그리고 모든 인민들에게 자유를 주어 조직생활에 얽매이지 말고 자본주의식 체제를 받아들여 모두다 자유롭게 왕래하며 라디로도 마음대로 듣고 눈이 열리고 귀가 열려 세계 문물을 보고 배우며 더 높은 차원의 지적 수준을 가져야 한다는 말과 너무 힘들면 배를 타고 남조선이나 미국으로 망명하겠다는 등 이런저런 이야기뿐이었다고 전한다.
평소엔 너무나 착했고 술 한잔 마실줄 모르는 친척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순 없지만 날이 갈수록 나라를 토탄에 빠드리고 인민들을 착취하는 김일성과 로동당을 러시아와 비교해 보니 너무나 차이가 나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

남이 어려울 때 자신보다 먼저 남을 먼저 생각할 정도로 착하고 착한 친척이었는데 가장 친한 친구의 고발로 하루 아침에 자신은 물론 남은 친척들에게 평생 지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겨야 했다.우리는 하루아침에 출신성분이 나쁜 집안으로 몰려 청진으로 쫓겨나야 했다.

승용차 운전수의 구타

안전부 앞마당에 강제로 내린 나는 안전원의 우악스러운 손에 이끌려 강제로 안전부 건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와 보니 아주 넓었다.정문 앞에는 몇층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건물이 있었고 그 옆으로 길게 감방 같은 것이 늘어서 있었고 정문 옆 담장 옆에도 건물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나는 정문 옆 담장의 첫 번째 건물로 들어갔다.들어가니 책상이 길게 하나 있고 양 옆으로 의자 4개,앞에도 의자 하나와 전화기와 난로엔 불이 활활 타오르고 큰 주전자에는 물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나를 의자 옆에 무릎을 끓게 하고는 차가운 수갑으로 뒤로 손을 묶었다.
한시간 동안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담배만 뻑뻑 태우며 나를 노려보는데 가만히 앉아있을 내가 아니었다.

나는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 강제로 끌고 오는 것인가고 물었지만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냥 하는 말이 왜 차를 바라 보았는가 차에다 무슨 짓을 하려고 불순한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데 말이 말같지 않았다.
한 시간이 지난후 30여명의 사람들이 방 안에 드나들었는데 나를 보면서 그냥 발로 차던지 아니면 뜨거운 물 주전자를 붓고 책으로 때리고 하면서 어떤 안전원은 밖에서 각목을 들고와 시정없이 구타를 하면서 온종일 무릎을 끓고 앉아 있었다.

나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찾을 수 없었던 안전원은 차를 본다는 것은 나중에 차에 대해 불순한 생각을 하였기 때문에 사전에 차단하려고 하였다고 했다.그러면서 조서를 손도장과 이름을 쓰라고 하는데 그 조서는 이미 자기 멋대로 글이 적혀 있었다.

조서 내용은 이러했다.
당에서 받은 새 차를 불순분자가 파괴하려 했는데 사전에 자기가 직접 잡아 그 음모를 막았다는 것과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목적은 차를 파괴하고 그 안에 탄 안전원들을 암살하려 했다는 더욱 황당한 내용까지 포함되었다.

내가 아무리 사실을 이야기해 보았지만 그때마다 구타가 이어졌다.각목과 삽으로 때리고,뜨거운 물로 얼굴에 붓고 정신을 잃고 쓰러지면 찬 물을 부어 깨웠다.온몸은 구타와 멍으로 얼룩졌고 옷은 피로 물들었다.옷은 갈기 찢어졌고 얼굴은 퉁퉁 부어있고 뜨거운 물에 살이 데었는데 하도 맞다보니 감각이 없어졌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그 죄를 대라고 하면서 고문할테지만 그런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그냥 발로 차고 밟고 목을 조르고 각목으로 사정없이 구타만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끓는 주전자 물이 없어지면 다시 가져와 끓이기를 여러번 더욱 악랄한 것은 끓는 물을 나의 입에 넣어 입이 모두 익어 반년동안 입이 화끈거리고 밥을 먹는데,말하는데 지장이 엄청 많았다.
그날의 악몽은 저녁 9시에 조금 넘어서 끝났다.

사실을 이야기해 보았자 나에게 더욱 불리할 것 같아 나는 있는 것 없는 것 그들이 말하는 대로 그냥 예,예 하고 모두 인정한다고 하면서 다음부터는 잘하겠다고 빌어야 했다.너무나 억울하고 분해 눈물을 흘리며 말하자 그들이 또다시 눈물을 흘리지 말라면서 구타가 이어졌다.시계를 얼핏 보니 9시가 조금 넘었는데 구타를 받은 후 시계를 다시 보니 15분이 지났다.

조서를 다 꾸민 후 안전원은 여러번 밖에 나갔다 돌아오더니 나를 마치 생각하는 양 이제는 그렇게 나쁜짓 하지 말라고 하면서 내가 다 너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앞으로 열심히 당을 위해 살고 너를 1년간 빵(감방)에 넣으려 했으나 자기가 힘을 써서 이렇게 용서해 준다고 했다.
여러번 나갔다 들어왔다 하는 걸 보니 나를 아예 감방으로 집어 넣으려고 같은 운전수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용서하긴 무슨 용서.
정식 안전원이 아니고 승용차를 운전하는 운전수일 뿐인데...
자기가 무슨 힘이 있다고 마치 생각하는 양 세상에 살다 별 미친놈 다 보았다.
안전원 복 입었다고 아무나 잡아 죄를 뒤집어 씌우고 아무 실권도 없으면서 있는양 하도 기가 막혀 내 입이 더러워 질까 심히 염려된다.

다행히 날이 어두워 사람들의 나를 보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구타당한 몸을 겨우 이끌고 집에 들어가니 가족들이 직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모두 밥도 못먹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혹시 안전부에서 나 뿐 아니라 가족 전체를 아오지나 시골 농촌으로 쫓아 보내려고 그러는지 모두 가슴을 졸이며 기다렸다고 한다.

밖에 나간 동생은 하얀 눈을 세숫 대야에 담아 들고 들어와 열이 확확 타오르는 나의 온몸에 발랐다.그러나 눈은 빨리 녹아 내려 할수 없이 낡은 옷의 팔을 뜯어 한쪽을 실로 꿰맨후 눈을 많이 담아와 나의 양 옆구리와 등짝,다리에 놓아 주었다.

그날 일어난 나의 이야기를 들은 가족들은 그제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출신성분이 나쁜 가족들은 혹시 오늘 나를 잡으러 보위부,안전부에서 나오지 않았나 아니면 동네 사람들이 고발하여 나를 농촌으로 보내지 않나 숨을 죽이며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

승용차 운전수 안전원 내 너를 죽어서도 잊지 않을 것이다.

나를 잡아간 안전원,
나이가 당시 40대 초반이고 밥을 얼마나 처먹었는지 뱃대기에 기름과 살이 차 배가 나왔고 키는 1미터 50쯤,무게는 약80키로그램이다.지금은 나이가 더 많이 들었을 것이고 따라서 개대가리가 변했을 것이다.그러나 그날의 악몽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
어디에 살고 이름도 알 수 없다.얼굴은 조금 길고 그냥 평범한 얼굴이다.
내가 죽어도 잊지 못할 것이며 통일이 되면 제일먼저 그곳으로 달려가 서류철을 뒤져 그 자의 이름과 내력을 알아내어 그 놈에게 그날에 있었던 사건을 다시 물을 것이다.

동생이 인민학교에 다니는 관계로 가끔 학교에 가는 일이 있는데 내가 잡힌 그 구역안전부 옆에 도로가 있어 그 길을 지나게 되는데 혹시 눈이 마주칠까 두려워 다른 길로 에돌아 지나갔다.

고동산:낮은 야산으로 되어 있는데 낮 12시간 되면 반드시 사이렌이 울리는데 산 이름은 알 수 없고 마을 사람들이 그냥 고동산이라 한다.고동산에서 청진 시내를 향해 바라보았을 때 앞 쪽에는 여자 고사총 부대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인곡남자 고등중학교와 인민학교로 가는 길이 있는데 그 옆에 마을들이 있고 마을 옆에는 넓은 땅에 구역안전부가 들어서 있다.밖에서 안을 볼 수 없게 높은 담장이 쳐져 있고 그 담장 위에는 가시철조망과 전기가 흐른다 한다.하지만 고동산에서 바라보면 안을 훤히 볼 수 있지만 작게 보였다.

출신성분이 나쁜 사람들은 보위부,안전부라면 주눅이 들어 그냥 숨을 곳만 찾는다.숨 쉬는 것과 걸어가는 것 행동하는 것 모두 감시의 대상으로 직장 사람들이나 동네 사람들이 한결같이 가까이 하려 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자기 자식들에게 저 집은 출신성분 나쁜 집안이니 같이 놀지 말라고 한다.이렇게 북한 사회는 출신성분 나쁜 사람을 철저히 배제하여 갈라놓고는 동네나 직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모두 그 사람에게 돌린다.사건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불려가 조사를 받는 사람도 출신성분 나쁜 사람이고 모든 잘못도 출신성분 나쁜 사람들에게 돌린다.

한국에 오니 정말 별천지 같았다.
제일 좋은 것은 출신성분 따지지 않으니 좋았고,경찰이나 관계기관 사람들이 무섭지 않았다.내가 죄를 짓지 않았고 또 열심히 사는데 오히려 도와 주며 격려해주면 살 잘살아 보라고 해 주었지 북한처럼 감시하거나 잡아가거나 혹은 죄를 뒤집어 씌우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의 동생도 부모님도 이런 억울한 고초를 당했는데,
지금도 나는 보위부,안전부 라고 하면 이가 박박 갈리면서 너희들이 나에게 했듯이 나도 너희들에게 똑같이 할 것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친척 한 사람이 잘못했는데 왜 아무런 상관도 없는 가족 친척들과 갓 태어난 아이들이 그 죄를 짊어져야 하는가 하는 것이며,

보위부,안전부 개간나 새끼들 너희들 우리 가족들을 4대까지 멸살하였지만 나는 너희들 사돈의 팔촌까지 모조리 잡아 나에게 행한 악행을 반드시 물을 것이다.

보위부,안전원의 씨를 말려야 한다.

출신성분 때문에 북조선에서 살기 힘들어 목숨을 걸고 탈북한 동지들.
보위부 안전부 놈들에게 당한 당신의 가족 친척들의 고통을 잘 알지 않는가?
통일된 그날까지 이를 악물고 살아남아 끝까지 그들의 죄를 물어야 할 것이며 그래야 이 세상을 떠나 저승에 간 친척들의 한을 풀어들일 것이다.

북조선에 있는 인민들의 고통은 보위부 안전원에게 당해본 사람만 잘 아는 것이다.
인민들 뿐만 아니라 여기 자유를 위해 탈출한 탈북자들도 그 고통은 잘고 있다.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끈질긴 목숨을 더 연장하여 반드시 복수해야 한다.
복수하는 길은 살아서 끝까지 살아 남아서 보위부와 안전원들을 복수하는 것이다.

인민들이여!
살아 남는 길만이 이 땅의 쓰레기 같은 존재인 보위부,안전원들을 모조리 씨 종자까지 없애는 길이다.

북조선 인민들에게! 반드시 살아서 보위부 안전부가 여러분에게 끼친 행위를 증언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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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똥 2006-12-04 18:12:49
    내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 참으로 분을 어디서 삯여야될지 통탄하시겟군요.
    너무 분에차고 한을 가지고사신다면 건강에 해로우니 현실에 충실하면서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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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길 2006-12-05 16:14:09
    청진님 홧병에 죽지 안은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해야 겠네요. 그렇게 악랄하고 못된 놈들이 있다는게 믿겨지지 안을 정도입니다. 모쪼록 자유대한에 오셨으니 성공하셔...통일되면 그 못된 놈들를 때려 잡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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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2006-12-05 23:28:58
    그런 일들이 생길수있는 사회 라는것이 정말 끔찍합니다..
    그들은 반듯이 행한만큼 받게 될것 입니다..천벌을 말입니다..
    청진님께서는 건강하게 사시는것이 복수하는것입니다.. 너무 마음 상해 하지 마시고 건강하게 사시길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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