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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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중앙은행과 민간기업들이 앞다퉈 달러화와 미국 국채 등 달러화 표시 자산을 팔아치운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미국 조폐창의 풀가동을 결정하고 24시간 달러화를 찍어낸다. 그럼에도 달러화 가치는 초 단위로 떨어지고 미국 내 금리는 계속 치솟기만 한다. 이와 동시에 미국의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미국인들의 소비도 줄어든다. 미국의 경제위기와 더불어 세계적인 대공황이 시작된다." 이런 영화 시나리오 같은 이야기가 요즘 전세계 경제전문가들 사이에 심심찮게 오가고 있다. 미국의 경상적자와 재정적자가 동시에 진행되는 이른바 '쌍둥이 적자(twin deficits)'의 문제가 워낙 심각하다 보니, 이것이 머지않은 장래에 미국경제와 세계경제의 동반 붕괴를 불러온다 해도 놀라울 게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 문제는 미국이 그만큼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얘기다. 적자만 계속 내는 기업이나 가계는 결국 빚을 누적시키다가 언젠가는 파산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문제는 세계경제에서 미국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에 미국의 파산은 곧 세계경제의 공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빚이 너무 많아 오히려 큰소리 치는 미국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중국산 싸구려 물건 때문에 먹고 살기 힘드니 위안화 가치 좀 올리라'고 중국에 압력을 넣는 나라, 가난한 나라들에게 자유무역협정을 강요해 자기네 물건 값을 낮게 조정해 많이 팔아먹고 싶어하는 나라,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의 이름을 빌려 세계 각국의 경제구조를 자기네 입맛에 맞게 뜯어고치는 나라, 북한의 인권 문제와 중동 및 중앙아시아의 민주화 문제까지 떠맡아 고민하느라 바쁜 나라, 그런데 알고 보니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빚을 지고 있는 빚꾸러기 나라…. 이 나라의 이름은?" 정답은 '미국'이다. 쌍둥이 적자, 즉 경상수지와 재정수지의 동시 적자를 통해 전세계에 천문학적인 금액의 빚을 지고 있는 미국이 오히려 자국에 돈을 빌려준 나라들에 대고 큰소리친다. 빚이 너무 커지면 되레 큰소리친다는 빚꾸러기는 딱 미국을 두고 하는 말이다. 레이건 정부 시절에 태어났지만 클린턴 정부 시절에는 조용했던 적자 쌍둥이가 2001년 조지 부시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시끄럽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부시 대통령의 집권 1기때 쌓인 빚만 해도 미국 국민들이 2004년 한 해 동안 벌어들인 국내총생산(GDP)의 8.1%에 달하는 9540억 달러나 된다. 빚을 갚아도, 안 갚아도 문제 일단 미국이 빚을 갚는다고 상상해보자. 세간의 상식대로라면 빚꾸러기가 정신을 차리고 빚을 갚으려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허리띠 졸라매기'다. 미국이 빚을 조금이라도 갚으려면 해외로부터의 수입을 줄이고(경상적자의 축소), 나라 살림을 옹색하게 운영(재정적자의 축소)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허리띠를 졸라매면, 미국에 수출해 번 돈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많은 나라들은 당장 먹고 살기가 힘들어진다. 우리나라만 해도 2004년의 전체 수출 중 대미수출의 비중이 16.9%에 달한다. 중국도 미국으로의 수출길이 막히면 그동안 연간 10% 가까운 무서운 기세로 성장해 온 경제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미국경제가 붕괴되고 그 여파로 세계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경제까지 주춤하게 되면? 그 결과는 세계경제의 동반 침체다. 허리띠를 졸라맨 것은 미국인데도 전세계 다른 나라들이 함께 숨을 헐떡거려야 하는 것이다. 반대로 미국이 빚을 안 갚고 버티면? 미국은 현재의 경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빚을 져야 할 것이고, 미국 외의 나머지 다른 국가들은 미국에 꿔줄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물건을 만들어 미국에 수출해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세계경제가 굴러가면, 결국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구조화돼 미국의 빚 부담을 전세계가 대신 떠안는 꼴이 된다. 따라서 미국이 돈을 갚을 능력이 있든 없든, 미국이 빚을 갚을 의향이 있든 없든 미국의 쌍둥이 빚은 미국 하나를 망하게 하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 모든 나라 국민들의 생사가 걸린 문제다. 이것이 바로 현재 세계경제의 가장 큰 숙제 중 하나로 꼽히는 '쌍둥이 적자의 딜레마'다. 미국의 빚 〉 한국의 GDP + 스웨덴의 GDP 2004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GDP의 5.7%인 6659억 달러, 이 중 99% 이상이 무역수지 적자다. 우리나라의 2004년 GDP가 6765억 달러이니, 미국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 전체가 한 해 내내 번 만큼의 돈을 해외에서 빌려 수입품을 사들인 셈이다. 한편 같은 해 미국의 재정수지 적자는 GDP의 3.4%인 3972억 달러다. 스웨덴의 2004년 GDP가 3460억 달러이니, 미국 정부는 스웨덴 국민 전체가 한 해 내내 벌어들인 소득보다 더 많은 금액의 적자를 낸 것이다. 이렇게 미국의 정부와 국민들이 빌린 빚이 누적된 미국의 대외순채무 잔액은 2004년 말 기준으로 3조2856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 국민은 과소비의 왕…정부 살림은 엉망진창 이렇게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면, 그 빚으로 조달한 돈은 도대체 어디에 쓰였을까? 경상수지 부문에서 빚이 늘어난 이유는 간단하다. 한마디로 미국인들이 분에 넘치는 소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국민들은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각각 자국의 화폐 가치를 의도적으로 낮게 유지함으로써 덤핑 가격의 수출상품으로 미국시장을 공략한다고 불평하지만, 사실 해외의 값싼 물건을 무분별하게 사들이기를 좋아하는 것이 미국인들의 오랜 습관이다. 한편 재정수지 부문에서의 적자는 부시 대통령의 경제정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부시 정부가 가장 돈을 많이 쓴 곳은 놀랍게도 '사회안전망의 구축' 분야다. 2004년만 해도 부시 정부는 사회보장, 소득보장, 의료보장에 각각 4955억 달러, 3346억 달러, 2693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사회복지 선진국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반대다. 미국에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 불법이민자들이 넘쳐나고, 이들은 미국경제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한 미국 정부의 지출은 결코 과잉이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천문학적인 재정적자의 원인을 파악하는 열쇠는 정부의 지출이 아니라 정부의 수입에서 찾아야 한다. 부시 대통령은 집권 이래 공화당의 전통적인 경제정책인 감세정책을 고수해 왔다. 공화당이 신봉하는 공급주의 경제학에 따르면, 세금을 깎아주면 기업들이 투자를 열심히 하고 돈을 많이 벌어서, 결국은 깎아준 세금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낼 것이라고 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레이건 정부 때도 이와 같은 감세정책을 폈지만 정부 살림이 펴지기는커녕 오히려 후대에 빚만 떠넘겼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감세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부시 대통령도 이런 역사적 오류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높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같은 명분 없는 전쟁을 그만두면 그나마 정부 살림이 나아질 텐데, 이라크전이 실패로 끝난 것이 분명해진 시점에 이란이나 북한을 침공해야 한다는 소리까지 워싱턴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2004년 한 해 국방비에만 4555억 달러를 쓴 부시 정부는 최근 국방예산을 감축할 필요성이 있다고 피력했으나, 이런 발언이 현실화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런데도 미국이 안 망하는 비결은 '달러 재활용' 빚으로 얻은 돈으로 떵떵거리며 행세하는 미국이 안 망하는 비결은 바로 외국이 미국으로부터 벌어들인 돈을 다시 미국에 꿔주고, 그 돈을 미국이 받아 사용하는 이른바 '달러 재활용(dollar recycling)'에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물건을 만들어 싼값에 미국에 수출하면 미국인들은 빚을 내서라도 이를 사들인다(미국 경상적자의 발생). 미국에 수출을 해 달러가 생긴 동아시아 국가들은 그 돈으로 그래도 안전해 보이는 미국의 국채를 산다. 그러면 미국은 국채를 발행해서 꾼 돈으로 정부가 진 빚을 갚는다(미국 재정적자의 보전). 한편 정부는 감세와 사회복지, 전쟁 등으로 인해 예산이 부족하니 또 돈을 빌린다(미국 재정적자의 재발). 그렇지만 정부가 예산을 팍팍 쓰니 경기가 부양돼 미국 국민들은 계속 과소비를 한다(미국 경상적자의 재발). 선순환인지 악순환인지 분간하기 힘든 이런 연쇄관계를 '달러 재활용'이라고 한다. 달러 재활용 구조 속에서는 경상수지 적자의 발생이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해주는 덕분에 미국은 여태껏 안 망하고 잘 살고 사는 것이다. 미국은 2004년에만 5950억 달러에 달하는 국채를 발행했다. 부시 집권기에 들어 연준(FRB)이 금리인하 정책을 유지하면서 시중금리가 떨어졌기 때문에 국채를 많이 찍어냈어도 정부가 지불해야 할 이자비용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2004년부터는 정책금리를 잇달아 올리는 바람에 순이자가 약간 늘어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국채 발행을 통해 전세계의 잉여저축을 빨아들이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달러를 찍어내는 한 미국은 망하지 않는다고? 미국이 망하기라도 하면 빌려준 돈을 되받기 힘들 텐데도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국채를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바로 달러가 지닌 힘 때문이다. 전세계의 결제수단이 달러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들은 달러 보유액을 넉넉하게 유지하고 싶어한다. 특히 호된 외환위기를 경험한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이런 욕구가 강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미국이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통화인 달러를 찍어내는 기축통화국이라는 점이다. 100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찍어내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거의 제로에 가깝지만, 미국 연준은 이 지폐를 다른 국가에 빌려주고 5%의 이자만 받아도 5달러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이런 화폐주조 차익을 시뇨리지(seigniorage)라 한다. 미국이 이런 시뇨리지를 누리는 한 결코 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지금까지 전세계 국가들의 공통된 믿음이었다. 실제로 부시 대통령이 집권한 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사상 최대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경제는 망하기는커녕 오히려 순항을 거듭했다. 최근 잇단 정책금리 인상이 있긴 했지만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고 있고, 부동산 가격도 급상승했으며, 주식시장도 안정적이다. 세계 최대의 채무국에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데도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는 현상은 경제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다. 우리나라만 해도 1997년 말 외환위기가 일어났을 때 부동산과 주가가 폭락하고 금리가 30%를 넘지 않았는가?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도 최근 미국 경기가 순항하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내비친 적이 있다. 지금 미국경제가 망하지 않는 것은 누군가가 미국의 과소비를 떠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역할은 미국에 수출을 해서 번 돈을 다시 미국에 꿔주는 나라들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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