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대한민국을 증오하는 자들을 극복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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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툼을 멀리하는 것이 사람의 영광이어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 바벨의 저주 후부터 인간의 다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첫胎에서 나온 사람이 자기 동생을 쳐 죽인 것이 곧 본문에서 나오는 競爭이라고 하는 다툼이다. 그런 경쟁은 상대를 죽임으로 자기의 지분을 더 많게 하려는 비극적인 내용이며 가해자는 악마적인 인간으로 定罪된다. 우리 사회는 이런 카이니즘(cainnism)에 빠져 있는 자들이 많이 있다. 이런 가인습성에 빠지면 상대를 죽여야만이 자기가 산다고 하는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는 인식의 패턴을 가지게 되어 아주 무섭게 달려든다. 이런 자들의 머리 속에는 공생이라는 선의의 경쟁이라고 하는 말의 語義를 모르고 산다. 그런 것의 槪念조차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인이즘을 멀리하는 것이 사람의 영광이다. 이는 사람됨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인습성은 온 세상에 창궐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곧 正正堂堂한 경쟁이 없어진다는 것의 의미이다. 善意의 경쟁을 기초로 한 시장자본주의가 결국은 이런 카이니즘 곧 가인習性에 빠진 賤民資本主義로 몰락함을 말한다. 2. 카인의 습성을 버리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공생의 길을 가려는 운동은 그래서 절실한데, 한번 그런 습성에 빠지면 中毒되어 더 이상 나올 수 없는 악순환적인 패턴에 잡혀 버린다. 결과적으로 그 속에 가득한 모든 증오를 다해 상대를 죽이는 모든 방법을 다 구사한다. 결국은 죽게 한다. 그것이 이 인간 세대의 슬프고도 비극적인 드라마의 내용이다. 모든 것을 선의의 경쟁으로 풀려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敵을 어찌 하든지 죽여야 내가 산다는 강박관념의 鬪魂이 있을 뿐이다. 최후 승자가 되는 길로만 가야 한다. 가인은 동생을 죽이고 유리한다. 유리하는 길에 그는 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렴에 심판자이신 하나님께 호소한다. 하여 손에다가 표를 준다. 경쟁자를 죽이면 자기가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또 다른 경쟁자가 다가와서 자기의 것을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때문에 또 다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적을 끝까지 죽여야 내가 산다는 강박관념이 그를 그렇게 만든다. 과연 그의 머리 속에는 이웃과 더불어 사는 마음은 있는 것인가? 3. 이런 카인습성에 뭉쳐있는 있는 자는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라, 살인광기가 가득한 精神病者들로 구분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흔히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 그들의 입만 열면 국제사회의 냉정함을 역설한다. 모두를 敵國으로 여겨, 敵國을 죽여야 自國이 산다는 논리를 서슴없이 펼친다. 이런 논리를 들으면서 온 세상이 가인습성에 가위눌려 있다는 인상을 갖게 한다. 과연 타국을 죽여야 자국이 산다는 무역의 논리는 없다. 공생이 가능한 것이 무역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그런 논리를 가지는 자들은 김정일 교조 집단에서 두드러지게 보인다. 共生이 가능한 경쟁의 무역은 참으로 인도적이 무역이다. 하지만 가인의 습성적인 무역은 결국은 상대국의 무역역조를 심화시켜 무역의 속국으로 만들어 가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 이런 것을 운영하는 자들이 모두가 다 가인습성 陶醉되어 있고 그런 자들을 정신병자들로 분류할 필요가 있다. 그런 자들이 있는 한 세계의 공생의 관계를 전혀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런 자들은 나폴레옹 콤프렉스(Napoleon complex) 카인콤플렉스 (Cain complex)의 성장기에 가질 수 있는 心理的인 반응들 속에 성장한다. 4. 그런 콤플렉스들이 결국은 카인습성으로 고착된다고 하는 成長背景을 짚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결국은 敵을 죽여야 목표를 내 것으로 삼을 수 있다는 심리이기 때문에 이런 심리를 가지면 늘 殺意에 젖어 살게 된다는 것은 避할 수가 없게 한다. 남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없다면, 또는 국민들에게 정당한 노력을 다해서 자기의 진가를 어필하고 공정한 선거관리를 통해서 선의의 경쟁을 한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영광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곧 자기의 영광이 되고 마침내 권력의 正當性을 갖게 되어 강력한 리더십이 형성이 되는 것으로 본다. 하지만 지금의 게시판에 나타나는 모든 선거 운동은 카인습성에 걸려 있는 자들을 선거운동원으로 모집 雇傭하여 전진 배치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그만큼 전투적이고 호전적이고 살기가 번뜩이는 게시판이다. 같은 국내의 사람들끼리 그렇게 적을 삼아 공격하는 것은 전쟁의 행위나 다름이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전쟁을 통해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인가? 競選이란 善意의 競爭이고, 그런 것은 유권자의 자유의지에 속한 것이다. 5. 상대를 다 까발려서 죽여 버리게 하면 그것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닐진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몽땅 그 사람의 문제점 때문에 다 망쳐 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廢人 되게 만들어 이기는 것도 殺人行爲다. 그런 무참한 인격살해를 만들어 내는 선거 판에 대통령도 가세하여 네 번씩이나 선거법을 위반하고 있다. 그도 역시 전쟁과 같은 상황으로 국내 선거 판을 휘 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 앞으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지기도 한다. 이런 것은 모두가 다 가인습성에 빠져 사는 자들임을 스스로 보여주는 眞面目이다. 저들은 결코 공생이라는 고 하는 것은 모르는 자들이다. 모두를 적으로 삼아야 비로소 인심이 되는 類 들이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적개심을 드러내고 무차별 죽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 자들이 있는 한 세상은 고통으로 요동치게 된다. 그런 자들이 10년 동안 이 나라를 망쳐 먹었다. 대한민국을 적으로 삼아 죽여 버리고 망쳐 버리고 자기들의 세상을 꿈꾸는 김정일 주구들의 邪惡한 행태이다. 6. 이런 세력과의 선거 경쟁에서 무엇을 이길 수가 있을 것인가 하여, 같이 카인습성에 철저한 자들을 몰아서 대치시킨다면 결국 정권을 잡아도 이런 정신병적인 성격의 사람들이 국가를 운영한다면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하여 또다시 수많은 고통으로 요동칠 것이 불을 보듯 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지금의 국내의 문제는 敵을 죽여야 내가 산다는 논리가 아니라, 카인습성을 극복하는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생의 논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여러 내용으로 구상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저들이 정권을 잡으면 결국 피를 본다고 하는 被害妄想이 결국은 카이니즘에 안주하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무엇이 가인습성을 극복해낼 수가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자는 말이다. 그런 殺人狂氣로 뭉친 투사는 결국 자유민주주의 세상에서 참다운 일꾼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자는 말이다. 이제 모당의 후보들은 앞으로 다가오는 가인들의 살인적인 공격을 막아낼 준비를 해야 한다고 본다. 7. 그런 것이 있을 수 있게 된다면 분명하게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그런 내용을 깊이 있게 살펴서 우리의 방법을 고찰해야 한다고 본다. 정치라는 것은 그렇게 정적을 무참하게 죽여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정당한 것으로 봐서는 안 되는 비인도적인 것이고, 비인권적이다. 그것은 국가 미래를 가인습성에 빠진 자들에게 운전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본다. 때문에 이런 것은 반드시 제거되어야할 사상임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그런 것을 심도 있게 생각하는 것은 지도자의 덕목이다. 때문에 選擧過熱이라고 하는 말에 덮여질 수 없는 국가 미래가 걸린 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을 죽여야 내가 산다면 그야말로 살인자들의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인습성에서 벗어나는 길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국가 전체를 살인광기로 가득한 세상을 열어 가는 지도자가 있다면 이는 정말 정신병자들이다. 이제 이런 정신병자들을 국가의 운전대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선택의 중요성은 우리 후손들의 미래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8.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한 세상을 열고자 하는 것은 利他的 사랑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利他的인 사랑을 가지는 자들은 결국은 그런 이타적인 사랑을 통해 이웃을 살려주는 선의의 경쟁을 하게 된다는 이점이 가득하게 된다. 그야말로 인센티브가 가득한 세상을 열게 된다는 면에서 보다 질 좋은 公僕들의 충성을 기대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때문에 우리는 이웃 사랑을 주 목표로 가는 자들의 세상이 곧 모든 국민이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 된다는 말이다. 그런 것은 곧 자유민주주의의 특색이고 자랑이라고 본다. 때문에 우리는 이런 기쁨이 넘치는 세상을 여는 것은 카이니즘이 없는 세상에서 사는데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가득한 거리에는 모두가 행복을 共有하게 된다. 그런 자들이 없기 때문이다. 서로가 공생하는 것의 내용이 공생을 이루며 사는 것의 내용이 그런 사랑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상식은 그런데 현실은 저 멀리 있다. 그렇게 저 멀리 있는 것은 현실의 아픔이다. 그런 아픔을 극복하는 것은 문제가 되는 세상이다. 우리가 볼 때 대한민국의 미래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때문에 우리는 이웃 사랑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본다. 9. 이런 훈련은 하루 이틀의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본다. 오랜 시간을 해야 한다고 본다면 결국은 그런 것을 통해서 미래를 열어 가는 것이라고 본다. 그것이 곧 북한주민과 우리의 不遇한 이웃을 恒久的으로 돌아보는데 있다. 미래는 이웃 사랑이 충만한 자유대한민국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대한민국은 분명한 미래를 가져야 비로소 자유대한민국만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인습성을 가진 북한의 김정일의 수령독재가 남아 있는 한 결국 이 나라의 慘禍는 되풀이 될 것이라고 본다. 그런 慘禍는 다름이 아닌 전쟁이 연속이다. 그런 전쟁은 카인습성을 밥으로 삼아 먹고 사는 자들이 습성이기 때문이다. 자유대한민국의 미래는 북한주민의 해방을 힘써 도모해야 하는데 있다는 것을 거듭 말해도 좋을 것 같다. 자유대한민국의 미래는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가득한 자유대한민국을 만들려면 우리 心理 중에 있는 카인습성을 다 몰아내야 한다는 것에 분명한 것이고 그런 것은 북한 주민의 苦痛을 돌아보고 그들을 김정일의 수령독재의 손에서 解放해내는 길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http://onlyjesusnara.com/ http://korea318.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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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짝. 짝.
훗. 훗.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