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선전선동에 놀아나는 냄비근성 치유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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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투며 성내는 女人과 함께 사는 것 보다 曠野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사람은 어려서부터 가지고 있는 기본을 통해 표현을 하고 산다. 선천적인 조건과 후천적인 조건이 서로 맞물리는 가운데 자기 식의 표현이 나온다. 사람은 혈기를 발생시켜야 만이 재미를 볼 수 있다고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면 언제든지 이익을 위해 다툼을 일으키고 혈기 또한 발생하게 한다. 그런 사람에게 혈기는 언제든지 이익을 수탈하기 위한 방법이고 수단임을 우리는 관찰할 수가 있다. 이런 것으로 터득되는 사람은 평생 그런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이익을 발생시킨다고 하는데서, 먼 이익이 아니라도, 장구한 이익이 아니라도, 우선 눈앞에 이익이라도 결과에 후회하면서 단기성 이익에 눈이 밝은 것을 기초로 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 혈기라고 본다. 장구한 이익이나 장래의 이익을 보는 눈은 없고 눈앞에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저들의 모습이다. 여인네들 중에 이런 단기성 눈앞에 있는 이익에 눈을 뜨고 그것을 얻고자 다툼을 일으키고 혈기를 부린다는 것은 남정네들의 인생사에서 늘 겪고 사는 내용일지도 모른다. 2. 다툼을 좋아하고 혈기를 시시때때로 구사하여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사는 여자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가는 국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하자는 말을 하고 싶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사람의 습성은 편집적인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하는 것에 있다. 그런 것은 보이지 않게 그를 가두는 감옥과 같고 족쇄와 같은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그런 삶을 늘 구사하고 그런 것으로 사는 것이다. 따라서 혈기와 다툼으로 사는 것도 그 남자 그 여자가 사는 방식이라고 한다. 이를 그 여자가 사는 방식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 여자의 요리조리하는 응용력의 한계를 의미한다. 그런 방법 밖에 없는 여자는 결과적으로 세상을 힘들게 하는 광야 같은 구실을 할 뿐이라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광야에서는 어떤 식물도 살 수가 없다. 없게 한다. 그것이 광야라고 하는 것의 결과적인 산물이다. 때문에 광야가 가지고 있는 능력 곧, 주변머리가 있다면 모두를 죽이는 것뿐이다. 인간의 속에서 나오는 혈기라는 것이 그렇게 무서운 결과를 부차적으로 가져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3. 그런 여인의 주변에 광야같이 살기 힘든 세상이 결과적으로 발생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푸른 초장과 푸른 숲이 있어야 산다. 사람은 안식이라고 하는 평안의 양식을 가져야 비로소 경제적으로 부자가 될 수가 있다. 건강으로도 중요하고 사람이 그런 평안을 잃어버리고 패닉상태에 빠지면 오히려 공간지각능력이 현저하게 둔화되어 자멸수를 찾아 간다고 한다. 자멸수라는 것은 응용력의 한계를 인해 발생하는 무서운 결과를 의미한다. 때문에 항상 어느 때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패닉에 빠지지 않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훈련에 익숙하지 못한 자들은 급한 궁지에 몰리면 자멸수를 선택하고 마침내 무서운 결과에 삼켜지는 것이다. 때문에 혈기를 부리는 자들의 심리는 일종의 패닉의 상태와 같은 궁지에 몰린 여건을 갖고 산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런 자들은 아주 무서운 일을 당하면 누구보다 더 먼저 자멸수에 빠져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소에 패닉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고 눈앞의 이익을 위해 혈기부리며 살았기 때문이다. 4. 위기관리를 하는 것은 국력의 한 부분에 해당한다고 본다. 사람은 위기를 요리조리 다뤄가면서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위기를 혈기 내는 방법 하나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곧 그런 결과를 가져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응용력의 차이가 바로 그런 것을 의미한다. 무슨 문제든지 그것을 어떻게 요리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게 하기 때문이다. 같은 밀가루를 가져다가 빵을 굽는 요리사가 있다면, 거기에 요리조리하는 기술에 따라서 명장이라고 하는 지체 높은 기술자가 나오기도 하고 형편없는 빵쟁이라고 하는 소리를 듣게도 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응용력의 의미는 이웃과 더불어 사는데 최고의 섬김의 내용에서 나온다는 것과는 별개로 생각하는 것 같다. 돈을 위해서 어떤 유형무형의 이익을 위해서 다양한 응용력의 개발을 서두르는 것을 보게 한다. 하지만 소비자는 어디까지나 인간이라고 볼 때, 이웃을 섬기는 진정성이 그런 응용력의 다양성을 밝혀주고 또한 그것들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도록 공평의 접점으로 인도해 가는 것이다. 5. 인간에서 혈기를 부리는 것은 심판 받을 죄라고 예수님은 지적하셨다. 이는 이웃의 평안을 깨고 이웃에게 패닉에 노출되게 하는 경향으로 가게하고 세상을 삭막하게 하는 광야를 만들어 가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국가위기에 필요한 살길이라고 하는 구국의 지혜를 찾아내는데 방해를 준다는 것에 있다. 전국적으로 이런 혈기로 사는 여인들이 30%만 되어도 국가 위기 시에 중대한 어려움을 가져오는 패닉을 몰고 올 것으로 내다보아야 한다. 그만큼 혈기를 자제하고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하는 것과 금상첨화라고 하는 것을 최대한 살려 내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모두의 이익을 삼아 내려는 슬기로운 여인들이 필요한 것이다. 더욱 지금과 같이 국가 위기 시에는 여인들이 가정에서 혈기보다는 슬기로운 요리 조리로 광야보다는 행복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결국은 자기에게 다가오는 재앙 시에 패닉에 빠지지 않게 하는 구명줄이 되게 한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그런 여자들만이 가지는 것이 있게 된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고 하는 속담을 이루게 한다는 것 바로 그것이다. 6. 여인들이 혈기에 의존하면 모든 것이 광야가 된다. 아주 어려운 일에 빠지면 집단 최면적인 窮餘之策 자멸수에 빠지게 된다. 이런 것은 선전선동으로 사는 자들에게 아주 좋은 먹이감이라고 하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여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혈기로 인해 겪게 되는 것은 선전선동에 늘 노출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그만큼의 응용력 곧 사고의 다양성의 상상력의 부재로 인해 겪게 되는 궁여지책 자멸수가 바로 그것이다. 때문에 세상은 슬기로운 여인과 어리석은 여인이라고 하는 결과적인 구분이 나오게 된 것이다. 세상은 敵이 있고 主敵이 있고 악마가 있다. 이런 것들은 모두가 인간의 행복과 재산과 자유와 생명을 죽이고 도적질하는 강도들이다. 이런 것들이 늘 나타나서 선전선동하면 부화뇌동하는 것이 꼭 냄비가 들끓는 것과 같다. 이런 냄비근성들이 다 혈기로 밥 먹고 사는데서 나온다고 본다. 깊은 맛이 없는 것이 그 중요한 이유이다. 가마솥의 문화와 냄비의 문화의 차이점에서 여인네의 인내심의 한계나 슬기로움의 유무는 분명하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7. 지금의 시대는 여자남자를 구분하는 것은 그야말로 성차별로 보인다. 그만큼 여인들이 남자보다 더 뛰어난 부분이 많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때문에 여성들이 사회진출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될 전망이다. 남자고 여자고 혈기로 밥 먹고 사는 것은 그쳐야 한다고 본다. 그런 것이 있는 한에는 국가 위기 시에 국가적인 패닉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마솥 문화가 아니라 냄비 아니면 프라이팬 문화시대에 살고 있는 여인들의 화를 참는 인내력의 한계는 분명히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런 문화 속에서 과연 적의 선전 선동에 잘 넘어 간다는 것의 한계성을 가지고 있을 것을 구국의 지혜로 삼아야 할 것으로 본다. 지금은 가마솥의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거의 다 프라이팬 아니면 냄비의 문화 속에서 사는 여인들이라고 하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즉석에서 어떤 이익을 뽑아내는데 슬기로운 모양은 있으나, 가마솥 같은 내용으로 이익을 도출하는 것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8. 때문에 예전에 다가온 국가적인 위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가마솥문화는 지금의 프라이팬문화가 어떻게 국가에 공헌을 하게 할지는 모르겠으나,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선전선동에 놀아나는 것을 보니 심히 우려되는 부문이 많이 보이고 있다 하겠다. 한국내의 모든 여인이 각기 가지는 인내의 한계를 가질수록 국가는 위기를 관리치 못하게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때문에 혈기를 부리지 않고 사는 슬기를 터득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혈기를 부리지 않게 하려면 남을 한없이 불쌍히 여겨주는 눈이 떠져야 한다. 이웃의 모든 문제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담아내고 배려하고 고려하는 노력이 없는 여자들은 늘 혈기에 빠지기 때문이다. 사실은 이런 것을 위해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예수님의 사랑을 따라서 살도록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아주 질 좋은 이타적 사랑의 본질과 그 분량을 공급받게 된다. 때문에 어려서부터 아이들을 양육할 때, 꼭 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핸디캡이 있는 불우한 이웃들을 진정성으로 섬기는 이웃 사랑의 연습에 있다고 본다. 9. 북한주민은 바로 스스로 자유를 찾아 낼 수 없는 핸디캡 속에 포로가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분들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 대가를 치룰 것이라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남한의 모든 여자들이 혈기로 사는 습성이 강하게 되고 결국 거친 여성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거친 여성들이 많아진다고 하면 그것은 광야가 된다는 것 다시 말해 삭막해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을 또는 가정을 삭막해지지 않게 하려면 남을 불쌍히 여겨 고려배려 해주는 눈빛이 강해야 한다는 것과 남의 부족한 부분을 짊어져주는 긍휼과 자비가 충만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과연 북한주민을 돌아보는 일에 게을리 한다면 결국 선전선동에 잘 속고 움직이는 냄비근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국가 위기 시에 국가를 아주 망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고 그런 것을 감안하지 않는 구국의 치료사들은 이를 감안해야 한다는 것을 꼭 강조하고 싶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을 악마 김정일의 손에서 건져내기 위해서라도 북한주민의 혹독한 고통을 해방하는 일에 전심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이 나라를 세계민족위에 높이 빛나는 민족으로 만드는 여인의 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http://onlyjesusnara.com/ http://www.korea318.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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