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베이징(북경)발 한국 보고서 2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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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간도의 조선족들의 정체성은 어떤가요? 기사에서는 한국과 중국이 축구시합을 하면 40대(혹은 50대) 이상은 한국을 응원하고 30대는 어리둥절하고 10대와 20대는 중국을 응원한다고 들었는데요." 연변대 교수(조선족): "예전 축구시합 때 식당에서 (우리가) 한국 응원하니까 옆에서(중국인들로부터) 맥주병이 날라오고 그랬습니다. 재미있었지요. 그 날 머리가 터지도록 싸우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한국학 포럼에서 만난 연변대 교수와 나눈 질의응답의 일부였다. 중국은 최근 몇 년간 공산당 주도로 학술 논문이란 미명하에 만주의 동북 3성에 관한 역사 논문들을 모집하였고, 이런 논문들의 형태로 마다정과 리성을 위시한 현 중국 역사학자들은 고구려와 발해(대진국)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작업을 일단락지었다(동북공정의 의미). 그것은 현재의 동북 3성이 중국 땅으로 편입되어 있기 때문에 소수의 학자들을 제외한다면 동아시에 대한 지식이 없는 세계인들에게도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계속적인 역사 조작에 들어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인들은 일본의 '난징 대학살' 부인에 대해 일본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뉴스위크나 타임지에 강력한 비난의 글을 쓰고 있는데 정작 자신들의 정부가 고구려와 발해사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데도 침묵하거나 오히려 학자로서의 양심을 팔아 정부의 역사 위조에 앞장서고 있으니 지식인의 양심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더욱이 중국이 북한 탈북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주: 예컨대 중국 당국의 가혹한 북한 탈북자 정책에 기인하여 세 탈북자 모녀가 뿔뿔이 흩어져 중국인들과 강제 결혼을 당했는가 하면, 어떤 탈북 여성은 중국인으로부터 도망치다 잡혀 옷이 다 벗겨진 채 오토바이에 끌려가는 것이 목격되었고 이에 대한 눈물어린 증언이 2006년도에 미국에서 있었음) 아는 사람들은 중국은 아직도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필요에 따라 철저히 짓밟는 공산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 한 가지 구분할 점은 있다. 그것은 국제화 시대의 대인관계에 있어서 전체로서의 국가 혹은 그 지도부와 개인과는 구별을 요한다는 점이다. 가령 필자가 뉴욕에서 길을 헤맬 때 친절하게 안내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집과 직장 주소까지 가르쳐 주며 숙소가 없으면 와서 묵으라고 권했던 한 중국 노인과의 만남은 필자가 지금까지 가져온 중국인들에 대한 불신을 누그러뜨리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동북공정의 연속선상에서 중국이 다음 동계 올림픽을 백두산에서 열겠다는 저의와 그들 스스로 동이족이라고 고백한 배달국의 치우천왕을 이제는 자신들의 사당에 모신 이유는 한국의 경제적 번영(주: 최근 후진타오 주석을 비롯한 요직의 공무원들이 새마을 운동을 학습하였고 3년간 3만 명, 장기적으로는 35만 명의 공무원을 한국에 파견하여 학습시킬 계획)과 한류의 중국 대륙 석권, 곧 예상되는 한국의 북한 흡수 통일로 이루어질 정치군사 대국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북의 분열을 틈타 비합법적으로 차지하고 있던 간도를 반환해야 된다는 위기감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에 대해 2006년 8월 4일자 아시아 월스리트 저널은 이렇게 분석하고 있었다. '(중국의 백두산 공정은) 통일 한국이 간도 반환을 주장할 경우에 대비해 국경을 확보해 두는 데 목적이 있다.' 1909년 조선 정부와는 상관없이 일제는 청나라로부터 만주철도부설권 등 여러 이권을 얻는 조건으로 한민족에 의해서 개간되고 주권이 행사되었던 간도 지방을 청나라에 넘겨주었는데 국제법상 강제로 주권을 침탈한 나라가 맺는 조약은 아무런 효력을 발생하지 않으며, 더욱이 중국과 일본이 1952년 맺은 양국 간 협정에서 '1941년 12월 이전에 체결한 모든 조약, 협약 및 협정을 무효로 한다'고 명시하였다. 분명 증거는 충분하다. 예컨대 간도에 대한 미국 나스닥 소유의 'answers.com'의 의견은 이러하였다. '...이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원산 대목구(대목구란 교구가 생기기 전 단계로 각국의 행정 구역과 통상적으로 일치함)는 한국 북부뿐만 아니라 간도를 포함한 만주 동부 양쪽에 걸쳐 있었다. 이는 한국 북부가 만주라는 역가설의 증거가 되기보다 만주 동부가 한국이라는 증거가 된다.' 이제 간도를 되찾아야 되는 이유를 살펴보면, 첫 번째로 간도땅은 일제가 1909년 청나라에게 넘겨주기 전까지 배달국과 단군조선, 고구려와 발해의 중심무대로서 수천 년 동안 한민족의 생활무대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홍익인간과 재세이화를 모토로 배달국의 1대 환웅이 그곳 백두산 지역에 도읍을 정한 이래 단군조선과 이어지는 고구려의 오랜 삶의 터전이었으며(주: 와 를 위시한 여러 사서들은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백두산 지역에 신시(도읍)를 정한 이는 1대 단군 왕검이 아닌 그 전 왕조인 배달국의 1대 환웅이었음을 보여주며 이러한 전통은 고구려에도 이어져 을지문덕 장군의 경우 신시의 전통에 따라 매년 10월 3일 삼신-삼위일체 하느님-께 예를 올렸음), 더욱이 조선과 청나라가 병립하던 시기에 무주공천이던 간도땅을 먼저 차지하고 개간하여 오늘에 이른 것은 바로 한민족이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그곳에는 아직까지도 한국어와 한글을 쓰고 같은 피를 나눈 이백만 동포들(동북 3성 거주 한인수)이 자치주를 이루며 조국과의 재결합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중국 또한 '조선족자치주'라는 어중간한 형태로 본토와 분리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간도 회복은 남북통일이 이루어지는 순간 간도에 대한 국제법상 시효 만료 시기인 2009년이 지나기 전에 추진해야 될 또 하나의 역사적 과업으로 남아있다. 앞서 '워싱턴 한국 보고서'에서 고찰하였듯이 이 때 한국은 경제적으로는 이미 G7, 군사적으로는 상임이사국 수준, 문화적으로는 아시아 중심 문화인 한류의 나라, 역사적으로는 아시아의 패권 국가였던 단군조선과 고구려의 법통을 잇는 통일 한국으로 변모되어있을 것이므로 중국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으며 영국이 백 오십 년 동안 조차했던 홍콩을 반환한 것을 상기시키며 백년도 채 되지 않은 간도의 반환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국제 외교의 조율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서 중일간 간도협약의 무효성을 인정한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이 주는 이점도 이용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순서에 따라 먼저는 개개인과 기성 사학계의 중화사상과 식민사관 청산, 두 번째는 중대사를 앞두고 있는 남한 내에서 지역을 초월한 일치, 세 번째는 남북한의 역사적 통일, 끝으로는 한민족의 유구한 삶의 터전이며 19세기에 한민족이 먼저 차지하고 개발한 간도와 그 땅의 조선족을 끌어안는 권토중래의 순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역사상 처음있는 대국화의 길이 아니라 한민족이 천년 동안 잃어버렸던 단군 조선과 고구려의 영토와 영광을 되찾는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 한국이여, 옛 땅 간도여, 한민족이여! *상세한 내용은 로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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