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장편소설<삶은 어디에>22회 "애들은 어떡하고. 어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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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alonk.com/) 에 연재하는 장편소설입니다. ==================================================================== 장편소설 삶은 어디에 (제22회) 리지명 오후 다섯시다. 이제 열차가 역에 들어서면 치밀한 단속 사업이 벌어지게 된다. 국경의 관문인 이 역을 통과하기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다. 이제 이 역에서 어떤 가슴 아픈 일들이 벌어질른지, 분명 빼앗고 빼앗기지 않으려는 아우성 속에 또 한 차례의 인간 비극이 연출되지는 않을른지. 사람들의 눈길은 그 무슨 왕성마냥 우뚝 솟은 역사 의 회백색 건물로 불안스럽게 옮겨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극은 열차 바깥에서가 아니라 안에서 먼저 발생했다. 장신미가 가지고 가던 (뱀술)을 쥐고 이리저리 굴리며 5분간의 시간 여유를 준다고 엄포를 놓던 리주열 상사가 그만 배를 그러쥐고(움켜쥐고) 그 자리에 쓰러진 것이다. 신미가 그건 그렇게 마시는 것이 아니라며 그렇게도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네까짓 것 그래봐야 날 어쩌지는 못할 것이라는 뱃심 속에 호기를 부려 병 뚜껑을 떼어버린 채 리주열이 뱀 술 한 모금 마신 것이 그만 큰 일을 빛어낸 것이다. 장신미도 영문을 몰라 쩔쩔매다 돌아갔다. 그러나 허우대 큰 사내가 흰 거품을 뿜으며 비틀거리다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지고 눈동자가 돌며 흰빛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고 사태의 엄중성을 짐작할 수 있었다. 리영식이 준 뱀술, 그것은 비상(독약)을 풀어 넣은 독주였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맴돌이치는 장신미 앞에 뛰어든 것은 일의 정황을 살펴보던 한태규였다. "빨리." 신미를 문 밖으로 먼저 내보내고 뒤따라 나오려던 한태규는 다시 되돌아 서서 신미가 꺼내놓은 물건들을 거두었다. 그 다음 바닥에 나뒹구는 술병을 창문을 열고 집어 던진 다음 눈이 까뒤집힌 상사의 추한 모습을 다시 한 번 살펴본 후 천천히 승무원실을 빠져 나왔다. 이직은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듯 모든 것이 조용했다. 한태규는 재빨리 신미를 이끌고 일반 칸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일반 칸은 발 들여놓을 자리 하나 없이 사람과 짐들로 빼곡하다. 하지만 지체할 수는 없었다. 욕설과 비명소리를 한꺼번에 들으며 태규는 신미와 함께 사람 속을 뚫고 한 걸음 한 걸음 새여(끼어) 들었다. 침대칸에서 그 칸 열차원과 짝자꿍이를 치며 이제나 어제나 리주열의 소식을 기다리던 용녀가 더 참지 못하고 다시 살금살금 돌아 온 것은 모든 일이 다 끝나버린 뒤였다. 원래 둘이 합작한 계획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큰 장사꾼인 장신미에게서 무엇인가 꼭 큰 물건이 나올 줄 알았다. 그래 단속해 놓고 시간을 끌다가 백암역에 도착하면 무작정 끌고 역대합실에 붙어 있는 단속실로 끌고 가는 것이었다. 그때 웅녀가 나서서 리주열에게 보증을 서고 다시 열차에 태우는 것이다. 그러면 장신미가 고마워서라도 무엇인가 웅녀에게 내여줄 (보답할) 것은 당연하다. 그때 리주열이 다시 나타난다. 그 다음 한바탕 웃고 친구가 되는 것이다. 허구 많은 세월 열차에서 살다시피 하는 용녀나 리주열이 신미 같은 큰 인물을 알아서, 친해서 나쁠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었다. 이것이 웅녀의 기발한 착상이었고 그 즉시 집행에 들어갔으나 결과는 너무나도 비참하게 끝났다. 물론 거기에는 군인이라는, 그리고 완장 두른 경무원이라는 특권이 준 리주열의 안하무인이 결정적 사고 원인이 된 것만은 사실이다. 승무원실 문 밖에서 서성거리며 안의 동정을 살피던 용녀가 하두 조용하기에 또 그짓을 하는게 아니야, 하는 욱한 생각으로 문을 와락 밀고 들어갔을 때 그만 처녀는 악 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다시 뛰쳐나왔다. "사람 죽었어요. 리주열이, 경무원 상사 동지가 죽었어요." 그러나 그 소리에 동조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열차 칸 단속에 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열차 안전원 경무원들 그리고 여객 전무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 다 백암역에 열차가 들어서야만 되돌아 올 수 있는 것이었다. 그가 침대칸 열차원과 함께 떨리는 다리를 겨우 이끌고 다시 승무 원실 앞에 나타났다. 아무도 없이 조용하다. 해당 일꾼들이 아닌 객실의 손님으로서는 알아도 모른척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부지기수로 죽어 나가는 이 시대의 비극 속에서 단련된 사람들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두 처녀는 서로 마주보며 차마 들어가지는 몫하고 안타깝다는 듯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뿐이었다. 열차가 긴 기적 소리를 울리며 백암역 구내에 들어섰다. 승강대까지 헤엄치다시피 인파 속을 뚫고 나온 한태규와 장신미가 역 홈에 내려섰다. 백암역에서 내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때가 7월이라 고지대 사람들이 겨우내 묻어 두었던 감자 움을 터 칠 한창 때인 만큼 생선 찐미와 바꾸어 가려고 그러는 것이다. 한태규는 밀리는 사람들의 물결 속을 빠져 으슥한 건물 구석쪽으로 신미를 데리고 왔다. "도대체 어떻게 된게야?' 다급한 한태규의 물음이다. "저도 모르겠어요. 뱀술 한 모금 마시고 1, 2분 좌우에 그렇게 됐어요." "1, 2분? 흥. 1, 2초겠지. 분명 리영식이 준 것이지?" "네, 이번 마지막 밀매를 하는데 수고했다면서 돈과 함께 준 것이었어요." 신미는 아래의 이빨을 딱딱 소리가 나도록 마주치며 부들부들 떨며 대답했다. 그러나 한태규는 이런 일이 일어 날 것을 미리 예견하기라도 한 사람처럼 태연한 기색이다. "뭐라고 말하면서 주던가?" "강기수 오빠에게 가져다 주라면서. ㅎ시에 도착하면 저녁상에 올려 자기가 주는 상이라고 말하라고 했어요." "흠‥‥‥ 그래." 웬일인지 그 순간 한태규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어렸다가 곧 바로 사라졌다. 신미는 당장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은 심한 마음의 충격에서부터 어떻게 자신을 건질지 몰라 안절부절 어쩔줄을 모른다. "떨지 말라구 이미 엎지른 물이니까. 그리고 신미가 죽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흥. 모두를 죽여 없애려 했겠지 결국 제 아들부터 먼저 죽였군. 비극이지." "예? 아들이라뇨. 누가 말인가요?' 신미는 한태규의 냉소가 흐르는 얇은 입술을 놀라운 표정으로 지켜 보았다. "독술을 먹고 죽은 자가 누군지 알아 리영식 부대장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야." 억양이 없는 조용히 울려 나오는 한태규의 말은 너무나 뜻밖이다. "예? 아니 그럴수가.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기가 막힌 신미는 쩍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원래는 호위국에 있었지. 내력을 믿고 그랬는지 방자하기 그지없는 녀석이었어, 생활제대를 꺽을 만큼 군률을 어긴 놈이어서 할 수 없이 지방 군부대로 옮겨 놓았는데… 흥, 아무리 그렇다 해도 리영식이 제 아들을 일반 부대에 보낼 순 없었겠지. 그렇게 옮겨 온 것이 길주 경무부였는데 부전자전이라고 그 버릇이 어딜 가겠어. 신미, 내가 말했지. 이럴 때일수록 정신 똑똑히 차려. 자책 따윈 집어치워. 살아 남는게 이기는 자야. 리영식은 그 술 한병으로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 한게야." "예? 두 마리 토끼?" "그래. 바로 강기수와 신미지. 아직두 모르겠나?" 무엇인가 떠올랐다. 신미는 ㅎ시 압록강변의 그 자그마한 집에 이르면 분명 저녁상을 차리고 강기수에게 그(뱀술)을 부어 놓았을 것이다. 강기수는 어떤 경우에도 단둘만이 있을 때 혼자 술 마시는 법이 없었다. 신미도 같이 마시자고 권한다. 따라서 신미도 안 마실수가 없는 것이다. 그 결과는…… 신미는 끝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왜? 무엇 때문에 아무리 포악한 리영식이라 하지만 지금껏 부대를 위해 아니 자기를 위해 위험천만한 사선의 길을 헤쳐온 수하 사람들을 그렇듯 참혹하게 죽이려 했을까,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신미로서는 자기의 신상에 이렇듯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졌으리라는 생각은 꼬물(조금도)도 못해 보았다. 무서운 현실이었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자기 자신도 살인자가 되고 말았다. 자기 손에 쥐여진 술 한 병. 그것이 사람을 죽이는 무서 운 독주였을 줄 꿈엔들 생각하지 않은 신미였다. 이제는 어쩌면 좋단 말인가. 너무도 억장이 막힌, 참상을 눈앞에 두고 신미는 어찌할바를 모르고 몸부림 칠 뿐이었다. 벌써 상급차 바곤 쪽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일이 지금 열차 지붕위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백암역 단속반에서 쓸어 나온 검열성원들에 의하여 지붕 위의 모든 사람들이 열차가 멈추어선 홈에 내려서고 있었다. 오늘은 예전에 볼 수 없었던 대검사가 실시된 듯 싶다. 차 지붕 위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 오늘은 웬일인지 수십명의 검 열원들이 모두 나와 모든 차 바곤을 한칸씩 맡아서서 모두 내려오라고 야단법석이다. 벌써 태반의 사람들이 내려 왔다. 내려오는 족족 가진 짐과 몸을 수색당한다. 그런데 다섯 번째 바곤 위에만 몇 사람이 실갱이질 하는 모습이 보인다. 바로 문기네 일행이다. 아까부터 도끼눈을 한 안전원 특무상사가 빨리 내려오라고 독촉 을 불같이 하였으나 길재의 등골에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바닥에 붙어 버린 듯송영숙이 도무지 내릴 념(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주머니 이러지 마시고 내립시다. 아무리 봐도 이런다고 저 사람들이 그냥 넘길 것 같지는 않은 듯 싶은데. 네? 아주머니." 문기가 그녀의 팔을 거들며 간절한 눈빛으로 권유했으나 송영숙은 여전히 심어놓은 말뚝이다. "아주머니……" 길재가 달려들어 잡아 일으켰다. "놓으세요. 내 걱정말고 다들 내리세요." 송영속의 기색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야. 너희들 정말 빨리 내려오지 못하겠어? 이 새끼들 왜 말 같지 않아?" 젊은 도끼눈이 발을 구르며 악을 썼다. 문기의 가슴 한 구석에 무엇인가 출렁 떨어진다. 차 바곤 아래에서 짐과 몸수색하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송영숙의 얼굴 표정이 못 견디게 가슴에 걸렸다 하지만 내리지 않겠다는 여인을 억지로 끌고 내릴 수는 없었다. 문기, 길재, 그리고 마윤이 내키지 않았지만 하도 악을 쓰는 도끼눈의 성화에 못 이겨 할 수 없이 버티고 앉아 있는 여인을 그대로 두고 내려서는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들. 뭐 엉덩이에 쇳덩이 달아맸어. 그런데 야 넌 안내려?" 도끼눈은 덩실하게 앉아 있기만 하는 송영숙을 향해 또 한번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송영속의 눈이 뿌명계 흐려지고 있었다. 지금 그의 눈에는 독을 쓰며 소리치는 그 특무상사보다는 내려서자 수색당하여 가진 물건을 압수당하고 울상을 짓는 사람들의 모습만이 안겨 들었다. 여인은 자기 허리에 띠고 있는 물건을 두 손으로 어루쓸어(어루만져)보았다. 끝내 닥쳐 올 것이 왔다. 그와 함께 자기 운명의 끈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끊어지고 있었다. 이것을 빼앗기면 자기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터리가 된 다. 속빈 쩝데기다. 경무복 입은 저 사람들은 자기에게 남은 실줄기(실낱) 같은 희망마저 무참하게 짓밟으려 한다. 굶고 지쳐 쓰러진 불쌍한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가져 갈 것이 없는 자기. 아, 너무도 야속하다. 세상 인심이 너무도 모질고 야박스럽다. 비로소 여인은 이제 더는 헤여 나올래야 나올 수 없는 깊은 수렁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자기의 머리 위에 살갑게 당겨주는 따뜻한 구원의 손길이 아니라 짓밟아 더 깊숙이 밀어 숨지게 하는 무지한 발길이 닿아 있음을 의식했다. 여인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앉은 채로 두손으로 죽어도 가지고 가고 싶은 귀중한 물건을 부등켜 안았다. 그리고 마치 넋나간 사람처럼 임신부가 배속에 있는 아이에게 조용히 속살거리 듯 무엇인가 중얼거렸다. "개 쌍년. 아니 저건 도대체 어떻게 빛어놓은 물건 짝이야. 도대체 뭘 믿구, 야. 올라가기 전에 정말 안 내리겠어?" 도끼눈이 바락바락 악을 쓰다가 더 참지 못하겠다는 듯 힝(휭)하고 이음짬(틈)을 짚고 지붕위를 향해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오르면서도 그는 독을 쓴다. 이렇게 올라가면 내 네 년을 결코 용서치 않을 테다. 더러운 년, 방자한 년, 검열관을 알길 무얼로 알아. 대체로 단속 원들은 열차 지붕위까지 오르기 싫어한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이미 길들여질 대로 길들여진 사람들이라 이렇게 까지 하늘같은 검열원들을 수고 시키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건 어디서 이따위 막돼먹은 귀신인지 모르겠다. 생각할 수록 울화가 치밀어 환장할 지경이었다. 어디보자. 개쌍년, 죽일년, 입안에 기어들어 씹힌 역한노랭이 뱉어 버리듯 쌍욕을 퍼부으며 도끼눈은 악을 쓰며 객차 지붕위로 기어올랐다. 역구내 홈에서 악마구리 끓듯 복작(북작) 대던 수백쌍의 눈길이 일제히 두 사람 밖에 남지 않는 지붕위에 집중되었다. 여인은 헐떡거리며 자기 앞에 버티고 선 악에 찬 도끼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두 무릎을 꿇었다. 그 통에 배에 찬 그 동짐이 앞으로 불 쑥 쳐져 내렸다. 여인은 그것을 다시 끌어 올릴 여유도 없이 간절한 소원을 담아 머리를 조아리며 애원했다. 움푹 패인 두 눈에서는 거침없이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안전원 아저씨. 제발 용서해 주어요. 네. 이것 마저 없으면 우리 식구 다 죽어요. 죽는단 말입니다. 애 아버지도 없는데 저까지 빈 손으로 나 앉으면 우리 아이들은 누가 먹여 살리겠어요. 그러니 제 발 좀, 아저씨. 제 이렇게 빕니다. 빌어요. 네?…" 그것이 아마 여인의 마지막 소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까짓 파동 (구리조각) 몇 키로가 무에 그리 대단한 것이랴만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보잘 것 없고 작은 것이라 해도 그처럼 마치 생명처럼 소중한 것이었다. 그러나 도끼눈에게는 자기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야윈 여인의 가슴속에 서린 애끓는 사연 같은 것이 보일 리가 없었다. 오직 순응하지 않는 말짼년(못된년), 나라의 자원을 팔아 제 배를 불리는 용서못할 범법자, 추호의 용서도 없이 쳐 없애야 할 오만한 죄인으로 밖에 달리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니, 그 보다는 끝내 버티고 앉아 자기를 여기까지 오르게 만든 호랑이 같은 자기 체통에 뭇 사람들 앞에서 먹칠을 해준 콧대 놓고 미련한 년이다. 그래 가지고는 정작 올라서니 용서를 빌어? 못된 년. 도끼눈은 욱 치밀어 오르는 분기를 참지 못하고 여인의 꿇은 정강이를 짓밟았다. 아픔에 못 이겨 여인이 옆으로 쓰러지며 가는 비명을 지를 때 출렁하며 그 배에 찬 동짐이 지붕 바닥에 부딪쳐 내는 소리가 도끼눈의 당나귀 귀 같이 벌쭉한 귀에 들려왔다. "그럴테지, 야 이년아. 이런 걸 몰래 도적질해 팔아먹으면서도 용서를 빌어? 흥 거기다 배짱 놀음까지. 이거 어디서 이 따위야. 내려, 능지처참할 년 같으니…" 그러면서 도끼눈은 그 동짐을 차 아래로 내리 던졌다. 만약 이 순간에 이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타인의 맘을 헤아리는 인정이 남아 있었더라도 그리고 온통 그 등짐에 자기 인생 전부를 걸고 있는 가련한 여인에게 좀 더 누그러든 언성으로 달래기라도 했다면 상극되는 현실에 바들바들 떠는 이 여인의 심장을 그렇게까지 폭발 시키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도끼눈은 그것을 헤아리지 못했다. 붙는 불에 키질하듯 돌출하는 가스에 성냥불을 들이대듯 여인의 가슴에 불을 붙였다. "쨀러덕" 홈 바닥에 떨어지며 내는 금속음에 여인의 눈에서는 이상한 광채가 번뜩였다. 여인은 한 손으로 지붕 바닥을 짚으며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는 도끼눈의 손목을 오른손으로 틀어잡았다. "아니 이게?" 도끼눈은 가슴이 섬찍(섬뜩)했다. 하늘에서 번개가 번쩍했다. 자기 일생에 그처럼 서리낀 여인의 눈길은 처음 본다. 꽈르릉. 그 순간에 하늘을 진동하는 우뢰가 일었다. 그것은 마치 한 서린 여인의 가슴 속에서 참고 참았던 불덩이가 뿜겨져 나오며 터진 울분의 폭팔인 것 같아 도끼눈은 움찔했다. 그러나 어쩔 사이가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두 번째 번개가 일었다. 송영숙이 왼손으로 이만볼트 전선을 움켜잡은 것이다 "우지직, 팍!!" 아, 이건 정말 비극이다. 지옥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처참한 광경이다. 눈깜박 할 사이에 두 사람은 숯 덩이가 되어 마치 도약하듯차 바곤 아래로 튕겨져 버렸다. 시커멓게 그을은 두 구의 시체가 털썩 하고 바닥에 떨어지자 사람들은 그만 아연 실색했다. 심장이 뛰다 못해 졸아들어 홈 바닥에 맥없이 주저앉는 사람들도 있었다. 세상에 어쩌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은 언제까지 이렇게 서로 질시하며 마치 피 묻은 원수 마냥 물고 뜯으며 싸워야만 하는 것인가, 그처럼 맹수 같던 도끼눈도 정작 시체가 되니 그 여인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하나의 평범한 인간 군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살아서는 어쩌면 그렇게도 사납고 냉혹했을까. 먼 하늘에서 그 어떤 알 수 없는 미지의 힘이 분노의 고함 소리를 치며 너희들은 다 똑 같은 인간임을 알라고 이와 같은 비극의 장면을 연출해 냈는지도 모른다. 또 다시 번개가 일었다. 꽈르릉. 천지를 진동하는 우뢰소리에 이어 대줄기 같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처럼 잘 참아주던 하늘이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비를 내리 쏟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빗물이 아니라 눈물이었다. 이 세월이 빚어낸, 이 시대가 뱉어내는 눈물의 바다였다. "정아 어머니." 문기는 물방울을 튀기며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눈도 감지 못한채 쓰러져 있는 송영숙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자기도 그 질퍽하게 흐르는 빗물 위에 주저앉았다. 문기의 눈에서도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물줄기가 사정없이 내리 흐르고 있었다. 그는 뚝 부릅뜨고 있는 여인의 두 눈을 내리 쓸었다. 여인의 남편 김행우의 두 눈을 감겨 준 것이 바로 오늘 새벽이다. 이렇게 빨리, 남편을 잃은 슬픔도 채 가시기 전에 아이들을 살려 보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고행길에 오른 여인의 눈을 또 다시 자기 손으로 감겨 줄 줄 어이 알았으랴. 문기의 손이 후들후들 떨린다. 억장이 무너지는 듯 길재도 물 바닥에 엎어지며 어깨를 떨었다. 마을은 하늘을 쳐다보며 그 큰 눈을 슴벅(끔벅) 거리며 투덜거렸다. "그렇다고 죽긴 왜 죽어. 애들은 어떡하고. 어허. 기막힌 일이다……" 분명 그도 울고 있었다. 세 사나이는 쉬지 않고 쏟아지는 눈물로 부디 저 세상에 가서라도 안정된 삶을 누리길 바라며 여인의 명복을 빌었다. (다음에 계속) ==================================================================== (http://www.alonk.com/) 에 연재하는 장편소설입니다. 이 전의 소설 내용을 보시려면 홈페이지를 방문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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