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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기 목사의 조국은 어디인가?
REPUBLIC OF KOREA 구국기도 0 348 2007-12-12 12:23:53
1.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 나는 김성욱 기자의 [조용기 목사는 왜 김정일에게 사랑조국통일 족자를 선물했는가]의 기사를 읽게 되었다. 나는 김 기자의 분석에 공감하고 아울러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북한나들이에 대한 김 기자의 헌법적, 애국적, 성경적 고찰을 통해 분명히 정당한 분석을 해내었다고 평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되었다. 한국기독교계의 대표 레벨급이라고 할 수 있는 조용기 목사의 행적은 헌법적이고 애국적이고 성경적 분석을 통하여 드러나야 한다고 보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김 기자는 여러 보도를 통해 입수된 기사를 바탕으로 조용기 목사의 어록과 행적을 분석한 것이라고 본다. 나는 그 기사에서 조용기 목사의 아주 심각한 반역적 혐의와 하나님께 대한 배도적인 혐의을 보게 된다. 김 기자는 아주 분명하게 조목사의 이런저런 혐의와 문제점을 집어내어 보도한 것으로 본다. 나는 김 기자의 분석이 하나님의 분노를 담은 비느하스의 창이라고 보았다.

2. 김 기자의 분석은 조용기 목사가 악마교의 교주 김정일과 야합하는 것의 혐의를 두고 그 행위에 대하여 질타하였다. 아주 큰 공감을 갖게 되었다. 우리가 보거니와 성경에서는 각 교회의 대표를 일곱별 중의 하나로 비유되고 있다. 또 그 별들은 예수님 손에 붙잡힌 장중의 별로 비유되고 있다. 그 별들 중에 하나인 조용기 목사는 김성욱 기자에게로부터 아주 강력한 책망을 듣게 된 것이라 본다. 인간은 완전할 수가 없다.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께 용서 받아야 한다고 하는 속죄의 원리 속으로 초청되고 있다. 하지만 그 초청에도 예외의 사항은 있다. 하나님 앞에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있다는 말이다. 옛날에 발람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었다. 그 사람의 망령된 행동에 그 선지자가 타고 다니던 당나귀로부터 아주 심각한 책망을 받게 된다. 발람의 행동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산업의 망하는 것을 원하는 하나님의 敵(적)에게 하나님의 산업을 망하게 하는 방법을 알려 준다. 우리가 보건데 목하 김정일의 남한적화에는 수를 셀 수 없는 자칭 기독교인들이 가세하고 있다.

3. 그 자칭 기독교인들이 국가를 반역하고 하나님을 배도하며 김정일을 위하여 마침내 조용기 목사까지 함몰시키는 짓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어려 나오게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조용기 목사의 북한 나들이에 이런 의미가 분출되고 있기에 나를 참담하기 그지없게 하였다. 그가 북한에 다녀온 행적은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북에 갔다 온 사람(목사들)들의 통상적인 足跡(족적)을 통해서 몇 가지 질문 사항이 나올 수가 있게 된다. 조용기, 그는 김일성 우상 앞에 참배를 했는가 하지 않았는가이다. 김정일 체제는 평양에 들어가 체재할 권리 부여를 김일성 우상에 참배여하에 따라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평양에서 활동하였고 체재가 가능했다고 한다면, 의심해볼만한 내용이 될 것 같다. 과연 그가 김일성 우상 앞에 참배를 했다면 그것은 큰 죄악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가 한국기독교 내에 가지고 있는 비중과 세계 기독교 안에 가지고 있는 비중으로 볼 때 더욱 큰 죄악으로 봐야 한다고 본다. 만일 그가 김일성 귀신에게 머리 숙인 행동을 했다면 이는 일제 신사참배를 능가하는 죄악이라고 하나님이 생각하실 것 같다.

4. 많은 목사들이 친구를 데리고 평양으로 간다. 그 친구가 또 그 친구를 데리고 간다. 가서 김일성 우상에게 참배하고 체재허가를 받고 김정일 체제를 찬양하고 아첨하고 돌아온다. 그런 것들은 여간 안타깝기 그지없게 한다. 그의 평양 나들이가 주는 이면에는 마치 개미들의 먹이 사냥을 하는 것 같음은 없을 것인가이다. 개미들이 죽은 곤충, 자기들 보다 수배나 큰 곤충을 일제히 달려들어 개미굴까지 운반해가는 모습이 연상되는 일은 없었을가이다. 그를 평양으로 부른 것은 김정일의 공작으로 가능했다는 것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자원해서 간 것인가? 그런 이면적 동기에 의해 간 것인가를 묻게 된다. 과연 조용기 목사는 김정일을 회개시키러 갔는가? 친교 하러 갔는가? 선교하러 갔는가? 아니면 무엇 하러 갔는가의 문제를 그 다음에 질문하게 된다. 그의 북한 나들이의 基底(기저)가 무엇일까? 누가 그렇게 끈질기게 보수꼴통이라고 하는 애국의 옷을 벗게 했나? 아니면 스스로 벗어 던졌나? 그 옷을 벗어버리라고 그는 외압을 받은 적은 없었는가? 협박을 받은 적은 없었는가? 등을 질문하고 싶은 것이다.

5. 그런 질문은 한반도에 김씨 왕조의 시대를 여는 도도히 흐르는 장강 같은 역사를 거스를 수 없다는 대세를 주장하는 국가 반역자들의 노략질에 보폭을 맞춘 방북인지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의 방북의 속내 곧 한반도에 김정일 시대의 도래를 위해 국가를 반역하고 적과 야합하려고하는 것인가의 유무를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애국 시민의 당연한 의무적인 고찰로 본다. 김정일의 남하를 막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할 교계의 지도자가 하나님의 적이요 적그리스도요 마귀적인 자들을 만나려고 간 이유를 분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명색은 [조용기심장전문병원]을 만들려고 갔다. 하지만 단순히 인도적인 내용으로 다 담아 낼 수 없는 그 무엇이 거기에 있다고 하는 의구심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것을 세심하게 살펴 국가를 지키는 국민 된 도리를 다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본다. 어둠의 정사들 곧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의 도구인 북한의 김정일 집단과 교감하고 있는 내용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합법적인 것인가 아니면 반역적인 것인가를 구분하는 것은 성도의 당연한 도리이기도 하다.

6. 따라서 그의 여러 말들이 아첨이냐 또는 책망이냐 로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책망한 것이라면 그는 실로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본다. 하나님이 그 반대로 보신다면 배도자의 속물적 인간의 모습에서 나오는 악취가 천지를 진동케 하고 있다는 것에 의미를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만일 그가 북한의 김정일의 남한 적화를 위하여 협력하기로 했다면 국내법으로도 실정법을 어긴 것이고 성경 안에서도 하나님을 적대한 행동임을 우리는 분명하게 밝혀 볼 필요가 있을 같다. 或者(혹자)는 북한의 [조용기심장전문병원]을 만드는 행동에 관해서 왈가왈부 할 수 있느냐고 볼멘소리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상상할 수 없는 종교 탄압과 수를 셀 수 없는 성도들의 순교와 옥중 고통과 상상할 수 없는 박해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자.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일 그가 그런 사악한 정권과 밀거래를 한다면 이는 또 하나의 악마가 발현되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의 이번 북한 나들이는 과연 합헌적 행동이고 과연 성경적 성령적인 행동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가져야 한다.

7. 만일 그의 행태와 언어가 자유대한민국내 1천만 기독교인들의 가야 할 길과 마땅히 행동하여야 할 길을 왜곡하는 것이라면 거짓선지자의 길이라고 할 수도 있다고 본다. 1천만 성도에게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죽기까지 투쟁하는 것을 가르치고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대국민 각성과 해방을 위해 공산수령세습독재와 투쟁을 하며 북한 지하교회에 힘이 되고, 기도가 되고, 용기가 되고, 격려가 되고, 후원이 되고, 따뜻한 동행이 되어야 할 길로 이끌어가는 것이 목사 조용기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1천만 기독인들을 김정일에게 굴종하고 아부하고 살라는 길로 인도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크다고 본다. 결국 김정일의 남한 적화 야욕을 도와준다면 그것은 국가에 대한 반역이고, 결과적으로 남한 기독교의 신앙의 자유를 박탈당하게 하고 교회를 망하게 한다면, 이는 하나님께 배도한 것이 된다. 때문에 그런 짓의 유무를 살펴 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저런 심각한 문제의 유무에 우리는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장중에 붙들려 있는 별은 일천만 성도들의 가는 길을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른 길로 이끄는데 그 궤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본다.

8. 자유는 합법적인 투쟁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고 신앙의 자유는 순교의 피를 흘려서 얻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조용기 목사의 평양 나들이와 그 여파와 김정일의 남한 적화야욕책동의 그 가담여부가 일천만 기독인들에게 자유에 대한 투쟁을 가로막고 있는 짓을 한 것인가 아닌가의 내용에 그의 정체가 있다고 본다. 그의 행동이 북한에서 순교의 피 뿌리는 짓이 어리석은 짓으로 왜곡하게 한다면 이는 배도자라고 봐야 한다. 그것은 예수님이 가려는 방향과는 정반대의 길이고 예수님의 가려는 길에 커다란 암초를 갖다 놓는 행동이기 때문에 적그리스도적인 행동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그것은 헌법적으로도 자유대한민국에 대한 반역이라고 본다. 자유대한민국이 없었다면 결코 오늘날의 조용기 목사의 거대한 교세는 형성되지 못했을 것이고 그의 세계적 사역은 결코 펼쳐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자유대한민국으로부터 혜택을 받은 자 중에 아마도 최고의 혜택을 받은 자라고 본다. 그가 그런 자유를 통해서 기독교 교계의 큰 별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 하나님이 그에게 거는 기대는 참으로 막중하였다. 하지만 그는 오늘날에 와서 1천만 기독인에게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적이며 국가의 적과 타협하게하므로 굴종을 가르치며 국민을 김정일의 노예로 사는 길로 이끌어 간다면 그야말로 거짓선지자가 된다.

9. 그런 붉은 거래가 더더욱 북한에서 순교하는 하나님의 성도들을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로 만들어 놓았다면, 박해 받는 그 거룩한 행동을 짓이겨 놓았다면 그것은 참으로 하나님을 진노케 할 아주 심각한 패역이라고 본다. 거기에 그치지 아니하고 더 나아가서 350만 명을 기획 살인하고 북한 전역을 수용소화해서 인권 유린을 처절히 하는 자들에게 아첨 아부한 행동을 한 것이 있다면 이 또한 북한 주민의 가슴에 대못질한 것이 되는 셈이다. 하나님의 살아 있는 양심이어야 할 성직자가 전대미문의 살인 악마적 곧 공산수령세습독재자와 그 체제에게 야합 및 아부성 발언을 했다고 한다면 이는 중차대한 인권유린의 행동이요, 국가 반역적 행동이요, 하나님께 대한 배신적 행동이요, 반인도적 행동이요, 적그리스도적 행동이라고 볼 수가 있다. 우리는 김정일의 남한 적화를 돕고 있는 자칭기독인들은 김일성 우상종교와 혼합한 이단종파로 분류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한국기독교 내에 많은 이단들이 있지만 김일성 우상 집단이야 말로 핵무장을 하고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는 이단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0. 세계에서 손가락을 꼽는 군사력을 가지고 남한의 거대한 간첩조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한 존재들이고 이들의 사악성은 전 세계 모든 인류가 경악해 마지않는 인권유린에 있다는 것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악한 김일성 종교와 화합했는지의 유무에 따라 조목사의 행동에 분명하게 단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쥐의 삶처럼 이리 붙고 저리 붙고 하는 기회주의적인 처사를 가지고 하는 행동을 [고린도전서 9:19-23]에 나오는 말씀과 같이 선교를 위하여 여러 모양으로 얼굴을 감추는 행동이라고 한다면 북한의 영역에서 순교와 박해를 받는 성도들의 행동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오히려 부끄럽게 하는 짓이라고 하는데 있다. 과연 고린도전서9장 19절-23절에 나오는 말씀처럼 하나님 눈빛에 볼 때 하나님의 지지를 받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지혜롭다고 평가하실 것으로 본다. 만의 하나 그렇지 않다면 이는 분명히 큰 잘못에 빠져 있다고 봐야 한다. 오늘날 교계 지도자들의 오만불손함은 극에 달해 있다고 본다. 자기들의 자의적으로 성경을 인용하고 해석하여 자기 행동을 정당화 시키려고 하는데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11. 과연 그의 행동이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서 복음을 위하여 여러 모양과 여러 방법으로 접근하는 방법이라면 또 하나님이 그렇게 보고 계시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그렇게 보신다고 하는데 의의를 걸 자는 없어야 한다. 만의 하나 그것이 하나님 보시는 눈빛과 다를 것일 경우는 분명히 악마와의 野合(야합)이고 사탄과의 內通(내통)이고 성경에 대한 일탈적冒瀆(모독)이고 하나님께 대한 背道(배도)이고 국가에 대한 反逆(반역)이고 예수의 장중에서 떨어져 나가는 유리 하는 별이라고 본다. 우리는 애써서 조용기 목사에 대해 죄를 주거나 찾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그의 행적이 하나님과 교회와 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고 또는 남한을 적화하려고 하는 배도(자칭기독교인)자들의 거대 음모 속에 움직여진 오늘의 결과라면 이는 그를 시험에 빠뜨린 것이고 그는 스스로 악에 빠진 것이 되는 셈이라고 하는데 있다. 우리는 그의 행적이 한국 기독교에 끼칠 악 영향에 대해서 아주 큰 우려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만일 그렇다면, 경악스럽다 못해 참담하기 그지없다는 뜻이다. 이는 [사랑조국통일]이라고 하는 족자는 매우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12. 문제는 족자에 있다. 그 족자에 [사랑조국통일]이라는 글이 있다. 그것이 문제가 된다고 본다. 조국을 어디로 보느냐에 따라서 그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김정일 주구들이 조국은 자유대한민국이 아니다. 그들의 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그들에게서의 자유대한민국은 증오의 대상이다. 만일 조목사의 조국관이 자유대한민국이라면 [사랑자유대한민국통일]이라는 족자를 써서 김정일에게 선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북의 김정일의 체제를 아는 자들이라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그만큼 완강하게 김정일은 자유대한민국을 증오하고 있다고 한다. [사랑조국통일]을 [사랑자유대한민국헌법4조통일]이라는 의미로 써서 주었다고 강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왜 조국이라는 말을 써야 했는가에 대한 답을 해야 한다. 과연 조용기의 조국은 자유대한민국인가? 아니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가? 를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빛의 사자라고 하는 주의 종이 말씀을 야리 끼리 하게 혼돈스럽게 耳懸鈴鼻懸鈴(이현령비현령)식으로 표현한다는 그 자체가 악이고 어둠이고 의도가 불순하다고 본다. 때문에 사랑조국통일이라는 말은 [사랑해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남한적화통일]이라고 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데 공감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다.

13. 만일 그것이 그것이라면 그의 조국은 김정일의 품이고 자유대한민국의 품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냐? 소름끼치는 행동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고 본다. 하나님이 위에서 내려다보실 때 그가 조국이라고 한말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보신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배도이며 국가에 대한 반역으로 심판하실 것이 분명하다. 그런 것이 그의 속내라면 대한민국 전체를 속이는 짓을 했다고 봐야 한다. 이는 그의 정체성은 이미 빨갱이였다는 사실로 들어나는 셈으로 봐야 한다. 때문에 그런 빨갱이를 하나님의 종으로 섬기고 있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령의 사람들은 예수 이름으로 그를 단죄하고 그로부터 멀어지던지 그를 격리시켜야 한다. 그것은 곧 최소한의 조치이고, 그것이 비느하스의 창이요 국가에 대한 애국이요 하나님께 대한 충성이라고 확신하다. 만일 그가 그런 속내를 가지고 있다면, 한 시대의 교계를 풍미했던 자가 김정일의 충실한 노예가 되었다는데 지대한 아픔이 있게 한다. 어서 속히 한국 교회는 그에게 당신의 조국은 어디인가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가 주는 언어의 술에서 깨어나 그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때문에 국민은 그에게 당신의 조국은 어디냐고 묻고 또 물어야 할 것이다.

14. 왜 김정일에게 사랑자유대한민국통일이라고 쓴 족자를 주지 않고 사랑조국통일 이라하는 족자를 주었는지를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국가의 자유를 지키고 국헌을 지키기 위하여 죽은 수많은 선열들의 죽음을 보수꼴통이라고 모욕하였는데, 그렇다면 당신은 김정일 편이냐고 물어야 한다. 지금도 낮과 밤으로 자유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그 신앙의 자유를 지키고 자유대한민국 헌법을 지키기 위하여 생명을 걸고 피 흘리고 수고하고 멸사봉공하는 자들을 보수 꼴통이라고 모독하는 발언을 왜 해야 했느냐를 물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합쳐보면 그의 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그려지는데 사실이냐고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이런 악에 노예가 된 위인들이 기독교계에 앉아 거대한 군중들을 현혹하며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쓰여 질 헌금들을 모조리 거둬다가 김정일의 발 앞에 갖다 주고 그것으로 귀염을 받고... 그것으로 김정일은 남한적화를 하여 1천만 기독교인들을 잡아먹을 날을 손꼽고 있을 것이란 말이다. 결국 이렇게 되어서 4,500만 국민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내 몰리고 있다면, 어찌 가만히 앉아서 방관만 하고 있어야 하겠는가? 때문에 하나님의 비느하스들은 모두 일어나 저들을 예수님과 헌법의 이름으로 단죄하자고 사자처럼 부르짖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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