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박한 사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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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 서울 등으로 이사해오신 여러분들도 비슷한 생각이 들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아니 더 심하게 드실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태어난 대구 서구 비산동만 하더라도 80년대의 어린시절은 참 정겨웠는데 말이에요. 그땐 죄다 논밭이고 한옥집에 심지어 기껏해봐야 연립주택이 일부분이었고 명절인 추석,설날엔 친척은 물론이고 옆집사람들에게도 절하러 다니고 그랬거든요. 돼지잡고 소잡고 , 돼지 잡고 나면 그 돼지놈의 오줌보로 친구들하고 논밭 길거리에서 축구한다고 차고 뛰고 하던시절. 옆집 이웃에 세배하러 가면 친척보단 적지만 그때 당시 돈으로 500원, 1000원도 받고 하던 때. 누구네 결혼식이라면 동네 사람들이란 사람들은 모조리 차에 싣고 결혼식장에 갔으며 갔다와서도 동네에선 또한번 축제분위기였었어요. 그런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하나 둘 건물이 들어서고 도로포장이 깔끔하게 되고 고층아파트가 올라서고 신기한 차들이 돌아다니더군요. 요란스런 소리로 도배하면서 말입니다. 이런 변화과정의 끝엔 각박한 이웃과의 우정이 있을진 생각조차 못했으니까요. 변화가 마냥 신기하기만 했으며 신나기만 했지 누가 알았겠나요. 여름이면 이웃집과 이웃집의 사람들이 다함께 모여 더위를 이기고자? 그 찌는 온도에 술을 마시며 정다운 얘기를 하던 풍경들. 그러면 난 이웃 또래들과 밖에 나가 더운데도 불구하고 장난치고 뛰어다니고 또 장난치고 하던 모습이 오늘날엔 싹 사라져버린것 같네요. 이런 변화가 언제부터 끊겼는지 아무리 생각을 해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어린시절과 현재의 두 단면만 남은채 말입니다. 너무 삭막하고도 각박한 사회인것 같습니다. 이웃이 누군지도 모르고 일어나면 출근 , 퇴근하면 자기네 집만을 반복하며 이웃을 봐도 본채만채인 삭막한 모습. 늦게까지 마무리를 하다가 베란다에 나가 반대편 베란다를 쳐다보면 어린시절의 이웃과의 정겹던 모습이 더욱 짙게 나타나곤 합니다. 더구나 동지회 사이트를 들어와도 이런 생각이 드네요. 반대편을 쳐다보면 씁쓸함이 느껴지지만 동지회 사이트는 정겨운 느낌이 드는건 반대의 경우지만요. 이웃과의 이런 삭막한 정의 이유가 무엇일까요? 삭막한 이웃과의 정을 과거로 되돌리기엔 너무나 바쁘고도 치열한 경쟁사회 때문일까요? 아무튼 씁쓸해서 앞으론 저녁 늦게 반대편 베란다를 쳐다보지 않아야겠습니다 ^^ 그게 자기위안이 될것 같네요... 동지회 사이트에 들어와서 괜히 푸념만 늘어놓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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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다른 지방을 옮기시면서 그런 생각이 드시는건 당연해요
하지만 저희들은 이젠 보고싶어도 가고싶어도 가질 못해요.
님의 글에서 고향땅이 그리워하는 저희들이 모습이 보이네요
어린시절과 이웃들과의 사랑이 더 욱그립습니다.
동년의 그 시절이 그립네요 ~
설날이 오라지 않네요. 북한은 양역설을 정말 잘 쇤답니다.
여기서 구정쇠는거나 마찬가지에요.
그런 설날이 다가오니 고향생각이 더나네요.~
님도 다가오는 새해에 복많이 받으세요~
근데 저는요 아직 한국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곧가려고 하는데 많이 겁나기도 하고 궁금한것도 있네요. 하나원생활할때 전화랑하고 아는사람만나고 하는거 가능한지요? 혹시 하나원안에서 전혀 밖으로 못나가게 하는가요? 알고싶어서 그럽니다.사실은 남친이 있거든요. 가서 몇달 못보게 될가봐 그래요 ㅎㅎ. 제심정 이해해 주시고 알려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새해도 다가오는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우리 새해부터는 힘내서 더 열심히 살아가요. 힘내요 화이팅 ~~~
그리고 전화는 핸드폰은 사용금지구요. 공공전화가 있는데 마음대로 사용할수가 있답니다.
네에 하나원안에선 마음대로 못나가고요. 거기서 정말 모든걸 해주고 있어요.
건물이라든가. 하나원선생님들이시라든가 모두가 좋아요.
대우가 엄청 좋아요.
그리고 하나원 생활은 8주랍니다.
그리고 남친에게 전화하셔서 면회오시라면 돼요.
근심 마시고 꼭 오세요.
우리를 받아주는 대한민국에 오세요.
이연님이 한국에 오시길 기원하면서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