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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오늘 "조선인민군"의 실상입니다.
절규 3 400 2005-04-06 08:17:23
▲ 보초를 서고 있는 북한군

나는 북한군 도로국 125여단 5대대 3중대에 근무했던 김인수(가명 1977년생)다.

도로국은 고속도로와 발전소 건설을 전문으로 하기 위해 김정일의 방침에 의해 1990년에 조직되었다. 군인 수는 4.25훈련소, 108훈련소, 12저격 등의 부대원들을 선발한 군단급 규모다. 123여단, 125여단을 포함해 3만 명 정도 된다.

건설부대라는 이미지 때문에 사병들에게는 '제2 경보'(경보병 부대)라고 했다. 평화시기에 건설하다 유사시에 전투부대로 바뀐다고 하지만 말이 군대지 사실은 건설대였다.

공병대가 장비 없어 맨손으로 작업

나는 1993년 도로국에 입대해 1998년에 제대했다. 조기 제대된 것은 아버지가 정치범으로 끌려가면서 연좌제로 생활제대(불명예제대) 당한 것이다. 나는 도로국에 안 가려고 했는데 명령이라 방법이 없었다. 군무기간에 평양ㅡ향산간 고속도로 건설에 2년, 금강산발전소 건설에 3년 동안 동원됐다.

나는 군대생활 5년동안 자동소총을 별로 만져보지 못했다. 신병교육이 끝나고 군사강의 시간에 뚱딴지 같이 ‘착암기의 구조와 동작원리’를 배워준다. 우리 부대의 임무는 북한강을 댐으로 막아 생긴 저수지의 물을 동해로 흘려보내는 굴을 뚫는 것이었다.

군대에서 제일 고생스러운 것은 배고픔과 장교들의 독촉이다.

우리 부대는 건설임무만 받을 뿐 건설장비는 공급받지 못했다. 완전히 맨손으로 해결해야 한다. 군인들은 야밤에 소대별로 떼를 지어 농민들의 소와 달구지를 훔치고, 농기구 창고를 습격하여 삽과 곡괭이, 들것을 노획하여 건설도구로 충당했다. 물론 반항하는 농민들은 사정없이 때렸다. ‘장군님의 군대가 좀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90년대 중반 소대 절반 탈영

일이 고되고 공급이 안 되자 환자들과 탈영자가 속출했다. 90년대 중반에 들어 더욱 심했다. 민가습격은 상관들이 직접 조직했다. 맨손으로 나가 뭔가 가져오면 수완이 좋다고 하고, 못 가져오면 남한 말로 '왕따' 당한다. 수완이 좋다는 건 빼앗아 오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누가 더 많이 빼앗아 오는가에 따라 군복무가 평가된다.

배고픔, 상관들의 심한 구타에 견딜 수 없는 사병들은 2~3명씩 탈영한다. 처음에는 30명이던 소대가 15명밖에 남지 않았다. 여기서 버티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불사조'들이었다.

사병들은 외출 하지 못해 안달이 난다. 외출허가를 받지 못할 경우는 분대끼리 습격대를 조직한다. 습격대는 마을에 내려가 돼지와 개, 닭 등 가축들을 도살해 다른 개인 집에서 끓여먹는다.

군인들의 무단이탈을 막기 위해 지휘부에서는 경무관(헌병)을 조직해 위수구역에 파견한다. 경무관들은 골목이나 도로의 교차점에서 길가는 군인들을 단속하여 부대로 돌려보낸다. 그래도 며칠이 지나면 또 탈영한다.

몸이 몹시 허약해진 군인들은 목둘레가 너무 얇아 한 손에 쥐일 정도다. 군 의무대에 가도 약이 없어 집에 보낼 수밖에 없다. 한 개 중대에 약 30% 정도가 귀가했었다.

집에 가서도 야단이다. 집에서는 부모들도 굶는 판이니 아이에게 충분히 영양보충을 시킬 수 없다. 한 달쯤 지나면 장교들이 데리러 온다. 부모들에게 사정하다시피 하여 데려가려 하면 부모들은 '이러다 외아들 죽인다'고 야단이다.

장교들도 제대 후 살길 막막

요즘은 북한 장교 출신 사기꾼들이 부쩍 늘었다. 장교들도 너무 숫자가 많아 위관급은 35살까지, 좌급(영장급)은 45살까지 승진을 못하면 제대다. 그래서 제대 전에 사병들의 주소를 알아두었다가 제대 후에 차례로 한 바퀴 돈다.

나도 몸이 너무 허약해져 집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어머니와 주고 받은 대화다.

"며칠 전에 너희 중대장이 왔다. 네가 잘 있다고 하더니, 이게 무슨 꼴이냐."
"무슨 중대장이요? 난 보낸 적이 없는데...."
"한 줄에 별 세 개 단 사람이 와서 너의 중대장인데 군관학교에 보내려고 신원조회 하러 왔다더라, 그래서 중대장을 잘 먹이고, 먹을 것 한 짐 지워 보내기까지 했는데... 너는 몰라?"

나는 억장이 막혀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지 않아도 동료네 집에도 중대장이 왔다 갔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후에 그 사람이 다른 집에 갔다가 붙들렸는데 몇 달 전에 제대한 부중대장이었다.

장교들도 제대 후 살아갈 방법이 없다. 사회 물정을 몰라 적응이 안 되니 사병들의 집을 다니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식량도 얻어가고 되도록 현금을 요구하여 받은 다음 종적을 감춘다.

한때 이런 현상이 물의를 일으켜 사병들은 ‘내 편지가 없으면 절대로 장교들을 대접하지 말라’고 집에 연락하곤 했다.

비록 세월이 좀 지났지만 김정일 정권이 바뀌지 않는 한 북한군의 탈영사태는 달라질 것이 없다.


김인수(함북무산 출신, 1999년 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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