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국경을 넘다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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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엄마 데려와야 한국 보내준대요" 2007년 11월 17일 중국과 라오스의 국경. 울창한 나무 숲을 뚫고 18시간을 걸어 한 사내 아이가 도착했다. 4명의 탈북자가 동행했다. 모두 생명을 걸고 자유를 찾아 탈출하는 길이다. 아이의 이름은 김성룡(8). 아빠는 조선족, 엄마는 탈북자. 아빠는 한국으로 돈 벌러 떠났고 엄마는 북한으로 끌려가 죽었다. 아이는 아빠를 만나러 간다. 바윗돌에 채고, 계곡물에 발이 빠지고, 가시에 긁히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지만 불평하지 않는다. "힘들지 않아요." 2003년 11월 7일. 아이가 보는 앞에서 엄마는 중국 공안에 끌려갔다. 5년전인 1998년 10월 두만강을 건너온 엄마는 공안을 두려워했다. 북한으로 보내질까 두려웠다. 엄마가 붙잡힐 때 아빠는 없었다. 엄마는 죽을 힘을 다해 발버둥쳤지만 공안은 냉혹했다. 아빠가 엄마를 구하러 갔다. 공안은 돈을 요구했다. 아빠는 돈이 없었다. 결국 1년 뒤 엄마는 북한에서 처형됐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그날 아빠는 성룡이 앞에서 목을 놓아 울었다. ▲ 장장 18시간의 산행길. 8살 성룡이에게는 힘겹기만 하다. 2007년 11월 17일 중국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하던 성룡이가 힘에 겨워 울고 있다./한용호 AD hoyah5@chosun.com 2006년 6월 18일. 아빠는 한국으로 떠났다. 아내를 잃은 남자는 돈을 벌기로 했다. 아빠는 떠나면서 전 재산 2000위안(26만7000원)을 털었다. 그 돈으로 아들에게 가짜 호구(戶口·호적)를 사줬다. 그 호구로 그제야 성룡이는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다. 이후 아빠는 아들을 그리워하고, 아들은 아빠를 보고파 했다. 1년반이 흐른 2007년 11월 26일. 아이는 태국 방콕에 도착했다. 이제 곧 아빠를 만나리라. 그런데 아이는 지금 넉 달째 태국 이민국에 갇혀 있다. 한국 정부가 여덟 살짜리 아이에게 요구했다. "엄마가 탈북자라는 걸 증명해라." 성룡이를 탈북자로 가장한 조선족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죽은 엄마를 어떻게 데리고 올까. 아이는 눈물만 흘린다. 한국에 남은 아빠는 외교부의 전화를 받았다. "중국 아이니까 직접 데려오세요." 밀입국해서 태국까지 온 아들. 아들을 살리기 위해 사주었던 중국 호구가 지금은 아들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됐다. 중국 여권으로 한국 가겠다면 중국 정부가 가만히 있을까. 아빠의 질문에 담당 직원은 입을 닫았다. 5일 성룡이를 면담했던 한국 선교사가 말했다. "같이 태국으로 왔던 모든 사람들이 한국으로 갔는데, 성룡이는 철창 속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두리하나선교회 천기원 목사가 주태국 한국대사관에 항의했다. 대답은 냉랭했다. "중국으로 돌려보내겠습니다. 법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외교통상부 담당자가 취재팀에게 말했다. "최근 인사 때문에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전임자께 물어보고 전화를 드리죠." 7시간 만에 답이 왔다. "통일부 소관인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통일부에 확인 전화를 걸었다. "중요한 회의에 들어가서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분이라도. "담당자가 한 명뿐이에요." 7일 0시45분까지 답은 끝내 없었다. 원죄(原罪)였다, 엄마가 북한 출신이라는. 취재팀은 중국에서 수많은 성룡이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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