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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검 앞에 섰을 때(북 감옥에서 경험)
Korea, Republic o 이민복 2 460 2008-03-24 14:41:14
1990년11월, 중국으로 탈북했다 잡혀 북송되어
북한 정치보위부 감옥(집결소라고 함)에 갇혔을 때이다.
감방장은 또하나의 간수로서 보위원의 지시대로
새 입소자의 기를 처음부터 꺽기위해 뜨거운 맛을 보이게 한다.
폭력고단수인 감방장에게 맞아 당장 코피가 터졌다.
피를 보자 나도 보르게 악이 올라 그를 번쩍들어
변기(감방구석에 있음)에 처박아 버렸다.
그럼에도 워낙 사나운 감방장은 번개같이 달려들어
나의 종다리를 물어뜯으려는 순간
가라대로 목 대동맥을 쳐서 풀자루로 만들었다.
어릴적 쌈박질기질과 학교씨름선수기술이 합쳐진 자위행위였다.

쓰러뜨리고 보니 정신이 번쩍!
이젠 보위원한데 죽었구나하는 공포가 엄습함을 느껴졌다.
아닌 기 아리라 하며 나를 때리도록 시킨
보위원간수(계호원이라 함)의 고함소리에 온 감옥에 비상이 걸렸다.
권총차고 감방철문을 열고 들어와 쓰러진 감방장이 죽은 것이 아니라
기절한 것을 확인한 후 나에게 발차기 한 방 먹인 후 뜻밖에도
라고 하는 것이다.

입소첫 날부터 갑작이 감방장이 된 나는 오히려 당황하였다.
감방장은 야수가 되야 하는데 어릴 적과 달리 성인이 되어서는
양순한 과학원연구사로 변해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감방장은 감옥에서 살아남기 위한 죄수들의 꿈의 자리였다.

대책은 때리긴 때리되 기술적으로 한 것이다.
왼손을 때릴 죄수의 얼굴에 대고 오른 손으로 박수치듯 세게 때리니
소리는 더 요란하게 울렸다.
그러면 보위부 간수들은 ...

그러나 감옥내 밀고체계로 인해 금방 들통이 났다.
이라고 하는 계호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오히려라며 묵과하였다.

감옥은 위아래, 나이 차이, 남녀가 따로 없이 약육강식, 폭력이 난무했다.
그속은 인간이 아닌 야수의 무리였다.
보위부 감옥보다 안전부 감옥이 더 한 것을 느꼈다.
한 번 몰린 자는 더 죽어난다. 마치 피나는 닭은 더 쪼아대는 닭무리 같았다.
음낭을 하도 쥐어뜯기던 김재철(32살)이란 사람이 자다 죽었다.
사람이 죽자 참 신기한 것을 느꼈다.
그처럼 살아있을 때는 길길이 날 뛰던 야수들이
주검 앞에서 모두 인간으로 되돌아 온 것 같은 모습을 느낀 것이다.
누구나 나도 저렇게 죽을 수있다는 메시지를 받았는지
그날은 그처럼 양순해지는 것이다.

장래 어떻게 될 것인가를 누구나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 하나는 알고 산다.
그것은 죽음이다.
죽음 앞에 누구나 장사는 없다.
그러나 죽지만 믿으면 영원히 산다고 하는 것이 있다.
이것이 기독교의 진수이다.
오늘은 바로 부활절이다.
죽음에서 부활한다는 소망, 이것은 그 어떤 가치보다
최상위에 있는 가치이다. 이것을 믿어가는 것이 신앙이라할 수있다.
이러한 소망을 주는 것을 반대(반종교)하는 나라치고 잘 된 나라가 없다.
바로 북한이 그 증거이다.
북한사람이 불쌍한 것은 무엇보다 소망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소망을 주는 풍선 삐라를 그래서 나는 보낸다.
(양평 섬기는 교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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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품 천국의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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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작품 2008-03-25 05:55:16
    뜻있는 글이네요. 잘 읽어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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