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이동의 자유 제한하면서 ‘선군 9경’ 선전하는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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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철이 다가온다. 많은 사람들이 시원한 여름을 보내기 위해 산 좋고 물 맑은 아름다운 곳을 찾아보려고 애쓰고 있다. 그 중에서 도심에서 떨어져 절경이 그대로 살아 숨 쉬는 곳은 늘 인기 휴양지로 손꼽힌다. 한국은 이처럼 자유롭게 여행을 떠날 수 있지만, 북한 주민들은 이동의 자유 제한으로 여의치 않다. 명소에 대해 누군가에게서 듣거나 매체를 통해 보는 것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인 여행지를 체제선전으로 활용하고 있다. 북한이 자랑하는 ‘선군(先軍) 9경’도 그중 하나다. 탈북민들에 의하면, 당국이 ‘선군 시대’에 새롭게 펼쳐진 장쾌하고 아름다운 9개의 절경이라고 선전하는 ‘선군 9경’을 TV로 본 주민들은 그 속에 펼쳐진 절경의 모습에 새삼 놀라지만, 이내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TV에는 아름다운 절경과 어우러진 장군님의 우상화와 체제선전을 위한 노래가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9가지 풍경들을 북한은 어떻게 체제선전에 활용하고 있는 것일까? 1경 백두산의 해돋이(백두일출) 북한 당국은 ‘백두산'을 민족의 성산(聖山)이자 항일무장혁명의 발원지라고 주장한다. 또한 김정일이 이곳에서 태어났다면서 ‘해’를 결합, 상징적인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북한은 천하제일의 일출장관이라고 할 수 있는 백두산의 해돋이는 선군시대의 광명을 펼쳐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곳을 김정일의 모습과 기상이 그대로 어려 있는 ‘주체조선의 상징’이라고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2경 다박솔 초소의 설경(송초설경) 북한은 이곳을 겨울에도 푸르름을 자랑하는 다박솔(낮은 소나무)과 흰 눈의 순결함이 초소군인들의 불굴의 투쟁모습과 어울려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경치라고 선전한다. 북한은 ‘선군정치’를 1995년 새해 첫날 김정일이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에서 참배를 마치고 ‘다박솔초소’를 시찰하면서 시작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곳에서 김정일은 “인민군대를 일당백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구호를 만들고, 이를 계기로 김정일의 선군정치는 전면적으로 펼쳐졌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이 부대의 위치와 부대 성격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3경 철령(鐵嶺)의 철쭉(철령척촉) 철령을 가기 위해선 강원도의 높은 고개를 굽이굽이 넘어야 하는데 이곳에는 최전연 인민군부대 1군단, 2군단, 5군단이 배치돼있다고 한다. 당국은 김정일이 대량 아사 시기(고난의 행군) 때, 이곳을 시찰하면서 주민들에게 ‘고난 극복’과 ‘승리’ 등을 강조했다고 선전한다. 또한 “사탕 알이 아닌 총알을 만들어 이 나라를 지키고 주체혁명을 계승해야 한다며 선군의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탈북민들은 “철령이라는 곳은 가는 길도 제대로 나있지 않고 험해서 잘 안 간다. 또한 다른 곳에서도 철쭉은 얼마든지 있는데 굳이 거기까지 찾아가겠다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4경 장자강의 불야성(장자야경) 자강도에 위치한 장자강은 밤하늘의 별무리가 내려앉은 듯 눈부신 불빛이 절경을 이룬다고 한다. 북한 당국은 대량 아사 시기 가장 힘들게 살던 자강도 주민들을 위해 이곳을 시찰했고, 그 이후 발전소를 꾸미게 돼 전깃불이 장자강 주변 발전소 근처만을 환하게 밝히게 됐다고 선전하고 있다. 이에 대해 탈북민들은 “장자강의 불야성은 옛 이야기”라면서 “순간 반짝 불이 들어왔을 때 빛나는 마을을 그린 모습을 선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5경 울림폭포의 메아리(울림폭향) 북한 당국은 오랜 세월 천연수림 속에 묻혀 있다가 선군시대에 그 자태를 드러낸 울림폭포의 독특한 풍치를 반영했다고 선전한다. 울림폭포가 삼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기묘한 골짜기 안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아찔한 벼랑에서 초당 수십 미터의 굉장한 물량이 떨어지면서 황홀한 물안개와 물보라를 일으키고, 그 메아리가 10리(약 4km) 밖에서도 들린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탈북민들은 “울림폭포는 대량 아사 시기 때 김정일이 시찰함으로써 세상에 잠깐 알려진 것"이라면서 “주민들은 길이 제대로 나 있지도 않은 곳에 굳이 찾아가려고 애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6경 한드레벌의 지평선(표야지평) 평안북도 태천군에 있는 한드레벌은 아주 비옥하고 넓은 땅인데, 이곳 사람들에게 제일 귀한 것은 물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손님들도 이곳을 지날 때는 물 한 두레박을 얻어먹기 힘든 곳이라고 할 만큼 척박한 곳이었다. 북한 당국은 김정일이 “남조선(남한) 사람들이 이곳에 와보면 놀라며 부러워 할 것”이라면서 이곳에 관수체계를 만들어 인민들이 농사를 잘 할 수 있도록 그들의 소원을 풀어줬다고 주장한다. 김정일이 물을 풍요롭게 만든 것처럼 업적을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7경 대홍단의 감자꽃바다(홍단저해) 북한은 이곳이 감자농사를 대대적으로 하여 주민들의 식생활을 더욱 풍족하게 해주려는 김정일의 원대한 구상이 현실로 꽃핀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북한 최대의 감자 생산지인 이곳은 6월 말~7월 말 사이 넓은 대홍단벌을 하얗게 뒤덮듯 강성대국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낙관을 안겨주는 선경이라고 선전하는 것이다. 탈북민들은 “당국은 양강도 대홍단의 감자농사가 김정일의 업적이 깃들어 있어 잘 되는 것이라고 선전하지만, 사실 말도 안 되는 것"이라면서 “농사가 잘되기 위해 노력한 것은 땅을 부단히 개간한 주민들인데 김정일은 마치 본인의 업적처럼 선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8경 범안리의 선경(범안선경) 북한 당국은 이곳이 김정일의 영도에 의해 선군시대의 무릉도원으로 변모됐다면서 ‘공화국의 자랑’이라고 선전한다. 원래 범안리는 황해북도 서흥군 산기슭에 있는 자그마한 마을이었지만 김정일이 대량 아사 시기 때 무질서하게 있던 낡은 집들을 털어버리고, 100여 동의 문화주택과 30여 동의 문화후생시설, 수십 개의 양어장 발전소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2001년 범안리를 찾은 김정일은 마을 풍경을 둘러보며 무릉도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가 노동당시대의 무릉도원이고 사회주의 선경이라고 언급했다고 북한 매체들은 선전하고 있다. 9경 류다른 콩풍경 북한 당국은 김정은이 집권 후 군인들에게 콩을 공급할 데 대한 지시로 군에서 콩 농사 선풍이 불었다고 주장한다. 군인들에게 콩으로 된 식품을 많이 먹이라는 김정은의 지시로 전군이 콩 농사를 많이 했고, 결과적으로 김정은이 콩 농사를 장려했다고 선전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북한 노동신문에도 콩 창고에 들어가 흐뭇해하는 김정은의 모습이 소개되기도 했었다. 김정일 시대 때 선군 8경으로 시작된 이 같은 선경 선전은 김정은 시대 들어서도 지속돼, 최근에는 13경까지 늘었다고 한다. 탈북민들은 북한 당국이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까지 체제선전에 활용하는 모습을 보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데 주민들이 그런 걸 신경이나 쓰겠나”라며 “주민들은 당국의 이 같은 선전에도 무관심 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서재평 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은 5일 데일리NK에 “선군 9경은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경치보다는 정치적인 ‘체제선전’이나 ‘우상화’를 위한 것임을 주민들도 알기 때문에 크게 신경을 안 쓰고 있다"면서 “일반 주민들은 이곳에 가기도 힘들 뿐더러 가보고 싶어 하지도 않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 사무국장은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의 이 같은 체제선전 방식을 이어 받아 강화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더 많은 주민들의 사상을 강화할 목적으로 계속 자신만의 선경들을 발굴해 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익명의 한 탈북민은 “북한 당국은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일수록 TV에서 선군 9경을 더 많이 방영했었다”면서 “당국은 힘들어 하는 주민들을 구제할 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 같은 체제 선전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김혜진 인턴기자(한림대 사회학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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