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추석 분위기는? “남편은 무사태평, 아내만 제사상 고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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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말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북한에 있었을 때 요란하게 떠들던 태양절(김일성 생일)보다 추석 만큼은 즐기면서 하루를 쉬었다. 생활 총화나 헌화 등 복잡한 정치적 문제는 뒤로 하고 조상의 은덕에 감사를 표했던 날로 기억된다. 익어가는 곡식의 풍요함과, 어둠을 밝히는 보름달 추억은 떠나온 고향을 어김없이 떠올리는 애잔한 향수이다. 자유로이 밤하늘을 누비는 보름달을 바라보며, 수다를 이어가던 아낙네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추석날 밤이면 이들과 함께 제사상에서 남은 음식을 먹으며 남편 뒷말로 웃음 짓던 그 시절 느티나무 아래가 그립다. 이처럼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며 이웃 간엔 정을 나누는 게 북한 추석 문화였다. 아내들은 조상을 잘 모셔야 돈벌이 행운이 온다며 각별히 제사상 음식에 신경을 썼다. 살림이 풍족하면 별 문제 없겠지만 장마당 출근으로 적금 모으듯 추석비용을 장만하는 일은 쉽지만은 않았다. 북한 아내들은 추석 한 달 전부터 ‘자금 모으기’에 고심한다. 산적과 과일, 물고기, 떡, 육류반찬은 제사상에 기본으로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조상에게 드리는 반찬은 양념이 없어야 한다며 검은 나물도 필수다. 양강도를 비롯한 산이 있는 지역은 말린 고사리가 흔할 테지만 평안도에서는 고기보다 비싼 돈을 줘야 살 수 있었다. ‘추석엔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겠지’라는 희망을 품고 엄마를 바라보는 자녀들 모습 또한 아내들의 어깨를 무겁게 한다. 한푼 두푼 돈을 모아 음식재료를 구입한 이후에도 아내들의 걱정은 끊이지 않는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떡쌀을 손으로 갈아 송편과 절편을 빚고, 녹두지짐 부치고, 반찬 준비에 허리는 펼 사이도 없다. 남편이 옆에서 도왔으면 좋으련만 언제나 추석을 앞둔 날조차도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꿈나라를 헤맨다. 무사태평 팔자 좋은 남편을 바라보며 아내들은 잠깐이나마 생각한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좋았을걸.” 참 씁쓸한 북한 가부장제 단면이었다. 그런데도 남편들은 할 말은 한다. “추석날 기본은 벌초야, 일 년간 묘에 자란 잡초를 깨끗이 벌초해줘야 조상이 목욕한 기분이거든.” 벌초 준비는 낫 한 자루이다. 숫돌에 물을 적셔 낫을 갈고 난 뒤 남편은 가족보다 일찍 산에 올라간다. 깔끔히 벌초하고 비석도 바로 잡고 묘 주위로 동그랗게 돌까지 박아놓으면 묘주로서의 긍지도 생긴다고 한다. 다만 남편의 고유 역할도 변화하는 추세다. 최근에는 벌초도 시장 돈벌이 수단이 됐다는 것이 평안남도 소식이다. 기존에도 벌초를 대신하는 일꾼은 있었다. 산소가 없어 추석날 갈 곳이 없는 동네 남성들, 혹은 남편 친구들이 벌초를 해주고 함께 술 한 잔 즐기며 추석을 보내는 정도였다. 이에 대해 평안남도 소식통은 최근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추석날이 있는 달이 오면 벌초공들이 (고용을) 대기하고 있다”며 “묘 위치와 묘주 이름만 알려주면 추석 전(前) 깨끗이 벌초해 준다. 가격은 최소 만 원(북한에서 쌀 2kg을 살 수 있는 돈)이다”고 전했다. 시장 돈벌이에 몸을 담근 남편들만 벌초공을 고용할 수 있다는 제한성은 있지만, 북한 남편들 팔자는 타고났다는 생각이 든다. 추석날 제사상 준비에 제대로 도움을 받지 않지만 고생도 낙으로, 현처양모로 살아가는 여성들이 북한 아내들이다. 다행히 시장화로 가부장제에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고 여권이 신장되고 있다니 조금 마음이 놓이기는 한다. 북한 아내들이 자유와 평등이 살아 숨 쉬는 한반도 통일을 그리며 밝은 내일을 희망하기를 탈북 기자는 남한에서 소원을 빌어 본다. 설송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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