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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 동생들 '곁가지' 규정 견제
동지회 1212 2005-01-06 11:41:33
이복 동생들 '곁가지' 규정 견제



김정일은 김일성 주석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인정하는 직계가 아닌 가족을 ‘곁가지’라고 불렀다. 곁가지에 대해서는 철저히 견제한다. 북한식 표현은 ‘곁가지 투쟁’이다.
70년대 초 김정일이 ‘당 중앙’(당의 실권자)으로 불렸을 때다.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이 격하되고 계모인 김성애의 위세가 커지자 김정일이 김일성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김정일은 “김정숙 동지는 항일 빨치산 시절부터 수령님을 보필해오다 해방 후 돌아갔는데 이분이 북한 여성들의 귀감이 되실 분입니다. 이런 분이 우상화되어야지 어떻게 여맹의 김성애 위원장이 좌지우지할 수 있습니까”라고 항의했다.

마침 김성애의 동생이 세력을 키워가는 것이 들통난 사건까지 겹치자 김일성은 김성애 동생은 물론 김성애에 대해서도 모든 대외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했다. 김일성은 이때 “정통적 유일사상을 제외한 다른 것은 모두 곁가지”라고 말했다.

70년 후반에는 김정일의 배다른 동생 평일 역시 곤욕을 치렀다. 평일이 평소 단짝으로 지내는 호위사령관 전문섭의 아들과 지방 별장에서 놀다 간 사건이 알려진 것.

김정일은 이를 김일성에게 보고했고, 김일성은 평일을 군에서 제대시켜 집에서 공부나 하라고 했다. 평일은 이때부터 북한 내에서 재기하지 못했다.

김정일은 당시 평일에게 술과 안주를 마련해준 김정일 관저 책임자(김성윤)도 지방으로 내쫓았다. 김정일은 김성윤을 불러 불같이 화를 내며 “내 앞에서 당장 사라져”라고 호통을 쳤다. 김성윤은 혼비백산해 계단을 내려오다 넘어져 반신불수가 됐다.(이한영)

김정일은 이후에도 ‘곁가지’에 대해서는 한직으로 내몰거나 외국에 보내 국내에서 세력화하는 것을 철저히 막았다. 김평일은 폴란드 대사를 지냈고, 평일의 동생 영일은 독일주재 대표부 참사로 있다가 99년 당뇨로 사망했다.

김성애의 딸 김경진은 오스트리아 대사 김광섭과 결혼했다. 김정일이 곁가지에 대해 가혹하게 대우하자 권력 내부에서는 곁가지를 외면하고 심지어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으려는 분위기다./nk.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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