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주민 생존투쟁 이 순간도 계속된다 사진으로 보는 ‘북한 1996-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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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제들아…언제 좋은 세상 오나 ▲ 90년대 중반 굶어죽은 북한 주민의 시체가 두만강에 떠내려 가고 있다. 90년대 중반 북한은 극심한 식량난을 겪으며 300만명이 굶어죽는 대참사를 겪었다. 이후 10년이 흘렀다.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는 10년이 지나도록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김정일 정권은 도리어 당당하게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인민이야 굶어죽든 말든 핵과 미사일로 오로지 독재정권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북한정권이 핵과 미사일로 강성대국을 외치면 외칠수록 인민의 생활은 피폐해져 간다. 이것이 지난 10년간의 북한 실상이다. 최근 친척방문차 중국을 찾은 북한 주민들은 10년 전 등장했던 나무뿌리죽과 풀죽이 다시 밥상에 올라오고 있다고 말했다. 어른 아이 할 것없이 식량을 찾아 거리를 헤매는 꽂제비도 늘었다고 한다. 지난해 '10년만의 대풍'이라고 자랑하던 때가 엊그제인데 주민들은 벌써부터 끼니 걱정에 밤을 지샌다는 것이다. 지난 7, 8월 북한의 수해는 컸다. 많은 이재민이 발생하고 농지가 유실됐으며, 동서를 잇는 철도도 끊겼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김정일 독재체제에 있다는 말이 이제 주민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개방을 막고 군대만 중시하다보니 사는 것이 엉망이 됐다고 말한다. 주민들은 사는 것이 10년 전 만큼이나 형편없어졌다고 말한다. 남조선과 중국으로 간 탈북자를 동경하는 심리가 유행하고 주민들은 인민군대와 거리에서 패싸움을 벌이는 경우도 생겼다. 평양에서는 젊은이들이 저녁마다 술판과 춤판을 벌여 규찰대의 단속이 한계에 이를 정도다. 사회기강은 무너지고 주민들의 원성은 높아지고 있다. 데일리NK는 식량난 시기 북한 주민들이 겪은 생사 갈림길의 극심한 고통과 지금 주민들의 생활을 정지된 사진으로 소개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도시와 농촌, 수용소를 가리지 않고 주민들이 떼죽음을 당하던 시절, 탈북 러시를 이뤘던 시절부터 최근 함북 청진의 미공개 생활상까지를 포함했다. ▲ 1997년 북한 주민이 나무껍질로 끓인 국과 고구마로 식사를 하고 있다. ▲ 1998년 함북 청진 장마당에서 꽃제비가 바닥에 떨어진 국수조각을 잽싸게 주워 먹고 있다. ▲ 1999년 북한을 탈출한 어린이가 중국 변경수비대에 쫒기며 불안한 눈으로 뒤를 돌아보고 있다. ▲ 2002년 독일 외국인학교에 진입하기 위해 탈북자들이 목숨을 걸고 담벽을 넘고 있다. ▲ 주민들이 기차에 타기 위해 서로 밀치고 혼란해지자 기차 검열원들이 나와 통제하고 있다. ▲ 2005년 겨울 함북 청진. 버스를 기다리는 주민이 지친듯 앉아있다. ▲ 함북 청진 꽃제비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빵을 얻고 있다. 이 사진의 원본 동영상에는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빌어먹을 정신이면 나가서 도둑질을 하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이어진다. ▲ 기름이 없어 목탄차로 움직이고 있다. 건설용 통나무를 목탄차가 운반하는 모습이다. ▲ 청진 주민들이 공동 식수대에서 줄을 서있는 현장이다. 새벽부터 나와서 줄을 서야 한다. ▲ 쓰레기장에서 병, 종이, 플라스틱 등을 수거하고 있다. 이것을 팔아 장마당 국수 한그릇을 먹는다. ▲ 청진제강소 내부. 이미 폐허처럼 방치돼 어떤 기계도 돌아가지 않고 있다. 북한 공장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imText13] ▲ 청진 보안서 내부에 당국이 금지하는 각종 활동이 적혀있다. '제국주의자들의 사상문화적 침투를 철저히 짓부수자'는 구호가 적혀있다. ▲ 보안서(경찰서)에 공장 간부들이 찾아가 노동자들의 출근 상황을 보고하고 있다. 매일같이 보고하고, 출근하지 않은 사람은 그 사유를 적게 하고 보안서로 호출한다. /데일리NK 200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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