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한가위> 유난히 커 보이는 '탈북자의 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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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계획도 없어요. 되는 대로 있지요 뭐.." "쉬어봐야 마음만 가라앉아요. 일이라도 하면.." 탈북자 1만명시대 지속적 적응 프로그램 필요 "명절이라 더욱 갈 곳이 없어요." 민족의 최대 명절인 한가위 연휴를 앞두고 귀성이나 국내외 나들이를 위한 '민족의 대이동' 채비에 저마다 들떠있지만 탈북자들은 오히려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다. 특히 '홀로 탈북'한 이들은 명절이 되면 북녘에 두고 온 가족 생각에 가슴 아파하면서 아무런 계획 없이 연휴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2002년 입국한 이명철(22)씨는 "추석이나 설에 가장 외롭다"며 "가족들이 명절을 맞아 같이 다니는 모습을 보면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난다"고 말했다. 이씨는 현재 교회 복지관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데 다른 친구들은 명절이면 모두 고향에 내려가기 때문에 연휴 내내 혼자 지내야 할 형편이다. 더욱이 최근 북녘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돼 올해 추석은 유난히 서글픈 심정이다. "지난달 중국에 가서 고향을 향해 예배 드리고 왔어요. 예전에는 혼자 사는 친구들을 불러서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올해는 아무 계획도 없어요. 되는 대로 있지요 뭐.." 이씨처럼 홀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들은 착잡한 심정에 연휴 기간 아예 밖에 나가지 않고 사람 만나기를 꺼리는 경우도 많다. 2001년 입국한 박은철(24)씨는 "북에 아버지, 어머니, 누나가 있는데 이곳에는 친척도 없고 차례 지낼 곳도 없다"면서 "지금껏 특별한 명절 행사는 없었고 혼자 지내는 친구들과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정도가 전부"라고 밝혔다. 그나마 가족들과 함께 입국하거나 시차를 두고 남한에서 합류한 경우에는 서로 보듬으며 외로움을 달랠 수 있다. 2002년 입국한 홍옥희(61.여)씨는 올해까지 세 명의 딸이 모두 남한으로 들어와 오랜만에 '넉넉한 명절'을 보내게 됐다. 홍씨는 "추석이 되면 갈 데도 없고 섭섭하지만 혼자 쓸쓸히 연휴를 보내는 사람들에 비하면 난 행복하다"며 "(탈북자들은) 조상과 가족을 가슴에 묻고 오는데 여기저기 떨어져 있어 서로 챙겨주기도 힘들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는 입국 첫 해 이북5도청이 마련한 통일전망대 추석 행사에 참가했지만 해가 갈수록 명절 행사에 동참하려는 마음이 시들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혼자 지내느니 직장에서 '인심 쓰는 셈치고' 연휴 내내 일하기로 마음먹는 경우도 있다. 경기도 고양시의 한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있는 이창선(25)씨는 "특별히 쉬어야 할 사정도 없고 계획도 없어 (연휴 기간) 근무하기로 했다"면서 "처음에는 아무런 목적 없이 지냈는데 그렇게 쉬는 게 더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쉬어봐야 부모님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음만 가라앉아요. 일이라도 하면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없잖아요." 탈북자들은 이런 명절에 행사라도 있으면 참가하고 싶지만 그런 프로그램은 좀처럼 없다고 입을 모았다. 북한이탈주민연합회는 지난달 23일 북한 음식축제를 개최하고 오는 7일에는 간단한 추석행사를 마련할 계획이며, 대북 인권단체인 좋은벗들은 '추석맞이 남북한 동포 통일체육축전'(10.15)을 준비하고 있지만 모두 추석 연휴 전후에 열리는 행사들이다. 전문가들은 내년 초 '탈북자 1만명 시대'를 앞두고 있지만 탈북자 자체의 커뮤니티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고 사회적인 관심도 부족하다며 명절 행사를 포함, 지속적인 적응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영자 북한인권시민연합 사무국장은 "새터민과 유대관계를 가질 수 있는 지속적인 프로그램이 절실하다"며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지만 사회에서 새터민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이 더 문제인데, 서로 이해하고 한데 어우러지려는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연합 200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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