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주사파 핵심 2人이 본 ‘386 간첩단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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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회 조직의 적발로 드러난 간첩단의 실체는 우리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민주화의 주역으로 우리 사회 권력 핵심에 등장한 386세대에서 간첩이 나왔다는 점에서 이전의 간첩사건과는 구별된다. 특히 극단적인 민족주의와 주사파의 논리가 광범하게 퍼져 있는 386세대의 사상적 편력은 간첩들이 암약하기 좋은 토양임이 증명되고 있다. 시곗바늘을 뒤로 돌린 듯한 희대의 간첩사건을 놓고, 386세대의 대표적 운동권 인사 두 명을 연쇄 인터뷰했다. 같은 82학번으로 원조 주사파였던 김영환(金永煥·44) 시대정신 편집위원과 홍진표(43)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은 분명한 논리로 이번 간첩사건의 배경을 진단했다. ◆일심회 사건 관전법 “장민호와 북한의 부부장급이 직접 만난 걸 보면 북한에서 꽤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인다. 기존 공작 조직이 많이 깨졌을 테니 이번 건을 위해 공작금을 많이 줬을 수도 있다. 북한은 초기에 예전 남로당 인맥이나 6·25 때 이산가족이 된 인물을 중심으로 접근했다. 70년대에는 해외유학생을 포섭대상으로 삼았고, 1980년대 말부터 운동권에 주사파가 확산돼서 훨씬 대담하게 접근했다. 간첩 이선실이 구속자 가족모임인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에 접근하거나, 남파간첩 윤택림 과장이 김영환씨를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 예전의 대규모 간첩단 사건은 학생운동권 조직과 북한이 연결된 사례가 많았다. 장민호의 경우 조직을 얼마나 크게 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협조자나 동조자 관계는 많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운동권 386세대와 만나서 술 먹고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보를 흘려주는 그런 것은 많았을 것이다. 난 이번 사건은 100% 간첩사건으로 확신한다. 예전에도 간첩사건만 나오면 조작설이 제기됐다. 간첩사건의 경우 아주 오랫동안 관찰하고 숙성된 수사결과이기 때문에 조작이 힘들다.” ◆386세대의 친북(親北) “1980년대 말부터 NL계열 주사파 운동권에서는 북한과 연결되는 걸 영광으로 여겼다. 운동권이 87, 88학번으로 내려가면서부터 회합을 하기 전 김일성 초상화 앞에서 묵념하는 걸 당연히 여겼다. 북한이 일종의 신념이나 신앙이 됐다. 1992년 중부지역당 간첩사건(북한이 당 서열 22위인 간첩 이선실을 남파, 조선노동당 하부조직인 중부지역당을 구축하려고 300여명을 포섭한 사건)에서 황인오씨는 사람들을 포섭할 때 자신이 북한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접근했다. 그때만 해도 ‘북한에서 왜 나는 찾아오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걸 증명하기 위해 ‘며칠, 몇 시에 평양방송을 들어라, 그러면 이런 얘기가 나올 것이다’, 이런 식으로 포섭했다. 당시 훈련된 주사파 활동가는 1000명은 됐을 것이다. 지금은 대략 100명 정도가 될 것으로 본다.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386은 앞으로도 변하기 어려울 것이다. 386 중에는 김정일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도 절대 바뀌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nk.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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