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아이들…학교에 가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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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국적 탈북 2세…국제사회 도움 절실 ▲ 중국의 탈북 어린이 ⓒ좋은 벗들 선옥이는 중국 선양(瀋陽)에서 만난 탈북 여성 이은희 씨의 딸이다. 지난 2000년 탈북한 이 씨는 7년간 갖은 고생 끝에 중국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됐다. 이혼 후 친정집에 두고 왔던 딸 생각이 간절해진 이 씨는 지난해부터 딸을 데려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씨는 하루 종일 일을 다녀야 했고, 중국어를 하나도 모르는 선옥이는 학교를 다닐 수도 없었다. 결국 하루 종일 혼자 집에 있게 된 선옥이를 위해 몇 달 전부터 가정교사를 고용한 것이 이 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어려서부터 남의 집에서 커서인지 눈치가 워낙 빠르다. 하루 종일 혼자 있으면 싫을 만도 한데 아무소리도 안하고 얼마나 착한지. 한어(중국어)를 모르니까 밖에 혼자 내보낼 수도 없고, 학교도 못 보내고, 배울 나이에 배우지 못하는 게 제일 안타깝다.” 김영순(23세)-2006년 탈북, 평양 소재 대학 중퇴 안미란(43세)-2003년 탈북, 함북 회령 출신, 인신매매 피해 최경자(35세)-1997년 탈북, 함남 함흥 출신, 조선족 남편과 결혼 이은희(39세)-2000년 탈북, 평북 신의주 출신, 달리기 장사 강순녀(40세)-2002년 탈북, 양강도 혜산 출신, 인신매매 피해 ◆언어 장벽…중국 사회 부적응 심각=이 씨는 아이를 괜히 데려왔다는 생각에 자책감이 든다고 했다. “거기(북한) 있으면 배는 곯더라도 친구도 있고, 학교도 다닐 수 있을 텐데. 그래도 남의 집에 계속 맡겨 놓는 것도 그렇지 않은가. 애가 정신적으로 어려움이 크다. 어디서 발자국 소리만 나도 토끼처럼 놀라서 숨는다. 나는 이골이 났다고 하지만 그 어린 게 무슨 죄가 있나.” 북한 여성들의 탈북이 본격화 된지 10여년이 지나면서 이들이 중국에서 낳은 2세들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또한 탈북 여성들의 대부분이 북한에서 가정 붕괴(남편 사망, 이혼)를 경험했기 때문에, 이들이 북한에 두고 온 자녀의 수도 늘고 있다. 이은희 씨의 경우 자녀를 뒤늦게 중국으로 데려오면서, 중국 사회에 대한 부적응 문제가 발생한 경우다. 그러나 부모만 탈북하고 아이만 북한에 남는 경우 아이들은 대부분 꽃제비(부랑아)로 전락하게 된다. 강순녀 씨도 어린 자녀들을 중국에 데려왔을 경우 부적응 문제가 크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10년 전에 언니가 애들을 데리고 왔었다. 그때가 9살, 12살이었는데 소학교에 입학시켜서 한어를 배우게 했다. 그런데 애들한테 놀림 받고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걔네가 지금 22살이 됐는데 아직도 ‘이모, 조선에 가고 싶다’ 그런다.” 또 다른 경우는 너무 어린 나이에 중국에 와서 중국화(化)가 거의 완벽히 이뤄진 경우다. 김영순 씨는 “꼬마 때 와서 한어를 여기(중국) 사람처럼 하는 애가 있다. 얘는 거의 중국사람 같아서 구별하기가 힘들다. 오히려 조선에 대한 기억도 없고, 친척도 없다. 신분증을 위조해서 일도 한다. 이런 애들은 어디 사람이라고 해야 하냐?”고 묻는다. 탈북자 2세 문제의 심각성은 취학 아동의 학습권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각종 가정 파괴와 불안정한 신분으로 인해 제대로 된 사회화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점 또한 큰 문제로 대두된다. 그러나 최근 중국 정부가 북한 여성이 중국 남성과 사실혼 관계를 통해 낳은 자녀의 경우 수수료 500위안만 내면 호적을 만들어준다는 방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실행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동안은 5000위안 정도의 뇌물을 파출소(공안국)에 내야만이 아이의 호적 취득이 가능했다. 그것도 파출소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경우에만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공식적인 절차를 통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모 중 한명이 탈북자로 들통 날 경우 벌금 및 처벌을 감수해야 했다. 2003년 조선족 남편과 결혼한 최경자 씨는 며칠 전 남편의 주소지인 왕청(왕칭.汪淸)에서 아이의 호적을 취득했다. “애를 낳아도 호구(호적)가 없으니까 남편하고 (애를) 낳지 말자고 했었다. 그 불쌍한 걸 어떻게 하느냐. 학교에 가려면 돈도 많이 내야 하는데. 산골은 그나마 괜찮은데 시내에 나오면 호구가 없으면 살 수 없다.” “그러다가 올해 초부터 남편이 중국인이면 호구를 올릴 수 있게 됐다는 방침이 떨어졌다. 그러나 북한 아내가 죽었거나 도망쳐서 집에 없어야만 등록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며칠 전에 남편이 왕청에 가서 아이를 호적에 올리고 왔다. 나 하나는 버린 몸이라도 애는 잘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중국의 농촌 지역에 살거나 경제적으로 취약 계층에 속한 사람들은 아이들의 교육 문제에 1차적인 관심을 돌리기 어렵다. 안미란 씨는 “내가 팔려갔던 마음에는 조선 여자가 12명이 있었는데, 그 중 7명이 애를 낳고 살았다. 시골이다 보니까 애들이 없어서 조선 애들이라도 귀엽게 대해준다. 그러나 호구가 없어서 학교 갈 때 문제다. 소학교에 가려면 돈을 2~3배씩 더 내야하고, 고등학교는 아예 갈 수 없다. 살기가 바쁘니까(힘드니까) 나중에 해결될 것이라고 믿고 산다.” ◆부모도 버리고, 사회도 버리고...=그래도 이 아이들은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성장할 수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중국에서 버려지는 ‘무국적 꽃제비’들이다. 이 아이들은 탈북 어머니가 강제 북송되거나 한국으로 간 이후에 중국인들의 책임 회피로 버려진 경우다. 탈북여성과 결혼하는 중국인들은 대다수 빈곤층이거나 교육 수준이 낮기 때문에 경제적 빈곤을 이유로 아이들을 방치한다. 국적 취득을 위해서는 부모의 동의가 필요한데, 이렇게 버려진 아이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얘기다. 탈북자 지원단체인 두리하나선교회의 천기원 목사는 중국 내 이러한 ‘무국적 꽃제비’들의 수자가 1만여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현재로써는 어떠한 사회적 안전장치도 없이 길거리에 방치되는 이 아이들을 위한 보호시설 하나 제대로 없는 형편이다. 중국 남편과 탈북 여성의 사실혼 관계가 청산됐을 경우에도 아이들의 국적 문제는 숙제로 떠오른다. 이런 경우 중국 남편이 일방적으로 탈북 아내를 쫓아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이의 양육은 전적으로 여성의 몫이 된다. 탈북 여성이 아이를 데리고 자진해서 북한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이는 계속해서 ‘무국적’ 신분으로 남게 된다. 중국 내에서 활동하는 탈북자 지원 활동가는 “무국적 아동들의 문제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쌓여온 문제지만, 어느 단체도 발 벗고 나서지 않고 있다”며 “이 아이들은 교육을 받아봤자 소학교를 다니며 글자나 익히는 것이 끝이고, 중국 오지에서 크면서 사회화 교육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활동가는 “지난 1O년간 탈북자 문제가 주요 이슈가 되었다면 앞으로 10년은 아이들, 즉 탈북자 2세 문제가 큰 문제로 떠오를 것”이라며 “아이들의 문제는 정치적 고려를 배제한 체 인도적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으며, 국제사회 및 구호단체들이 나서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데일리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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