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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서 괴뢰군 43호로 불리던 아버지'
REPUBLIC OF KOREA 동지회 837 2007-06-26 10:43:53
작년 10월 중국 선양(瀋陽) 한국 총영사관의 보호를 받다가 중국 공안(경찰)에게 체포돼 강제 북송된 국군포로 가족 9명 가운데 한 명인 K씨가 ‘대한민국 국방부’ 앞으로 편지를 보내 구명을 호소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국군포로의 딸인 K씨는 선양 총영사관과 접촉하기 6개월쯤 전인 작년 4월 이 편지를 썼고, 이를 남한 친척을 통해 작년 여름 국방부에 전달했다고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가 25일 전했다. 국방부 당국자는 “작년 7월쯤 K씨 편지 내용을 이메일로 받았다”며 “이 편지는 국군포로 가족 송환에 필요한 본인의 자술서 성격으로 국방부가 요청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 대표는 “만약 국방부가 이 편지를 받고 곧바로 조치를 취했더라면 K씨와 K씨의 모친, K씨의 아들·딸 등 4명은 자유를 찾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이들의 북송으로 편지 속 K씨의 희망은 ‘이루지 못한 꿈’이 되고 말았다. 다음은 K씨가 국방부에 보냈다는 편지의 요지다(원문 그대로 발췌해 게재).


“…아버지는 1949년도에 군대에 입대하여 1950년 전쟁에 참가하였다가 북한에 포로 되었다고 합니다. 포로 된 저의 아버지는 ‘괴뢰군 포로 43호’라는 딱지가 붙었고 언론의 자유를 잃었으며 보이지 않는 감시 속에서 참기 어려운 인간생활을 하였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그리운 고향에 계시는 형제들을 보고 싶은 마음, 그리운 고향 땅에 가보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나 분계선이 가로막혀 갈 수 없는 설움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는데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자식들이 포로라는 아버지의 죄 때문에 희망과 포부마저 꽃피우지 못하고 남들같이 떳떳하게 살지 못하는 것이 억울하고 분하여 함께 일하던 동뇨(동료)들과 술좌석에서 속상한 말 한마디 한 것이 죄가 되어 1977년 9월 새벽 2시 ‘정치범’이라는 억울한 루명을 쓰고 감옥으로 잡혀가셨습니다.

…지금도 저의 눈앞에는 머나먼 남쪽 하늘을 바라보시며 흐르는 눈물 닦을 념(생각) 못하고 조상들의 뼈가 묻히고 형제들이 있는 고향을 그리시던 아버지의 모습과, 항상 저에게 아버지의 고향은 참 살기 좋은 곳이라며 조국이 통일되면 아버지의 조국에 가서 마음껏 노래를 부르라고 하시던 그 말씀이 귀에 쟁쟁합니다.

저는 아버지의 조국인 대한민국에 가고 싶은 마음 한순간도 접어본 적 없고 대한민국 국민이 꼭 되어 남들같이 자유롭게 떳떳하게 살고 싶으며 이전에 제가 꽃피우지 못한 희망과 포부를 저의 자식들이라도 대신 마음껏 꽃피우며 자유롭게 희망대로 살게 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에 가는 것은 저의 아버지의 평생 소원이었으며 지금은 저의 소원이자 저의 자식들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저희들의 최고 소원은 대한민국에 가는 것이오니 저희들이 대한민국 국민이 되도록 꼭 도와주십시오.

저는 저의 아들과 딸도 꼭 대한민국에 데리고 가고 싶사오니 우리 가족의 간절한 소원이 이뤄지도록 도와주시리라 믿으면서….”

2006년 4월 10일
/nk.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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