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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김영환 “나를 꺾은건 고문 아닌 北현실”
REPUBLIC OF KOREA 동지회 1202 2007-06-28 12:19:26
“김일성, 주체사상 서적 정독했는지도 의심스러워”

▲ 김영환 시대정신 편집위원 ⓒ데일리NK

1980년대 주사파 운동권의 핵심인물이었던 ‘강철’ 김영환 시대정신 편집위원이 자신의 ‘전향’ 운동사를 여과없이 털어놨다.

김 편집위원은 ‘강철서신’으로 알려진 문건과 서적을 통해 주체사상과 민족해방(NL) 노선을 학생운동의 주류로 성장시켰던 인물. 그러나 그는 1991년 5월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해 김일성을 만난 이후 북한 민주화운동가로 전향했다.

김 위원은 26일 오전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NDI·이사장 박관용)이 주최한 초청강연에서 ‘10만 주사파의 대부’가 북한민주화운동에 투신하게 되기까지의 인생역정을 담담하게 털어놨다.

굵직굵직한 인생의 전환점들을 돌아온 강철 김영환. 80년대 운동권에게 그는 신화같은 존재였다. 강철이란 사람이 정말 존재하는지,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라는 소문까지 돌 정도였다.

김 위원은 자신이 대학가에 민족해방운동론을 처음 전파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나도 놀랄 정도로 빠르게 확산됐다. 서울대는 불과 2, 3달만에 (민족해방-NL계열이)학생운동을 장악했고 전국에 걸쳐 8~10개월만에 학생운동을 장악했다”고 말했다.

“당시 나를 잡기 위해 활동한 경찰이 400명 정도가 됐다. 고향에 있는 할머니 묘소를 지키는 것은 물론 막내 이모가 세를 내준 집을 새벽에 엄습하기도 했다.” 그를 잡기 위해 경찰이 후배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 코믹한 상황까지 연출됐다는 것.

김 위원은 안기부에 검거된 후 ‘47일간의 고문’을 떠올렸다. “1월 9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기쁜 날인데, 바로 내가 교도소에 들어간 날이다. 교도소에 가게 됐지만, 안기부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고 말하자 좌중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는 “북한과 연계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 공안당국의 역할이 필요한 측면이 있었지만, 당시의 고문은 오히려 혁명의지를 다지게 하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말했다. 고문도 그의 신념을 꺾지 못했다는 것.

그러나 그를 꺾은 것은 투옥과 고문이 아니라 ‘북한의 현실’ 그 자체였다고 한다.

김 위원은 교도소에서 나온 이후에도 지하당인 민혁당 책임자로 활동하다가 91년 밀입북했다.

김 위원은 “북한 경제가 어렵다는 말은 워낙 많이 알려져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다른 측면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며 방북 당시를 떠올렸다.

특히 “북한의 학자들과 주체사상에 대해 토론하는데 ‘수령이 문화대혁명과 같은 오류를 범하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반복했지만 그들은 전혀 엉뚱한 대답만 늘어놓고 답을 하지 못했다”면서 “세상에서 주체사상을 연구할 자유가 없는 곳은 바로 북한이란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또 “북한에서 김일성을 2번 만났는데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된 주체사상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면서 “오히려 그가 주체사상에 대해 발표된 책을 한번이라도 정독했는지 의심스러웠다”고 회상했다.

북한과 연계를 강화하기 위해 감행한 방북이 오히려 북한의 진실을 깨닫게 하는 진실의 문이 되고 말았던 것. 90년대 중반부터 김 위원은 ‘북한의 수령론은 사기극’이라는 글을 말지에 게재하고 북한 민주화운동가로 공개 전향했다.

그는 북한이 ‘사이비 종교집단과 마피아 집단을 섞어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파악하고, 동료들 중 핵심간부만 추려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지금 북한은 지구상 어떤 나라에서 볼 수 없는 독재를 펼치고 있다. 인민을 굶어죽이고 인권을 억압하고 있다. 우리는 혁명가다. 인민의 적은 우리의 적이다. 인민의 적이 된 북한정권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나는 남은 인생을 북한정권을 타도하는데 바치려고 한다. 나와 같은 길을 걸으려고 한다면 나의 벗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김정일과 함께 나의 적이 될 것이다.”

김 위원은 “그 이후 나는 북한민주화운동에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당시 불렀던 노래와 구호들이 지금도 한국사회 곳곳에서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는 사실에는 안타까움을 금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친북이나 정통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세력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아니라 이미 학생운동을 벗어난 사람들”이라며 “당시의 ‘사회주의적 민족주의’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그것이 사회전반에 뿌리깊게 배어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사회의 사회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분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면서 “나는 북한 민주화를 위한 활동가로서 이 분야에 총력을 다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한 방청객이 김 위원에게 “대다수 국민들이 친북좌경화가 잘못된 길임을 일찍 알았는데 김영환 씨는 왜 그렇게 뒤늦게 그것을 깨달았느냐”며 비판하자, “그런 부분에 대해 잘 알고 있고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과거 운동권의 잔재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부정적인 측면을 극복해나가야 할 부분에 책임감을 느낀다”고 대답했다./데일리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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