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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저거 내가 한 말 맞어? 당장 떼”
REPUBLIC OF KOREA 관리자 1163 2007-10-16 15:30:44
데일리NK 2007-10-16 11:27

[대홍단 발굴비화②]99년 '감자는 흰쌀과 같다' 구호판 철거사건

데일리NK 발굴비화 “2002년 대홍단군 현지지도서 드러난 김정일의 두 얼굴” 기사가 나가자 이 지역 탈북자들에게서 당시 김정일의 대홍단 현지지도에 관한 제보가 쏟아졌습니다. 양강도 출신 복수의 탈북자에게서 당시 사건보다 3년 앞서 김정일의 대홍단 현지시찰에 관련한 제보를 받았습니다. 당시 김정일은 제대군인의 집을 방문한 자리에서 임산부로부터 아이의 이름을 지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대홍이와 홍단이라는 이름을 지었는데, 이 때문에 양강도에는 대홍이와 홍단이 이름이 유행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은 노동신문 보도에서도 확인됐고, 연합뉴스에도 소개됐습니다. 당시 현지지도에 얽힌 사연을 탈북자 제보를 통해 재구성했습니다.

1999년 8월 9일. 대홍단군 시찰 길에 오른 김정일이 차창 밖으로 펼쳐진 감자밭을 바라보며 “얼빠진 놈들”이라고 수행 간부들에게 욕설을 퍼 붓는다.

감자밭 입구마다 “감자는 곧 흰 쌀이다!”라는 대형 구호판들이 걸려 있었다.

김정일이 1년 전 이곳을 방문했을 때 간부들에게 '감자는 흰 쌀과 같다'는 말을 하자 현지 간부들과 당 선전선동부에서 감자밭마다 이 구호를 써 붙이라고 지시를 내린 것이다.

아무리 감자농사가 중요하다고 해도 감자가 주식인 쌀과 같다는 것은 누가 봐도 상식 밖의 이야기였다. 김정일은 이 구호가 자신이 한 이야기인 줄 잊고 있었다.

대홍단군 감자농장 표식(글씨) 비석 앞에서 차를 멈춘 김정일은 책임부관에게 “어떤 놈의 새끼가 저렇게 지껄이고 다녀? 감자가 흰쌀이라는 게 말이 돼?”라며 버럭 성을 냈다.

그리고 첫 일정으로 새로 도입한 감자 수확기에 접어든 작업현장을 방문했다.

차에서 내리는 김정일을 향해 대홍단군 당 책임비서 김성진이 달려 나왔다. 하지만 그는 김정일이 손을 쳐들며 제지 시키는 바람에 자리에 멈추었다.

"감자가 흰쌀과 같다니 말이되나?"

순간 이상 기운을 감지한 김성진은 어떤 벼락이 떨어질지 몰라 얼굴이 새까맣게 돼 (그는 간부들에게 “그 순간 하늘과 땅이 딱 맞붙어 돌아가는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자리에 굳어진 채 굳어버렸다.

김정일은 손을 양 옆구리에 얹고 한참 서서 한곳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감자는 흰 쌀과 같습니다. 김정일” 이라고 쓴 커다란 말씀판(김정일의 말을 새겨 넣은 구호판)이 있었다.

말씀판을 한동안 바라보던 김정일이 갑자기 크게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곳을 가리키며 멍하니 서있는 김성진에게 “야. 저거 내가 한 말이 맞어?…” 하고 물었다. 김성진이 차렷 자세로 “네. 장군님. 장군님께서 지난해(1998년) 10월 1일 대홍단을 찾으시어 하신 말씀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한편으론 어이 없고, 한편으론 난감한 표정을 짓던 김정일 다시 말씀판을 쳐다보더니 “야 이 새끼들아, 암만 그래도 그렇지, 감자가 어떻게 흰쌀이 되냐? 야! 저거 당장 떼어버려…” 라고 했다.

김정일의 지시를 받은 김성진이 즉시 “알았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대답한 후 심복들에게 달려가 당장 구호를 떼어 버리라고 했다.

김정일의 이 발언은 북한의 대남선전잡지 통일문학 2005년 1월호에 “1998년 10월1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홍단 방문시 ‘감자는 흰쌀과 같다’는 말을 했다”고 소개돼 우리 언론에도 보도된 바 있다.

당시 대홍단군 주민들은 김정일이 방문한다고 밖에도 못나가고 있었다. 그때 집에 머물고 있던 주민들은 갑자기 구호판을 철거하라는 지시가 내려오자 영문도 모른 채 현장에 달려가야 했었다.

김정일의 발언은 단순한 헤프닝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김정일이 감자혁명을 부르짖자 양강도뿐 아니라 다른 지역까지 감자농사를 지으라면 옥수수밭까지 뒤집고 감자를 심었다. 기후적으로 감자농사가 안 되는 함경남도나 평안남북도까지 많은 밭을 감자밭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감자밭마다 김정일의 말씀이라고 ‘감자는 곧 흰 쌀이다’라는 구호를 세우게 했는데 1년도 못가서 선전선동부로부터 그 구호판을 모두 철거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기후적으로 감자 생산량이 떨어지는 함경남도와 평안남도는 적은 감자 수확량 때문에 몇년째 고생해야 했다.

이런 김정일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장악능력이 뛰어난 지도자"라고 칭찬했다.

비판 대상에서 특별 관리 대상으로

연합뉴스 2006년 1월 26일자는 "김 위원장이 감자로 유명한 량강도 대홍단군을 방문했을 때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지어달라는 임산부의 부탁을 받고 '아들을 낳으면 '대홍'이라 짓고 딸을 낳으면 '홍단'으로 지을 것'을 권했다는 일화도 있다"고 소개했다.

노동신문 1999년 8월 12일자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량강도 대홍단군종합농장과 삼지연군 무봉 노동자구를 현지지도 하시였다"는 제하의 보도에서 이 사연에 관련된 제대군인 '리강선'의 집을 방문해 내외와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이 보도 내막에도 사연이 따로 있다.

1999년 8월 10일 김정일이 대홍단군 홍암분장에 새로 지은 대홍단 제대군인들의 주택(김정일의 지시로 제대군인 1천명이 강제로 대홍단 농장에 정착되었다. 북한에서 이런 것을 '무리제대'라고 한다)을 돌아보았다.

김정일은 함께 동행한 부인 고영희와 제대군인 이강선, 이기선의 집을 돌아보았다. 김정일의 방문에 대비해 며칠 전부터 꾸려놓은 집이었다.

김정일이 이강선의 집을 돌아볼 때 임신 6개월 된 그의 아내가 “장군님 앞으로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김정일이 낮을 찡그리며 “그거야 너희들이 알아서 지으면 될게 아니야”라고 했다.

한참 여기저기 살피고 있는데 이강선의 아내가 또다시 김정일에게 메달리며 “장군님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좀 지어주십시오”라고 했다.

계속해서 달라붙는 여자에게 짜증났던 김정일이 버럭 화를 냈다.

“야, 뱃속에 있는 아이 이름을 내가 어떻게 짓는다는 거야?”

김정일이 성을 내자 즉시 호위일꾼들이 달려와 여자를 제지시켰다.

집주인인 이강선과 그의 아내는 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잘못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김정일이 돌아가자 즉시 이강선과 그의 아내가 군당 선전부에 불려갔다. “장군님 앞에서 무엄한 요구를 했다”고 비판서를 쓰며 며칠 동안 고생을 했다.

산모 관리 위해 평양산원 의사 헬기로 공수

군당뿐만이 아니었다. 마을에서는 분장장(대홍단에서는 작업반 반장을 분장으로 칭함)과 초급 당비서, 보위지도원에게 불려가 또 곤욕을 치루고 농장원들 앞에서 사상투쟁 대상이 됐다.

특히 이강선 은 당 생활총화와 농장원모임에서 “장군님께 무엄한 말을 해 심려를 끼쳐드렸다”고 자기비판을 해야 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대홍단 출신 탈북자 이경희(2006년 입국) 씨는 2007년 7월 13일 자유북한방송에 기고한 글 “대홍단 감자농장에 집단지출한 제대군인들의 후회”에서 “김정일에게 아이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던 제대군인과 아내는 당 기관에 불려가 감히 장군님에게 버릇없이 굴었다고 엄청난 추궁을 받고 야단을 맞았다고 한다”라고 썼다.

김정일이 방문 후 이틀 뒤 대홍단군을 떠나 삼지연군 무봉 노동자구로 향하던 때였다.

수행원들과 대홍단군 이야기를 하던 김정일이 갑자기 “응, 거 나한테 아이이름 지어 달라던 거 있지? 그거 남자면 ‘대홍’이 딸이면 ‘홍단’이라고 지으면 될게 아냐?”하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수행원들이 “참으로 장군님만 구상할 수 있는 훌륭한 생각입니다”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

이 말 한마디에 사태는 순식간에 반전됐다. 여기저기 끌려 다니며 비판을 받던 이강선 부부를 제대군인들 앞에 불러 놓고 “김정일 장군님의 말씀 전달식”이라는 행사를 요란하게 가졌다.

바로 그날 평양에서 대홍단까지 평양산원 의사 6명이 헬기를 타고 내려왔다. 이 의사들은 여인의 몸을 검진하고 이상이 있는지 여부를 정밀 진단했다.

평양산원 의사 2명은 평양으로 복귀하지 않고 이강선의 아내를 계속 진찰하며 관리했다. 이강선의 아내는 일체의 노동일에서 면제를 받고 (북한은 임신8개월 때 휴가를 줌) 평양산원 의사 2명과 대홍단군 산부인과 의사들의 특별한 관리 속에 생활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장군님이 이름을 지어준 아이에게 이상이 생기면 안되기 때문이다. 훗날 그녀는 딸을 낳아 아이의 이름을 '홍단'이라고 지었다.

당시 대홍단군 일반 주민들은 장군님의 은혜라며 경탄을 했지만 속으로는 '세상에 별 일도 다있다'는 반응이었다. 이강선의 아내만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대홍단군 당 분위기는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김정일 현지지도 때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노심초사 하게 된 것이다.

2002년 대홍단군 조직비서가 현장에서 철직당한 사건은 그 하이라이트였다.

김정일의 기분에 따라 무고한 사람들이 당장에 죽을 수도 있고 또 행운을 얻어 출세 할 수도 있다.

북한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 있다. "길고 약하게 살기보다 짧고 실하게 살자!" 이말은 못살고 굶주리며 오래 살기 보다는 잠깐이라도 출세해서 해볼 것은 다 해보고 죽자는 뜻이다.

신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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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참 2007-10-16 18:38:45
    북한은 <흰쌀>을 <입쌀>이라고 하는걸로 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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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난의운명 2007-10-16 19:48:01
    이글을 잘못된 글입니다..당시 홍단이는 성이 민씨구 애기 아버지 이름은 민원식입니다..글을 올리시는분들 글을 올린다고 해서 거짓말을 보태지마시거 사실을 올리면 고맙겟습니다..정확하게 홍단이의 아버지 이름은 민원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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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난의운명 2007-10-16 19:56:54
    제가 양강도에서 20여년을 살면서 대홍단에 감자동원 많이 다녓습니다 그리고 그떄이름지은 대홍이와홍단이라는 노래가 잇습니다 그 홍단이라는애 지금은 다섯살~여섯살 정도 됫고 그애는 신문에 나기에는 민원식의딸 민홍단으로 되잇습니다.. 그떄 로동신문에 그기사를 다시 잃어보시고 글을 올리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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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탁 2007-10-17 13:55:05
    이름이 잘못 되었습니다. 년도가 잘못된점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글의 내용은 사실이겠죠? 그리구 "수난의 운명"님 글의 수정을 위해 방조 부탁드립니다. 데일리 NK로 연락바랍니다. 데일리 엔케이 홈페이지에 전화번호있구요~ 소정의 사례금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름이 잘못되었다구 전체기사의 내용은 부정하지 마세요~ 사실을 확인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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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일리엔케이 2007-10-17 14:04:17
    기사제보에 도움주신분들 감사드립니다. 그리구 기사제보하신분들도 연도에서 착각이 많았습니다. 연도나 인물의 이름은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서 추정하고 연구하다나니 실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사의 내용은 확실하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연도와 이름의 실수에 대해 독자분들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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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난의운명 2007-10-17 19:40:03
    제가 저 글의 내용을 수정할만한 정도로까지는 알고 잇는게 없습니다..그냥 그 본인들의 이름만 기억하는거네요...ㅎㅎ 그리고 데일리NK 사이트에는 제가 외국인회원으로 가입되여 잇습니다.

    부탁님 저는 내용을 전부 부인하는것이 아니구요.,다소 틀린 구석이 잇다는 말씀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전체기사의 내용은 일호일군들도 모르는것을 제가 알리는 없으니까 그것에 대해서 말한게 아닙니다,,,다만 이름과 그리고 감자는 흰쌀과같다 이구호 제가 일할때 많이 공부햇던 구호입니다 직업상 공부를 해야하는 직업이여서 구호암기 구호의 내용 제시날자 이런 공부 많이 햇엇습니다..그공부가 싫어서 도망치긴 햇지만요,,,저 구호는 2002년 페지되지않앗습니다..지금도 그걸 알려면 청년동맹 일군들의 사업게획서 뒤져보시면 저구호의 제시날자와 내용이 다 들어 잇습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도 한번 시도해 보세요 그럼 제말이 믿어질겁니다.
    그게 믿어지지 안으시다면 appleli87@hotmail.com 여기로 연락주세요..

    부탁님 한번 저랑 메신저로 이야기 하실생각 잇으세요? 잇으시다면 제가 기꺼이 응하죠....저도 할 이야기가 잇으니까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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