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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비화] 김일성 "감자가 안되면 콩 심으면 되지"
REPUBLIC OF KOREA 관리자 806 2007-10-22 15:01:22
데일리NK 2007-10-19 16:59

92년 김일성에 '바른 소리'한 농장 지배인 '종파' 몰려

지난달 말 평안북도 신의주시의 쌀값은 1,400원이다. 수해로 식량생산이 급감해 주민들의 불안해 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 10년이 지났지만 식량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국제사회에 구걸하고 있다. 북한이 식량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데는 김일성(사진)-김정일 부자의 얼토당토 않은 지시도 한 몫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김부자의 지시라면 무조건 관철해야 하기 때문에 그 폐해가 드러나도 개선하기 어렵다. 이러한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수용소에 끌려가기 때문에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김일성이 1992년 양강도 삼지연군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1993년에 출판한 북한 '조선중앙년감' 118페이지에는 1992년 8월 16일부터 9월 3일까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함경북도 내 인민경제 여러 부분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 하시였다”고 썼다. 무려 20여일간 함경북도 사업을 현지지도했다는 기록이다.

그러나 김일성의 구체적인 현지지도 행적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당시 김일성은 삼지연군 포태노동자구에 위치한 초대소(김일성전용 특각)에서 휴가를 보냈고 있었기 때문이다.

1992년 8월 포태리에 있는 전용 특각에서 휴가를 보내던 김일성이 주변의 감자밭을 돌아보게 됐다.

전용특각 안에 있는 자그마한 밭으로 호위총국 군관 가족들이 부식물을 해결하기 위해 감자를 심어 놓았다. 그러나 그 해에는 비가 많이 오고 날씨가 시원치 않아 감자농사가 잘 되지 않았다.

감자밭을 돌아보던 김일성이 “올해 포태농장 감자농사형편이 어떤가?”고 물었다. 김일성 주변에는 호위총국 군관(장교)들과 서기들뿐이어서 대답할 사람이 없었다.

김일성은 그 자리에서 “당장 포태농장 지배인과 초급당비서를 불러 오라”고 지시했다.

당시 포태농장은 국영농장으로 지배인제였다.

뜻밖에 김일성이 부른다는 소식을 들은 포태농장 지배인(당시 그는 노력영웅이었음)과 초급당비서는 감지덕지한 마음으로 호위총국 일꾼들의 차에 올랐다.

김일성은 감자밭에서 포태농장 지배인에게 올해 농사형편에 대해 물었다.

날씨 때문에 감자농사가 잘 안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김일성은 포태농장 지배인에게 감자말고 다른 것을 심어 보라고 했다.

포태농장 지배인은 “수령님, 이곳 백두산 기후에선 감자 외에 다른 농사가 안 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김일성은 “왜? 그 보라콩 있지 않아? 그건 여기 잘 될 것 같은데, 그걸 한번 심어봐”라고 말했다.

포태농장 지배인이 정중하게 “수령님, 보라콩은 잘되긴 하지만 주식이나 부식물로 쓸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보라콩은 사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지배인의 말대로 보라콩은 먹을 수는 있지만 감자를 대체하거나 주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왜? 보라콩이 단백질이 많다는데 감자보다 낫지 뭐? 한번 심어봐!” 김일성이 명령조로 말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포태농장 지배인이 “그래도 지금까지 양강도 주민들 식생활엔 감자가 낫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김일성은 짜증어린 어조로 “그래도 심어봐. 감자보다 단백질이 훨씬 높고 좋지 않아?”하면서 포태농장 지배인을 바라보았다. 포태농장 지배인은 답답한 마음을 억누르며 “…점차적으로 심어 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김일성이 당장에 노발대발 했다.

“야! 이건 어데서 굴러 온 놈이야! 심으라면 심을 것이지? 이거 완전히 종파 같은 놈이로구나? 네가 어떻게 지배인이냐?” 고 고함을 질렀다.

이것으로 포태농장 지배인의 운명은 끝이 났다. 당장에 김일성의 책임서기에게 소환돼 곤욕을 치루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도당 조직부에 불려나가 사상투쟁 무대에 올라섰고 그 자리에서 해임철직되었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노력영웅칭호를 박탈당하고 번듯하게 지어놓은 집에서 추방돼 일반 농장원들이 사는집으로 쫒겨 갔다.

당적인 검토가 끝나자 다음은 보위부가 달려들었다 국가보위부는 김일성이 “종파 같은 놈”이라고 한 말을 근거로 포태농장 지배인에게 “현대 종파”라는 딱지를 붙였고 결국에는 한달 만에 가족과 함께 정치범수용소로 가게 되었다.

양강도 삼지연군 출신 탈북자 김인실(가명 55세 여) 씨는 “이젠 참 오래전 일이다. 김일성이 죽기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 당시 포태농장 지배인은 노력영웅으로 정말 농사에 모든 것을 다 바쳤다. 그래서 농장원들의 신망도 대단했다. 그런데 말 한마디 때문에 정치범감옥에 가게 되었다”고 했다.

이어 “그 일이 있은 후 감자는 적게 심고 보라콩을 주로 심었다. 양강도의 다른 농장들도 보라콩을 대량으로 심었다. 그러나 보라콩을 가공해 먹을 방법이 없어서 김일성이 죽고난후에는 다시 모든 밭들에 감자를 심는다”고 했다.

김일성-김정일의 무능 때문에 발생한 식량난의 책임을 지고 피해를 당한 간부는 이외에도 한 둘이 아니다. 1997년 북한농업담당비서 서관히와 숙천군 협동농장 관리위원장(노력영웅)을 간첩협의로 몰아 총살한 사건, 김만금 농업위원장에 대한 부관참시, 피창린 농업연구소 초급당비서를 수용소에 넣어 살해한 사건이 있다.

고위 간부들이 이렇게 숙청된 조건에서 그 밑에서 소리 소문없이 죽어간 사람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보라콩=콩과의 하나. 추위에 잘 견디고 소출이 높으며 높은 산간 지대에서 많이 심는다. 줄기는 높이가 1미터 정도이고 연한 풀색이며, 굵고 세모졌다. 탈북자들은 보라콩은 수확량이 좋지만 가공해서 먹을 방법이 없다고 한다.

문성휘 기자(자강도출신, 2006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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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인 2007-10-22 17:21:18
    참 이런 기막힌 일은 급구 여기에 나오는 데서만 있는것이 아니지요
    말 한마디에 영웅이 되고 말한마디에 역적이 되고 종파가 되고...
    함경북도 온성에는 왕재산이란곳이 있지요 거기 관리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대위원이였지요 나중에는 부령군당 책임비서까지 갔다가 거기서 병으로 죽었는데 그가 1991년 8월 김일성이 왕재산을 현지지도 하는 과정에 그가 중국에서 밀수해돈 콩을 심었지요 연구용으로 중국콩이 너무잘되니 한번 그 경험을 살리려고 심은것인데 김일성이 그 콩을 보고 야 이거 무슨종자냐 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관리위원장은 대뜸 예 이것은 온성1호입니다 우리가 연구한 콩입니다 라고 재빠르게 대답했지요
    김일성은 너무 좋아 입이 귀밑까지 째개지며 야 너 수고했다 라고 하며 치하를 하였다고 합니다 김일성은 중국종자를 거짓으로 보고한 관리위원자의 소리를 그냥 믿고 이 콩을 전국에 심으라 지시했고 그후 그 위원장은 승승장구의 길을 걷다가 죽었습니다 이렇게 거짓과 아참으로 사는 사람은 승승장구하지만 바른말하고 진짜 인민을 위한 사람은 종파가 되고 역적이 되는 것이지요 그것이 북한이 현실이고 지금도 엄연이 있는 오늘입니다
    이런 일이 다시없도록 하기위하여서도 김정일 정권은 빨리 물러나야 합니다 그날을 위하여 우리모두 합심하여 더 북한정권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우리모두 그날을 위하여 하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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