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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님의 사위보다 한조각의 자유가 낫다
Korea, Republic o 관리자 1558 2008-01-31 00:29:51
자유북한방송 2008-01-30

“한때 김정일의 사위가 될 수도 있다는 환상에 젖어 지냈던 적도 있었습니다.”

인민군 총정치국 소속의 적공국(697연락소)해외공작부에서 장교로 근무했던 탈북자 이영호(가명37)씨는 2004년 자신과 김정일의 딸 김설송과의 혼사 말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현재 미국행을 위해 방콕의 모처에서 대기 중인 탈북자 이영호(가명)씨는 22일 본 기자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이 같은 주장을 했다.

북한의 경보병(남한의 특전사)부대에서 8년간 전사부터 군관까지 체계적으로 승진한 이씨는 빨치산줄기라는 토대와 권력의 상층부에 있는 친척들의 도움으로 2000년부터 적공국 해외공작부의 간부로 근무하게 된다.

적공국은 말 그대로 적(한국)을 상대로 공작을 하는 부대이다. 인민군은 김일성의 지시로 1965년 5월부터 인민군 안에 있던 적공국을 총정치국 산하로 옮겼다. 적공국의 평시 주 임무는 한국군 동조자 포섭과 휴전선 부근에서 전단 살포, 그리고 심리전 차원에서 대남방송을 하는 것 등이다. 전시에는 국군으로 위장해 한국군 지역으로 침투, 군을 교란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씨는 적공국 해외공작부는 해외에서 남한에 침투하거나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공작거점을 꾸리는 사업과 함께 자금마련을 위해 마약과 무기, 골동품을 해외에 판매하는 사업도 진행한다고 소개했다.

적공국 해외공작부는 1990년대까지는 일본 조총련을 이용해 활동을 진행해오다가 일본의 대북제재로 거래 루트가 막히게 되자 중국과 동남아로 거래처를 옮겨 정보수집과 마약, 무기, 골동품 판매를 재개했다.

이씨는 적공국에서 벌어들인 외화를 총괄하는 책임자는 김정남이며 결국에는 그 돈이 김정일의 비자금으로 들어간다고 말했다. 이씨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으로 있는 현철해 대장은 2002년까지 적공국 산하 811연락소 소장을 겸임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씨는 2004년 여름 김정일의 측근으로 일하는 친척의 소개로 김정일의 딸 김설송과의 혼사문제가 거론된 적이 이었다며 만일 그때 기회만 잘 맞았다면 자신이 김정일의 사위가 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정일의 측근으로 일하는 이씨의 친척이 어느날 김정일에게 조카(이씨)가 있는데 김설송과 맺어주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제시하자 김정일은 그런 일은 김경희와 상의해보라고 말했다고 이영호씨는 말했다.

그 후 김경희를 만나 혼사문제를 꺼낸 이씨의 친척은 김경희에게서 일단 조카(이씨)를 한번 만나보겠다는 답변을 받고 약속 날자를 잡는다. 2004년 7월 어느날 이영호씨는 김경희와 약속한 날자에 친척과 함께 김경희의 저택을 찾았지만 김경희는 해외에 출장 중이라 만나지 못하고 대신 비서를 통해 그곳에 와있던 김정남을 만난다.

김정남은 이씨에게 고모(김경희)가 외국에 나가는 바람에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는 인사를 전해주라고 했다며 가족과 일에 관한 몇가지 질문만 하고 다른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이씨의 친척은 김정일이 이 문제를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 채고 조카와 김설송과의 혼사문제를 다시는 꺼내지 않았고 이씨도 장군님의 사위가 된다는 꿈을 포기하게 된다.

2004년 12월 연락소 요원의 신분으로 골동품 판매차 중국에 나온 이씨는 우연히 탈북자들과 접촉하면서 인생이 꼬이게 된다. 이씨가 들고 나간 물건을 처리해 주는 중간 브로커가 탈북자였는데 그가 여권을 위조해 미국에 가려다가 중국 국가안전부에 체포 되어 이씨의 거처를 불어대는 바람에 그도 중국안전부에 체포 된다.

이씨는 6개월동안 감옥에서 지내며 탈북자로부터 많은 것을 듣고 느끼게 된다. 한편 중국안전부는 조사과정에 이씨의 신분을 확인하고 자신들에게 협조하도록 회유공작을 펼쳤다. 그러나 이씨가 넘어 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더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2005년 6월에 그를 북한 보위부에 넘긴다.

다시 북한 보위부에서 6개월간 조사를 받은 이씨는 무죄임을 입증 받고 석방되어 부대에 복귀한다. 그러나 중국과 북한감옥에서 세상을 알 것만큼 알게 된 그는 북한체제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미국으로 갈 결심을 하고 탈북하게 된다.

그는 이제 머지않아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며 자신의 꿈이 이루어져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끝으로 북한에 있을 때는 김정일의 사위가 되어 인생한번 고쳐보려는 꿈도 꾸었지만 바깥세상에 나와 보니 그 모든 것이 부질없는 것임을 느끼게 되었다며 “김정일의 사위가 되어 호화롭게 사는 것보다 내가 얻은 한조각의 자유가 더 소중하다”고 말했다.

김대성 기자 lstar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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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1-31 10:27:23
    이글은 ㅎ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08-01-31 15: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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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터민 (나) 2008-02-17 10:38:31
    이영호님의 선택은 우리가 배워야할 선택여지라 생각합니다.세상살아 가는데 자기자신을 위한자유가 없다는것은 삶이아니고 지옥이될수 있기때문이다 어쩄든 이영호님은 자유를찾아 어디를 가든 김정일사위된 삶보다는 더낳은 삶을 살것이고 생각이된다.선택.이선택이 인생의 기쁨도,자유도,행복도 있게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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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일 2008-02-28 22:29:31
    적공에군무하셨다고요 나두 그곳에있었는데 참홍원에두잘다녔는데 가본적이있는지요 어찌댔던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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